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게 살았으면 했다.
레오나르도만큼은 싸움도, 괴물들과도 연관되지 않은 채로 사람다운 삶을 살았으면 했다.
날붙이도, 피도 손에 닿을 일 없는 평범한 삶.
그걸 주는 게 그 애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그러니 지금도, 앞으로도 보지 못한다 해도 상관없다.
나와 연관 없는 삶을 사는 것이 안전하고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죽기 직전에서야 그 애의 얼굴이 떠오르는 건 어째서일까.
죽을 때서야 감추었던 감정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보고 싶어. 레오나르도.
그리고 미안해.
***
“지금 당장 가야해요!”
검집의 연결이 끊기자 아리아스필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시라도 빨리 가야한다.
늦을수록 한 사람이 죽어나갈 것이다.
“하지만 함정일 수도...!”
“그러니까 지금 가야한다고요!”
함정이라는 의미는 그 함정에 이용된 인질들이 위험하다는 의미이다.
레오를 포함한 다른 기사, 마을에 있는 민간인들까지 이미 함정 내부에 걸려든 것이나 다름없었다.
언제라도 몰살되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워프 게이트를 써서...”
“...아뇨. 더 빠른 방법이 있어요.”
워프 게이트는 빠르고 다수의 이동도 가능하지만, 작동하는데 시간도 걸리며 레오의 고향과 직통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그걸 알고 있는 리오스는 더 빠른 수단을 제안했다. 마법사인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제가 이동시킬 수 있어요.”
“...텔레포트가 된다고? 거리가 500km는 족히 넘을 텐데.”
레오의 고향은 수도권 중심에 있는 라인하르트 저택에서 단절됐다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떨어져 있었다.
상급 마법사조차 모든 좌표와 변수를 파악해 텔레포트하는 건, 혹사를 고민하기 전부터 불가능하다고 판단할 정도였다.
거추장스러운 워프 게이트를 사용하는 것도 그런 마법사들이 고안한 해결책이자 타협안이었다.
“...연습했어요. 저도 도움이 되고 싶어서...”
리오스는 적탑주 사건 전부터 자신이 적에게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자각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아리아나 레오에 비하면 승리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지는 못한다.
그랬기에 그는 생각했다. 자신 나름대로 도움을 줄 방법을.
“...그럼 그 텔레포트로 이동하면...!”
“...그게 거리가 멀어진 대신 많은 인원은 이동시킬 수 없어요. 거리를 고려하면... 저를 포함해 한 명 정도가 한계에요.”
다만 장점만큼이나 하자가 극단적이었다.
모든 일은 인력이 많을수록 활용할 수 있는 전략이 늘어나고, 실패할 가능성이 줄어든다.
하지만 고작 한 명을 옮기는 것에 도저히 좋은 방법이라 말할 수 없었다.
“...그럼 한 명은 리오스와 함께 가고, 남은 사람들은 워프 게이트로 가는 수밖에 없겠군.”
글라디오가 내린 판단대로라면 얼마 없는 시간 내에 그 한 명을 결정해야했다.
그리고 그 한 명은.
“제가 할게...”
아리아가 나서고자 했고.
“아니, 내가 하겠다.”
마르켄은 그걸 즉각적으로 말렸다. 이미 그는 자신의 손녀가 그렇게 나설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제가 하는 게...!”
“네가 강하다는 건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아. 하지만 그게 지금 이 일에 혼자 나선다는 건 다른 얘기야.”
설명할 것도 없이 아리아스필은 잠재력은 물론, 이미 단련한 힘까지 이 자리에 있는 누구보다 강하다.
이론적으로는 현장에 간다면 가장 도움이 될 것이다.
“만약 레오와 마을 전원의 사람들이 위험하다면 넌 누굴 먼저 구할 거지? 바로 결정할 수 있다면 가도 좋다.”
“...그건...”
바로 결정할 수 없는 문제였다.
용사 아리아스필이라면 마을 사람들을 구하는 게 우선이었고.
인간 아리아는 레오나르도를 구할 것이다.
어느 쪽을 구하든 상처와 후회가 남을 것이란 걸 아리아는 알고 있었고.
마르켄은 이미 몇 번이고 눈 앞에서 보고 경험했다.
“그러니 내가 가겠다. 리오스 준비해라.”
“...하지만... 할...”
“지금 이러는 시간에도 한 사람이 죽어가고 있어.”
