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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자는 회귀했다-217화 (217/248)

내 죄업은 셀 수 없이 많다.

아마 세는 것조차 위선이 될 만큼 수없는 죄를 일으키고, 막지도 못했다.

그래도 내 죄를 위선으로나마 세자면 세 가지가 있을 거다.

첫 번째는 나와 동료에 대한 과신이었다.

원로원은 당장이라도 죽여버리고 싶은 쓰레기라고 해도 병력과 군사 소집에 있어선 이용 가치가 있다 생각했다.

전쟁 사태에선 숙청하려해도 오히려 혼란스러울 뿐이었으니까.

그 덕에 제국 전체를 내노라하는 인재들이 한 자리에 모여졌다. 아마 병력으로도, 능력적으로도 훌륭한 인재.

아마 전력의 절반이라도 작전에 따랐더라면 분명 완승할 수 있는 전투.

하지만 마왕이 직접 출현하자 그 구도는 완전히 뒤집혔다.

라인하르트의 피가 섞인 이들은 그나마 안정적으로 버틸 수 있었지만, 다른 영웅들은 정신이 흔들렸고 두려움에 자신을 잃었다.

일반 병력들은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고막에 대못을 박았고, 마왕의 모습을 본 것만으로 미치거나 자결했다.

그래도 아직 싸울 수 있었다.

아빠가 독기에 당해 앓아누워도.

고모가 시간을 벌기 위해 목숨을 불태워도,

할아버지가 분노에 차 죽도록 적군을 쓸어버리고 죽었어도,

오빠마저 모두를 구하기 위해 순간이동을 쓰면서 사과만을 남겼을 때에도,

싸워야했다.

사람들이 지키고 남긴 세계를, 그가 살아갈 세상을 위해서.

그렇게 마왕과 일기토를 벌였을 때, 나는 두 번째 실수를 벌이고 만다.

‘...말도 안돼... 어째서...’

광기와 혼돈 속에서 마왕의 본모습을 바라보자 말이 나오지 않았다.

직접 만나지도, 대화를 나누지도 않은 인간.

구면이라고도 말하기도 어려운 사람의 거죽이었지만.

알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레오나르도 본인이었다면 속임수라 생각하고 주저없이 마무리 지었을 거다.

하지만 누구보다 레오와 닮았음에도, 젼혀 예상치 못한 인물의 모습에.

[방심했군.]

내 두 번째 실수다. 산 채로 붙잡을 수 있는 승리를 그런 식으로 놓쳐버렸다.

그 일기토의 결과는 동귀어진.

공멸로 끝났다.

뒷일은 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가가 싸움은 판명될 터였다.

그리고 지금.

내가 진 가장 큰 실수로 고통을 짊어지고 있는 그를 만나게 되었다.

다신 볼 수 없었고, 봐서도 안 되었는데.

보고 싶었다는 말이 나올 것 같다.

그런 스스로가 역겹다.

그저 난 지금 한 자루의 날붙이에 불과한데.

* * *

“...어떻게...”

[...어떻게...]

두 용사는 마치 하나가 된 것처럼 동시에 레오를 바라보았다.

단발머리가 떨리는 아리아스필의 표정은 물론, 투구에 가려진 표정마저 레오의 시선에는 여실히 드러났다.

그 얼굴들을 마주한 레오나르도의 얼굴에는 미소뿐이었다.

“원리는 간단해. 영혼만 죽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지. 몸은 간당간당하게 살아있는 채로.”

가슴팍을 뚫었을지언정 장기만큼은 손상을 최소화한 채로 심장의 박동만큼을 건드렸다.

검은 신성과 의학적 지식을 이용한 기술, 그 덕에 아리아스필은 스스로 죽었다 착각되었고.

그 결과가 이어져 이 성검 속에 들어올 수 있던 것이었다.

“아리아가 성검 속에서 댁이랑 만난 이야기를 진득이 해주더라고. 거기서 감을 딱 잡았어.”

성검이 반응하는 구조가 전체적으로 이해되었다. 키워드는 용사의 죽음이 아니라, 용사가 스스로가 죽었다 생각하게 만드는 것.

만약 완전히 죽는 게 조건이었다면 또다른 용사가 아리아를 죽이려 했을 때, 공격이 통과할 일은 물론 치료로 의식이 되돌아오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래서.”

