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차 때 레오나르도는 주로 혼자 다녔다.
전반적으로 위험도가 높고 그에 대한 수당은 물질적인 수당은 거의 없었으니 홀로 활동하는 게 편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해도 레오나르도도 엄연한 인간, 그리고 인간은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과 협력할 수밖에 없는 종족이다.
“카페인 메카닉 씨? 님? 어쨌든 그 분은 에일린의 주선으로 만나게 됐지.”
“...만났다고요? 그럼 왜 절...?”
아메리는 레오나르도를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한다.
레오의 연기력이 뛰어난 건 회귀를 감춘 것만으로 알 수 있었지만, 그렇다 생각해도 자신을 조금도 아는 척을 안 한 느낌이었으니까.
“정확히는 대화를 할 수 있는 연락처를 줬을 뿐이었지. 직접 만나지도, 얼굴도 제대로 보지도 못했어.”
[카페인 메카닉]이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1회차 레오나르도는 그녀를 만나기커녕 본명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서포트 받은 건 전투나 치료가 아닌 장비 조달이라는 시점에서 직접 만나지 않아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에일린이 가져다준 요상한 단말기 같은 걸로 이야기를 주고 받은 게 다야. 현재 상황하고 필요한 장비를 보고하고 제작된 장비는 그... 사역마 같은 걸로 실려왔지.”
그렇기에 레오나르도와 아메리는 직접적으로 만나지를 않았다. 딱히 만날 이유도 없었고, 서로에 대해 큰 흥미를 품지 않았다.
에일린과는 다른 결의 비즈니스 관계로서 이어진 인연이었다.
“솔직히 주는 장비는 수준급이여서 직접 만날 필요도 없었거든. 게다가 나랑 연관될수록 약점이나 인질이 되는 경우도 있으니 어떻게 보면 서로 배려한 거지.”
“...아...”
라인하르트 일가는 물론 에일린조차 제법 경악한 눈치로 아메리와 레오나르도를 번갈아보았다.
레오나르도가 범상치 않은 건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아메리마저 1회차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에 나름 경악 아닌 경악을 느끼고 있었다.
[아마 기억이 있던 레오나르도는 이미 알고 있었어. 마탑에서 4년이나 있으면 못 알아채는 것도 웃기지만.]
아리아는 자연스럽게 적탑주를 상대하기 전 마탑에서 레오가 한 말을 떠올렸다.
아메리와는 다른 마법사와 달리 살갑게 대하며, 동시에 리오스와 이어줄려는 노력도 종종 엿보였었다.
그게 1회차에 있었던 인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근거는 생긴다.
“...그...그러면 자식이 생겼다는 이야기는... 사실인가요오...?”
아메리는 떨리는 목소리로 조심히 레오나르도에게 질문했다. 리오스와 비밀연애를 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이런 얘기는 좋든 싫든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만약 에일린처럼 리오스가 아닌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어 낳은 아이라면...
“...괜찮아.”
리오스는 실눈을 뜨며 아메리의 손을 잡았다.
설사 어떤 경위가 있더라 하더라도 자신은 지금 아메리를 사랑하겠다 결심했다.
그것이 순애니까.
“니가 뭔데 괜찮고 말고야. 오히려 사과해야할 놈이.”
“...예?”
사랑의 각오를 다진 리오스가 얼빠진 목소리를 내었다. 레오나르도의 웃기지도 말라는 듯 일갈이 강하게 쏘아붙이자 다른 사람, 아메리조차 당황했다.
“그건 형수가 결정할 문제지. 상황 보여주랴?”
그렇게 말하며 레오나르도는 그때의 비극이 담긴 검집을 꺼내들었다.
물론 자신의 비극보다는 한 아이를 올바르게 키우고자 했던 외로운 미혼모의 비극이 중심일 테지만 말이다.
[그...카페인 양반.]
영상에는 직사각형의 단말기를 들고 있는 레오나르도가 나타나있었다. 가면을 쓰고 있었고 머리는 하얗게 새었지만 분명 레오나르도라는 걸 알아볼 수 있었다.
