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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자는 회귀했다-221화 (221/248)

용혈기사단.

왕정이 완전히 붕괴되고 황실기사단이 와해되고 몇 년이 지나 만들어진 신생기사단.

신이 사라진 지금, 용의 축복을 받아 직접 본인들이 당도했다고.

“기대도 안 했지만 사기에 개소리였지.”

실상은 용의 축복은 말라죽고, 용의 저주나 다름없었다.

이미 근간이 가까스로 찾아낸 드래곤 하트에 갖은 사령술로 어찌저찌 부피를 늘려서 만든 혈액으로 혈청을 양산을 한 거였지만 말이다.

“...하지만 치료 덕에 팔도 잘 움직이고, 통증이 덜해졌습니...”

“그게 제일 최악의 상황이라고! 용의 인자가 크리스 당신이랑 융합을 끝마친 거야!”

융합했다는 점에서 안정화된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건 인간 입장에서 전혀 안정이 아니다.

동화률이 높을수록 강한 힘을 쓸 수 있겠지만 대가는 금제 이상이니까.

“우선 수술이 먼저야. 할 수 있는 거부터 해야지.”

“...죄송합니다...”

“그딴 소리 할 거면 재갈 물릴 줄 알아. 살 생각부터 해. 그게 서로한테 제일 도움 되니까.”

수술실은 성황이 직접 내준 최고급 시설.

신성 정화 덕에 병균은 전혀 없고, 각종 성수와 포션에 약제까지 무한정에 가까울 정도로 구비되었다.

거기에 수술 장비도 단순히 신성에만 의지한 것이 아닌 마탑의 인체 지식도 소홀히 하지 않은 최신품.

수술에 협력하는 이들은 최고의 신성을 자랑하는 성인 루미네와 앤젤라, 보조로는 각 지식에 박식한 현자까지 있다.

외부에는 전문 지식이 풍부한 사제와 마법사도 대기 중이고.

적습도, 방해도 걱정하지 않고 수술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있었다.

분명 이게 최선이다.

하지만 알고 있다. 미래에 아는 정보와 치료에 비하면 한계가 완벽하다는 걸.

분명 크리스가 비늘로 뒤덮인 채로 광기의 용인이 되는 건 막았다.

당장은 말이다.

수술이 끝났음에도 크리스의 수명은 최대 10년밖에 남지 않았다.

***

“...상태가 어때?”

수술을 마친 크리스를 바라보며 레오나르도는 손이 떨리는 걸 체감했다. 수술에서 할 수 있는 건 전부 성공시켰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전부 동원했다는 말이었다.

그럼에도 바꿀 수 없는 결말에는 절망감을 주기 충분했다.

지금 자신은 무력하지 않았다.

다른 쓰레기들처럼 안일했을 뿐이었다.

그저 힘이 없는 것과는 다르다.

조금 더 신중했더라면 바꿀 수 있었다.

힘과 지식이 있었음에도 무력감을 느끼는 건 합리화의 여지조차 없었다.

“괜찮습니다. 수술 도중에는 조금 통증이 있었지만 오히려 한결 편해졌습니다.”

그 말에 수술을 전력으로 도운 루미네와 수술의 성공만을 염원하며 기다리던 라인하르트 일가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레오나르도도 수술을 끝냈을 때에는 성공했다 말했으나, 크리스가 죽은 듯 보인 기절과 그의 어두운 표정을 봐서는 도저히 안심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정말 다행...”

“왜 이럴 때는 항상 거짓말이 자연스러울까.”

그래, 사실 전혀 안심되는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진짜 열받게.”

레오나르도는 미소를 유지하는 크리스를 보며 간신히 삭히던 분노가 끓어오르는 걸 느꼈다.

자신을 위해 타인을 속일 때는 꼭 눈치는 다 팔아먹은 둔탱이처럼 행동하면서, 정작 타인을 위해 자신을 깎아서라도 상처를 감출 때는 에일린 이상의 능구렁이가 된다.

