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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자는 회귀했다-185화 (185/248)

가끔 상상하곤 했다.

만약 레오와 내가 만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처음에는 레오나르도에게도 도움이 된다 생각했다.

가문에 오지 않았더라면 용병으로 살다가 전장에서 쓸쓸히 죽었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17살의 무렵, 레오나르도의 배의 구멍이 뚫리자 생각은 점차 바뀌었다.

거대한 촉수 마물을 처리하기 위해 내장을 뚫어가며 접근해 급소를 날렸다고 했다.

치료했지만 걱정되었다. 레오는 나보다 몸도 약해서 치료도 더뎠으니까.

걱정해도 레오의 대답은 까칠할 뿐이었다.

[너처럼 재능이 없으니 이런 식으로 메꿀 뿐이야.]

그래, 그게 레오의 방식이라면 존중해야 마땅했다.

하지만 다음엔 폐가 날아갔다. 조금 더 늦게 치료했다면 피가 차서 질식했을지도 모른다.

그 다음엔 손이 으스러지기도 했고,

다음에는 팔과 다리가 부러지고, 끊어지기 직전까지 가버린 적도 있었다.

자신이 있는 전장으로 따라올수록 레오의 부상은 심해져만 갔다. 죽을 뻔한 적은 자신보다 곱절은 많을 거라 확신할 수 있었다.

죽지 않았으면 했다. 레오는 싸움과 맞지 않는다. 더는 나은 방법도 있을 거다.

후방에서 싸워도 괜찮았고, 셈이 빠르니 보급 쪽에서 일해도 잘할 것이다.

[재수없게 사람 무시하지 마라. 내 앞가림 정돈 하니까.]

그럴 때마다 레오는 그런 식으로 대답했다. 그런 면모가 대단하다고 생각되면서도 무모하다 걱정되었다.

레오의 실력이면 빠른 시일 내에 죽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성장이 나만큼 빠르지 않다.

그럼에도 레오는 본인의 실력보다 더한 적을 상대한다.

난 그 원인은 알고 있다.

내가 레오나르도의 목표가 되어버려서 그렇다.

어떻게든 레오를 안전한 곳에 보내고 싶다.

보내야만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

“...죄송해요. 이런 이야기는 결국 의미는 없을 텐데.”

생각이 잠긴 루미네의 표정을 보자, 아리아스필은 예전에 자괴감에 빠졌던 것이 떠올랐는지 자학을 멈추었다.

그녀도 이런 생각이나 말이 썩 좋지 않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다.

다만 죄악감은 자의적인 감정이 아니었을 뿐이었다.

“...아, 아닙니다. 제 역할은 본디 용사님을 보좌하는 거니까요.”

루미네가 의심의 사색에서 벗어나며 다시 대화로 돌아왔다. 이 생각은 현재로서는 추측에 지나지 않으니 지금의 아리아의 심신을 안정시키는 것에 집중해야했다.

{의미 없는 것은 없습니다. 아리아스필 용사.}

안색이 펴지지 않는 아리아에게 앤젤라는 성녀이자 연장자로서 조언을 건내었다.

{만약의 상황을 가정해보는 것 또한 영웅으로서 가져야할 자세이지요.}

평소 태도와는 상반되는 어조에 그 자리에 있는 둘은 그녀에게 집중했다.

{다만 만약이란 미래에 있어야 합니다. 과거에 매몰된 가정은 스스로를 자학하는 것일 뿐이니까요.}

“그렇...죠.”

아리아도 알고 있었다.

이 가정은 과거에 매몰되어있을 뿐, 미래의 비전이나 길에 대해 생각되어있지 않다.

하물며 회귀 같은 비현실적인 능력이 있다 해도 아리아스필이 가정에선 자학만이 자라나고 있었을 뿐이었다.

“...단장님?”

뒤이어 마르켄이 집에 들어오자 아리아스필은 약간 놀란 눈치로 자신의 할아버지를 살폈다.

분명 레오와의 대화를 엿들은 뒤 본인이 더 먼저 저택으로 돌아가긴 했지만, 마르켄이 돌아온 시간은 너무 늦었다.

그 위화감이 쓸데없는 노파심이 아니라는 듯 마르켄은 씁쓸한 표정으로 아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리아...”

노장의 표정에는 무력감이 잠겨있었다.

자신이 할 행위는 자신의 손녀에게 분명 대못을 박는 개짓거리일 것이다.

지금도 생생히 레오의 표정이 두 눈에 남아있다.

