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디 마인과 흑마법사를 추척하는 방법은 마기에 본질을 두고 있다. 이질적인 특성을 지닌 마기를 탐지해 추적하는 게 일반적인 방식이지만.
‘...옅지만 분명 이 냄새는...’
마나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키메라는 냄새로서 간신히 추적할 수 있었다.
물론 체취를 감춘다면 이야기는 다르겠지만 어째서인지 아인의 후각은 정확히 냄새를 탐지해내고 있었다.
‘...어째서...?’
마을을 기습한다는 발상 자체는 이해할 수 있었다. 가족이나 지인을 인질로 삼아 자극하는 것도 지독하지만 전략 중 하나니까.
다만 시기가 애매했다.
적탑주를 죽인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지금 습격하는 것은 이론적인 병법만 아는 아인조차 합리적이지 못하다 확신했으니까.
“...착각인가...”
이곳은 따지고 보면 렌이 생활했던 마을이자 본가.
렌의 냄새가 배여있어도 탐지에 오류가 있을 가능성은 다분했다. 게다가 이 주변의 숲에는 다양한 향기의 꽃이나 약초가 있었으니 냄새가 섞여 착각할 수도 있었다.
‘...돌아가야겠어.’
아무래도 아버지를 그런 식으로 두고 가는 것은 아인으로서도 캥기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잘 달래드려야...
“[오랜만이군. 타입 디아트?]”
기척은 없었다. 움직임조차 느끼지 못했다.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저 존재는 고의적으로 약간의 냄새를 드러내어 자신을 유인해내었다.
아인은 전신 오류로 뒤덮이는 것을 체감했다. 처음 느끼는 감정에 지금까지의 데이터가 따라잡지 못한 것이었다.
기계라면 절대적으로 느끼지 못할 원초적인 공포가 엄습했다.
“[지금은 아인인가, 너에게는 감사하고 있다. 네 덕분에 목표에 빠르게 도달할 수 있었어.]”
모욕이나 다름없는 감사에도 아인은 아무런 반박을 할 수 없었다. 인정의 의미가 아니라 공포로 몸이 얼어붙어 반항이라는 개념을 상실해버렸다.
“[가능하면 그대로 있으면 좋겠군. 지금은 납치보단 에스코트를 하고 싶거든.]”
상냥한 움직임이었지만 아인은 알 수 있었다. 1밀리라도 움직이면 자신은 오체가 분시된다.
사역마이기에 죽음에 개념에서 떨어져있음에도 지금 아인은 누구보다 죽음에 맞닿아있었다.
쐐액...!
죽음까지 한 걸음 남은 순간, 화살이 날아가며 그 존재의 동작은 잠깐 정지시켰다.
“...그...그 애한테서 손 떼...!!”
딘이었다. 간단한 사냥이나 할 겸 나오던 와중 풍긴 냄새에 급히 이곳으로 뛰어온 것이었다.
“[호오, 약하기에 공격이 가능할 줄이야.]”
최소한의 무를 익힌 이라면 아까의 위압으로 절대적인 공포를 느꼈을 것이다. 그럼에도 딘이 공격할 수 있었던 건, 그 격차마저 모를 정도로 약했기 때문.
“...어?”
“[유의미하진 않지만.]”
공간이, 그 전에 시간이 삭제된 것처럼 적의 주먹은 딘의 눈앞에 도달해있었다. 렌과 똑같은 외형에 딘은 눈 한번 깜빡이면 죽는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했다.
한 가지 생각만이 머리를 채울 뿐이었다.
‘레오는 항상 이런 괴물들하고 싸웠구나.’
그저 이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카아앙!!
“괜찮으세요?! 딘 씨!”
그 찰나에 다른 기사들이 그 현장에 도착했다. 호위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도록 각자의 무기를 든 채로 포진을 짜냈었고, 저 존재를 견제해내었다.
“올가! 사람들 대피시켜!”
미리 계획을 짜냈던 대로 한 명은 마을 사람들과 호위 대상을 대피시키고, 남은 세 명은 전투에 착수한다.
그리고 원거리에서 견제가 가능한 올가는 저격수로서 위치를 선점한다.
기본적인 기사들의 정석적인 전법이었다.
“알았...!”
하지만 끝까지 나오지 않았다.
“...컥...! 커헉...!”