어른이라면 어른이다.

다만 순수했을 뿐.

“...전 정말 괜찮습니다. 레오... 레이널드 님.”

미소는 유지하고 있지만 시선은 약간 틀어져 있다.

저 위화감조차 기적에 가까운 정신력으로 감췄지만, 레오나르도에게는 숨길 수 없었다.

“네가 받은 수술이 진통용 치료 수술이라고 생각해?”

이 수술이 어떤 효과를 불러일으키는지 집도한 레오나르도가 가장 잘 안다.

“...그럼 무슨 수술...”

“이 수술은 어디까지나 용인화된 팔과 몸의 세포를 서로 다른 존재로 구별시킨 거야. 네 몸이 용인화로 변화한 팔에 저항하고 대항하도록 각성시킨 거지.”

기사들이 들었을 때에는 평범한 치료처럼 보이겠지만.

의료에 조예가 있는 사람이라면 저 말이 필요한 치료일지언정 호전으로는 전혀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그 말은 통증이 더 심해졌다는 거잖아요...”

아리아스필은 입을 손으로 가리며 크리스의 팔을 바라보았다. 식염 성수로 링거로 넣은 채, 성수로 적신 붕대로 감아 혈색은 좋아져 있었다.

하지만 억지로 떨리는 걸 참는 듯한 움직임은 그 통증이 이미 상처를 입었을 때보다 심했음을 증명했다.

“...전 괜찮...”

“안 괜찮다고! 그거 겪은 사람이 너 하나인 줄 알아!? 나한테는 속일 생각 말아야지!!”

용인화의 부작용은 뼈저리게 알고 있다.

통증에 비명을 지르는 건 양반이고, 재생되는 부위를 계속 자해하는 건 일상이었으며 심각할 때는 치료사를 괴력으로 구타해 죽이는 일도 어렵지 않게 있다.

자신의 경우, 특별한 조치가 두 가지나 있음에도 피부 땀샘마다 황산을 들이부은 감각을 느꼈으니까.

“...제 실책으로 겪은 일입니다. 애초에 레이널드 님께서 시키신 훈련도 제대로 하지 않고 통보 없이 나선 것부터가 문제였죠. 광전사가 용의 비늘을 덮은 것도 몰랐잖습니까.”

크리스는 팔이 썩어들어가는 고통을 태연한 표정과 목소리로 자신의 잘못에 수긍했다.

저 꼴을 보니 부아가 치민다.

마취제를 넣어도 몸의 거부 반응은 이미 심각하다. 표정은 괜찮지만 이미 침대보와 이불을 젖게 만든 땀들은 그에 대한 전조다.

몸이 용의 인자를 거부하면서 생기는 발열 반응, 해열제와 성수까지 동원하고 있음에도 크리스의 몸과 정신은 이미 불덩이일 거다.

“그래서? 자기 잘못이면 좀 덜 억울해?”

마음과 달리 레오의 말은 표독스레 나온다.

차라리 방법이 있다면 그곳에 전념하겠다.

하지만 이건 정말 방법이 없다.

나 때문에.

내가 안일해서.

“...레...이널드...”

마르켄 뿐만 아니라 글라디오, 다른 라인하르트의 가족 모두 레오를 바라보았다.

저런 거친 말을 걱정할 수밖에 없는 그를 도저히 원망할 수는 없었다.

“죽는 건... 두렵지만 각오했습니다. 애초에 그 자리에 모두가 그랬을 겁니다.”

“아닐 걸. 아까 그 종교쟁이들 하는 꼴 봤잖아. 게다가 내가 전투에 참여했을 때도 아주 가관이던데?”

라인하르트 일행들은 답답함을 느꼈을지언정 화를 낼 수 없었다.

방금 신성한 신전에서 내보였던 가장 추한 모함과 맹신을 보았고.

저들이 희생하려는 전장 속 죽음에서 도망치려고 한 병사들의 비명을 느꼈다.

