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전의 정리는 거의 끝나가는 와중이었다.
처음 몇몇 성직자들은 크게 반발했지만, 앤젤라의 존재만으로 그들의 의견은 설득될 뿐이었다.
흑마법에 타락한 악당이란 프레임이 생겼던 레오나르도가 아예 성녀의 지지를 받는 비극의 영웅이라는 이미지까지 씌워진 참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비극의 영웅은.
“으어어어...!”
“끄에에에엑...!!”
악당의 미소를 지으며 두 영웅을 완전히 빈사로 만들어놓았다.
극악무도하게 라인하르트의 장남 리오스의 양팔에 복합골절을 내고, 루미네의 경우에는 전신에 0.5cm씩 절창을 내어 과다출혈 직전의 중태에 몰렸다.
“비명 지를 시간에 능력을 써야지?”
아마 이 상황만을 성직자들이 보았다면 가히 악마의 재림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어무... 아파아아...”
“끄읍...! 리오스 님 가만히...!”
아무리 산전수전을 겪은 그들이라도 저런 고역을 멀쩡히 버틸 인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게다가 평소와 달리 자가 치유가 아니라 서로를 동시에 치료하는 거였기에 이 고역은 오랫동안 지속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정신머리로 마왕한테 덤빈 거야? 깡이 좋은 건지, 뇌를 다쳤는지 의심되네.”
“...우와아아악...!”
도발에 반박할 근거는 없었다.
애초에 광전사가 있는 현장까지 뛰어가 자신들을 구해준 이가 레오였으니 화를 내는 것 자체가 배은망덕한 짓이었다.
다만 지금은 몸이 너무 아파 그런 것조차 생각할 겨를이 없었을 뿐.
“괘앤.... 괜찮으신가요...?”
“...하아...아이고... 덕분에요...!”
죽음의 묘사가 머릿속에서 또렷해지자 둘은 간신히 각자의 부상을 치료해내었다.
지그재그로 꺾였던 리오스의 양팔은 제자리로 되돌아갔고, 루미네의 상처들은 아물어 피마저 체내로 되돌아갔다.
이미 루미네는 제국에서 치료계의 1위에 꼽히고 있었고, 리오스도 그에 뒤지지 않게 치료술에서는 성장하고 있었다.
원래부터 마탑 내에서 가르친 응급 처지 치료 마법 정도 익혔기에 성장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10분이라, 광전사가 너흴 먹고 적당히 소화시킬 시간이네.”
“....으윽...”
안 그래도 몸이 아픈 데, 마음까지 쓰라리게 만드는 지적이었다.
레오 앞에서는 반박할 여지가 없다는 게 상처를 소금에 절이는 것만 같았다.
레오나르도는 실제로 어느 부위가 절단되든 눈 한번 깜빡이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였으니까.
“...요령 같은 게 있나요...? 너무 아픈데...”
리오스는 염치 불고하고 레오에게 특수한 방법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있었다면 진작에 알려줬을 테지만, 이미 30번 넘게 전신마다 골절을 입은 리오스는 지푸라기라도 짚고 싶은 심정이었다.
“있기야 있지.”
“정말로요?!”
질문한 리오스도, 기대조차 안하던 루미네마저 그 한 마디에 득달 달려들며 귀를 기울였다.
어쩌면 정말 이 고통이 덜해질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필요하던 차였다.
“지금 난 아프지만, 이거 버티고 저 새끼를 더 아프게 만드는 꼴을 생각하면 덜 아파져.”
맞는 말이긴 했지만 왠지 현 상황에는 즉각적인 도움을 주지는 못하는 조언이었다.
마치 공부를 잘하고 싶으면 교과서 위주로 공부하라는 격의 내용, 거기에 광기를 덧칠한 감각이었다.
“...지금은 적이 없는데요?”
게다가 지금은 자신을 다치게 한 적도 없었던 것도 한몫했다.
“내가 있잖아.”
짧은 문장이었다.
본래라면 든든한 아군으로서 쓰는 말이었지만.
둘은 이 말의 진짜 의미를 알고 있다.
‘...마왕의 그릇...’
레오나르도가 얼마나 선인인지 아는 사람들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본인이 아무리 악한이라 스스로를 욕하여도, 그의 행동은 선의와 신념으로 시작해 끝의 결과까지 전부 책임졌다.
