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혈투술
그건 신성에 재능에도 재능이 부족했던 레오나르도가 개발한 사도의 신성술이었다.
자신의 피를 성수와 같이 촉매로 삼아 신성을 전달하는 전투법.
이미 피를 직접 사용한다는 시점에 사용자의 부담은 범용 신성술에 배에 제곱을 달한다.
사용하다 죽어도 당연한 도박수, 동시에 사용하는 테크닉 자체도 까다로운 고도의 신성술이었다.
촥! 촤악! 촤아악!
그런 자살이나 다름없는 기술을 아리아스필을 태연히 해내고 있었다.
그 무공을 창안한 레오나르도이기에 알 수 있었다. 저것은 분명한 성혈투술의 형 중 하나다.
그것도 자신이 제대로 보여주지도 않은 <속혈>의 형, 체내의 혈액 순환을 극단적으로 높여 신체 능력을 극대화시키는 비술을 당연하다는 듯 사용해내고 있었다.
“[...용사... 네년...!]”
그 존재도 반응해내지 못한 속도였다.
이미 아리아스필은 저택의 습격 때 키메라의 특징과 전투법을 학습한 뒤였다.
‘그저 신성을 분출하는 걸로는 안 돼.’
저 키메라는 평범한 마인과 달리 신성 자체가 무력하다. 자랑인 신성의 광선도 저 존재 앞에선 그저 밝은 빛줄기일 뿐.
그렇기에 그녀는 지금 물리적인 검격만으로 그 존재를 도륙내었다.
‘...머리가 아파...’
두통이 밀려온다. 방금 전부터 머리를 포함한 전신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발록도 잡고 레오를 돕기 위해선 방법은 이것밖에 없다.
발록을 잡을 때마다 몸이 더욱 뜨거워져서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나마 지금은 적응이 되어서 그런지 머리에만 통증이 쏠렸다.
그런 지금 마무리를 지어야만 했다.
통증을 못 느끼는 지금 당장
“[그렇다면...]”
본 것만으로 알 수 있다. 아리아스필은 예상 이상으로 빠르게 움직이고 성장하고 있다.
지금 이 몸의 눈으로도 움직임을 쫒지 못하는 게 그 증거.
게다가 그녀는 점점 가속하고 있다. 레오나르도가 응용의 달인이라면, 아리아스필은 성장의 천재.
지금 이 순간에도 용사는 성장하고 있었다.
“[지금 꺾어두는 게 낫겠군.]”
둘이 함께 있는 건, 너무나 위험한 상황이다.
그럴 바에는 지금 주도권을 쥐고 있는 용사라도 끝내는 것이 답이었다.
푸우욱...!
그런 무색하게 묻힐 정도로 둔탁한 관통음, 시야에 있음에도 보이지 않았던 아리아의 성검은 그 존재의 가슴팍을 꿰뚫었다.
방향은 확실히 심장의 중앙, 신성의 광선을 쓰지 않아도 충분한 치명상을 내었다.
‘...이대로...! 어...?’
하지만 찌를 때마다 느껴지는 이질감을 아리아스필을 당황스럽게 했다. 심장의 부금에 찔렀음에도 생물의 찌른다는 손맛이 전해지지 않았다.
그저 질퍽한 진흙을 향해 검날을 밀어넣는 듯한 감각만이 성검에 느껴졌다.
“...게이트...!”
주먹만한 크기의 게이트가 성검의 칼날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가슴팍에 닿기 직전 게이트를 형성해 검날을 피해내었던 것이었다.
‘빠지지 않아...!’
신성을 방출하기에는 몸이 충분히 혹사되었다. 통각이 안 느껴진 것은 몸이 적응해서가 아닌, 통각을 못 느낄 정도로 망가졌기 때문.
“[예상치 못했지만, 여기서 용사 널 처리하도록...]”
퍼어억...!
갈라진 가슴의 상처를 강제로 꿰멘 채로 달려드는 사내의 주먹이 그 존재의 안면을 강타한다.
검게 물들은 피의 건틀릿이 그대로 그 존재의 머리를 뭉개버린다.