“...알겠습니다. 단장님.”
저택 바깥으로 나갈 것도 없이 리오스는 마법진을 그려내었다. 결정이 되었다는 듯, 마르켄은 리오스가 그린 마법진에 함께 섰다.
“...이게 최선의 선택이야. 아리...”
“...원망할 거예요.”
고개를 숙인 아리아는 짧게 그리 읊조렸다.
그 한 마디에 모두 살얼음판과 같은 공기에 눈을 뜨기가 고역스러웠다. 300년 동안 잠들어있던 용사의 운명이 다시 일족을 얽매고 있었다.
성녀인 앤젤라는 이런 운명의 재림에 애석한 기도를 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이런 내가 원망스럽구나.”
마르켄은 그런 매도를 감내하고자 했다. 힘은 성장했을지언정 아리아는 아직 어렸다. 바로 납득할 거라고는 마르켄도 생각지 않았다.
“둘 중 하나라도 못 구한다면 제가 저를 원망할 거예요.”
“...”
하지만 아리아의 매도는 사뭇 다른 방향을 향해있었다. 소녀의 눈은 영웅의 시련 속에서도 죽지 않아 있었다.
“할아버지 말대로 전 냉정히 생각할 경험이 부족해요. 망설일 수도 있겠죠.”
아리아스필은 성검을 쥐었다. 분명 이 성검 속에서 일갈을 받았다.
그녀는 자신 때문에 레오나르도가 기구해졌다 경멸했다.
아리아스필이라는 인간은 애시당초 용사가 되지 말아야 했다고 후회했다.
부정할 수는 없었다. 선대 용사의 말대로 레오나르도는 자신 때문에 더 불행해졌고, 자신보다 더 용사를 잘 수행할 수 있는 인물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걸 시도조차 못하는 걸 전 후회하고 원망할 거예요.”
하지만 그녀는 이미 레오나르도와 만났고, 용사가 되었다.
그 결과를 바꿀 순 없다.
그렇다면.
“그러니까 제가 가야해요. 모두를 구해내겠어요.”
“...그게 얼마나 오만한 말인지 자각하고 있니? 아리아.”
마르켄 뿐만 아니라 모두 속으로는 같은 생각을 품고 있었다. 아무리 냉정하고자 해도 흔들리는 것이 인간이었고, 누구보다 강해도 꺾이는 것이 사람이었다.
“둘 다 잃어버리는 결과가 생길 수도 있어. 그리고 너조차 죽을 수 있지. 이게 얼마나 오만한...”
“맞아요. 오만하죠.”
아리아스필은 알고 있다. 누구보다 잘 알게 되었다.
“하지만 레오나르도는 그런 싸움을 몇 번이고 했을 거예요. 전 그런 사람의 목표이고요.”
그런 불합리한 선택과 싸움을 강요받은 인간을, 그리고 자신이 그 사람에게 어떤 의미인지.
“지금 오기를 부리지 않는다면 전 용사로서도, 레오의 사람으로서도 죽는 거예요.”
자신이 자신으로서 살기 위해 아리아스필은 검을 뽑았다.
“보내주세요. 전 저로서 살기 위해 싸울 거예요.”
“...하...”
그런 각오를 듣자 한숨을 내쉬며 마르켄은 자신의 미간을 부여잡았다.
자신은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
자신이 진정으로 무력한 순간은.
“...크리스, 와이번을 대기시켜라. 워프 게이트 시간을 생각하면 그게 더 빨라.”
할아비인 자신은 손녀에게 너무나 무력했다.
“고마워요. 할아버지.”
“감사는 일을 끝내고 나서다. 각오를 무디게 하지 마라.”
회의장 바깥으로 나가는 조부와 일가들, 그 자리에 남은 이는 신세대인 두 젊은이들이었다.
“...그럼 출발하자. 아리아.”
리오스의 표정을 보며 아리아스필은 사과를 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리오스 입장에선 마르켄이란 안전한 선택지보다 자신이라는 위험한 도박에 강제로 타버린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미안해. 오빠. 진심으로...”
“사과하지 마. 동생.”
실눈으로 싱긋 미소를 지으며 리오스는 마법진을 펼쳐내었다.
“순애잖아.”
그다운 발언을 끝으로 순간이동이 발현되었다.
...
......
.........