레오에겐 아리아를 죽음으로 몰고 간 원수들 중엔 마르켄을 포함한 모든 라인하르트 일가까지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당연하다. 자신들이 무능력해서 죽은 거니까.

“...소집을 열어야할 것 같다.”

죄악감에서 간신히 마르켄은 말을 떼었다. 아리아스필이 레오와의 대화를 못 들었다 생각했기에 그는 지금 이 정보를 풀어내고자 했다.

“소집... 말인가요? 어째서...?”

“...루미네 성인님.”

자신이 레오나르도를 붙잡은 것은 단지 스스로를 속이지 말라 조언하기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집행기사단 측에서 적탑주의 은거지 중 하나에서 자료를 찾았습니다.”

마르켄은 조사를 나온 집행기사와 접촉해 적탑주의 연구 자료를 입수했다.

{...자료라면...}

“...레오나르도의 어머니에 대한 연구 자료입니다.”

레오나르도의 친모를 어떤 식으로 연구한 것인지 빼곡히 작성된 연구집이 지금 마르켄의 손에 있었다.

***

그 시각, 레오나르도는 자신의 고향에서는 전혀 보지 않았을 법한 풍경을 눈앞에서 보고 있었다.

낚아올린 남기사를 필두로 4명의 기사들은 최대한 어리버리한 티를 감추며 절도있게 경례했다.

“겨...경례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저흰 라인하르트 동부 기사단에서 파견된 경호반입니다!”

“...경호반?”

레오나르도는 경호라는 것 자체를 몰랐기에 되물은 것이었지만, 경호반은 자신들을 질책한 것으로 오해하기에 충분했다.

“...죄...죄송합니다! 어깨의 상처는 어떻게 변상해야할지...!”

“아, 그건 괜찮...네.”

다른 때와 달리 레오는 점잖게 말하며 어깨의 화살촉을 뽑아내었다.

굳이 신성을 쓰지 않아도 오러로도 충분히 지혈이 가능했기에 레오나르도는 상처에 분노조차 하지 않았다.

“괜찮으신가요? 제가 가진 포션으로...!”

“이 바보야! 우리가 쓰는 싸구려 포션으로 만족할 리가 없으시잖아!”

올가와 레인은 예전처럼 만담이라도 하듯 투닥거리며 말싸움을 했다.

“...우선 지금은 진정해... 레오나르도 님 앞에서 추태를 부리면...!”

이럴 때면 베넷은 위축된 채로 저 둘의 싸움을 진정시키곤 했다. 성격은 예전과 다를 바 없이 그대로였다.

“난 괜찮다네. 오히려 그런 상황에선 대치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가...감사합니다! 이 어찌 넓은 아량이신지...!”

그 자리에 있는 모든 기사들은 존경하던 레오나르도의 배려에 진심으로 감동했다.

기사업계에서는 전설적인 영웅으로 알려진 레오나르도를 직접 대면하며 이렇게 격려까지 받는다니.

기사 인생에서 이런 행운은 찾아보기도 힘들었다.

“...잠시만요... 근데 레오나르도 기사님은 혼수 상태라 들었는데...!”

성격이 냉철하고 두뇌 회전이 빠른 필립은 지금 상황의 이질감을 느꼈다.

현 라인하르트 기사는 물론, 정보처가 존재하는 집단들은 레오나르도가 부상으로 몸이 멀쩡치 않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 의심에 다들 일제히 무장에 손을 대었다. 행여나 의태나 환각을 이용한 공격일까 미리 대비를 맞춰두는 것일 터.

“...사정이 있어 외부에 그 사실은 숨긴 채 오게 되었습니다. 이건 그 증거이죠.”

아인은 레오나르도를 대신해 상황을 해명하고자 본인의 팔을 완전히 와이번의 것으로 바꾸었다.

저 기사들 또한 아인의 능력을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지금 눈 앞에 있는 이들이 진짜라는 것을 다시 되새길 수 있었다.

“...의심해서 죄송합니다! 혹여나 의태해 가족분들을 기습하지 않을까 걱정되어 그만...!”

의심이 틀렸다는 걸 알자 필립은 빠르게 테세를 전환해 허리를 연신 숙여대었다. 그 사과에 레오나르도는 곤란함이 기묘한 파동으로 감정에 전해지는 걸 느꼈다.

“괜찮네...! 괜찮은데...!”

분명 함께 전장에 섰고 홀로 살아버려 모두 죽어버린 동료들이, 자신을 향해 깍듯하게 예의를 지키는 태도를 태연히 받아드리는 것은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보다 경호라니? 내 가족들을 왜 경호한다는 거지?”