“닥치고 뒈져어어!!”
망설임은 없었다. 감정의 동요는 천재의 기만 하나로 머릿속에서 종식되었으니까.
주먹의 진로에 따라 두개골이 으스러져지며, 틀처럼 담겨져 있던 뇌와 뇌수가 깨진 어항처럼 흘러내린다.
널부러진 것은 목없는 시체 뿐, 그 존재는 그렇게 쓰러져버렸다. 코르크까지 빠진 와인병처럼 남은 피를 뿜어내며 묵언으로 패배를 선언했다.
‘...아니, 죽였어도 마무리를 지은 게 아냐.’
어째서인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경험으로 감보다는 육체나 영혼의 면에서 발현된 직감이 그리 외치고 있었다.
‘심장이 없어?’
흉부에 직접적으로 구멍이 난 것은 아니지만, 저 안이 빈 껍데기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방금 사용했던 게이트는 성검을 막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심장을 이동시키기 위한 퇴로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 무렵.
“...아니지...! 우선 마을부터...!”
불에 타고 있는 마을이 떠올랐다.
적의 수장을 제압했다고 안심할 수도 없었다. 지금 게이트 너머로 나온 발록들이 몇 마리나 더 남아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연기의 형상으로 보아 화재는 진압된 것 같았고, 발록들도 모두 죽은 것 같았다.
“...네가 한 거야?”
“...어...응... 모두 지켰어...”
전신이 홍조처럼 달아오른 아리아스필은 거친 숨을 내쉬며 간신히 대답하고 있었다.
적지만 피부에서 저렇게 열이 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이 아니었다.
“아우, 아니 레이널드 님! 괜찮으세요!?”
마나 고갈과 어지럼증을 간신히 회복한 리오스가 레오나르도와 아리아스필이 있는 현장으로 뛰어왔다.
전면으로 뛰고 있는 그를 필두로 와이번들도 대피를 끝내고 날아왔다.
“...늦어서 미안하다! 남은 잔당을 소탕하느라 시간이 걸렸어!”
게이트와 남은 발록들마저도 소탕해낸 마르켄과 일행들이 그렇게 소리쳤다. 와이번으로 웅장하게 내려온 일행들은 어떤 때보다도, 어떤 이들보다도 든든하게 느껴졌다.
“...너무 늦었잖아! 아리아하고 나만 개판처럼 싸워서야 했는데...!”
“...그...렇...”
아리아는 끝까지 대답하지 못했다. 애초에 레오의 말을 제대로 인지할 능력조차 상실한 지 오래였다.
“...아리아?”
풀썩...
마치 열병에 걸린 아이처럼 아리아스필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아리아스필 님!!”
외상은 생채기조차 나지 않았음에도 아리아스필은 고통스러운 듯 코피와 각혈을 내었다.
“아리아!!”
아직 하늘임에도 와이번에서 뛰어내린 마르켄은 급히 아리아스필에게 뛰어갔다. 설마 아리아에게 문제가 생긴 것인가.
자신이 먼저 가는 걸 허락한 탓에...
“...윽...!”
만지자마자 느껴지는 열기, 갓 끓인 주전자처럼 아리아의 몸은 만지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뜨겁게 달아올라있었다.
“...하... 설마...!”
그 반응을 보자마자 레오나르도는 급히 마르켄마저 밀치며 아리아를 붙잡았다. 이미 정신은 혼수 상태, 몸은 역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고열로 끓고 있었다.
“전투에 의한 상처라면 제가 치료할 수 있습니다! 얼른 상태를...!”
“아니, 너 혼자선 무리야.”
루미네의 얼굴은 보지도 않은 채로 레오나르도는 그렇게 단언했다.
당연히 이곳에 있는 누구도 바로 납득하지 못했다. 루미네의 치료술과 신성술은 역대 성인들 중에서도 특출나다 할 만큼 경지에 올랐다.
그런 루미네의 치료가 무의미하다 말하니 아무도 수긍할 수 없었다.
“리오스. 여기 온 지 몇 분 됐어?”
