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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자는 회귀했다-193화 (193/248)

아리아스필과 레오나르도는 관계는 도저히 단어로서는 요약할 수 없었다.

유년기에는 친구로 시작하여.

철이 들 무렵에는 기사로 주종 관계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청년기가 되는 때에는 1회차와 2회차의 관계는 극단적으로 갈렸다.

1회차 때에는 안타깝게 이별한 동료이자 호적수와 같은 형태였다면.

2회차에는 서로를 이성으로서 인식하기 시작하며 점차 가까워지는 연인과도 같으니까.

게다가 아리아스필은 레오가 기억을 잃기 전까지만 약혼과 다름없는 세레나데를 받았으니.

“...그게... 설명하긴 어려운데...”

레오와 관련된 건 전부 기억하는 아리아스필로서는 참으로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아주 가까운 관계긴 한데...”

기사라는 주종 관계는 레오의 노력과 아리아의 애정으로 넘어선 지 오래였고.

친구라고 하기에는 서로를 이성으로 의식하는 시선이 뜨거웠다.

하지만 반려로 보기에는 형식적으로는 부족한 점이 존재했다. 어디까지나 형식의 문제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레오는 납득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비슷한 건 맞지 않을까요...?”

“왜 질문을 했는데 의문형으로 답하는데?”

아리아스필 본인도 의문이었기 때문이었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키스라는 연인의 스킨십까지 했으나 아리아스필로서는 차마 그렇다 단언할 수가 없었다.

‘...나도 레오한테 묻고 싶었는데...!’

‘우린 이제 1일지?’라고 대놓고 묻고 싶었고,

‘레오는 제 연인이에요!’라고 당당하게 가문 내에서도 선포하고 싶었는데.

정작 레오 본인에게선 정확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 정확히 연인이 되어달라고 하거나 프로포즈를 한다면 캥길 것은 없었는데, 막판에 일이 이렇게 꼬이고 말았다.

“댁들이 보기엔 어땠어? 우선 순애 추종자부터.”

레오나르도는 가장 먼저 리오스를 가리키며 질문했다. 이런 분야에는 좋든 싫든 빠삭한 인물은 자칭 순애의 수호자 뿐이었으니까.

“볼때마다 바로 결혼하고 애 셋 낳아서 행복하게 살았으면 했습니다!!”

기대한 쪽이 멍청이였다.

“희망사항 말하지 마.”

이번에는 그나마 만만한 크리스 쪽으로 했다.

“흑암, 당신은 어땠는데?”

“강호는 강호와 만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강호의 법칙이라고... 생각합니다.”

의도친 않았지만, 언어유희처럼 보이는 주장이였다. 너무 진지하고도 가벼운 분위기에선 저런 말은 강제로 웃음을 참아야하는 고역을 창출해내었다.

“거 음유시인 뺨치네. 그런 농담은 알프레드 씨 오면 나중에 한 번 해줘. 웃다가 자지러질 정도로 좋아할 테니까. 그럼 가주 당신은?”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레오는 크리스가 자주 하는 헛소리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마치 폭탄을 돌리는 것처럼 순서는 글라디오에게로 향했다.

질문이 무례한 것과는 별개로 대답하기는 곤혹스러울 따름이었다.

회귀했다는 사실도 몰랐을 땐, 예비 사위라고 생각하며 갖은 지원을 몰아주려고 했고.

진실을 알았을 때는 반성과 감사가 극단적으로 공존하여 어떻게든 붙잡고 싶은 심정밖에 없었다.

그리고 기억을 잃은 지금은...

‘참 대하기 곤란하군...’

어떻게 대답하든 화를 입을 것 같아 두려운 글라디오였다. 아마 지금이 가주에겐 가장 무력하고 품 떨어지는 순간일 것이다.

“...아리아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인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남작 지위를 포함한 영지 및 자택까지 각종 보상을 내드리려했습니다만...”

돌아온 레오나르도는 기억을 상실해버려서 그런 보수조차 주지 못해버렸다. 안타까운 일이다 못해 양쪽 모두 답답하기 짝이 없는 악재였다.

“어차피 줘도 안 받아. 세상 개판 되면 무정부 상태에 토지 오염부터 시작해서 전국에 있는 집들은 주인이 다 죽어서 온통 빈집이 될 테니까.”