“하악...! 아아악...!”
말부터 시작해 근육의 움직임, 오러와 마나의 순환, 기본적인 호흡조차 쉽지가 않았다.
마치 깊고 차가운 심해에 빠진 것처럼 모든 감각이 둔해지고, 정신은 극한으로 예민해졌다.
“[내가 두렵나?]”
눈 앞에 있는 건 마나가 없는 존재가 아니었다. 육체의 본질은 저번에 싸웠던 실험체와 같지만, 이번에는 예리하고도 질척한 사기가 저 존재 내부에 잠식해있었다.
“[두려워 하지 마라. 난 너희에게 필연을 선물할 뿐이니까.]”
자애로운 예고와 함께 그 존재는 공포의 수면을 위를 물새처럼 걸어왔다. 그 공포에 잠긴 모든 이들은 호흡에조차 자유가 없었다.
그는 전위에 있는 베넷의 머리에 손을 올린 천천히 쥔 채로 손목을 돌렸다. 베넷은 손아귀에 쥐어진 채로 목이 꺾이고 있음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병상에 뉘어 아무 발버둥도 칠 수 없는 노인처럼.
청년은 실색한 표정으로 돌아가는 목으로 죽음을 바라보고 있었다.
으득...!
골절음이 베넷 주변으로 울렸다. 아연히 질린 표정 사이로 유일하게 표정을 유지한 소녀가 그 소리를 낸 주범이었다.
“...도망치세요!”
아인의 늑대인간의 육체능력으로 그대로 그 존재의 팔을 할퀴어내었다. 기술만 있다면 철갑옷조차 종잇장처럼 찢어낼 위력이 손톱에서 빗겨내린다.
“[감정에 무감각한 것이 공포에 움직임을 준 것인가.]”
그런 괴력임에도 그 존재의 팔은 소매가 찢긴 것 외엔 상처조차 나지 않았다. 오히려 움직인 것 자체에 대단하다는 듯. 여유롭게 그는 감탄까지 내었다.
콰직...!
우레가 내리치는 듯한 굉음, 단순한 육체의 동작만으로 그런 폭음은 울렸다. 이내 아인은 자신의 흉부가 관통되었음을 깨달았다.
“[통각과 공포는 덜할지라도 육체의 원리는 똑같군.]”
아인은 죽는 원리가 까다로울 뿐, 불사신은 아니다. 생명체인 이상 생명으로서의 원리는 같을 수밖에 없다.
“...이...”
급히 발톱을 찾아꽃으려 하지만 시간 따위는 없다. 심장이 파열된 이상 전반의 육체 능력은 봉쇄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럼 머리를 부수면 어떻게 될까.]”
생각할 필요도 없다.
이어지는 공격이 머리를 분쇄한다면 아인은 자아 자체가 ‘삭제’된다.
그건 아인에게 있어 죽음이나 다름없었다.
콰지...!
다시 우레와 같은 소리가 울렸다.
공포라는 낙뢰가 시야를 채울 뿐이었다.
[성혈투술-붉은 성역]
하지만 붉은 영역이 펼치며 공포를 막아서는 남자가 있었다.
“...아버지...”
가슴이 뚫린 와중에도 아인은 나지막이 자신의 아버지를 불렀다. 그 호칭과 부상을 확인한 아인의 아버지는 살기를 여과없이 드러내었다.
“궁금하면 직접 체험해야지. 왜 애먼 애를 건드리고 난리냐.”
어둠의 신성을 전개시키며 레오나르도는 그리 일갈했다. 주먹을 잡아낸 손은 그대로 으스뜨리기 위해 오러가 순환되고 있었다.
“우웨에에...엑... 레오...!”
“커헉...! 하아...하... 레오나르도 님...!”
붉은 성역이 펼쳐지자 공포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사람들은 점차 몸의 통제권을 되찾았다.
마치 어둠의 품에서 진정한 아이가 된 것처럼 그들은 간신히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다들 걸리적거리니까 꺼져! 움직일 수 있을 때 도망치라고!!”
레오나르도는 거칠게 호통을 치며 붙잡은 손을 어떻게든 놓지 않았다.
전장에서 40년 동안 갈아진 경험이 비명을 지르듯 소리친다.
저 존재는 오늘 밤에 마을 자체를 지도에서 사라지게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고.