헐떡이는 아리아의 목죽지와 손목의 맥을 짚으면서 레오나르도는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폭주하는 심박이나 체온을 봐선 자신의 짐작은 맞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무모해도 그런 미친짓이 가능하긴 할까, 물리적인 부분에서부터 이미...
“...30분 정도는 됐는데... 설마 많이 문제가...”
“이런 씨발 미친년이!!”
30분이라는 단어에 욕부터 나올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설명을...!”
“아리아 이 자식 자기 전신에 있는 혈액을 펄펄 끓이곤 순환 속도를 배로 돌렸어! 적어도 30분 정도는!!”
그 말에 모두가 경악어린 정색을 내보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 아리아는 자기 혈액으로 삶아 익어가는 고깃덩이나 다름없었다.
***
머리가 멍하다.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뜨거운 열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으...음...?”
하늘도, 천장이라고 말하기엔 어색한 풍경이 시야를 채웠다. 마치 빛을 모래처럼 가루로 내어 공중에 뿌린 것과 같은 공간.
아리아스필은 이 공간이 그렇게 어색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상상치 못한 장소였지만, 그녀는 이미 한번 와본 곳이었다.
[실망스러워.]
자신을 여과없이 경멸하는 목소리, 레오가 하는 매도 정도는 애교로 보일 만한 모멸이 뒤쪽에서 들렸다.
이 혐오를 표하는 이가 누구인지 아리아는 기억하고 있다.
“...루벤 라인하르트...”
성검에 안주한 선대 용사가 그 자리에서 아리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지면에 기어다니는 벌레를 보는 듯한 눈빛이 투구 사이로 맹렬히 드러났다.
[기회를 줬음에도 이곳에 이런 식으로 돌아오다니... 넌 내 예상 이상으로 얼간이였군.]
메마른 조소를 내보이며, 검은 투구의 용사는 그리 매도했다.
“...잘한 게 없다는 건 알고 있어요.”
아리아스필은 이곳에 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다.
육체의 죽음, 저 용사와 처음 만난 방식도 자신이 반 정도 죽었을 때였다.
지금 이곳은 성검의 내부, 그렇기에 죽었되 아직은 죽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방법은 그것밖에 떠오르지 않았어요. 레오와 마을 사람들, 그리고 남은 기사들까지 지키려면 그 방법밖에 없었으니까...”
후회할지언정 미련은 없다. 자신은 같은 순간에 돌아간다해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그게 어리석은 거지. 다른 방법은 상정하지도 않는 것이 우둔함의 극치다.]
그런 정도가 어린애의 떼처럼 보였는지 검은 갑주의 용사는 매도를 멈추지 않았다. 현실적으로 합리적인 방법은 그런 게 아니니까.
[기사 1명 정도, 혹은 민간인 4명 정도를 포기했다면 넌 살았을 거다.]
아리아의 표정이 얼어버리는 동시에, 즉각적으로 일그러진다.
대를 택하고 소를 버리는 것.
살을 내주고 뼈를 얻는 방식.
모두 칭송했고 칭송하는 전설 속 용사는 그렇게 일갈하고 있었다.
“당신... 그게 할 말이에요...! 그 사람들 전부...!”
[그래, 누군가에겐 소중한 사람이었겠지. 레오...나르도 본인에게도 충분히 말이다.]
아리아의 주장은 분명 고귀하며 이상적인 정도다. 모든 인간은 그런 올바른 길을 정도라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너도 알고 있을 텐데? 모두를 살리는 건 불가능하다. 넌 천재라 칭송받을지언정 신도 아니니까.]
다만 그건 이상의 정도일 뿐이다. 현실의 가시밭길을 걸어가기엔 이상의 올바름이란 나아가기에 한없이 연약하고 물렀다.
“...그렇다고 해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구해야...!”
[그 결과의 말로가 이곳이로군. 대단해. 그 희생 정신에 감동이라도 해야 하나?]
이야기가 서로 통하지 않는다.
저 두 용사는 봐온 시간도, 살아온 시간조차 다르다.
