소설리스트

2인자는 회귀했다-232화 (232/248)

“저... 그만해주시면...”

“...아니야...! 내가 잘못했어어어써...!! 아메리...!”

모두들 사죄의 분위기가 이어졌다.

레오나르도에겐 썩 익숙한 감각이었기에 당황치는 않았지만, 1회차의 기억조차 없는 아메리에게는 고맙다 못해 곤란하기까지 한 감사였다.

하프엘프인 자신이 리오스와 결혼을 할 수 있을까 없을까도 의문이었는데, 오히려 반대의 상황이 벌어지니 분명 다행인 상황이지만 마냥 좋아할 수가 없었다.

“...저기... 레이널드 씨... 어떻게... 해야...?”

“대충 내버려 둬. 어차피 사과하지 말라고 하면 울면서 더할 호구 독종들이야.”

질타에도 상관치 않고 그들은 사과를 이어갔다. 이쯤 되면 연례 행사로 만들어도 위화감은 전혀 없을 것이다.

레오나르도의 인생은 지금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지만, 분명 있을 수 있고 있었던 일이었기에 생긴 모순.

어쩌면 라인하르트 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이 기억들을 보여줘도 비슷한 반응을 보일지도 모른다.

‘...아니, 그건 아닐지도...’

인간은 결국 자기 편한대로 생각하기 마련이니까.

어찌보면 답답한 이 녀석들이 유별난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제 아들은... 어떻게 되나요? 전...”

“그게 나도 제대로 확인하러 가려고 했는데...”

[우와아아악!! 씨바아아알!!]

기억 영상에서 걸쭉한 육두문자가 흘러나온다. 장면은 파도가 넘실거리다 못해 배를 부숴뜨리는 해일이 전면을 채우고 있었다.

“어인형 마인을 해치우다가 해일이 생겨서 조난당했어.”

“...조, 조난이요?!”

[아, 그러고 보니 무인도에서 살았다고 했는데 이게 그거야?]

레오가 직접 대답할 것도 없이 영상 쪽으로 손가락을 가리켰다. 영상에서 레오는 기절한 채로도 바다를 헤엄치는 기행을 벌이고 있었다.

이미 생존에 특화된 그의 몸은 자동적으로 가까운 무인도로 헤엄쳐왔다.

[아... 시이이발 왜 살아있지?]

단지 너무 자동적인 나머지, 생존에 대한 감사가 그다지 없었다는 문제였을 뿐.

[씨바... 아 암초가 존나게 많았는데... 다리 하나는 잘렸어야 정상이잖아 씨팔... 담배는 안 그래도 돗대인데 좆같이도 젖었네.]

그리고 기억을 이런 식으로 되짚어볼 거라고 당시에 생각도 못 했기에.

[씨바...씨바아아알!! 뭐 이런 인생이 다 있냐고!!]

한 중증의 우울증 환자의 생생한 생활을 날것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자살도 못하고오오!! 섹스도 못...]

“쿨럭쿨럭쿠럭...!!”

너무 날 것인 것이 문제였지.

트라우마를 목격한 충격으로 사래가 들렸는지 레오나르도는 계속해서 기침을 내었다.

[으아... 자살하고 싶다!! 섹...!!]

“어흠어흠...! 켈록!!”

딱히 누가 뭐라 하지는 않았지만, 레오 본인이 홀로 민망했는지 계속 기침을 해대었다.

[검열해주리?]

“검열돼?!”

현자의 한 마디에 기침병이 씻는 듯이 나았는지 맑고 깨끗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지금 자식이 보는 앞에서 흑역사가 만천하에 드러나는 지금, 현자의 제안은 한 줄의 빛처럼 보일 것이다.

[어, 기능을 넣어두긴 했는데. 쓰긴 좀 애매해서.]

“애매하긴 뭐가 애매해!! 당신을 만난 게 처음으로 감사하게 느껴진다고!!”

지금도 육두문자가 실시간으로 울리는 지금, 환경적 정서를 위해서라도 검열은 필수적이었다.

[알았어. 또 욕하겠구만.]

현자는 손을 그대로 검집에 관통시키면서 주문 같은 걸 중얼거렸다.

그러자 일순에 욕설이 사라졌다.

[X같네. XX 되는 게 없어.]

대신 검열음이 울렸을 뿐.

[XXX 에일린, XXX 루미네.]

노골적으로 욕설이 생각될 만큼 검열음이 울렸다. 인위적인 기계음이 대체된 것만큼 자극이 상상력을 지배했다.

