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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자는 회귀했다-186화 (186/248)
  • 이전부터 아리아스필의 연애는 라인하르트 내의 가장 큰 관심거리이었다.

    가문 내에서 가장 정신적으로 하자가 없고 기사로서 올곧은 아리아스필이 사랑하는 이는 과연 누구일까.

    으레 귀족이라면 생기는 풍문이지만, 아리아스필이라는 용사라는 거대하고도 무거운 간판이 있었기에 관심의 크기는 그대로 극대화되었다.

    황실의 황자라는 소문도 있었고, 마탑의 마탑주들이라던가, 신전의 성자라는 추측도 제법 유력했다.

    그리고 어느날 아리아는 나에게 물었다.

    [요즘 소문 도는 거 들었어? 너랑 나에 대한 거던데.]

    어떤 미친 놈인지는 몰라도 나와 아리아스필의 사이가 심상치 않다는 개소리를 퍼뜨렸던 것이었다.

    그날, 아리아의 표정이 굳은 걸로 봐선 어지간히 기분이 더러웠던 것 같았다.

    하긴 나라고 달랐을까.

    [헛소리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잖아.]

    아리아와 자신은 재능이나 실력을 따지지 않아도 신분부터가 다르다.

    어떤 놈인지는 몰라도 어지간히 한가한 멍청이인 것은 분명했다.

    [기분 나빠? 그런 소문 도는 게.]

    아리아스필은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은 채로 그런 질문을 잘도 해대었다. 이래뵈도 나도 남자인데, 저 녀석은 신경쓰이지도 않은 건가?

    [나쁜 것보단 곤란하긴 하지. 가주님이나 크리스 님께서 날 뭐라고 생각하겠어.]

    유언비어더라도 리오스 형님 빼곤 가문 사람들에겐 당연히 좋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렇네. 맞는 말이야.]

    자기도 잘 알면서 왜 굳이 물어보는 건지 모르겠다. 저번에 이겼다고 기만하는 건가?

    [그보다 내가 널 이길 거라는 소문은 왜 안 퍼지는 거야?]

    [근거가 없으니까.]

    젠장, 역시 기만하는 게 맞잖아.

    * * *

    그리고 2회차인 지금.

    “...으아아아아아아...!”

    레오나르도는 자신의 머리채를 잡아당기며 갖은 비명을 집 안에서 내질렀다. 집을 보며 부모와의 추억을 되새긴 뒤 각오를 다지기 위한 목적은 온데간데 없이 레오나르도는 원색적인 비명만을 내질렀다.

    전의를 불태우기 위한 의식으로 보기엔 수치가 가득했고, 볼썽사나울 정도의 안쓰러울 뿐이었다.

    그저 침대에 쭈구려 앉은 채로 양손을 얼굴로 가린 채로 끝없이 목소리를 짜내기만 했으니까.

    [좀 조용히 창피해해라. 고막에 딱지 얹겠네.]

    “닥쳐어어어어!!”

    괴성에 가까운 욕설을 날리며 레오나르도는 빈정거리는 현자에게 주먹을 날렸다. 벽조차 통과하는 현자에겐 무의미하기 짝이 없는 공격이었지만 말이다.

    “왜 진작 말 안 한 건데애!!”

    [니가 물어보긴 했니?]

    “씨이이이이발!!”

    레오나르도의 얼굴이 완전히 붉은 빛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지금까지 했던 기행들이 차례로 떠오른다.

    라인하르트를 같잖다 비판하고 비난한 것.

    아리아스필을 죽여버리겠다 말한 것.

    사역마 아인을 물건이자 부하처럼 대한 것.

    승부를 통해 이기면 그녀를 겁탈하겠다 예고한 것.

    그 외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일들이 떠오른다.

    이제야 왜 다들 반응이 미묘하고 미적지근했는지 납득했다.

    “미리 말했으면 이럴 일...!!”

    [지가 멋대로 한 거면서 말은 많아요.]

    아리아스필과 미래의 자신이 연인 관계였다니.

    수치스럽고 어이가 없어서 미칠 것만 같다.