“...얼른 퇴각해!! 민간인들을 대피시켜야해!!”
기사들은 상관인 레오나르도의 명령에 따라 급히 후퇴했다. 아직 못 움직이는 동료를 부축하는 모습은 기사로서 애처롭기만 하였다.
“...괘...괜찮니...!? 아인아....?!”
“...예... 죽지는 않습니다...”
딘은 아인은 양팔에 안은 채로 마을 쪽으로 도망치고자 했다. 레오에게 받은 통신 마도구는 집안 서랍에 보관 중이었다.
뜀박질할 때마다 딘은 자신의 안일함에 탓할 수밖에 없었다.
“뭐가 목적이지?”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레오의 목소리가 들린다. 위기 상황에 감각이 예민해진 만큼, 늑대인간의 청력이 쓸데없을 정도로 발달되었다.
“[지금은 너를 내 편이 만드는 것 정도겠군.]”
그 말에 딘은 자신의 발걸음이 느려지는 것을 체감했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임에도 본능적으로 발걸음이 멈춰졌다. 너무나 터무니없는 말이었기에 오히려 위기감과 판단력이 흐려졌다.
“개소리도 재주로군.”
목소리만이지만 레오나르도도 자신의 감정과 다를 바 없다는 건 확신할 수 있었다.
“[네 친어머니가 살아있다고 해도 말인가?]”
머리가 멍해졌다. 지금도 충분히 혼란스러운데 이 이상으로 혼돈에 찰 수 있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아버렸다.
“...모...목걸이...”
“...미, 미안해! 목걸이는 삼촌이 잘 챙길게!”
아인의 부상이 심각하다는 것을 딘은 잠시 망각하고 있었다. 지금은 저런 헛소리에 신경쓸 때가 아니다.
딘은 아인이 간신히 짜내서 부른 목걸이를 쥔 채로 더욱 빠르게 마을로 향했다.
주먹에 쥔 목걸이는 달빛에 비쳐 투명한 붉은빛을 자랑했다.
‘사실과 진실의 목걸이’에서 빛 한 줌도 나오지 않았다.
***
“[네 친어머니가 살아있다고 해도 말인가?]”
당황했다.
그 순간 레오나르도는 분명 당황했다.
그건 저런 거짓부렁과도 같은 말 때문만이 아니었다.
“...왜 자세를 풀지?”
한눈에 봐도 알 만큼 저 존재는 빈틈을 내주었다. 방어에 하자가 없는 것이 아닌, 공격할 의사 자체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내 동료가 될 이를 거칠게 다룰 이유가 어디에 있지?]”
헛소리지만 시간을 벌 기회였다.
마을의 인원을 대피시키고, 지원을 부를 틈을 벌기 위해서라면 장단을 맞출 필요가 있었다.
무시하지 못할 만한 적이기에 그래야만 하는 이유는 충분했다.
“내가 왜 씹어먹어도 시원치 않을 마인 자식 동료가 되어야 하지?”
입바른 소리 대신 자연스럽게 욕을 섞으며 전투의 준비를 시작했다. 양손에는 검은 돌의 건틀릿이 덧씌워지며 손에 바늘처럼 박혔다.
“[다행히 지금은 현자가 없군. 이유는 설명하기 편하겠어.]”
지금 이 자리에는 현자는 아예 없었다.
현자는 혹여나 검은 신성으로 지워지는 것에 대비하여 아인의 영핵에 경유해 영체를 유지시켰다.
하지만 지금 아인은 중상을 입은 상태, 경유하기엔 손상이 너무 컸다.
“켕기시나? 굳이 그렇게 신경쓰고 말하는 걸 보면.”
“[당연하지 않나? 현자가 네 편이라는 보장도 없을 텐데.]”
그 여유있는 의심에 레오나르도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
“[정확히는 용사와 일행이 네 편이라는 보장이 어디에 없다는 말이 맞겠군.]”
건틀릿을 낀 손에 통증이 느껴짐에도 레오나르도는 정색을 풀 수 없었다.
시간을 벌 의도로 대화를 시도한 것이었지만, 그게 실책이라는 걸 레오는 너무 늦게 깨달아버렸다.
“...뭔 개소리인지 모르겠는데...? 그럼 내 부모를 죽이고 능욕한 너희가 네 편이라고?”
“[죽었다고? 방금 말한 걸 잊었나?]”