아마 현자가 말한 부작용은 이게 아닐까, 레오나르도는 진지히 생각했다.

짜증은 나지만,

[그 XX, 아주 대추차랑 인삼차 먹여줬을 때 XX를 뜯어서 백숙을 끓였어야 했는데.]

“...그... 게 그런 의미가 아니라...”

레오는 검열음이 울리지 평소 보지도 않던 종교쟁이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인신공격을 넘어선 건 감이 없지 않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괜찮아요. 애초에 상황에 화가 나신 거잖아요.”

사실 저 말에 루미네는 딱히 화가 나지는 않았다.

‘...근데 백숙이 뭐지? 먹는 건가?’

제국인이 동방 조류 요리에 해박할 리도 없었고 말이다.

“...어쨌든 무인도에 몇 달 동안 있다가 근처 해적들이 이곳에 오길래 배를 얻어탔지.”

[뺏어탄 게 아니고?]

“협상을 했다니까.”

현자는 의심스러운 눈치로 레오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본 심성이 착하더라도 나쁜 새끼, 마인 새끼 앞에서는 마왕보다도 독해지는 게 레오였다.

하물며 아리아도, 보는 사람도 없는 와중에는 더할 것이고.

[XXX 새끼들, 가만히 있는 섬주민을 X빵을 놓고 XX이야. 너희만 성깔 있어 XX야?]

더했다. 무인도에 새가 많이 살았는지 걸쭉한 새소리가 레오의 입동작과 동시에 생생히 울렸다.

어느샌가 섬 생활에 그냥 정착했는지 옷차림도 동물가죽을 뜯어서 망토까지 두르고 있었다.

[오마에가 와르인다!]

“...어?”

레오나르도에게 얻어터져 그대로 무릎 꿇은 해적은 그렇게 외쳤다.

평범한 해적들처럼은 안 보였다. 아무리 미래라고 해도 옷차림 자체가 제국식도, 해적처럼도 안 보이는 특이한 형태였다.

게다가 하는 말도 미래어라고 하기엔 아예 의미조차 이해하기 어려웠다.

[오레타치 나와바리데...!]

“...무슨 말이에요?”

“...동방어인 것 같은데... 정확히는...”

아무리 글라디오가 가주로서 여러 지식을 익혔어도 동방어를 즉석에 번역해낼 만큼 언어에 박식하지는 않았다.

그것도 아직 대륙 전체가 통일되지 않아 나라마다 언어가 다른 경우가 있는 동방에서라면 그 어려움은 배가 된다.

[참고로 자막 없어. 그건 진짜 막노동이여서.]

욕을 지우는데도 한 세월 걸렸던 현자도 몇 십년 인생극장에 자막을 달 요량은 없었다.

“번역이 필요하시다면 해보겠습니다.”

그 자리에서 나선 건 아인이였다. 이미 아인은 아버지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 마탑에 있는 동방 서적까지 모두 정독한 후였다.

“아인아, 너 번역도...”

“[그럼 기껏 지은 집에 대포를 쳐싸갈기지를 말든가. 동방어로 말하면 모를 줄 아냐? 가랑이에 있는 대포까지 꺾어야 쓰겠네. 답없는 새끼들.]”

딸 하나는 잘 키웠다는 자랑스라워했던 레오나르도의 귀에 직접 딸이 걸쭉한 육두문자를 더빙해주었다.

검열된 부분까지 고생해서 해설주는 섬세함이 아주 세밀하게 레오의 치부를 찢어놓았다.

“아, 아인아...?!”

“죄송합니다 더 세밀하게 해보죠. [내 동료가 죽는다고!! 시바!!]”

아인은 정작 중요한 부분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계속 번역을 이어갔다.

무뚝뚝해도 청순한 소녀인 아인의 입에서 번역과 함께 같은 욕이 튀어나온다.

X바, X새끼, X랄, X병, 병X.

악의없는 상태로 흘러나온 욕설들은 한 50대 가장의 심정을 무참히 난도질했다.

“[이 빡통가리들아! 누가 봐도 괴혈병에 마병이잖아!! 어서...읍읍...]”

“미안!! 아빠가 다 잘못했어!! 아인이는 아주 잘했지만 너무 나쁜 말이 많으니까 그만하자!”

“아헤읍으다.”

아인은 아버지가 뭘 잘못했는지 이해 못했지만 번역 더빙 자체가 곤경에 처하게 하는 것 같아 해설을 그만두었다.

그럼에도 기억의 영상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재생되었다.