“...마왕이 나타났다고요...! 그것도 레오의 어머니의 거죽을 뒤집어쓴채로요...! 그런 상황에서...!”
기분 탓일까, 그 존재는 말 한 마디에 감정의 모든 형태를 분노로 치환시켰다.
지금 눈 앞의 용사가 가진 마왕의 분노는 자신 것이 비교하기 무례할 정도로 폭발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더더욱 자기를 보신했어야지...!]
“...아직도 그런 말씀을...!”
[진정으로 누군가를 구원하는 게 가능할 것 같나? 개인의 인간은 어차피 죽는다. 용사는 인간이 아니라, 인류의 보존을 위해 존재하는 사명이란 말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분노에 짧게나마 후회가 섞여있었다.
어째서일까.
저 투구 속 눈빛이 낯설지 않았다.
레오나르도도 후회할 때도 저런 눈빛을 내보이곤 했다.
“...이제 됐어요. 전 이곳에서 나가야겠어요.”
혼란스러운 와중, 아리아스필은 자신의 성검을 뽑아들었다.
나가는 법을 명확히 알지는 않았다. 아마 알고 있는 건, 저 냉혈한 용사뿐 일 것이다.
저 용사가 협력해줄 것 같진 않았으니, 저번에 했던 일을 본인이 다시 재현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성검을 높게 치켜들고 자신의 흉부를 찌르려던 순간.
[...아니, 넌 나가지 못한다.]
용사의 검은 몸체가 고속으로 움직였다.
연계적으로 찔러들어오는 정권이 아리아의 복부에 꽃아진다.
[내가 나가지 못하게 할 테니까.]
“...켁... 이게 무슨...!”
[넌 애시당초 용사가 되는 게 아니었어. 아리아스필.]
용사는 한손으로 성검을 뽑아들었다.
서슬푸르게 빛나는 성검의 날은 아리아를 돌려보내기 위해서가 아닌, 토막내기 위해 예리함을 자랑했다.
[아니, 너 같은 게 태어난 것부터가 문제였지.]
“잠깐...!”
카아앙!!
검은 용사의 성검이 아리아의 성검과 맞붙는다. 같은 성검이 맞붙음에도 밀리는 쪽은 분명했다.
[내 검의 무게가 너와 같을 것 같나?]
말만큼 묵직한 검격이 아리아를 열세를 향해 몰아간다. 그 존재를 압도한 것이 무색할 정도로 눈앞의 용사는 완벽히 자신을 상회했다.
채앵!!
강공에 아리아의 성검이 위쪽으로 밀린다. 목부터 시작해 몸까지 완전히 비어버리고 말았다.
[끝이다. 아리아스필.]
아리아는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말았다. 방향으로 봐선 피할 수 없다. 이미 검은 자신을 지나갔다.
“...어?”
하지만 아리아스필은 죽지 않았다.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검에 베이진 않았다.
[...운이 좋았군.]
눈을 뜨자 아리아스필은 반투명해진 자신의 양손을 볼 수 있었다. 손 뿐만이 아니다. 다리와 하반신마저도 위를 타고 올라오며 사라지고 있었다.
[항상 레오나르도는 너에게 행운이었지.]
그 말을 끝으로 아리아스필은 살아났다.
***
“...어...으...?”
눈을 이미 떴음에도 다시 눈을 뜨는 감각이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에는 정말 보고 싶은 남자가 있었다.
“...레오...”
레오나르도가 양팔을 끼운 채로 다리마저 꼰 채로 아리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태도에 아리아스필은 자연스럽게 성검 속의 용사를 연상케되었다.
“변명해봐.”
“...응...어...?”
“개소리라고 생각되면 내 손으로 직접 다시 하늘나라에 보내줄 테니까 잘 생각해서.”
레오는 분노에 가득찬 눈으로 아리아를 노려보았다.
"잘 설명해."
온몸이 오싹거리는 걸 느꼈다.
말 한번 잘못하면 레오에게도 죽고, 성검 속 용사에게도 죽는 것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지각해서 죄송합니다.
최근 들어 감기에 걸린 것인지 기침이 나오고 목도 아프군요. 정말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