[예? 말씀하세요. 혹시 이번 장비가 잘 작동 안 하던가요? 와이어 부분이 유연성 때문에 강도가 약할 수 있긴 한데...]
일행들은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아메리의 목소리는 고운 편은 아니었지만 저 목소리는 사람의 목소리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기계적이었다.
[아니, 댁이 준 장비는 늘 괜찮아. 괜찮은데...]
영상 속 레오나르도도 만만치 않게 목소리에 찜찜했는지 소리를 미묘하게 내며 숨을 들이켰다.
[근데 같이 일한지 1년 정도는 됐는데 그 요상한 기계 목소리로 말할 필요 없지 않아?]
1년 동안 일했다는 말에 아메리가 가장 놀랐다. 분명 자신은 마왕과 용사가 공멸한 뒤로 엑스트라처럼 죽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다.
[...죄송해요. 이건...]
[알아. 혹여나 댁 정체가 뽀록나면 안전을 보장할 수 없으니까. 나라고 좋은 물건 제값에 팔아주는 사람 소리소문 사라지는 건 원치 않거든.]
당시 레오나르도는 다른 때보다 여유가 있어보였다. 어쩌면 저런 기계 목소리라도 대화할 사람이 필요해보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도 뭐 그냥 서로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없는지라. 우린 서로 이름도 모르잖아. 설마 어둑시니가 본명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주변 풍경은 페허였지만 원로원을 몰살시켰을 때보다 한결 부드럽고 유머까지 섞인 어투였다.
[...죄송해요. 제 몸을 사린다고 생각하셔도 상관없지만... 이건...]
[고문 같은 걸로 개인정보 실토하는 거라면 걱정 안 해도 돼. 애초에 그런 쪽으로는 철저한지라. 저번에 자백제에 성기 고문까지 받다가 입 다물고 탈출해서 치료까지 받은 거 그쪽에도 연락 갔을 거 아냐.]
고문 앞에 있는 신체적 중요 부위에 모두가 일제히 레오나르도를 바라보았다.
레오나르도는 저런 걸 좀 검열하라는 의사는 이마를 누르며 얼굴을 찌푸리는 것으로 표현내었다.
[솔직히 그건 완벽히 재생해도 정신적인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물론 그걸 버틴 사람인 만큼 입은 아주 아주 무겁다고 할 수 있지.]
일제히 레오나르도를 동정어린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저런, 어쩐지, 그런 사정이면 그런 성격이여도...
[고자라고 놀려서 미안하...]
“아인아.”
“예.”
레오나르도는 현자의 지랄을 받아줄 만큼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차라리 이런 굴욕이 나올 거였으면 친해진 상황은 말로 설명하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아... 그게 괜찮으...신가요...?”
아리아스필은 레오나르도의 등을 쓸어넘기며 걱정스러운 눈치로 물었다.
자신은 이런 사정도 모른 채로 레오에게 음탕하고 추잡스러운 짓을 자행했다.
죄책감이 없으려야 없을 수는 없었다. 레오를 다시 마주보는 게 힘들어질 것만 같았다.
“글세.”
레오나르도는 등을 만지는 아리아스필의 손을 끌어당겨 귓가에 입을 가져다댔다. 뜨거운 숨결이 귀 안으로 들어가며 귓바퀴의 살결을 간지럽혔다.
“왠 용사님께서 몰래 쪽쪽 빨아서 먹은 걸 생각하면 기능하고 정력은 괜찮은 것 같은데? 노예 취급을 좋아하는 변태 용사님?”
“...네...네엣...! 죄송합니다아......”
아리아가 주인님이라고 말하지 않을 뿐, 정신적으로 조교된 노예나 다름없었다.
아리아스필이 완전히 붉어진 채로 얼굴을 푹 숙인 채로 의자에 쪼그려 앉은 꼴을 보니 차마 화가 나지는 않았다.
하여튼 아리아는 늘 반칙이었다.
진짜 마왕의 그릇이나, 기억 문제만 아니었으면 자신이라도 참지 않았을 것이다.
[...그게 어둑시니님도 본인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으시니까요.]
[그러면 이번 기회에 허심탄회하게 질문해봐. 금고 번호 같은 거만 빼면 대답해줄 테니까.]