    미래의 난 정말 못 버티고 정신이 나가버리기라도 한 것인가.

    어떻게 아리아랑 그렇고 그런 짓을 한단 말인가.

    그 나이대 쯤 되면 알맹이는 다 늙은 노인 일 텐데, 20대 아이에게 그런 욕정을 품는다니.

    미친 게 분명하다. 여기서 더 미치지 않고서야 설명이 불가능하다.

    그것도 상대는 아리아다. 그 얼음장 같은 용사 아리아스필이란 말이다.

    “...도대체...!”

    레오나르도가 다시 절규를 내려던 순간,

    “...다녀왔습니다.”

    극적인 타이밍에 아인이 마을 회관에서 설득을 끝낸 채로 돌아왔다. 무표정한 얼굴임에도 소녀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마침 잘 왔다. 니 애비가 또 비명 지르면 유리창 깨질 것 같았거든.]

    “누가 쟤 애비...!”

    즉각적으로 부정하려던 레오나르도는 이내 아인의 표정을 보자 차마 입을 열지 않았다.

    저 아이는 자신의 원한에서 무고하며, 동시에 이 일에 끼어 곤욕을 겪고 있을 것이다.

    “다른 분들께는 부상이 심해 기억에 문제가 생겨 요양을 온 걸로 해두었습니다.”

    레오나르도가 한 말들은 누가 들어도 헛소리처럼 보였다. 특히나 이 업계에서 관여하지 않은 아누스와 딘에게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기행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그걸 무마하느라 진땀을 뺐던 걸 생각하면 레오나르도 본인도 부끄러워서 감히 언성을 높일 수 없었다.

    “...어어... 고마...맙다.”

    “아닙니다. 제가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아인은 다시 기계처럼 자리에 섰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있기만 한 것이 꼭 하나의 인형처럼 보였다.

    “...앉지 그래? 고생했는데...”

    “알겠습니다.”

    단답으로 답하며 아인은 침대 옆에 앉았다. 무표정한 소녀와의 관계를 알자 레오나르도는 방금보다 어색한 공기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뭐?”

    무표정하게 있던 아인은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짧게 사과했다. 그건 레오나르도를 보기 싫어서가 아닌, 사과에 나올 반응이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제가 미리 말씀드렸다면 이런 불상사는 막을 수 있었을 겁니다. 기억을 되찾은 것에 집중하느라 정작 레오나르도 님의...”

    “됐어. 나 같아도 말하기 껄끄러워서 안 했을 테니까.”

    퉁명스레 위로하면서도 레오나르도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지금 일들은 납득하기 복잡한 것들 뿐이었다.

    “...나 참, 미래의 내가 죽일 놈이지 아주.”

    [그런 것치곤 입꼬리가 올라가던데?]

    현자는 확실히 보았다. 일그러진 얼굴 사이로 아리아가 며느리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미묘히 올라가던 레오의 입술이 확실히 보였다.

    “누가 좋아했다는 거야!!”

    [난 좋아했다고 안 했는데? 입꼬리가 올라갔다고 했지.]

    그 말에 레오나르도는 할 말이 없었는지 얼굴이 붉어진 채로 씩씩대기 바빴다. 그 꼴은 50대 중년이 아닌, 10대의 사춘기를 보는 것만 같았다.

    “...너...! 아인 네가 봤을 땐 어떤데?!”

    “네...? 저 말입니까?”

    갑작스럽게 화살이 자신에게 가자 무표정이 떨리기 시작한 아인이었다.

    “딸인 네가 보기에는 내가 웃은 것 같아?”

    아인은 심한 갈등이 머릿속에 잔뜩 스쳐지나갔다. 지금 상황에서는 어떤 대답을 해도 목장식이 하늘의 별처럼 반짝거리며 빛날 것이다.

    “...저, 전...”

    분명 레오는 며느리라는 단어에 발작이라도 하듯 비명을 내지르기는 했다. 얼굴도 울그락풀그락한 것이 흥분한 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싫어했다’라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현자와 마찬가지로 아인의 시신경에도 레오의 입꼬리가 미묘히 올라간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전 잠시 정찰을 나가보겠습니다. 호, 혹시 모르니까요.”

