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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자는 회귀했다-199화 (199/248)

1회차에서 라인하르트에서 있을 무렵엔 에일린과와 접점은 없었다.

애초에 에일린 템페리우스는 마법계의 거성, 라인하르트의 일개 기사인 레오나르도와 접점이 있을 리는 만무했다.

그리고 레오나르도가 파멸을 마주한 제국에서 어둑시니로 활동할 무렵, 그녀와는 제대로 정면에서 마주하게 되었다.

[어둑시니, 라인하르트 원로회장 습격 이후로 불참한 원로원들까지 차례로 몰살한 통칭 라인하르트 학살자. 본인 맞나?]

<그러는 그쪽은 용사 아리아스필의 동료를 자처한 주제에 혼자 살아남은 마법사였던가?>

[사형하기 전까지는 묵비권을 유지하는 게 좋을 텐데? 레오나르도.]

<네년이 뒈지면 묵비권이 되겠지.>

이때 레오나르도는 확신했다.

아리아가 최고의 라이벌이자 호적수라면.

에일린은 최악의 라이벌이자 대적자라는 걸.

그리고 지금 레오는,

“...아,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레오나르도이고... 10살이에요...”

그런 호적수에게 열살배기 어린애의 말투로 자기소개를 해야만 했다.

‘...하...내가 왜 저 새끼한테...’

순진한 표정 뒤로 감추어진 감정은 원망으로 썩어들어갔다. 앤젤라가 내세운 전략은 그만큼 레오의 감정을 혹사시키는 강경책이었다.

{기억상실의 범위를 조금 더 늘린 걸로 하죠!}

기억 상실의 정도를 50대가 아닌, 10대 초반으로 하는 것.

유아 퇴행을 연기해 저들을 속여넘기는 전략이었다.

어린 아이를 좋아하는 앤젤라가 생각할 법한 발상, 실제로 이론적으로는 레오도 효과적이라 동의하는 방법이었다.

어린 아이가 되었다 하면 대화하는 부분에 있어 어색한 부분이 있어도 무마할 수 있고, 심문조차 자유롭지 않을 테니까.

단지

‘진짜 죽고 싶네.’

레오의 흑역사가 활활 불타올라 새까맣게 그을릴 뿐이었다. 다른 사람 앞에서도 이러는 게 부끄러워 미칠 것 같은데.

“...기억상실이라니...”

원수 같은 에일린 앞에서 아이인 척 연기를 한다는 건, 자살 사유로도 충분할 정도였다.

지금 억누르고는 있지만 등의 금제에서 신성이 차오르는 것이 그 반증이었다.

“...전... 누구인지 기억 안 나시나요? 레오...군?”

마법계에선 천재라 칭송받은 레오가 기억상실이라니, 평소 친분이 있던 아메리로서는 쉽사리 믿을 수 없었다.

“...아... 죄송해요. 누나... 여기에 온 뒤로 모르는 것 투성이여서... ”

하지만 건장한 청년이 죄책감이 살짝 서린 순진한 표정을 짓자 아메리의 의심은 즉각적으로 사그라들었다.

“아, 아니에요! 모를 수 있죠! 모를 수 있어요!!”

반대로 평소의 신사적인 태도와는 생긴 의외성 때문에 보호심리까지 들었다.

연기일지라도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정말로 어린애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주셔야겠습니다.”

“현자님은 어디 가신 겁니까? 혹시...”

[설명은 내가 해주마.]

약속했던 때에 숨어있던 현자는 마법사 모두가 모여있는 자리에 나타났다. 이쯤에서 설명하는 것이 진행에는 원할할테니까.

“...누구세요?”

모두가 현자를 봤음에도 그렇게 되물었다.

[현자다. 이 모습은 이렇지만.]

레오의 정신 연령보다도 어린 모습으로 현자는 그렇게 자신들의 후배를 마주했다.

***

“그게 외람된 건 압니다만, 정말 현자님이신 겁니까?”

청탑주 블루아 블랑은 연장자로서 대표로 나서서 현자에게 질의했다.