어지러운 감각이 이어진다. 물레방아에 몸을 고정시킨 채 시속 100km로 돌아가는 감각.
이 순간이동을 왜 자주 사용하지 않는지 아리아는 이해할 수 있었다. 얻어 타는 아리아조차 이렇게 어지러운데, 마법을 직접 사용하는 리오스에게도 부담이 상당할 것이다.
“...쿨럭... 괜찮아? 오...”
“그럼 괜... 우웨에에엑...”
아리아의 바로 옆에서 무릎을 꿇은 채로 구토를 해대었다. 이미 몇백 km를 일순에 단축시켰다는 점에서 그는 충분히 제몫을 해내었다.
“...마을은...”
마을을 찾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그건 이미 와본 장소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대피하세...! 끄아아악!”
“크루와아아아아!!”
이미 주변에는 괴물이 잔뜩 깔려있었다. 딘이 소식을 전했던 상황보다도 빠르고 극단적으로 악화되었다.
주변에는 발록들이 수십 마리나 깔려있었고, 마을은 이미 화마가 해일처럼 휩쓸었다.
‘...게이트...?’
마을에서 떨어진 숲을 중심으로 게이트가 인적으로 여섯 쌍씩이나 발현되어있었다. 이질적이다 못해 괴이한 광경에 아리아는 떨리는 손으로 성검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지옥도에서 레오라면 어떻게 했을까.
어떻게 이런 지옥을 몇 번이고 버텼을까.
***
“[...지금 설득은 무리였나보군.]”
안면에 정타로 가격당한 그 존재는 얼굴을 어루만지며 자신의 판단을 곱씹었다.
아리아스필과 레오나르도 간에 불신을 심는다는 전제부터 잘못되었다. 본질이 어떻든, 존재의 운명조차 레오나르도는 상관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고서야 날 상대했을 리가 없지.]”
하지만 이런 실책에도 그 존재는 만족스럽게 레오나르도를 바라보았다. 마치 레오가 자신의 호적수를 보고 웃는 것 같은 미소였다.
저런 정순한 정신과 영혼이 없지 않고서야 몇십 년이고 자신을 가로막으며 싸우지 못했을 것이다.
“미리 떠들어. 이제 다시 못 말할 꼴로 만들 거니까.”
“[지금 내가 하는 말을 못 들으면 후회할 텐데?]”
콰아앙!!
도약 한번에 지면에 균열이 생긴다. 블러핑조차 시도할 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 연타를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그 맹공이 무력하게 더는 유효타를 내지 못한다. 방어도 하지 않은 채로 회피만으로 공격을 버텨내고 있었다.
‘...이 녀석, 내 전법을 알고 있어...!’
공격을 회피하는 방식, 저건 그저 육체 능력에만 의존한 회피법이 아니다.
자신의 공격을 몇 번이고 숙지하고, 몇 십번이고 당해본 이들만이 저런 움직임을 보인다.
‘설마...’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레오는 도박을 시도했다.
“[내 오른손에는 죄업과 핏물을 쥐어졌...]”
성혈투술을 사용하기 위한 외경의 영창.
이 기술을 알고 있다면 저 녀석은 어떻게든...
“[너는 입이 없다. 그렇기에 비명을 질러야한다.]”
“...읍...!”
고위 흑마법의 저주, 침묵의 저주가 레오나르도의 입을 다물게 한다.
이걸로 확실해졌다.
스릉...!
신성을 머금은 피의 검이 레오의 손에 형성된다. 건틀릿 형태에서 이미 검은 돌은 피를 잔뜩 흡수해둔 상태.
푹...!
그 검을 상대 대신 자신의 입에 찌른다. 입의 침묵을 풀어야만 앞으로의 전투를 나아갈 수 있었다.
“...너, 어떻게 그 저주를 쓰는 거냐?”
“[내 동료가 된다면 알려주는 건 일도 아니지.]”
“헛소리 하지마! 그건 분명 사령왕이 쓰는 저주였어!”
입 자체를 꿰매버리는 침묵의 저주, 그 기괴한 발상을 시도한 흑마법사는 사령왕 밖에 없었다.
“...그 뿐만이 아니야.”
방금 쓰려고 했던 기도문은 외경, 그것도 성혈투술용으로 쓰려고 만든 것이니 모르는 게 정상적이었다.
“그 기도는 광전사에게밖에 안 썼어.”