바깥에서 음란한 플레이가 은밀히 자행되려던 찰나, 영상 속에서 아메리와 레오나르도는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나갔다.
질문을 고르라는 말에 영상 속 아메리는 기계 소리를 멈추고 깊게 뜸을 들이고 있었다.
[...혹시 라인하르트에 소속되셨나요?]
[...라인하르트?]
라인하르트라는 단어에 레오나르도는 눈에 띄일 정도로 목소리가 내려간다. 아메리는 물론, 다른 이들마저 그 급격한 온도차에 일순 두려움을 느꼈다.
[...예, 어둑시니님께서 라인하르트 직계와 연관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여쭤봤어요오...]
[...뭐, 아주 연관없는 건 아니긴 아니지? 특히 마탑 쪽엔 전설인 리오스 라인하르트와는 이중인격자의 연애는 순애일까, 양다리일까로 진중히 토론을 벌인 깊은 사이지.]
레오나르도는 일부러 장난스러운 톤으로 놀리듯 아메리에게 대답했다. 내용은 거짓말은 한 것은 아닐 테지만, 모르는 사람이 듣기에는 놀려먹는 꼴로밖에 안 보일 정도로.
[...어둑시니님, 정말로 소속되셨군요.]
하지만 아메리는 그게 장난이라 생각하지 않는 눈치였다.
[...잠깐, 보통은 개소리 하지 말라고 성내지 않아?]
오히려 기억 속 레오나르도가 당황해 되물어버릴 지경이었으니까. 아마 이런 장난을 한두번해본 태도가 아니었다.
[리오스가 순애 빠돌이인 거 가까운 사이가 아니면 모르잖아요.]
[...너도?]
[예, 동아리실에서 한 두 번 시달린 게 아니에요.]
“이렇게 해서 말문이 트이고 친해진 거지.”
리오스 본인은 머쓱한 기색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저런 방식으로 서로를 알게 된 건 다행이라 할 수 있겠지만, 자신이 생각한 순애의 지론이 타인에게 저런 민페적으로 보였을 줄은 예상치 못했다.
그러는 사이 영상의 화면이 전환되었다.
[근데 카페인 양반은 왜 이렇게까지 일을 하는 거야?]
[예? 제가 필요없나요?]
[그런 의미가 아니라, 이렇게 과로하면서 일을 하는 이유가 있나해서. 조수도 없다며.]
어느샌가 레오나르도가 나이가 더 든 느낌이 들었고, 아메리와의 관계도 제법 가까워진 친밀감이 느껴졌다.
[뭐 마인에게 원한이라도 있어?]
[대학원생 생활하다 교수되기 직전에 마탑이 망했어요.]
“세상에 그런 끔찍한...”
[세상에 그런 끔찍한...]
영상을 보던 몇몇 이들마저 그 참혹함에 탄식을 내었다. 상대가 레오나르도였을 뿐, 어떤 이들의 비극들보다도 무거운 고통이었다.
[농담이에요. 사실 양육비를 모으느라 그래요. 일이 힘들긴 해도 페이가 세거든요.]
[아...양육비.., 그거면... 잠깐! 댁 자식 있었어?!]
레오나르도를 포함한 라인하르트 일가 전원이 당황한 표정으로 기억의 영상을 바라보았다.
이런 상황에서 자식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안 봐도 뻔했으니까.
그 유력 인물이 탈수 증세가 올 정도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건 덤이었다.
“...괜찮아...? 리오스...?”
“어어?! 그럼그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리오스는 마치 마나 탈진이라도 겪은 것처럼 얼굴마저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차라리 레오의 골절과 출혈이 난무하는 지옥 훈련을 나을 뻔했다.
[...아 예. 10살 정도 된 아들인데, 아무래도 시대가 시대인 만큼 돈이 많이 들어서요.]
9살, 그 말인 즉슨 9년 동안 미혼모로서 아이를 키워왔다는 말이 된다.
저런 지옥 같은 시대에서 혼자서 말이다.
[...아빠 쪽은?]
[...죽었어요. 전쟁 때 시체 못 찾을 정도로 당했거든요.]