한 문장으로 레오나르도가 왜 각종 재산과 지위에 전혀 관심이 없었는지 납득할 수 있었다.

어차피 그런 재산으로는 세계 멸망하면 그딴 건 하등 의미가 없으니까.

그렇다 쳐도 너무 초탈한 면도 있었지만 그건 레오나르도이기에 납득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지금 몹시 불만스러워하는 단장님의 의견은?”

“...누가 불만스러워했다는 건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마르켄의 이마엔 도드라질 정도로 혈관이 튀어나왔다.

까놓고 어떤 위인이라도 외간 남자가 손녀의 관계를 저렇게 무례하게 물어보면 달가울 리가 없었다.

“...나쁘진 않았다.”

간신히 화를 억누르며 마르켄은 그리 말했다. 사실 화가 났다 쳐도 아리아와 레오의 관계가 원만하다 못해 좋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무슨 말에 영양가 없어.”

“아가리 닥쳐라!! 죽여버리기 전에!”

사실이었으나 화를 참는 게 힘든 70대의 마르켄이었다. 마르켄의 분노를 보자 레오나르도는 본목적도 잊은 채로 비웃기 바빴다.

“나중에 죽일 기회 많이 줄 테니까 우선 삭히고 있으라고. 이젠 남은 사람은...”

시리카는 식겁한 표정으로 레오나르도를 보기 바빴다.

착하고 유능한 대신 중요한 부분에 나사가 다들 빠진 이 가문에서 드문 상식인인 레오가 저래서야 다가올 질문이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미안해서 안 물을게. 누가 보면 물고문해서 협박하는 줄 알겠네.”

“...감사합니다아...”

다리 힘이 풀린 시리카는 안도감에 그대로 주저 앉았다. 무인들과 서는 것은 항상 고역의 연속이었다.

“근데 도대체 무슨 관계인 거야? 하는 말만 들어선 연인 같은데, 결국은 연인이 아닌 거잖아.”

기억상실만 아니면 멍석에 말아서 단체로 두들겨 팰 만한 발언이었다.

그런 모순적인 관계가 누구 때문에 일어난 것인가.

자신들은 오히려 이 말 같지도 않은 관계를 어떻게든 이어주기 위해 사력을 짜내 도왔는데.

어떻게든 깔아준 판을 뒤집어엎고, 기회를 마련해줘도 직접 걷어찬 건 레오나르도 본인이었다.

[직접 씹어서 떠먹여줘도 토해낸 자식이 할 말이냐?]

{어, 현자 살아계셨군요.}

[아니, 이미 죽었잖아.]

아인에게 수십 번 구타당했음에도 간신히 영체를 유지한 현자는 이 재밌는 상황에 난입하기 위해 도깨비불처럼 반투명한 몸을 이끌고 왔다.

[그보다 뭘하는 데 이제와서 관계 같은 걸 묻는데?]

“...그게 성혈투술을 가르치는 방법 중에 안정적인 걸 사용하자고 했는데... 갑자기 저런 질문을 하시더군요.”

악의적인 의도는 없었지만, 루미네의 요약에선 레오나르도는 지나치게 미친 놈으로 보였다.

과장만 빼면 부정할 수는 없는 객관적인 사실이었지만 말이다.

“두 분께서는 한 침대에서 동침했습니다.”

현자를 풀어준 아인은 표정 한번 떨리지 않은 채로 마탑에서의 비밀을 드러내었다.

소녀의 그 한마디에 몇 번 눈을 깜빡이던 일행들은, 특히나 이 질문을 한 장본인인 레오나르도는 믿을 수 없다는 뜻 토끼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잠깐!! 고향 갔을 때는 그런 얘긴 없었잖아!!”

“죄송합니다. 하려고 했으나 기습 이후에 흉부에 파손이 심해 말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차마 따지지도 못하게 만드는 합리적인 사유였다.

아인이 핑계로 정찰을 나갔다고 해도 정말로 그 존재를 대면해 중상을 입었으니 따지는 쪽이 냉혹하고 잔인한 것이었다.

“...그게 무슨 말인지 자세히 설명 가능하겠습니까?”

“나중에 죽고 싶다는 말이 지금 있을 줄은 몰랐군.”