레오나르도는 검은 갑주를 입은 용사의 가슴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아까까지는 남성적이고 거친 태도로 아리아를 압박하던 검은 용사는 마치 여린 소녀처럼 움츠러들었다.

“못 만지는 거지. 반밖에 안 죽었으니까. 그러니까 계집애처럼 피할 필요는 없다고.”

레오나르도의 손은 그대로 검은 갑주를 너머 용사를 통과한다. 마치 유령인 현자처럼 보고 대화할 순 있음에도 닿을 수는 없다.

“그에 비해 나랑 똑같이 반 정도 죽은 아리아는 만질 수 있어.”

레오나르도는 그러고는 당황스러워하는 아리아스필의 가슴을 팔로 부드럽게 끌어안는다.

극단적인 공격을 당했음에도 아리아스필은 이 스킨십이 불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따스하고 포근하게 자신을 감싸 안는 것만 같았다.

“알겠습니까? 대단하신 루벤 라인하르트 씨?”

“...?”

[...]

레오나르도가 검은 용사를 저렇게 지칭하자 아리아스필을 당황스레 그를 바라보았다.

확실한 근거는 없을지언정 지금 저 앞에 있는 존재가 루벤 라인하르트가 아니라는 건 아리아스필조차 알 수 있다.

게다가 성검과 용사는 키워드에 집중해서 정체를 특정하자면 한 여자로 좁혀질 터.

그건 레오나르도가 가장 잘 알고 있다.

“왜 그러세요. 아무 관계는 아니어도 나름 많이 보고 싶었다고요.”

아주 잘 알기에 저러는 것이었다.

일부러 ‘아무 관계’라는 부분에 어조를 강하게 뱉는 게 그 증거였다.

[잠시만, 난...]

“지금 질문은 내 쪽에서 하는 맞지 않나? 아주 아리아한테는 재수없게 굴면서, 밑바닥인 나한테는 왜 쩔쩔 매실까?”

투구 속 아리아스필은 쩔쩔 맨다는 표현대로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마치 남편에게 바가지 긁히는 마누라의 꼴을 보는 것만 같다.

양손은 다소곳하게 배꼽 아래로 둔 채, 고개를 숙이고, 손가락은 불안감을 형상화듯 엄지끼리 비비고 있다.

[...레오,나르도 넌... 이 상황의 피해자니...]

“아, 아리아! 아까 가슴팍 찌른 거 괜찮아? 많이 아프면 호해줄게~”

아리아스필조차 눈치챌 만큼 고의적으로 끊은 말, 혀에 도끼라도 달린 것처럼 검은 용사의 말을 잘라낸다.

평소라면 저런 애교섞인 걱정마저 행복하게 받아들일 아리아였지만, 지금 이 심각하고도 이질적인 상황에선 전혀 달갑게 볼 수 없었다.

“...아...! 네네...! 괜찮아요...! 나중에 해주시면...”

“아니아니, 그 예쁜 가슴에 흉이라도 지면 어떡하려고? 1회차 때보다 흉이 없는 깨끗한 가슴인데 잘 아껴야지.”

왜인지는 몰라도 검은 용사의 주먹이 쥐어지며 부들부들 떨린다. 아마 레오는 이유를 안다해도 똑같이 할 것이다.

이미 알고 있는 게 분명하니까.

[...얘기 끝났나?]

“아 대강은. 근데 언제 봤다고 반말이지? 나랑 아무, 무슨, 어떤 관계도 아니면서.”

투구 속로 동공이 가려져 있음에도 떨리는 시선이 아리아스필에게는 보였다.

거울로 마주보듯 확살하게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이해하겠습니다.]

“그렇다고 존댓말로 하는 거예요...?”

줏대가 없어보일 정도로 빠른 태세 전환에 아리아스필은 당황스럽게 검은 갑주의 용사를 바라보았다.

이 여자가 며칠 전만 해도 자신의 목을 조르고 배에 성검을 찔러넣으려 한 사람인지 갑자기 의심스러워진다.

[당신은 이 상황에서 분명한 피해자니까요.]

“갑자기 그렇게 표현해도 곤란한데? 물론 아리아랑 다른 라인하르트한테 속은 걸로 확실히 피해는 받았지만 말이야.”