지금까지 상상의 영역에만 존재했던 역사적 영웅이 지금 이 자리에 있으니 비교적 젊은 인물들은 몸과 정신이 굳어 말도 떼지 못했다.

[자네가 최근에 만든 원주율 계산에 따른 마법진 출력 논문에 대해 읊어볼까? 아니면 네 딸이 레오나르도한테 어떤 짓 했는지 차례로 말해주는 것도 괜찮고.]

단 두 문장만으로 다른 마법사들은 자신의 앞에 있는 인물이 현자라는 것을 인정해버렸다.

게다가 레오의 곁에서 배후령에 있었다는 것까지 알아버렸다.

“...죄송합니다. 섣부르게 믿는 건 어려운지라...”

[아니, 바로 신뢰하는 게 더 이상한 거지. 다른 사람들은 질문하고 싶은 거 있나?]

현자는 그날따라 격조를 지키면서 부드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어린아이의 모습임에도 평소보다 근엄하게 무게있게 보였다.

{...저런 현자는 참 좋은데 말이죠. 저런 모습 좀 자주 보여주면 어디가 덧나나.}

“...아...네...”

자신의 영체를 철저히 숨긴 채로 앤젤라는 소년 현자를 특등석에 관람했다. 이 계획을 짜낸 이유에는 저런 현자를 보는 것도 아주 약간은 포함되어 있었다.

“...그때 저희를 구해주신 건 현자님이셨습니까? 그 검은 불꽃을 꺼트려서...”

[꺼트린 게 아니라 촉매를 정지시켜서 일시적으로 정지한 거야. 아마 아리아스필이 마무리로 목을 베지 않았다면 몇 분 안 지나서 다시 불바다가 되겠지.]

마법적 지식과 지혜가 흘러나오는 대답에 모두들은 신뢰와 존경어린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작은 키였기에 분명 내려다봐야했지만 그들은 현자에게의 시선이 올려다본다는 착각이 들었다.

“...펴, 평소에 많이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혀, 현자님! 전...!”

[아메리 에스프. 맞지?]

현자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자 아메리의 얼굴은 감격에 가득 차 눈물마저 흘러나왔다.

아마 지금 이 순간이 인생 가장 두 번째로 감격스러운 순간일 것이다.

이 자리에 있는 리오스의 얼굴만 보이지 않았더라면 분명 인생 첫 번째가 될 수 있었을 정도였으니까

“...어째서 저희에게 정체를 드러내지는 않으신 건가요? 무언가 사정이...”

[라인하르트 쪽에서 말하지 말라고 한 건 내가 부탁한 거야. 제일 먼저 레오한테도 날 숨겨달라고도 합의했고.]

라인하르트와 마탑의 관계를 고려한 대답, 이 자리를 주선한 글라디오에게는 한 시름을 놓을 수 있는 발언이었다.

[그러니까 너무 리오스한테 배신감 느끼지 마. 쟤가 어떻게든 입을 열려는 거 내가 직접 말렸거든.]

“...혀, 현자님...!”

자연스레 아메리에게서도 감싸자 리오스는 다시금 현자에게 진심어린 존경을 느꼈다. 현자의 말 한 마디로 아메리가 리오스를 쏘아보던 시선이 한층 누그러졌으니까.

“...그럼 레오나르도의 기억이 상실된 건 어째서...”

[단언하기는 싫지만, 분명 적탑주가 그 존재에게 빙의되었을 때 당한 게 영향이겠지.]

적탑주의 이야기를 꺼내자 마탑 측 전원의 표정이 심연에 빠진 것처럼 어두워졌다. 현자가 온 지금, 마탑 역사상 가장 불명예스러운 추태를 보였으니 수치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현자님, 그리고 라인하르트 가주님. 마탑의 타락으로 이런 누를 끼쳐 정말 죄송합니다.”

사실 지금 라인하르트에 온 것도 적탑주 건에 대해 한 명의 마법사로서 사죄를 하기 위해서였다.

“사과는 따로 받지 않겠습니다. 마탑 측에선 피해적 보상과 제대로 할 일을 해주시죠.”

평소 온화하던 글라디오는 냉정하고도 차가운 분노가 느껴지는 대답을 내었다.