레오나르도는 그걸 몇 번이고, 몇십 번이고, 몇백 번이 적다 할 만큼 경험했다.

아리아스필은 보았다. 레오나르도의 트라우마는 시체보다도 못했다.

살아있어줘서 감사하다는 말에 부합하는 인간은 레오나르도 뿐이였다.

“...그렇게 생각해도 이해합니다.”

“참고로 넌 죽는 걸로 끝나지 않을 거야. 시한부 인생으로 10년 간의 유예 기간은 있지.”

시한부라는 말에 표정이 어두워지고, 10년이라는 직접적인 표현에는 갈등이 그려진다.

저들은 그 시간이 얼마나 남았고, 동시에 얼마나 짧은 시간인지 인지하고 있을 거다.

“...유, 유예 기간 동안 방법은 없습니까?!”

크리스의 아버지는 마르켄은 다급한 목소리로 레오나르도에게 사정했다.

평소 마르켄의 태도와 자존심을 알고 있는 레오나르도는 알고 있다. 그는 황제에게도 간청하지 않을 만큼 고고한 노장이다.

그런 그가 지금 자신에게 무력하게 매달리고 있다.

“있어도 못 써.”

“레오... 레이널드 님! 당신은 살았지 않습...!”

이윽고 마르켄의 입은 다물었다. 이미 재판에서도 레오나르도는 그 이유 중 하나를 말한 지 오래였다.

“그래, 죽고 싶어 애원을 해도 살 수밖에 없었지.”

레오나르도가 용의 인자를 받아들일 수 있는 까닭 중 하나는 금제 덕분이었다. 금제의 신성은 죽고 싶을 고통을 자아내는 만큼 증가한다.

그 덕에 힘의 균형은 그나마 수평을 유지했고, 신성술로 통증의 감경 또한 가능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한계가 분명했다. 신성으로도 줄어든 수명을 늘리는 것도, 몸 전체에 마나를 쓰는 것도 불가능하니까.

{외부에서 주입하는 건 어떻습니까?}

“...제, 제가 신성을 주기적으로 주입하겠습니다! 애초에 제 미숙한 치료로...!”

“안 돼. 그건 그냥 남은 수명 동안 도마뱀 괴물로 안 변하고, 통증 약화시켜서 정신 유지시키는 정도밖에 안 되니까.”

앤젤라와 루미네의 대처는 안락사에 가깝다. 남은 수명까지 덜 아프게 죽는 방법일 뿐.

레오나르도가 그걸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럼...! 어떤 방법이...!”

“있으면 할 거야?”

“할 수 있는 선에서는 해보는데까진...!”

“그럼 지금 당장 성황을 죽여야 해.”

레오나르도의 한 마디에 공기가 싸늘해진다.

상황도, 태도도 농담은 결코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신성모독이기 전에 인간성이 의심스러워지는 발언에도 레오나르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건 내가 가장 잘 아니까.

“내가 용의 힘을 온전히 통제할 수 있었던 까닭은 현대 성황의 시신을 덮은 성해포를 루미네 네가 나한테 써서 그래.”

성해포.

성인 혹은 성황의 시신을 둘러쌌던 성스러운 천.

사람에 따라 성격이 다르듯, 성해포의 특성도 성직자에 따라 달랐다.

“현 교황의 성해포는 절제와 인내의 힘을 지녔어. 운이 좋게도 이 두 성질은 시너지가 좋아서 팔을 통제하기도 쉽고 수명 문제도 줄일 수 있었지.”

극한의 불행에서 억지로 쥐어진 악운이었다.

그 악운으로 이렇게 자신만 추하게 살아남았다.

“...다른 성유물로 대체하는 건...”

“너도 잘 알잖아. 성유물이 공산품도 아니고, 용도가 적합한 성유물은 미래에도 그거 뿐이야.”

크리스의 몸이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건, 순전한 본인의 정신력과 라인하르트 특유의 강골 덕분이다.