그 말에 아리아스필은 부들거리며 공포에 떨었다. 말 뿐이 아니라는 듯 레오나르도가 자신을 끌어안는 힘이 조이는 것으로 변질될 정도로 억세지고 있었으니까.

지금 레오는 웃고는 있을지언정 어떤 때보다도 분노해있었다.

눈앞에 있는 저 용사도 그 화를 먼저 눈치챘기에 태세를 낮춘 것이었다.

“근데 네가 뭔데 까냐고. 당사자인 나도 아직 정산 못 했는데. 아리아스필은 패도 내가 패고, 까도 내가 깐다.”

분명 거친 화가 담긴 말이었지만 아리아스필은 기쁨이 감정에서 흘러넘치는 걸 억누를 수 없었다.

저런 저돌적인 말을 태연히 하니 입술이 꿈틀거리는 걸 참아낼 수 없다. 그 입꼬리의 진동을 보자 검은 투구를 쓴 용사의 시선이 쏘아진다.

[...당신은 물론, 당신의 모친마저 마왕의 분명한 피해자입니다.]

살의를 눌러낸 검은 용사는 다시 레오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주장을 멈추지 않았다. 분노로 찼어도 미소를 짓고 있던 레오나르도가 바로 정색한다.

“...부모님 건드리기 있냐? 네 엄마나 잘 챙겨.”

그 말에 또다시 검은 갑주의 용사가 몸이 움찔거린다.

마치 엄마라는 단어에 양심에 가책을 세게 얻어맞기라도 한 것처럼.

[조, 조롱의 의미가 아닙니다. 애초에 마왕의 그릇은 선천적인 문제가 아닙니다. 선천적인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두 분만큼은 예외입니다.]

그 한 마디에 레오나로드의 정색이 점점 진해진다. 투구가 아예 뚫어질 정도로 시선이 용사에게 꽂힌다.

“...그럼 후천적인 문제로 모자 전부 마왕의 그릇이 됐다고? 그게 말이 돼?”

[...]

기가 찬다는 듯 비꽜음에도 아리아스필은 숙연히 고개를 숙였다. 마치 침묵으로서 긍정하듯 대답을 하지 않았다.

레오의 정색은 음영과 어둠으로 뒤덮인다.

코미디로도 취급할 수 없는 사실에 도저히 웃어넘길 수가 없다.

그게 사실이라면 멀리서 보든, 가까이서 보던 토가 나올 것만 같은 비극이니까

[방법은 있습니다. 적어도 레오나르도 당신만큼은 마왕의 손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게 아까 아리아를 죽이라고 지랄한 이유냐? 염병을 떠내.”

[매도 당해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당신만큼은 구원...!]

후웅...!

레오나르도의 주먹이 검은 용사의 머리를 관통한다. 이미 몸은 서서히 반투명해지고 있었다.

“개소리도 정도껏 해야 웃고 넘기지. 그딴 기분 더러운 구원 누가 구걸이라도 했나?”

검은 갑주의 용사는 알고 있다.

레오가 자기 손으로 그러지 않을 거라는 걸.

그건 그가 위선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진정으로 선을 관철하는 이라는 걸 알고 있다.

“게다가 매커니즘도 이해가 안 되는데? 그런 논리대로 가면 우리 엄마는 뭔데? 창녀 같이 마왕한테 몸이라도 대줬어?”

[...아무리 죽어가는 사람이라도 아무나 이곳에 올 수는 없습니다.]

이윽고 검은 갑주의 용사는 아리아스필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후회와 회한에 잠기기라도 한 것처럼.

[...그날 성검의 안치소에 와라. 뭐든 걸 알 수 있을 테니까.]

“...모든 거라는 건...”

“그보다 왜 다시 반말 까냐?”

레오나르도는 반투명해지는 아리아와 자신을 보면서도 태연히 그 사실을 지적했다.

[그건 레오 네가 아니라 아리아스필한테...!]

“언제 봤다고 줄여서 불러? 아무 관계도 아닌 주제에. 재수 없게시리.”

검은 갑주의 용사는 꿀 먹다 질식할 것만 같은 벙어리처럼 고개를 숙인 채 양손을 쥔 채로 떨기만 했다.

“그보다 내가 하는 질문에나 답해. 재수없는 루벤 라인하르트 씨.”

[...질문하시죠.]

검은 용사는 아예 체념한 채로 질문을 기다렸다. 성검의 용사를 증오하던 아리아스필마저 저 존재를 처량하다 동정할 정도였다.