역사상에 없었던, 지워진 역사에 존재했던 어둠의 영웅.
그런 영웅이 마왕의 그릇으로 발탁된 것이었다.
“왜 그런 표정으로 봐? 오늘 훈련은 여기까지라고.”
이 훈련마저 자신에게서 정나미를 떼라는 것처럼 보여, 리오스와 루미네는 차마 아무 말도 못 한 채 고개를 끄떡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와. 지금은 다같이 모여서 확인할게 있거든.”
지금 시각이라면 다른 사람들도 할 일을 끝내고, 크리스의 병실로 모였을 터.
“좋아해야할 걸? 편한 영상 교육 시간이거든.”
레오나르도의 기억에서 확인해야할 것이 있었으니까.
* * *
“몸 상태는 어때? 팔 감각은?”
답지 않게 병상에 누워있는 크리스를 보며 레오나르도는 그렇게 물어보았다.
평소라면 중상에도 펄펄 뛰면서 치료사의 권유까지 무시하며 훈련할 크리스였지만.
집도한 의사가 어지간한 은인이자 오금을 저리게 할 만한 옹고집이었기에 이번에는 치료대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통증이 있지만, 움직이는 것도 가능해졌습니다. 손가락 같은 부위도 움직일 수 있겠더군요.”
크리스는 반지를 낀 손을 쥐락펴락하며 호전을 그대로 증명했다. 팔에 변색된 혈관도 어느샌가 혈색이 돌아왔고 피부색도 깔끔해졌다.
손가락에는 비늘이 났고, 손톱은 검게 물들어 짐승처럼 변했지만 그 정도는 아주 약소한 부작용이었다.
“...3일 만에 그 정도라니...”
레오나르도가 예상하는 것 이상으로 빠른 치유력이었다. 아무리 자신이 깔끔한 집도와 좋은 장비를 착용시켰다 했다 해도 오차가 지나칠 정도로 좋게 나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혈통 하나는 더럽게 부러운 가문이야.”
“...가주님께는 참으로 죄송한 혈통이로군요.”
크리스는 어두운 표정으로 레오나르도를 바라보았다.
자신은 레오와 혈통 덕에 이렇게 편하게 회복하는데, 레오나르도는 아무것도 없이 이런 전장까지 올라와야했으니.
레오를 데려온 그녀로서는 자연히 죄책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됐어. 사과하는 게 더 비참해. 그리고 그렇게 부르지도 말고.”
[그렇긴 하지. 바지사장이여도 아리아스필은 가주니까.]
현자는 그렇게 말하며 들어오는 다른 라인하르트 일행을 바라보았다. 그 중에는 바지사장 취급을 한 아리아스필까지 들어오고 있었다.
“...흠... 따지고 보면 가주 부군이라고 보는 게...”
글라디오가 그리 말했을 때, 레오나르도는 눈빛만으로 그를 제압했다.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아리아스필을 기대하고 흥분시켜서 좋을 건 없으니까.
“...흐으...”
아리아스필은 본능적인 감각으로 후계자까지 만드는 걸 생각한 눈치였지만, 그런 건 지금 생각하기 힘드니 나중에 건들기로 했다.
“...제가 도움이 될 만한 게 있을까요?”
에일린은 신전에 있는 게, 그 이상으로 레오나르도의 앞에 있는 상황이 몹시 거북했다.
이미 레오나르도가 보여준 과거 기억만으로 그녀의 멘탈은 구멍이 숭숭 뚫려버린 지 오래였다.
이젠 단지 기억을 상실한 레오의 태도가 적대적이여서가 아니었다.
지금 태도 이전에, 레오나르도의 모든 행동에 진심 없는 가면이라는 점이 에일린에게는 큰 타격이었다.
‘...나도 타인에게 그런 적은 많았으니...’
자신도 1회차건, 2화차건 전과가 있었으니 더더욱 변호도, 반론의 여지가 없는 게 타격에 연타까지 주었다.
“필요하니까 부른 거야. 지금부터 1회차 기억을 보여줄거든.”
“...예엣!? 네!?”
1회차의 상영이라는 말에 에일린은 다른 때보다도 허당스러운 어투로 놀랐다.
라인하르트의 일가들은 평소 여왕처럼 거만하고 도도한 에일린이 저 여자와 동일인물인지 진심으로 의아해했다.