    아인의 아버지는 위험할 때는 도망치는 것도 방법이라는 가르침을 주셨다.

    “야 잠깐...!”

    아인은 그 가르침을 착실히 수행했다. 급히 딘의 발톱 조각을 몸에 박으며 아인은 문바깥으로 나갔다.

    핑계일지라도 정찰은 확실히 해야 ‘거짓말’은 아니게 되니까.

    그렇게 늑대의 귀와 코가 자라났을 때 즈음.

    “...이 냄새...”

    코끝에서 익숙하고, 익숙해서는 안 될 냄새가 났다. 물론 이 집의 배인 냄새를 생각하면 착각일 수 있겠지만, 감성이 풍부해진 아인은 자의적으로 추측해버렸다.

    ‘...키메라...’

    아주 미약한 냄새지만, 마탑의 접선장소에서 맡은 향기와 일치하는 후각 정보가 인지되었다.

    * * *

    적탑주의 죽음 이후 그녀의 연구에 대해서는 대대적인 조사가 이루어졌다.

    마법계를 담당하는 마도 처형자는 물론, 신전의 이단심문관부터 제국 황실기사단, 라인하르트의 집행기사단 또한 적탑주의 악행과 부정에 대해 추적했다.

    일반적으론 마도 처형자가 가장 먼저 찾는 것이 상식적이었으나 이 조사에는 한 가지 예외 상황이 발생했다.

    ‘마도 처형자는 믿을 수 없습니다. 여긴 이단심문관인 저희가...!’

    ‘마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망발을 하지 마십쇼.’

    마도 처형자와 이단심문관이 사사건건 부딪치며 일처리를 부진하게 진행한 것이었다.

    본래부터 마탑과 신전은 앙숙 관계, 적탑주의 건은 싸움의 불씨가 되기에 적절한 일이 따로 없었다.

    황실기사단은 전투 실력은 출중할지 몰라도, 추적술에서는 실전에 계속 구른 집행기사단에 비할 수 없었고.

    그 결과 라인하르트가 가장 먼저 정보를 습득할 수 있었다.

    “...이게 연구 자료...”

    “그래, 아직 다른 조직에게는 알려지 않은 레오나르도의 부모을 연구한... 자료다.”

    마르켄이 내민 서류철을 바라보며 가주 글라디오는 표정을 어둡혔다. 이 자료에는 아마 회귀 전에도 밝혀지지 않은 비밀이 담겨있었을 것이다.

    “...이걸 저희가 봐도 될까요?”

    떨리는 눈으로 리오스는 자료를 들었다. 아무리 조사를 위해서라지만 자신들이 레오보다 이걸 먼저 봐도 되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전 지금 레오나르도... 레이널드를 부르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이걸 가장 먼저 봐야하는 건, 본인일 테니까요.”

    크리스도 리오스의 의견에 이견을 표하지 않았다. 아마 가장 먼저 이 자료를 갈망하는 이는 렌과 가족인 레오나르도 본인일 테니까.

    “...하지만 진실을 알리는 것이 반드시 옳다고 할 수 있을까.”

    반대를 드러낸 것은 가장 마지막까지 레오와 대화한 마르켄이었다.

    “그 이상으로 그 녀석에게 무게를 짊어지게 하는 게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 레오는... 이미 자기 할 몫 이상을 했는데.”

    마르켄도 노장으로서 전장에 장기간 서보았기에 알 수 있다. 싸우면 싸울수록 심신이, 그 중에서 몸보다 마음이 먼저 망가진다.

    자신조차 5년 정도가 최장기간인데, 30년을 세계 자체가 전장이 되어버린 곳에서 산 인간의 상처는 어느 정도일지.

    마르켄은 무력하게도 헤아릴 수 없었다.

    “...만약 자신의 부모가 정말로 흑막이라면 레오나르도는 어떻게 해야하지?”

    글라디오는 자료를 바로 레오에게 공개하는 것에는 우려를 표했다.