“내 기억은 성검으로 되찾을 수 있어?”

그 말에 아리아스필은 떨었다.

어쩌면 마주해야할 질문과 대답이었다.

자신의 능력 부족으로 레오를 이뤄던 일부가 날아간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그건... 불가능합니다. 성검이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그 한 마디에 아리아스필의 표정이 떨리고 일그러진다. 그것만큼은 안 된다.

그것만큼은 아니었으면 했다. 성검에는 방법이 있기를 바랬다.

“...그럼 저번에 성검으로 정화시켰을 때는 뭔데요!! 그걸로...!!”

[그건 성검으로 신성을 채워 마기를 거둬낸 거일 뿐이다! 레오의 정신력을 강화해 기억...]

“말 놓지 말랬지. 나도 듣고 있거든. 할아버지한테 예절 교육 안 받았냐?”

[...기억을 그나마 온존시킨 거일 뿐이에요오...]

중요한 상황임에도 레오나르도는 마르켄 수준으로 상명하복에 중요시했다. 갑작스러운 진실에 흥분한 아리아스필마저 용사의 안타까움에 잠시 진정할 정도의 지독함이었다.

[...시간을 되돌리는 수준으로 하지 않는 이상, 완전한 기억의 복구는 없을 겁니다...]

“...하... 제일 맞았으면 하는 건 허탕이고, 안 좋은 건 확실하게 알아버렸구만.”

[...죄송합...]

“됐어. 사과하지 마. 네가 사과할 게 한 두 개...”

레오나르도는 이내 말을 멈춰버렸다. 자신의 손은 물론 눈앞에 있는 아리아스필까지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레오... 레이널드 님...! 몸이...!”

“아무래도 바깥 놈들이 참을성이 없나보네.”

점점 몸이 빛으로서 사라진다. 이미 바닥을 지탱하던 하반신은 이미 사라졌다.

[...]

검은 갑주를 입은 아리아스필은 아무 말 없이 그들을 바라보았다.

자신에겐 작별을 고할 자격이 없다.

살아있을 적의 작별도, 사후의 작별도 최악으로 마친 자신은 인사를 할 염치가 있어선 아니되었다.

“다음에 만날 건데 왜 이렇게 울상이야?”

레오가 말했다. 항상 레오는 이렇게 다가왔다.

날붙이나 다름없는 자신이 이렇게 한심하게 있을 때.

“기다리고 있어라. 지금은 패줄 수 없지만, 나중에는 내 손으로 패줄 테니까.”

솔직하지는 못해도 스스로에게 당당하게 행동한다.

“나한테 용사는 아리아스필 뿐이거든. 1대인지, 3대인지 내 알바냐.”

[...어째서...지?]

사라져가는 레오의 얼굴 속에서 그는 말했다.

반말도 지적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동등한 입장이라는 듯이.

“아리아스필이 내게 처음으로 영웅이 되어주었으니까.”

이윽고 한없이 사라진다.

사라진 걸 확인한 검은 갑주의 용사는 그대로 주저앉는다.

눈물을 흘릴 자격은 없음에도 수치심을 모르는 울음은 용사를 수치스럽게 만든다.

[...아냐... 레오...]

자신은 영웅 따위가 아니다.

같잖은 실패자, 저 사람에 비하면 한없는 가짜일 뿐이다.

[...네가 진짜란 말이야...!]

아리아의 유일한 영웅은 레오나르도였다.

일그러진 채로 반복되는 수백수천년의 시간 속.

버틸 수 있었던 건, 레오나르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영웅이 될 운명이 아니었음에도.

진정한 영웅이 되었으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예전에 친구가 가챠 게임을 하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아예 천장을 찍을 기세길래 같이 보면서 응원을 했죠.

그 가챠가 궁금했는지 한 인싸가 다가오더군요.

"그 그림 가지고 왜 돈주고 힘들게 해? 그냥 캡처나 유튜브 보면 되잖아."

그 순간, 저 인싸에게 살의가 치솟았으나 전 논리적으로 해결했습니다.

"그럼 왜 박물관에서 명화를 돈 주고 사겠어?"

눈높이 교육이 타격에 들어갔는지 인싸는 별말없이 갔습니다.

처음으로 인싸를 이겼습니다. 이긴 거죠? 이겼다고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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