저건 연기가 아니라는 것을 레오마저도 깨달을 수 있었다.

적탑주가 자행했던 비윤리는 그만큼 글라디오의 신경을 건드렸다는 의미였다.

[마법사는 감정적으로 사과만 할 게 아니라, 실리적인 해결책을 찾는 게 일이지.]

“...맞는 말씀입니다.”

마탑의 모두 면목이 없는 채로 그들의 지적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잘못에는 마주보고 보완해나가는 것이 학자의 책무였으니까.

“우선 마탑에선 그 존재와 적탑주의 접점을 조사해왔습니다. 그 자료를 라인하르트과 먼저 공유하고자 왔습니다만...”

이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에일린은 슬며시 레오 쪽을 바라보았다. 새햐앟게 물든 청년의 머리칼은 청년의 기억이 탈색된 걸 표현해낸 것만 같았다.

“...당장은 말할 수 없을 것 같군요.”

“레오나르도 마법사의 기억은... 되찾을 수 있는 겁니까?”

[...방법 자체는 있어. 단지 실현시킬 조건이 까다로울 뿐이지.]

그 말에 마탑 측 뿐만 아니라, 라인하르트 측에서도 놀란 눈치로 현자의 발언을 경청했다.

생각해보면 현자는 방법이 있다고는 권고를 한 바였다. 단지 그 방법을 정확히 어떻게 하는지 설명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그 방법은...”

[미안하지만 아직 말할 수는 없어.]

모두가 기대하고 있는 와중, 현자는 알면서도 찬물을 끼얹는 말을 내뱉었다.

“어째서죠...?”

[아는 사람이 많으면 실패할 가능성이 크니까.]

간결하고 단호하게 문장만으로 설명을 거부할 수밖에 없는 설명을 마쳤다.

드물게 보이는 강경한 태도일까, 추가적으로 질문하려는 이는 나오지 않았다.

저 말이 사실이라면 캐묻지 않는 게 맞았으니까.

“...레오나르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에일린은 침울한 기색으로 레오의 이름을 불렀다. 흠칫 놀라며 고개를 돌린 레오의 표정은 그야말로 작은 소동물이었다.

“...네, 부... 부르셨나요?”

기본적인 예의는 지키지만, 기품은 없는 태도.

그런 레오를 보는 에일린의 감정은 무겁기만 했다.

그건 레오도 마찬가지였다.

‘...뭐야? 뭔데? 왜 저런 그윽한 눈으로 보는 건데...?!’

레오가 봐왔던 지금까지 에일린의 시선들은 전부 고개를 45도로 올린 채 슬며시 눈으로 아래로 내려다보는 경멸의 시선이었다.

그런데 갑작스레 저련 아련한 시선으로 보는 건지, 레오로서는 도저히 의중을 알 수 없었다.

“...혹시 어머니에 대해 기억나는 것 없니?”

“...어...엄마요...?”

레오가 당황한 것은 어머니에 질문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항상 냉소로 일관하던 에일린이 자신에게 저리도 따뜻하게 질문하는 건 난생처음이었으까.

“...에일린 님, 그건...”

“알고 있다. 다만 기억이 유년기에 맞춰진 만큼 정황에 더 잘 기억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

냉정한 판단이었지만 미래의 에일린의 성격을 알고 있는 레오가 보기엔 지극히 온건한 방식의 심문이었다.

예전 같으면 자신이 지원했던 고아원부터 시작해 가끔 찾아가는 식당 점원까지 사용하고 협박해 심문하는 그녀였으니까.

“...엄마는...”

그렇기에 레오는,

“...자주 집에 들어오시지는 않았어요. 용병일 때문에 바빠서 늘 늦으셨거든요...”

최대한 사실을 바탕으로 한 불우한 어린 소년의 감성을 쥐어짜내었다.

“그래도...! 돌아오실 때는 항상 과자나 그림책을 사오셨어요! 장난감 같은 것도... 조금씩 만들어주시고요...”

옛 추억과 작은 행복들을 똘망똘망한 눈으로 전하는 것으로 동정심을 유발하고.