    그의 눈과 귀에는 아직도 생생하게 울리는 말이 있다.

    [아니면 가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싶은 건가?]

    [버려졌어도 괴물의 피가 섞여있을테니, 괴물 부모의 멱은 자식인 내가 따는 게 순리라고.]

    레오나르도의 애증이 서린 분노가 지금도 그의 판단을 어렵고 신중하게 만들었다.

    이걸 보여주는 것만으로 선택을 강요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은연 중에는 남아있었다.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루미네는 성자로서 라인하르트 일원들의 말을 모두 존중했다.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해 의견을 내고 있었고, 그곳에 억지는 없었다.

    “하지만... 자료를 은폐할 수 없잖습니까.”

    성인으로서 루미네는 정직을 중요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다.

    {...진실을 숨기는 것은 기만입니다. 하지만 지금 레오나르도 군의 상태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폭주하기 쉬운 것도 사실이죠.}

    앤젤라는 연장자이자 초대 성녀로서 실질적인 피해를 중점적으로 생각해야했다.

    레오나르도의 검은 신성력이 폭주한 때는 주로 마기의 주입과 극단적인 정신 상태일 경우.

    숨기는 게 기만일지라도 진실을 알리는 것에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에는 반대할 수 없었다.

    “...그럼 확인해보죠.”

    용사 아리아스필은 가장 마지막에 입을 열었다.

    그것도 먼저 읽어본다는 것에 동의한다는 의견이었기에 모두는 잠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리아...”

    “알리더라도 저희는 먼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설사... 레오나르도의 어머님께서 흑막일지라도 전 레오나르도를 믿고 저희도 믿어야 하니까.”

    내용을 읽는다 해도 바뀌는 것은 없다.

    자신은 레오나르도를 단지 신용하는 것이 아닌, 신뢰하고 존경하며 사랑한다.

    마음이 꺾일지라도 자신이 끝까지 지탱할 것이며, 폭주할지라도 다시 죽음을 각오해서라도 막을 것이다.

    “...지금 열어볼게요.”

    아리아스필은 용사라는 직책처럼, 직접 본인의 손으로 대표하여 자료의 걸린 잠금을 풀었다.

    이윽고 통 속에서는 수북이 쌓인 노트들이 드러났다. 그 두께만큼 이 비밀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모두에게 다시금 되새겨주었다.

    타...그락...

    노트를 꺼내려던 순간, 아리아의 성검 손잡이가 책상에 부딪히며 책을 널부리뜨리게 되었다.

    “...죄...죄송해요!”

    말은 이렇게 했어도 긴장했던 탓일까, 아리아스필은 사죄하며 급히 펴진 책들을 정리했다.

    “조심해라! 중요한 자료이니...!”

    “...네, 죄송...”

    그리고 연구 일지 중 펼쳐진 책의 내용을 우연치 않게 보자 아리아스필의 몸이 굳어졌다.

    그 연구일지에, 그 구절에는, 세 문장만이 작성되었다.

    [마왕의 그릇을 연구하던 와중, 그분께 만일 실패하거나 넘칠 경우 어떻게 되냐고 난 질문했다.]

    [그분은 대답하셨다.]

    [‘실패해서는 안 되지만, 실패한다 할지라도 용사 정돈 이미 죽인 전적이 있다.’]

    [아아, 그분의 말씀은 이미 미래에 도달해있었다.]

    마치 경전과 같은 일지에 아리아스필은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갔다.

    그도 그럴 것이 용사 루벤은 마왕과의 일기토에서 죽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되면 남은 용사는 한 명 뿐이었다,

    만약 용사가, 마왕의 그릇이 자신이 생각한 여성들이라면.

    만약 이 상상이 진실이라면.

    아리아는 레오나르도에게 미래의 자신을 죽인 이가 레오의 부모라 고해야만 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진지한 분위기임으로 농담은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200화를 기념해 표지를 만들까하여 댓글로 아리아스필과 레오나르도로 어떤 장면을 잡으면 좋을지 의견을 남겨주시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밤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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