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일지 #1
그분과 접촉한 뒤, 내가 받은 임무는 한 여성의 시체를 연구해 복제해내는 것. 이런 연구는 전문이 아니지만, 그분이 내주신 지식과 지혜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부터 작성할 내용은 이에 대한 연구이다.
실험 일지 #7
시체에 대한 특성은 놀라웠다. 분명한 생물이지만 지금까지의 생물과는 차별적이다.
간략히 정리한 특징은 이와 같다.
1. 마나가 없다.
2. 유기물이지만 썩지 않는다.
3. 마인이 아닌 인간이다.
아마 마탑에서 정식으로 연구했더라면 학계 전반을 뒤엎는 것도 가능할 존재다. 그분께 이것을 어디서 찾았냐고 여쭤보자 그분께선 내 심장을 쥐시며 주제를 넘지 마라 말씀하셨다.
그분은 지극히 아득한 존재이셨다.
실험 일지 #16
이 시체에 대한 복제는 까다로웠다. 재료로 이용하는 원리에 공정까지 10년을 투자해도 5명 이상의 양산을 생각할 수도 없었다.
다만 연구를 통해 깨달은 것은 있었다. 육체를 만드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릇을 빚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영혼, 키메라에 들어갈 자아였다. 그걸 알아내자 그분은 날 인정하며 비밀을 알려주셨다.
지금 연구는 마왕의 그릇을 만드는 작업이라고.
실험 일지 #32
타입 디아트의 발견 이후 연구의 진척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양산 속도 및 형태의 질 모두 실전에 적용 가능할 정도로 향상되었다.
마침 뱀파이어와 원로원주가 접촉해 라인하르트를 공격하고자 하니 이 실험체들을 납품할 것이다.
실전 데이터도 얻을 수 있고, 용사인 루벤 라인하르트의 시체마저 확보한다면 내 연구가 더 완벽해질 것이다.
그래, 영생마저도.
* * *
“...이건 너무 지독하잖아요.”
일지를 넘길 때마다 리오스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차라리 렌이 확실한 흑막이라 못 박히는 편이 그나마 나은 진실이었다는 걸 그제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마왕의 그릇이라니...”
이 자료에 적힌 내용들은 상식과 법칙, 그리고 시간마저 초월하는 이변에 정리되어 있었다.
생명체로서의 최소한의 윤리 따위는 실험을 위해 자행된 고문 행위에서부터 남아나지 않았다.
“레오나르도의 부모가... 마왕...?”
가주 글라디오로서는 레오의 부모가 마왕이라는 것에 가장 먼저 우려할 수밖에 없었다.
300년 전에도 전설의 형태로밖에 듣지 못했던 그 마왕이 레오의 부모의 거죽을 뒤집어쓴 채로 재림한다는 이야기는 결코 간단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본인은 아닐 가능성도 있습니다...! 게다가 레오나르도도...!”
“...본인이 마왕은 아닐지라도, 그릇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을 것 같군.”
마르켄은 자신이 예상한 결과보다 최악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결과에 충격을 금치못했다.
마왕이라는 전제는 그만큼 라인하르트 가에 무겁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내용으로 봐선... ‘그분’이라는 자도 1회차의 기억을 지닌 것 같군요.”
고문 기록지나 다름없는 자료들을 차례로 넘겨대며 루미네는 그렇게 확신했다.
적탑주가 마치 경전처럼 그분의 선견지명을 예찬했지만, 회귀자인 레오와 현자를 뇌리에 새길 정도로 봐온 루미네이기에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아마 앤젤라 성녀님처럼 회차 간의 기억이 연결된 것으로 추측됩니다.”
앤젤라도 루미네의 추측에 부정하지 않았다. 천사로서 현계의 제약과 속박에 자유로울 수 있었던 앤젤라는 미래의 기억을 일부를 지닐 수 있었다.
{...만약 정말 그것이 마왕이라면... 무슨 수를 써도 제거해야합니다. 이런 서면 자료뿐이지만 300년 전보다도 위협적이라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군요.}
300년 전에 앤젤라는 직접 마왕을 보았다. 용사 그리고 현자와 함께 대면했지만 그 존재의 편린을 본 것만으로 믿음이 공포와 광기로 뒤틀리는 것을 체감했으니까.