“...어쨌든 내가 저 해적놈들 문제 해결해주는 대신 배를 든든히 얻어탔지. 조류가 아예 뒤틀려있어 가지고 뗏목으로는 각이 안 잡히더라고.”

[역시 가야겠지? 여기서 사는 것도 나쁘진 않은데, 역시 가야겠지? 역시?]

지금하는 말과는 달리 기억 속 레오나르도는 심히 갈등하는 표정으로 갑판에 앉아있었다.

시큰둥하고도 멍하니.

[센쵸오오오!!! 타스케테쿠다사이!!!]

해적들은 조류에 휩쓰려 그대로 죽어나가는 그 상황에도, 레오나르도는 고민에 빠져있었다.

대강 돛대에 매달린 해적이 소리를 두어번 정도 더 지르자 레오는 궁시렁거리며 항해를 이끌었다.

“이렇게 해서 제국 해안가에 상륙한 거야. 진짜 고생했지.”

“...그런데 제 아들이 이것과 어떤 연관이...”

[우우우우웅]

아메리의 질문에 답하듯 레오나르도의 단말기가 울렸다. 물에 젖어서 고장났다 생각한 단말기가 여러 달 있던 공백기를 한꺼번에 몰아채우듯 울려대었다.

[...잠깐, 이거 작동되네?]

[<4개월 21일 13시간, 그 동안 네가 연락두절된 기간이다.>]

전자음이었지만 누구의 목소리인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에일린?”

[에일린? 너냐?]

레오나르도도 간만에 울린 단말기의 목소리가 에일린의 것이라는 단번에 알아차렸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보고해라.>]

1회차의 에일린은 다른 때보다 냉랭히 레오에게 말을 전달했다. 2회차의 본인조차 거부감이 느껴질 정도로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했다.

[XX, 왜 기껏 배 난파당하고 조난에서 살아돌아왔는데 사람한테 명령조로 XX이야. 진짜 확 한번 탈주각을...]

[<카페인 메카닉이 죽었다.>]

레오나르도의 표정만이 아니라, 영상을 보는 다른 이들마저 경악에 물들었다.

아메리조차 자신의 죽음에는 초연히 받아들이는 건 무리였다.

[...뭐...? 병이 악화했어?!]

[<아니, 살해당했다.>]

살해당했다는 말에 동시에 울리는 탄식이 울린다.

병마를 걱정하던 것 자체가 허무해질 정도로 아이러니한 죽음이었으니까.

[...누가 죽였어? 그리고 아들은?]

[마도교단, 네가 실종된 사이에 세력을 불린 종교 조직이다. 그리고 그의 자녀는...]

영상 속 에일린은 잠시 침묵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실종했다. 납치라고 하기엔 현장이 이상해. 일부러 나간 가능성이 있어. 복수일 가능성도...]

[주소 보내.]

[...지금? 지금 당장?]

에일린은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얼빠진 상태로 물었다. 레오나르도가 해안가 지역에 있는 위치 추적으로 알아냈을 테지만,

[그럼 나중에 해? 이걸로 3번째거든.]

[뭐가 세 번째라는 거지?]

[나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친해진 지인이 대놓고 죽은 거, 알겠으면 주소나 찍어서 보내. 장비하고 무기는 현지에서 조달한다.]

[아주 든든해 미치겠군.]

[왜? 2인자 중에서도 거성이 도와주니까 떨...]

“쿨럭쿠럭...!”

본인이 생각해도 흑역사였는지 레오나르드의 기침병이 다시 심해졌다.

[...근데... 마도교단이 뭔데? 들어본 것도 같은데?]

“...괜찮아? 이거 스포인가? 스포 아니지? 애매하네. 얘들 까보니까 엄청 오합지졸이여가지고.”

[그러면 스포일러는 아니지. 아리아로 치자면 제하드 같은 느낌일 거 아냐.]

“그런가? 듣고 보니...”

현자와 레오는 태연히 이게 스포일러인가 아닌가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을 빙자한 말싸움이 이어졌다.

‘자기 인생인데 저런 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나?’라는 생각들이 사람마다 문득 들었지만 본인이 너무 초연한 나머지 차마 지적할 수 없었다.

[마법과 신성이 하나로 일치할 때, 주님께서 거둬가신 성검은 다시 돌아올 겁니다.]

영상은 전환되어 이번에는 예복을 입은 노인이 단상에 선 채로 설교를 하고 있었다.

형태는 지금 있는 신전을 많이 본떴으며, 마도구들도 나름 마탑처럼 설치되어 있어나름의 구색을 갖춘 형상이었다.

“...역겨워.”