다른 때였으면 수구리고 참았을 두 가장들은 레오나르도의 양어깨에 손을 올렸다.

다른 때였으면 손목가지를 아예 분질러버렸을 레오는 어깨가 쥐어터질 것 같음에도 식은땀밖에 흘릴 수밖에 없었다.

“아, 아니! 난 몰라!! 기억에 없어!! 억울하다고!”

기억상실이기에 말엔 전혀 신빙성이 없었다.

레오 본인도 마음 한 켠에서는 잔 게 아닐가 불안해 비명과 같은 목소리로 변명하기 바빴다.

“기억이 없다고 빼앗긴 순결이 되돌아가진 않을 텐데?”

“만약 문제가 생긴다면 책임은 어떻게 지실 겁니까? 예? 레이널드 그레이브 님?”

어깨에 가해지는 압박에 점점 고통스러워진다. 순수한 근력만 따진다면 글라디오와 마르켄은 레오를 상회하고도 남았으니 당연한 고통이었는지도 모른다.

“아...! 아리아! 네가 말해봐!!”

어떤 위기에서도 광소를 잃지 않던 레오나르도는 발버둥이라도 치듯 이 일의 또다른 장본인인 아리아에게 질문을 빙자한 구조를 요청했다.

그 꼴은 추하다 못해 불쌍하게 보였다.

“...그게... 그건...”

급한 질문에 아리아스필은 떠올렸다.

그날 결투 도중에 받았던 뜨거운 키스를.

그 이후애 기절해서 한 침대에 누웠을 때 주체할 수 없이 쿵쾅거렸던 가슴의 박동.

그리고 입으로밖에 맞볼 수밖에 없었던 레오의 맛은 지금도 혀에 감돌았다.

“...아무 일도 없었어...요...”

얼굴을 붉힌 아리아스필은 단발이 된 머리를 넘기며 부끄러운 듯 허벅지를 꼬았다. 그게 저 두 가장이 레오나르도를 죽여도 되는 신호를 준 것이나 다름없다는 걸 아리아는 몰랐다.

“끄아아악!! 우왁!! 난 진짜 억울...!”

[그보다 도대체 뭘 하길래 그런 유니콘마냥 그러는데? 한발 빼기라도...!]

“아가리 닥쳐! 누가 유니콘이야!”

아인이 현자의 성희롱에 반응해 소멸시키는 와중에도 레오나르도는 끓어넘치는 짜증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이 미친 가문에 혼돈의 도가니 속에서 평소보다 더한 광기를 버틸 수 없었다.

레오나르도는 그대로 마르켄과 글라디오를 뿌린 채로 더는 참지 않았다.

“다 필요없어! 섬세하게 생각한 내가 멍청이지! 그냥 할 테니까 알아서 버텨!!”

그렇게 말하며 레오나르도는 아리아스필의 손목을 붙잡았다.

“...어? 어어...!”

그대로 박력있게 끌고 가자 아리아스필은 또다시 제멋대로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근데 이쪽 방향은 내 방인데...!”

자신의 방으로 끌고 가자 아리아스필은 갖은 생각이 들었다.

설마 하는 건가? 안정한 방법이라는 게 다른 쪽으론 위험하다는 의미였나?

설마 자신의 안에 해야하기 때문에? 어떡하지? 오늘 속옷은 뭘 입었지? 레오가 좋아할 만한 색인가?

“...으아아와...!”

번뇌로 아리아가 갸날픈 비명을 내자 레오는 화를 참지 못하고 다시 언성을 높였다.

“이제 와서 후회해도 늦었어! 어차피 끽하면 세상 망하는데 순결이고 정절이고 알 바야!?”

그 한 마디에 아리아스필은 한 가지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자신은 하다가 죽어도 상관없다고.

아리아는 음탕했다.

***

콸콸거리는 소리가 아리아의 방을, 정확히는 욕실을 채운다.

개인이 쓰기엔 약간 큰 욕조에 따뜻한 물이 반 정도 차올랐다. 올라오는 따뜻한 김을 마주하며 아리아는 멍하니 레오와 욕탕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어... 왜 욕실에...?”

설마 침대에서 하는 게 아니라, 욕실에서 하는 걸 레오는 선호하는 것인가?