{그리고... 안타깝지만 레오나르도 기사도 안전을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그 부정에 공기가 살얼음판처럼 얼어붙었다.
어쩌면 모두들 피하고 싶었던, 그리고 언젠가는 해야만 했던 대화 주제를 앤젤라는 직접 끄집어내었다.
“...레, 레오나르도는 친아들이 아니라고 아누스 님께서 말씀하셨어요. 그러니까...”
이 자리에서 가장 막중한 책임을 지닌 용사인 동시에 가장 이 일을 부정하고 싶었던 소녀는 그리 반론했다.
하지만 본인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건 사랑을 잃기 싫은 어린 소녀의 떼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렇기에 안심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그조차 평범한 과정으로 태어나지 않을 걸지도 모릅니다.}
가장 최근 작성된 자료에도 레오나르도의 존재는 의문형 뿐이었다. 그 말은 렌의 시체를 적탑주가 연구하기 전부터 레오나르도는 존재했었다는 의미였다.
{...어쩌면 레오나르도 또한 그릇의 자질을 지녔을지도...}
“그건 아...!”
{용사님도 보셨잖습니까. 그 신성은 도저히 특별하다 정도로 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아니라 부정할 순 없다.
아예 그걸로 한번 죽기까지 한 아리아스필이었기에 그 검은 신성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다.
신성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신성.
마치 용사를 죽이기 위해서...
“...하지만... 그렇다면 왜 진작에 각성하지 않은 건데요...?!”
필사적인 부정이었지만, 아리아스필의 지적은 지당했다.
만약 레오나르도의 몸에 문제가 있다면 이미 노인이 될대로 된 레오나르도는 어째서 그런 신성에 눈을 뜨지 못한 것일까.
{...그건... 저도 확신해 답변을 낼 수 없겠군요. 하지만 위험하다는 건...!}
“레오잖아요! 레오가 해온 것들이 근거...!”
“...우선 진정하시죠. 지금은 옳고 그름을 나눌 때가 아니잖습니까.”
이야기가 과열된 것 같아, 글리다오는 가주로서 이야기의 중점을 돌리고자 했다. 당장은 생각보다 결정해야할 것이 있었다.
이틀 내로 레오나르도가 오기 전까지 내려야할 결단이 남아있었다.
“...지금 이 정보를 레오나르도에게 전하는가, 그걸 먼저 결정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됩니다.”
엄숙한 침묵이 회의장을 무겁게 뒤덮었다.
현재 발등에 떨어진 불처럼 다가오는 문제는 진실의 고백이었다.
그것도 원로원의 죽음 정도로 쉽게 말할 수 있는 사실 따위가 아니다.
레오나르도가 겪은 시련에 죄악감까지 얹어주는 진실을 억지로 알려야만 했다.
“...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울 것만 같은 표정으로 페이지를 넘겼던 크리스였다.
평소라면 흑암의 프라이드를 위해서라도 표정에 무게를 잡았을 그녀였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선 그런 어줍지 않은 가면을 쓸 염치는 없었다.
“아무것도 모른다고 해 레오나르도의 감정적으로 편하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싸워야할 적이라면 알리는 편이...”
“...하지만 고모.”
리오스도 동공을 파들거리며 불안하게 손목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도 이런 반론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본인 성격에서라도 진실을 말하는 것이 마음에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레오나르도... 아우가 버틸 수 있을까요. 만약 여기서 더 정신이 몰린다면...”
장본인이 아닌 리오스조차 보는데 헛구역질이 나올 만큼 잔악한 내용들 뿐이다.
50년 동안 버틴 정신력이라고 해도... 반대로 50년이 넘도록 상처를 입은 감정으로 이걸 받아드리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일지.
리오스는 순순하게 정직해질 수 없었다.
“...하지만 숨겨서야 대화가 진행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지.”
방향성은 고백의 방향 쪽으로 흘러갔다.
숨겨서야 정보가 정체될 뿐이었다.
“리오스 님 말씀도 이해하지만 레오나르도 님이라면 어떻게든 알아낼...”
게다가 지금까지의 레오나르도의 성격을 생각한다면 숨긴다할지라도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어떻게든 파헤쳐서 알아낼 거라면 차라리 배신감이라도 들지 않도록 알리는 게 방법이었다.
그러니...
“...말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그 순간, 아리아스필이 그 의견을 부정했다.