성인인 루미네는 처음으로 대놓고 혐오를 드러내었다. 단순히 빛의 신만 경배하기에 다른 종교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 역겹지.”

레오의 동조에 이어 창문이 깨지는 소리가 울린다.

[...무슨...!?]

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교황 앞으로 한 소년이 착지한다.

겨눈 무기는 단검도, 투척기도 아니었다.

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덩어리가 양손에 쥐어져있었다.

그나마 역할을 보자면 석궁으로밖에 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타앙!!

격철음과 함께 발사되는 탄환, 그대로 교황의 머리가 꿰뚫어지며 그는 쓰러진다.

[교황님!!]

아비귀환이 된 마도교단, 일제히 모두 그 소년에게 달려든다. 각자 신성이 담긴 무기과 정령술을 사용하며 소년에게 돌진한다.

하지만

[뭐지?! 저 무기...!!]

[저 무기...! 분명 아메리...!!]

연이어 울리는 폭발음, 그에 따라 발사된 납탄은 차례로 마도 성기사들의 머리를 날려버렸다.

[잭팟이네. 경품이 쓰레기지만.]

복면을 쓴 그 소년은 그 마도구를 회전시키며 내용물을 장전시켰다.

[로지온!! 네가 나서서 붙잡아라!! 교황님의 은혜를 잊지 않겠지?!]

[네에, 오죽하겠습니까?]

그 한 마디에 로지온이라는 남자는 모두가 도망칠 시간을 벌기 위해 자객 소년에 앞에 섰다.

다만 로지온이라는 가명이 무방하게 누가 봐도 레오나르도였다.

[혈기왕성한 친구일세.]

[닥쳐. 너도 이 사이비 종교의 끄나풀이냐?]

[아니긴 한데, 우선 그 XX 기구 좀 내려놓으면 안 돼. 여러모로 좀...]

탕탕탕탕탕탕!!

레오를 향해 난사되는 탄환들, 피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지만 어떤 궁수도 보이지 못할 연사였다.

[혈기가 너무 왕성하네!! 진정해! 난 이 미친 교단하고...!]

[이거 우리 엄마 유품이다!! 개자식아!!]

[...어... 난 X드립만 칠려고 했어! 진짜야! 패드립까지 엮을 생각은 없었다고!!]

영상 속이고, 영상 밖이고 레오나르도는 진심으로 당황했는지 갖은

“...근데 뭐라고 해서 검열한 거에요? 무슨 기구라고 해서요?”

아리아스필은 기구 앞에 있는 XX라 검열된 부분을 질문했다.

“...야! 누구 놀리...!!”

“아...좀 그런 은어인가요? 뒷세계의 금기어 같은...”

“...너...”

아리아스필에 대한 학위가 있다면 사랑 항목만 빼면 박사까지 탔을 레오나르도는 저 눈이 무얼 의미하는지 알고 있다.

“...진짜 몰라?”

아리아는 정말로 모르는 것이었다.

“...어...네? 그렇죠...? 혹시 꼭 알아야하는 건가요?! 그럼...!”

“...됐어. 알려고 하지 마.”

레오나르도는 그렇게 쏘아붙이며 영상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 순간, 소년이 외쳤다.

[그러면 맞고 한번 가버리든가. 미친 아다 새끼야.]

그렇게 말하며 레오의 눈을 향해 격철을 당겼다.

“...죄송합니다. 저희 애가...”

“차라리 화를 내줘. 미칠 것 같아.”

다들 이 혼돈의 카오스와 같은 상황에서 유일하게 영상에 집중하고 있는 건 루미네 뿐이었다.

앤젤라와 현자 덕에 이런 대화 자체에 면역이 생긴 것도 있었지만.

‘...잠깐... 눈이 파랗게...?’

격철에 눈이 찌부러지기 전에 루미네는 보았다.

착각이었는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빨랐는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찌부러지기 전에 탄환에 담긴 마나를 빨아들여 푸르게 변했던 레오나르도의 눈을.

왠지 모르게 그건 복면을 쓴 소년의 눈빛과도 비슷했지만.

라인하르트 전반 벽안과 비슷한 빛깔로 물들여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떻게 보면 재능]

<설명해야할까? 그거?>

[지금까지 온 경지가 본능적인 거라면, 네가 알려주는 걸로 쟨 네 예상보다 성장할 거야. 항상 그랬어.]

아리아는 그런 재능을 품고 있었으니까.

<...하... 젠장... 아직 못 알려주겠네.>

[어. 그래... 잠깐 아직?]

레오도 만만치는 않았다. 2인자니까.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