주도권은 이미 저 존재에게 있었다. 전투에 있어 심리전에 한해서는 저 존재가 가진 패가 더 많고 유리했다.
“[네 친모는 살아있다. 이 몸으로는 신빙성이 낮겠지만...]”
“그럼 아가리 닥쳐. 턱째 찢어줄 테니까.”
이윽고 레오나르도의 검은 주먹이 저 존재를 향해 난타했다. 기본의 심화에 기초한 주먹은 마치 하나의 포탄처럼 가속해 존재의 몸체에 스쳤다.
“[너도 알고 있을 텐데, 네 친모는 인간이 아니다. 애초에 죽는 게 불가능하지.]”
개소리다. 말려들면 안 된다.
“[이 몸은 그저 복제품에 지나지 않아. 오히려 복제를 위해선 오리지널을 살려두는 게 낫다고 생각되지 않나?]”
“닥치라고!”
“[분노한다는 것도 어쩔 수 없지.]”
욕설에도 그 존재는 반격 한번 하지 않은 채로 자신이 할 말을 늘어놓았다. 오히려 더욱더 분노하도록 유도하는 것 같았다.
“[그건 너 또한 인간이 아니라는 걸 의미하니까. 지금 쓰는 힘이 그걸 증명하지 않나?]”
그럴 리가 없다. 난 인간이다. 어디까지나 평범한 인간으로서 이곳까지 도달한 것이다.
레오의 표정을 보자, 그 존재는 생각대로 됐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렌이라면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미소였다.
“[근본적으로 넌 인류의 편이 아니다. 레오나르도.]”
그건 레오나르도가 몇 번이고 했던 말이다.
자신은 용사의 편도, 인류의 편도 아니라고 몇 번이고 적과 아군들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지금 저 존재에 저런 말을 듣자 감정이 폭발한다.
“닥쳐어어!!”
콰아아아아앙!!
그건 저 존재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이해되었기 때문이었다.
공격에 따라 신성이 폭발하여 지면에 크레이터가 생긴다. 결계를 유지하는 신성은 이미 다 떨어졌다.
감정의 폭발을 보자 그 존재는 기다렸다는 듯 비밀의 베일을 조금 벗겨내었다.
“[네 어머니를 왜 1회차 때 한번도 보지 못했는지 아나?]”
진실로 이루어져 있되, 본질에 다가갈 수 없을 정도로.
“입 다물...!”
“[1회차의 아리아스필이 네 친모를 죽였기 때문이야.]”
그 한 마디에 레오나르도의 공격이 멈췄다. 검은 신성은 한계를 모르고 레오를 뒤덮고 있었다.
마치 동방의 요괴, 어둑시니를 보는 것만 같았다.
“...정말이야?”
진실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모르는 건 너무 많았고, 신뢰할 수 있는 건 너무 적었으니까.
“[진실이다. 네 부모에는 더한 비밀이 있지. 너도 이해하고 있을 텐...]”
촤아악...!
“그래서 뭐.”
그래서 어쩌라고.
그 생각과 함께 장갑에 피의 칼날이 돋아났다.
퍼어억!!
주먹에 잇따라 저 존재가 날려버려진다.
“네 말은 믿기도 힘들고, 믿고 싶지도 않아.”
고민을 날려버리는 것 같았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고 쳐도.”
고작 이런 거에 쓰러질 거라면 계속해서 싸우지도 않았을 거다.
“아리아가 아무 이유도 없이 그럴 리가 없잖아 개새끼야.”
그 존재를 보며 레오나르도는 양손의 주먹을 쥐었다.
“...원래라면 어떻게든 살려서 얼굴 가죽을 벗겨낼 거였지만 생각이 바뀌었어.”
그의 죄업만큼 배여든 피에는 신성이 모여들었다.
“그딴 개수작하고 개소리, 아리아한테 못 하게 내가 먼저 널 찢어죽일 거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최근 들어 web UI 설치해보려 하는데 쉽지가 않네요.
AI 그림계의 혁명이라 불려서 한번 써보고 싶었는데 문과인 저에겐 너무 높은 허들이었습니다.
이럴떄 어느 멋지시고 고아하시며 자애로우신 누구가께서 저에게 '팬아트'라는 선물을 주면 어떨까요?
뭔 염치로 이렇게 이야기하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