“...그런...”

모두 절망한 표정이다.

당연하다. 자기 가족이 시한부 인생으로서 병자로 살아갈 뿐인데 좋을 사람이 누가 있겠나.

당연하지만 지금 자신은 그런 표정을 지을 수가 없다.

그럴 자격도 없으니까.

“...꽤나 태연해보이네?”

침착한 건 레오와 크리스 뿐이었다.

질문에 따라 그 표정이 서로를 마주보게 된다.

“...어쩌면 제가 벌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사실 고하자면 레이널드 님의 용인화를 약간 멋있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벌 같은 지랄하지 마. 이건 그냥 네가 병신이여서 당한 거야.”

크리스의 체념이 레오나르도를 자극한다.

벌이라니, 웃기지도 않는 헛소리다.

천벌이든 신벌이든 개소리다.

“...그렇군요.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뭐가? 뭐가 그럴 수도 있는데!!”

이딴 게 어디가 벌이란 말인가.

제대로 벌을 받아야할 이들은 차고도 넘치는데.

“종교쟁이들이, 너 덕분에 살아남은 새끼들이 네 희생에 감동이라도 해서 바뀔 것 같아!?”

“...예전과 완전히 같지 않을 테죠.”

“...그래...! 더한 쓰레기들이 될 테지. 내가 전부 봤거든!! 라인하르트의 영웅님들이 희생한 다음을 말이야!”

크리스뿐만이 아니다.

이 자리에 있는 라인하르트 일가 전원에게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영웅이 되어 박제된 한 가족의 말로 이후는 레오나르도는 경험했으니까.

“댁들의 그 숭고하고 잘난 희생 덕에 인류는 적어도 7할은 살아. 알아?! 저 광전사 같은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상황에서 인류의 70%는 확실히 마왕의 손에서 벗어난다고!!”

레오나르도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라인하르트는, 용사는 마왕과의 싸움에서지지 않았다.

공멸은 패배가 아니라, 무승부를 의미하니까.

패배한 건 다른 이들이었다.

“근데 그 운 좋게 지켜진 7할들은 뭘 했는지 알아?”

하지만 인류는 마왕에게 패배했다.

“행여나 자기가 그 3할에 포함될까 불안에 떨었어. 용사가 죽었다는 이유로 불안에 떨며 서로 다퉜지. 그래, 그 정도면 그나마 이해가 되기라도 하지.”

그것도 자멸과 배신의 형태로 멸망한다.

“불안감에 빠진 사람들은 점차 마인이 되길 자처했어! 라인하르트 본가 양반들의 희생을 통해 배운 점이라곤 강한 마인이 되는 방법은 강한 영웅 되는 것보다도 쉽다는 점 뿐이었거든!!”

1할, 2할 3할...인류의 수는 그런 식으로 감소한다.

차라리 도적질이나 자살로 죽거나 죽었다면 그렇게 빠르게 망하진 않았을 거다.

적대자인 마인이 되는 방법은 제물을 바쳐 마기를 받아드리는 과정 뿐, 배신을 통해 얻은 위치와 힘은 너무 달콤했을 거다.

아군은 빠르게 줄어들고, 적군은 쉽게 늘어난다.

인류가 조금이라도 그 희생의 의미를 알았더라면 분명 이렇게 멍청하게 파국을 맞지는 않았다.

“...그렇군요.”

“그래!! 너희들도 그 검집으로 이미 봤을 거 아냐! 영웅이라는 건 그딴 머저리들을 위한 개소리일 뿐이야!!”

영웅들은 전부 단명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하지 않을 올곧은 길을 택하니까.

그렇게 뜯어먹히는 거다.

보통 사람들에게.

“적당히 멍청해지라고!! 현실을 봐! 네 죽어가는 몸뚱아리를 보고, 그 덕에 호의호식하는 쓰레기들을 보라고!!”

레오나르도는 화를 내고 있었다.

언성을 높이는 대상은 크리스였지만, 아무도 그걸 말리지 않았다.