그럼에도 저 자는 그 위험을 이미 알고 침묵의 저주를 사용했다. 그것도 흑마법 중 최고위 침묵을.
“...넌 도대체 뭐냐...!”
“[글쎄, 그것보다 중요한 게 있을 텐데.]”
그렇게 말하며 그 존재는 마을 쪽을 가리키며 미소를 지었다.
결계를 쳐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마을은 이미 매연과 화마의 섬광으로 형체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지금 이 주변에는 6개의 게이트를 열어두었다. 아마 네 동료들이 어떻게든 대피시켜도 한계는 있겠지.]”
“...개자식...”
“[나와 같이 간다면 해제하도록 하지. 동료로서 그 정돈 당연하게 해줄 수...]”
쿠와아아앙!!
레오나르도의 주먹이 그 존재의 배에 박히며 일순에 날려버린다. 장기가 파열되는 감각과 주변의 잔뼈가 골절되는 소리가 손에 여실히 전달된다.
“...그 전에 널 죽이면 그만이야.”
협상한다면 순순히 해제할 리가 없다. 저건 단지 판단력을 흐리게 할 함정일 뿐.
지금은 저 자식을 처리하는 게 순서다.
“[아아... 체내의 혈액을 고속으로 순환시켰군. 하지만 그 기술은 그 몸으론 30초도 못 쓸 텐데.]”
“...컥...”
레오나르도는 홀로 각혈을 토해내면서도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저 말이 사실이기에 레오나르도는 멈출 수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저 녀석을 처리해야 해결할 수 있었다.
효과는 있다. 저 존재의 육체만큼은 확실히 분쇄해내었다.
“[...큭...으...]”
공격의 보상인지 존재는 잠시 몸을 움츠리며 숨을 가다듬었다.
키메라라고 해도 엄연한 인간의 형태, 한계가 찾아온 지금이 기회였다.
‘...잡았...!’
“[...미안해...]”
마무리를 짓기 위해 안면에 주먹을 꽂으려던 순간, 레오는 사과를 들어버렸다.
“[학교, 정말 보내주고 싶었는데...]”
저 존재는 엄마가 아니다. 알고 있다. 이미 충분히 깨달았다.
하지만 몸의 본능이란 건 이성보다도 빠르고 단순하다. 특히나 유년기에 형성된 반사적 본능이라면 더더욱 고칠 수 없는 법이다.
“[아름다운 모자(母子)로군.]”
1초 남짓 멈췄을 뿐이지만 이미 레오나르도는 존재의 손톱에 몸통이 갈라졌다.
“끄아아아악...!”
불찰이다. 이런 가벼운 수에 넘어간 내가 혐오스럽다.
“[걱정하지 마라. 죽이진 않을 테니.]”
이윽고 그 존재의 뒤에 다시 게이트가 열린다.
게이트마저 조종하는 마인, 그런 존재로 상상할 수 있는 건...
“[...게이트가...]”
상상이 미지의 공포로 향해갈 무렵, 그 존재는 시종일관 여유롭게 있던 표정을 유지하지 못했다.
뒤에 있는 게이트는 멀쩡함에도 저 존재는 게이트에 문제가 생겼다는 듯 마을 쪽을 바라보았다.
촥
“[...!]”
짧은 소리와 함께 팔이 베이자 그 존재는 처음으로 경악한 표정을 내지었다.
“...괜찮아?”
“...너...”
온몸에 잔뜩 피로 머금어진 소녀가 레오나르도를 내려다보았다.
그 피가 마을을 파괴한 모든 마수를 죽여 얻은 거라는 걸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용...!]”
아리아스필이 사라졌다. 분명 움직인 걸 알고 있음에도 그리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단순한 이동만으로 그런 속력을 그녀는 내보였다.
“...어떻게 네가...!”
피투성이인 그녀의 피부는 이미 붉게 달아올라있었다. 전신에서는 마치 갓 익은 고기처럼 김과 뜨거운 열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레오라면 이렇게 할 것 같았어.”
그래, 분명 레오나르도라면 그랬을 거다.
하지만 아리아가 성혈투술을 사용하는 것은 레오조차 예상치 못했다.
그것도 본인은 몇 십년의 노력으로 간신히 안정화시킨 그 기술을, 두어번 본 것만으로 사용한 거라면 더더욱.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목숨을 구해줘서 고마워! 라고 감사하기엔 너무나 더럽고 치사한 세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