[알만하군.]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리오스에게 꽃혔다.
“...저희 아들이 생각이 없어서 죄송합니다. 아메리 양.”
“...자, 자주 이상한 오해해서 죄송해요...! 아메리 씨...! 이런 분이신 줄 모르고...!! 정말 죄송합니다...!”
글라디오와 아리아는 이미 내용을 이해해버렸는지 먼저 고개를 숙여 사과를 이어갔다. 딱히 악감정이 없는 아메리로서는 당황하다기 보단 황당스럽기 그지없는 광경이었다.
[...그 염치는 없지만... 부탁이 있어요.]
[무슨 부탁인데? 들어보는 정도라면 괜찮긴 한데.]
[...그게... 만약 저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저희 애를 잠깐이라도 좋으니 지켜줄 수 있을까요?]
[왜 그래? 안전 지대에 있는 사람 꼭 죽을 것처럼.]
[...]
영상 속 아메리가 잠시 대답을 망설이자 리오스의 얼굴이 파랗다 못해 하얗게 질렸다.
[...이미 몸은 많이 망가졌어요... 신성으로도 바이러스 쪽의 병은 치료하기 어렵거든요...]
[...은퇴하는 건? 돈이라면 내가...]
[...괜찮아요. 이미 늦기도 했고 단지... 부탁을 들어주셨으면 해서요. 못난 엄마 둬서 이렇게 된 건데...]
따악...
마르켄과 크리스는 리오스의 머리를 한 대 때리며 아메리 쪽으로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이건 라인하르트가 못나서 일어난 문제이자 피해입니다. 정말 면목없습니다. 아메리 에스프 님.”
“아뇨...! 아뇨...! 그보다 저한테는 안 일어난 일인데...”
직접 피해를 입지 않은 아메리로서는 곤혹스러울 뿐이었다.
[상관은 없는데, 괜찮겠어? 나 누구 보호자 할 만큼 떳떳한 인간은 아닌데?]
[...그건 아닐 거예요. 단지 시대가 안 좋을 뿐이잖아요.]
[허참... 편리한 말일세. 남편 일도 그렇게 납득한 건가?]
다소 무례한 말이었지만 기억 속 아메리는 딱히 증오스럽지 않은 목소리였다.
[...좋아했으니까요. 지금도 좋아해요. 그냥... 생각하면 조금 울적할 뿐이죠.]
그 한 마디에 리오스는 아주 울음을 터뜨린다.
“내가아아...! 잘못했어어어...! 내가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겠다고오오오...! 했는데에에...! 나 같은 게 널 왜 좋아해가지고오...!! 정마아알...!”
“알았어! 알겠으니까...! 좀 그만하자고! 나도 너 사랑한다고!! 그러니까...!”
“우와아아아아아왕...!! 내가 진짜 잘할게에에에에에액...!!”
그날부터였다.
아메리가 라인하르트 공식 리오스의 약혼자가 된 게.
리오스는 마왕을 쓰러뜨리기 전까지 본인을 순애의 수호자라 자칭하지 못했다.
그래도 염치는 있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행 조건]
“하는 대신 한 가지 조건은 있어.”
[아, 말씀하세요. 돈 같은 거라면 가능한...]
“그런 거 말고. 애초에 돈은 내가 더 많잖아.”
[...그럼...]
“...죽을 때면 어디 가지 말고 자식 곁에 있어줘. 무슨 일이 있어도 그건 그렇게 해줘야돼.”
[...하지만 그건... 저희...]
“...꽤 사무치거든.”
레오나르도는 슬픈 표정으로 단말기에 감정을 읊었다.
“눈앞에 죽는 걸 못 보고 사라지면... 계속 찾게 돼. 그게... 부모든, 친구든... 소중한 사람일수록 인정할 수가 없어지거든.”
[...어둑시니 님...]
“...시체라도 찾고 싶은데, 내가 여자복은 어지간히 없나봐.”
아리아도 울며 메달렸다.
그리고 두 라인하르트의 남매가 자신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매달린 꼴을 보니.
레오와 아메리 모두 약간만 더 즐기자는 욕망이 떠오르게 되었다.
약간만 즐기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