화가 난 대상이 다른 걸 확실히 알았으니까.

“...네, 지금도 보고 있습니다.”

“죽는 게 두렵지 않아!? 나처럼 자살이라도 하고 싶은...”

“그럴 리가 없잖아.”

경어는 아니었지만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한 마디에 레오의 거친 어투가 사그라들고 눌러진다.

사제 관계처럼.

“...그럼... 왜...”

“타인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제가 살아가기 위해서 이 선택을 한 거죠.”

크리스의 눈에는 분명 두려움이 보인다.

죽음은 누구라도 두려워하는 미지다.

그건 죽음을 절실해하는 레오마저 마찬가지였다.

“만약 제가 힘이 있음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더라면, 제 마음 속의 흑암은 죽었을 겁니다. 아마 영원히 라인하르트의 그림자로서 하늘의 태양을 당당히 마주할 날은 없었겠죠.”

라인하르트의 본가들은 전부 나사가 빠져있다.

그건 그들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알 수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본가의 정신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자들은 그런 하자 정도는 애교로 여긴다.

“...영웅이 되려는 거에요...!? 선의에 그렇게 배신당해놓고...! 배신당하는 걸 보고도요?!”

그 어리석음은 그들이 영웅이라는 훈장이니까.

타인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내주는 숭고한 목적을 추구하는 정신의 증표니까.

“배신당하지 않았다.”

크리스의 눈에는 떨림이 없어졌다. 아직 고통도 여실하고, 죽음에 대한 공포도 사라지지 않았을 텐데.

저 긍지에는 미동 하나 없다.

“레오, 네가 오지 않았나. 멍청한 영웅들을 위해서, 실패한 바보들을 위해서 끝까지 싸워서 와주지 않았나.”

크리스는 레오나르도와 처음 만났을 때를 회상한다.

처음에는 출중한 능력을 높게 사 한 달 정도만 적응과 확인을 시킨 뒤 기사로 삼을 인재로서만 생각했다.

라인하르트에서 크게 성장했으면 하는 기사가 되었으면 좋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레오나르도라는 인간이 어째서 라인하르트에 헌신하는지 궁금했다.

영웅을 목표로 하는 그녀조차 이해가 안 될 정도로 레오나르도는 대가 없이 거악과 싸웠다.

“시간마저 초월하여 우리에게 돌아왔는데, 몸을 사리면서 싸울 수는 없지. 오히려 마지막 싸움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

단지 아쉬울 뿐이었다.

그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미련을 남기는 말은 저주가 될 뿐이었다.

“...난 당신들이 미워... 원망스럽다고...”

레오나르도는 크리스의 이불을 붙잡았다. 크리스는 아무 말 없이 사람의 왼손으로 레오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그녀의 손은 뜨겁지만 힘이 없었다.

“...살아남는 게 당연한 거라고......”

살아남는 게 당연하다.

당연할지라도 자결을 원하는 이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그런 쓰레기들도 살아남는다고...!”

하지만 레오나르도은 목숨의 무거움을 안다.

목숨을 수없이 빼앗음에도, 빼앗기에 그 가치를 알고 있다.

“...당신이... 당신들이 살아야했어...”

그랬기에 갈망했다.

영웅의 존재를, 자신이 봐왔던 영웅들이 살아있기를.

“...나 같은 게 살아있었으면 안 됐어...! 난... 그저 날 위해서 싸울 수밖에 없었어...! 죽고 죽일 수밖에 없는...! 그런 쓰레기가....”

마인이 되지 않는 대신 악당이 될 수밖에 없었다.

대의도, 명분도, 희망도 없이 싸우는 자에게 영웅의 자격은 없었다.

“...아...그게...”

그 순간, 레오나르도는 급격히 빠른 속도로 목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감정과 감상에 젖어도 항상 기습에 대비하는 습관은 남아있었다.

“...히익...!!”

“...넌...”

리오스의 연인이었다.