루미네와 앤젤라는 아예 신성을 눈에 불어넣어 그녀가 정말 마인이 아닐가 확인하고 있었으니까.
“꼽 주려고 그러는 거 아냐. 마왕이 어떤 녀석을 소환할지 확인하려고 하는 거니까.”
“...마왕의 수족 말입니까.”
에일린은 합리적인 이유에 다시 냉정을 되찾았다. 그녀는 다행히도 실연의 충격으로 가주의 책임을 내던질 만한 멍청이는 아니었다.
“내가 아무리 마왕의 그릇이더라도 그 녀석 생각까지 알 수 있을 정도는 아냐. 거기에 있는 게 광전사라는 걸 안 것도 소환된 직후에서나 그랬고.”
지금 레오나르도는 마왕이 있는 위치도 제대로 모른다. 어딘가 어렴풋이 있다는 감각 자체는 있으나 기계와 같이 세밀한 정보를 얻는 건 현재로선 불가능했다.
“아...! 1회차에 살아있는 마인들을 2회차에 잡아온 마인으로 생각해 소거하면 경우의 수가 줄겠네요!”
“그게 제일 크지. 저 순애 빠돌이가 어떻게 저런 지식인이랑 사귄데? 나비효과라는 게 무섭네.”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리오스에게 저런 여자가 온 게 기적이라 레오는 생각했다.
게다가 저 여자는 미묘하게 익숙하기도 했고, 분명 얼굴은 본 적이 없지만 그런 감이 들었다.
“저도 아메리가 참 좋은 여자라 생각해요!!”
“지금 이럴 상황 아니잖아요! 얼른...! 리오스 너 진짜!”
커플을 염장지르는 걸 보는 것도 좋겠지만, 형수의 말대로 지금은 이럴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너무 많은지라 전부 볼 시간은 없어. 그래서 우선은 내가 개인적으로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녀석들부터 보여줄 거야.”
이건 마왕의 수족에 규칙이나 제한이 있는가 확인하는 것과 동시에, 저들에게 미래의 마인에 대한 경각심과 대항책을 의식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정보를 아는 것만으로 대항하기 쉬운 적들은.
“음마, 몽마, 기타 정신 조종이나 변신 같이 잔재주가 많은 부류를 보여줄게. 진행속도는 빠르게 해서.”
레오나르도는 그렇게 말하며 검집을 들어 작동시켰다. 이런 종류의 적들은 특징적이며 개성적인 경우가 많기에 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고 나중에 대처하기도 쉬울 테니까.
[너무 틱틱대는 거 아니에요~? 미남이라고 잘 대해줬는데! 나 같은 미인이 들이대주는 게 흔한 줄 알아요?]
영상에서는 젖꼭지와 국부만을 가린 망토를 두른 몽마가 매혹적인 자세를 취하며 가면을 쓴 레오를 유혹했다.
그저 영상인 만큼 여성진도, 남성진도 노출에 놀라기만 했을 뿐 매혹에 걸리지는 않았다.
단지 눈치가 보였을 뿐.
“꿈의 여왕이야. 서큐버스 퀸 중 하나지.”
“...그렇군요.”
어째서인지 아리아스필의 눈에 서슬푸른 불꽃이 타오르는 게 심히 걱정될 뿐이었다.
[...구면이었나? 너 같은 창녀는 보면 좆같아서라도 외울 텐데.]
레오나르도는 자신의 욕설에 미묘히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렸다.
직접 말할 때는 신경쓰지 않았지만, 저런 음란한 추녀에게 욕설을 뱉는 광경을 보니 자연히 민망을 느끼게 된 것이었다.
[당신의 지명수배지를 보았죠... 하... 그 얼굴... 가면 뒤에 숨겨진 그 얼굴 보고는...]
꿈의 여왕은 참을 수 없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첫눈에 반해버렸답니당!]
애교를 떠는 건 덤이었다.
[지랄을 떠는군.]
영상 속이건, 영상 밖이건 레오는 경멸을 감추지 않았다. 겉모습만 미인인 저 몽마가 700명의 민간인을 고작 일주일에 몰살시킨 걸 알면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아, 물론 가벼운 사랑은 아니랍니다~ 어둑시니 님이 수백 수천의 마인을 썰어대는 걸 몰래 관찰하고, 카메라까지 구해 일일이 찍었거든요~ 하... 이걸 베개에 넣고 만드는 꿈이 얼마나 큰 쾌감이신지 아셨으면 좋겠어요!]