“...그리고... 한달이 넘어가는데... 아직 안 돌아오셨어요...”

자신의 가장 크게 겪은 비극으로 안타까움을 강조한다.

“그렇니?”

그 이야기를 듣자 에일린은 짧고도 부드럽게 되물었다.

“...저희 엄마... 괜찮을까요...? 갑자기 눈 떠보니 처음 보는 곳에 와서... 할머니하고 형도 많이 걱정할 텐데...”

그리고 어린다운 걱정과 칭얼거림을 내보이는 것으로 레오는 연기를 마무리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완벽한 연기, 그렇지만 상대가 에일린이라는 게 변수였다.

‘...저 년은 꼭 쓸데있든 없든 눈치가 귀신 같단 말이지.’

저 여자가 무서운 이유는 편집증에 가까운 정보력 때문이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추리력은 무슨 탐지견을 뺨 날리는 수준이었으니까.

“...나도 모르겠구나. 하지만 괜찮다는 걸 알아내는 게 지금 내가 해야할 일이겠지.”

그렇게 말하며 에일린은 레오의 머리를 약간 쓰다듬었다. 연기에 자신이 있던 레오는 일시적으로 눈동자가 흔들린다.

“...혹시 레오나르도를 마탑에 데려갈 수 있습니까?”

“...무슨 말씀이신지요...!?”

아리아스필은 사력을 다해 인위적인 미소와 경어를 유지하며 에일린에게 되물었다.

기억을 잃은 레오에게는 품격있는 아가씨를 이미지를 심어주고 싶은 아리아기에 이번 만큼은 성검을 뽑아들지 않았다.

“염치는 없다만 마탑에 간다면 다른 방법으로 기억을 회생시킬 방도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네. 게다가 현자님께서 마탑에서 활동하시는 편이 단결에도, 차후 조사에도 차도를 줄 것 같더군.”

염치는 없었지만 에일린의 말은 아예 틀린 것은 아니었다.

세뇌를 푸는데 있어 많은 방법을 찾을 수 있는 장소는 마탑 혹은 신전이었고.

현자를 모신다는 의미로 마탑에 레오를 데려간다는 강행에 근거를 더할 수 있었으니까.

“마탑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보내고 싶지는 않군요...!”

“지당한 지적이다만, 그렇기에 더욱 마탑에서 배상을 위해서라도 해결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아리아의 분노어린 시선에는 에일린의 더러운 흑심이 내보였다. 레오의 귀여운 유아퇴행 연기에 넘어가 어떻게든 더 보고 싶다는 욕정이 아리아에게는 느껴졌다.

{...상정했던 상황입니다.}

가만히 이 상황을 관람하며 안주로 삼고 있던 앤젤라는 클라이막스를 장식할 때가 왔다 확신했다.

{마지막 플랜을 사용하죠.}

“...”

연기로 얼굴에 두껍게 화장한 레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며 잡념으로 아리아와 에일린을 번갈아보게 된다.

이건 수치 정도가 아니다.

저 둘을 포함해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이 앞에서 이런 짓은 도저히 할 수 없었다.

레오는 필사적으로 앤젤라가 알아볼만큼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되면 싫어하는 에일린 양과 같이 있으면서 계속 유아 연기를 해야할 텐데요?}

선택할 여지는 없었다.

저 성녀는 실실 대면서도 자신이 그런 말까지 하도록 상황을 유도한 것이다.

“...그럼 본인의 생각이 중요하겠군.”

에일린은 어린 레오에게 일말의 희망을 지녔다. 지금의 레오라면 자신에게 선을 덜 긋지 않을까, 하는 허황된 희망을 말이다.

“...혹시 누나랑 마...”

에일린이 입을 떼자마자.

“아리아 누나...! 저 사람 무서워!”

레오나르도는 아리아에게 안겨들며 겁을 먹은 아이처럼 아이처럼 울먹였다.

그때 레오과 에일린은 생각했다.

그냥 죽을까, 그래 죽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50대 연상에게 누나라 불린 한 소녀의 감정: 'HEYYEYAAEYAAAEYAEY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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