이름은 제대로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 흑탑주 대리로서 온 마법사였던 것 만큼은 기억한다.

“아메리?!”

“...죄...죄송해요...! 엿들으려고 한 건 아닌데...!”

지금은 감정이 극적으로 고조된 상황, 아무리 아메리가 에일린과 함께 해결책을 짜왔어도 그대로 들어갈 만큼 눈치가 없진 않았다.

다만 너무 상황이 심각하게 가서 지금이라도 노크하고 문을 열었을 뿐.

“...미안, 용건만 말해줄 수 있을까?”

레오나르도는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감정을 전환하며 아메리를 바라보았다. 그런 변화에 잠시 머뭇거리던 아메리는 각오를 다지며 손에서 반지를 빼내었다.

“...그게 도움이 될 진 모르겠지만...! 이 반지하고... 이 쪽지에 적힌 포션으로 억제제를 써보면 어떨까요...?! 최대한 할 수 있는 범위이긴 한데...”

“...그게... 준비해줬는데 미안하지만... 현시대의 해독제하고 마도구로는 용혈은 해독은커녕 중화도 불가능에 가까워. 그러니...”

“...예?!”

아메리는 놀란 눈치로 자신을 바라본다.

놀란 만도 할 거다. 기껏 준비한 성의가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건...

“...이거 현자님의 유산이잖아요...? 애초에 주기적으로 마약을 섭취하는 중독자도 치료할 수 있는 마도구인데... 설마 이것마저...”

“...뭐?!”

설마하는 심정에 급히 반지와 쪽지를 받아든다.

그러고는 화살처럼 현자를 쏘아본다.

“...이거...! 진짜...!”

[어, 그 반지, 내가 만든 거야. 인체 독소 해독에 한해서는 성해포랑 비등비등해. 레시피도 대강 보니까 개량만 잘하면 용혈도 억제할 수 있겠네.]

현자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자신의 작품을 신뢰했다.

“그럼 왜 미리...!!”

[그럼 네가 계속 삐친 채로 미친 척 연기하는 꼴 보라고?]

레오나르도는 꿀먹은 벙어리가 된 채로 현자를 바라본다.

반박이 나오기 이전에.

얼굴이 화끈거리는 건 어째서일까.

화가 나서인지, 부끄러워서인지, 기뻐서인지 도저히 구분이 가지 않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여담]

“형수님! 여어 들어오세요!!”

“혀, 형수라니...!”

아메리를 들여보내고 레오나르도는 그대로 문을 닫는다. 아직 입을 떼지도 못한 에일린은 그대로 문앞에 있다.

“...그, 레오? 레이널드인가? 아직 난 못 들어갔...”

“병균은 못 들어오게 해야지. 레시피 값은 제대로 줄게. 너 돈 같은 거 좋아하잖아.”

“...뭣 때문에 화가 난 건지는 모르겠다만...! 우선 이야기로 풀어...!”

“입 닥쳐! 이 간사한 독사 덩어리!”

레오 입장에선 아무런 대가 없이 현자의 유산은 넘겨준 아메리는 당연히 들어오는 게 맞고,

저 속이는 게 인생의 유열인 간교한 미친년은 문전 박대하는 게 상식적으로 맞았다.

[야, 넌 애가 왜 쫌생이처럼 그래. 칼렌 보기 부끄럽게시리. 그냥 열어줘.]

“...들어와. 헛소리하면 척추를 반으로 접어줄 테니까 입 알아서 닥쳐라.”

“...알겠네.”

에일린은 울고 싶은 심정을 참으며 병실로 들어갔다.

그나마 현자가 실제로 에일린의 가문 초대인 칼렌 템페리우스와 친우가 사실이었다는 게 위안 아닌 위안이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현자님.”

[뭘, 사랑 고백은 찼어도 칼렌은 여전히 내 친구라고.]

“...예...?”

칼렌이 남자라는 걸 기억하자

에일린은 속으로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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