그 장문 하나에, 사진을 베개에 넣고 잔다는 말에 아리아스필이 얼어버렸다.
평소라면 불같은 화를 드러낼 테지만, 왠지 모르게 양심이 차가운 바늘로 찔리는 걸 느꼈기 때문이었다.
자신도 비슷하다 못해 똑같은 짓을 자행했다는 생각이 들어버린 것이다.
[마인 취향 존중해줄 정도로 관대한 사람 아니여서. 게다가 그런 미치광이 같은 스토커짓은 사람이 해도 패죽일 거야.]
물론 아리아스필을 노리고 한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영상의 말에선 아리아스필도 포함되는 게 함정이었다.
“...흠, 저렇게 강한 상태는 아니지만 유사한 형태의 몽마를 잡은 적은 있습니다. 확실한 지는...”
“자자, 그러면 됐어! 다음다음!”
크리스의 말이 나오자 레오나르도는 급히 영상을 넘기고자 했다.
아무리 자신이 눈치가 없어도 이건 아리아스필에게 전혀 좋을 것이 없어보였으니까.
상대가 아리아면 오히려 좋으니 괜한 죄책감은 안 가졌으면...
“...끝까지 봐요. 레이널드 님.”
아리아스필은 확고한 표정과 떨리는 손으로 레오가 영상을 넘기는 걸 저지했다.
“...아리아, 하지만 네 안색이...”
마르켄은 아리아와 레오의 마음가짐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오해했는지, 괜한 질투심에 실신하지 않도록 상황을 조정하고자 했다.
이런 거라도 하지 않으면 아리아는 폭주할 거라는 생각이, 조부의 노파심으로 확실히 반응했다.
“...괜찮아요...! 잠깐 화장실 가면서 바람을 쐬면...!”
아리아스필은 감정을 진정시키기 위해 잠시 숨을 돌리고자 했다.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가려는 순간.
끼이익...!
“야야!! 너 미쳤어?! 뭐하는 거야?!”
문 바깥으로 나가는 아리아스필을 보며 레오는 놀라 그리 외쳤다.
“네? 왜...”
“거기 창문이라고!!”
창문으로 나가 바람을 쐬려했으니까.
불안한 촉이 들었다.
굳이 성검이 없어도 자살을 하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꼭 불안한 예상은 틀리지를 않았다.
서큐버스 퀸들을 첫 타자로 잡은 게 가장 큰 실수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본편과는 하등 상관없는 여담]
[근데 넌 어째 1회차 때 늘 가면 같은 걸 쓰고 있다? 안 불편해?]
“은신 마법 같은 게 걸려있으니 좋기도 하고, 애초에 머리와 안면을 보호하는 역할도 해주니까. 근데 상식적으로 투구를 쓰는 게 맞지 않아? 내가 이상한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에게 가장 취약한 부위는 뇌가 있는 머리였으니까. 보통을 투구를 쓰는 게 일반적인 게 맞았다.
[그거야... 뭐... 오러나 마법... 애초에 창작물 속 개연성이 막아주겠지. 캐릭터 구분하기도 힘들잖아.]
잠깐, 현자 댁 지금 무슨 이야기를...
“어차피 소설인데? 이미지로 구분하는 것도 아닌데 대충 서술 묘사로 때우면 되잖아."
지금 후기라고 해서 독자님들 몰입을 깨면 안 된다고...! 후기가 이 소설 밥줄...
[혹시 모르지? 팬아트... 아니면 웹툰이나 웹만화를 기대하는 걸 수도 있잖아. 근데 지각하면서 바라는 것도 많아.]
알았으니까 제4의 벽은 좀...!
"말이 돼? 고등학생이 갓 데뷔작으로 낸 소설을 그렇게 대우해준다고? 잘한다 잘한다 해주니까 작가가 뵈는게 없구만."
...그래? 그러셔?
현자와 레오는 이 대화를 통해 뜨거운 감정을 느꼈고, 그 감정이 사라아아아악거기는아가악ㅇ미아안미아하다고잘ㅁ못ㅇ테써,.지울게기에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