“하지만 이걸 숨겨서야...!”
“...레오나르도는 왜 싸웠을까요.”
대답의 근거 대신 나온 것은 의문이었다.
“...왜 싸웠냐는 건...”
이 이야기가 시작하게 된 동기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었다.
“그때 레오나르도는 이미 가문에서 쫒겨났어요. 기사도 아니었고, 동방에서 그냥 눌러앉는 삶도 있었을 거예요.”
그럼에도 레오나르도는 쇠퇴하고 타락해가는 제국으로 돌아왔다.
라인하르트에 남은 은혜를 갚는다는 명목 하에, 일부러 취할 수 있는 안락과 이득을 마다했다.
“...그리고 우린 전부 죽었죠.”
레오나르도 입장에선 이 원탁에 있는 모두 멋대로 죽어버린 시체들였다. 이미 몇십년도 전에 희망을 버린 망령들이나 다름없었다.
“...근데도 싸웠어요.”
타락한 인간들, 쏟아지는 마수들, 인간의 거죽을 벗은 마인과 흑마법사들을 수도 없이 싸워대었다.
누군가 부탁해서도 아니었고, 자신에게 책무가 주어진 것도 아니었다.
“...왜 싸웠을까요...”
“...그건...”
이 자리에 있는 모두, 바보가 아닌 이상 그 이유는 알고 있다.
단지 레오가 느낀 감정을 본인들의 입으로 말하기엔 몰염치하기에 꺼낼 수 없었을 뿐.
“...만약 저희를 죽인 마왕과 이 그릇이 같다면...”
레오나르도는 복수심, 혹은 죄책감으로 싸워왔을 것이다. 끝없는 전장과 폐허를 그 감정만으로 버텨왔을 것이다.
“...레오는 어떻게 살아야하죠...?”
라인하르트를 죽인 데에는 자신의 부모도 일조했다.
그 사실만으로 레오나르도는 무너져내릴 것이다.
“...혼자 다 책임지려고 하면 어떡하죠...!?”
이 이상으로 죄악감에 짓눌린다면, 레오나르도는 분명 그럴 것이다.
홀로 저들과 상대하려고 할 것이 분명했다.
{...아리아스필... 용사님...}
그 순간.
지이이이이이잉!!
아리아스필의 검집이 진동하며 소리를 내었다. 처음 듣는 소리지만, 아리아스필이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아...! 아리아니?! 분명 레오가 마도구로 말하면 된다고 했는데...!>
검집에선 딘의 목소리가 다급하게 울렸다. 애초에 긴급 연락용으로 준 레오의 마도구를 쓴 걸테니 결코 가벼운 상황은 아닐 것이다.
“...무...무슨 일이세요?! 딘 씨!?”
<...지금...! 마을에...!>
딘은 거의 흐느끼고 비명을 내지르는 수준으로 말을 내뱉었다. 간신히 숨을 고른 그는 제대로 설명했다.
<마을에 렌 씨가... 아니, 복제괴물이... 나타났어...!>
“...키메라가요...?”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아직 적탑주를 처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갑작스레 습격할 것이라고 생각지 못했다.
<그게...! 레오가... 그러니까...! 뭐가 뭔지 모르겠는데에...!!>
“...진정하시고요! 대피한 뒤 침착하게 설명하세요!!”
<나도 그러고 싶은데...!>
거의 울먹이는 기색으로 딘은 간신히 말을 정리해내었다. 어디까지나 사냥꾼일 뿐인 딘이 이런 상황에서 쉽사리 냉정해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레오가 지금 싸우고 있는데...! 그녀석이 이상한 말을 했어...! 아인이 데리고 도망치다 들은 말인데...!>
딘이 미칠 것 같은 혼란 속에서 그 존재의 말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정말 괴기스러운 발언이었기에 이런 혼돈에서도 기억할 수밖에 없었다.
<자기 편이 되래...! 그게...!>
이윽고 딘이 한 말은 이 고민과 회의의 전제를 전부 뒤엎었다.
<렌 씨가... 살아있대...>
그 말을 끝으로 연락이 끊겼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표지를 준비하면서 어떤 일러스트레이터님께 부탁드릴까 고민이 많이 되네요.
200화 기념인 만큼 좋은 걸로 준비하고 싶은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