특이 취향이었으나 아리아에게는 오히려 더 구미가 당기는 성벽이었다.

“이제 와서 갈 생각하지도 마. 진짜 그러면 훈련도 뭐고 없어.”

“...네? 네에!”

그 불호령 같은 명령에 아리아는 몸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두려워 떠는 것보다는 다음에 있을 일에 온몸이 긴장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제...”

레오나르도는 흰 가루로 된 약품을 욕조에 뿌려대었다. 입욕제라고 하기엔 특별한 향기도 나지 않아 아리아의 의문을 자극했다.

“...그건 뭐에...”

“혈액 보관용 약품하고 소금. 금방 섞일 거야.”

짧게 설명을 끝내며 레오나르도는 자신의 손목을 단검으로 그어내었다. 혈액용 약품이 어째서 사용되는지 아리아는 뿜어져 나오는 선혈을 통해 이해할 수 있었다.

“...자...잠시만요! 이건 위험...!”

“그러게 내가 말했지. 난 하고 싶지 않았다고.”

싸늘하게 독설을 날리며 레오의 혈액은 욕조에서 빠르게 섞여들어갔다. 욕조의 온도도 높고 넣은 가루 덕에 농도는 비슷해 섞이는 건 순식간이었다.

“...어... 이건...”

완전히 핏빛이 된 욕조를 바라보며 아리아스필은 식겁하게 물었다. 자신이 예상한 것과는 그림이 많이 달랐다.

“옷 벗고 들어가면 돼.”

“...오...옷을요?!”

방금까지만 해도 갖은 망상을 품던 아리아는 갑작스레 탈의를 하라는 말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레오라면 알몸을 보여주는 것 정도야 당연했지만, 부끄러움은 어쩔 수 없었으니까.

“...시간 없어. 이 욕조에 있는 혈액으로 네 몸을 전반적으로 검사할 거니까.”

“...검사요?”

“그러면 뭐라고 생각했어?”

지금 검사하는 방법도 성혈투술의 응용이었다. 물에 풀어넣은 성혈을 피부와 점막에 닿게 하는 것으로 혈액량과 동시에 전반적인 육체의 상태를 측정하는 방식.

그게 두 번째 방식의 진실이었다.

“...그...그렇군요.”

아리아스필은 약간 실망한 눈치로 자신의 옷을 붙잡았다. 자신의 바보 같은 착각에 수치심마저 느껴졌다.

레오는 순수한 의도로 말한 것인데 자신은 무슨 터무니없는 착각을 한 것인가.

“...그...그럼 들어갈 테니 나가주실...”

“그게 문제야. 그게 안 되거든.”

레오나르도는 한숨을 쉰 채로 이마를 짚었다. 이 방법을 말하고 시도하려 했다 루미네에게 뺨을 맞은 흑역사가 다시 되새겨져 마음이 쓰라렸다.

“...내가 혈액을 직접 확인하고 조종해야하고 신성도 주기적으로 주입해야 해서 나가면 안 돼.”

“...그렇다는 걸...”

“네가 생각하는 거 맞다.”

레오나르도는 좋든 싫든 아리아의 목욕을 직관해야 했다.

“...그...그게...”

아리아스필은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단추를 살짝 풀어내었다. 성혈투술의 발열로 생긴 땀은 가슴골에 호수를 만들어내었다.

“...아니... 자, 잘 부탁드립니다아...!!”

망상이 폭주해버린 아리아는 그대로 차례로 옷을 벗어던졌다. 겉옷을 벗고 속셔츠의 단추을 단숨에 풀어내며 치마를 내려버렸다.

흥분한 나머지 눈앞의 남성이 뒤돌 시간도 주지 못한 채로 말이다.

그리고

용사의 살결이 드러날 때마다 레오나르도의 시선과 몸은 반강제로 굳어만 갔다.

욕실에는 뜨거운 숨결만이 흘렀다. 그 적막이 신음으로 차는 건 몇 분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욕조의 크기는 1인용보다 약간 큰 정도입니다. 혼자 쓰면 크지만 같이 쓰면 어떻게든 비비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죠.

아리아도 크고, 레오도 큽니다.

뭐가 크냐고요? 사랑입니다. 사랑이 큰 거죠.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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