레오나르도가 궁금한 부분은 이 이야기의 근본에 있었다. 어째서 회귀 전 전우들이 자신의 가족과 마을을 경호한다는 것인가?

“...그건... 가주님 명령이십니다. 흡혈귀 적들에게 레오나르도 님의 가족분들을 습격하거나 인질로 삼을 수 있으니 사전에 저희를 파견하셨죠.”

“...그래?”

레오나르도는 듣지 못한 명령이었다.

하지만 화내기에는 레오 쪽에서도 나쁘지 않은 일처리였다.

저 4명은 본가의 인물들보다 실력은 떨어져도 확실히 신뢰할 수 있는 기사들이다. 게다가 라인하르트의 기사라면 명당 흡혈귀 두 마리는 충분히 처리할 수 있었다.

‘...아주 무능하지는 않다는 건가.’

싸우는데 집중하라고 한 배려인지, 자신에게 잘 보이려는 아첨인지는 몰라도 레오에겐 필요한 서비스였다.

“그럼 경호 대상들에게는 내가 왔다는 건 알리지 말아주게.”

그런 서비스가 있는 것을 알았으니 레오나르도는 더욱 안심하고 싸움에 전념할 수 있었다.

“...네?! 어째서... 가족 아니셨나요?”

“그래서 부탁하는 거지. 분명 서로 보게 되면 싸우는 걸 망설이게 될 테니까.”

레오나르도의 말에 호위 기사 모두 납득함과 동시에 숨기는 것을 망설였다.

도론에 며칠 지내면서 친해진 아누스와 딘이 레오를 얼마나 걱정하는지 알고 있기에 쉽사리 결단을 내릴 수 없었다.

“...저기 기사님들...!”

망설이던 찰나, 익숙한 수인의 목소리가 이 방향을 향해 울렸다. 점점 숨소리가 커지는 걸로 봐서는 이곳을 향해 달려오는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빨리 벗어나야...

“왜 레오 피냄새가 나는 거예요?!”

그 한 마디에 레오나르도가 일순 얼어버렸다.

“...딘...형?”

저 늑대 인간을 다시 볼 거라고는 한번 꿈꾼 적이 없었다. 그것도 아주 한참 전에 포기한 희망일 터였다.

“레오! 아인까지...! 연락도 없이 무슨 일이야?!”

그 질문에 레오는 대답할 수 없었다.

말하지 않기엔 너무나 많은 일이 있었고, 말하기에는 온 이유가 특별히 없었다.

“...보고 싶어서...”

유일한 가족들이 멀쩡히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 * *

상처가 심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딘은 회포를 풀기라도 하듯 수다를 늘어놓으며 마을회관으로 향했다.

“레오 아니냐! 오랜만에 왔구나! 머리 염색했네!”

“오! 레오나르도! 안 본새 많이 변했구나!”

지나가면서 마주치는 마을사람들은 바뀐 것 하나 없이 익숙하게 레오에게 살갑게 인사했다.

음식을 자주 주곤 했던 고깃집 제프 아저씨, 남은 아이 옷을 주신 수자 아주머니까지.

모두가 살아있다.

“...나 참, 죽을 것처럼 말해놓고 연락도 없이 돌아오냐? 할머니 보시면 기절하시겠네.”

“...어...응...”

반가우면서 딘은 레오를 보며 몇 번 투덜거렸다. 얼마 전에 죽을 것처럼 말해놓고 이런 식으로 등장하는 건 솔직히 조금 당황스럽지 않은가.

“...뭐... 다행이지만. 잘 왔어. 아인이도 삼촌 보고 싶었어?”

하지만 기쁜 건 감출 수 없었는지 딘은 송곳니를 드러내며 미소를 지었다. 기억을 잃은 레오 때문에 아인은 그런 딘 삼촌을 보면서 웃을 수가 없었지만 말이다.

“여긴 여전하네.”

마을회관을 보는 레오나르도의 시선은 그리운 추억이 깃들어있었다.

“촌장님 기다리시겠다. 얼른 들어가자.”

“...그래.”

마을회관의 허름한 문을 열자 익숙한 노파의 얼굴이 레오의 추억을 되살렸다. 저 주름진 얼굴을 다시 볼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오, 오랜만이에요. 아누스 초...할머니.”

아누스의 얼굴을 보자 레오나르도는 감정이 북받치는 것을 느꼈다. 아마 애증의 감정 없이 순수히 보고 싶은 이들은 이 마을에 있을 것이다.

아누스는 레오의 얼굴을 보자 미소를 짓더니 이내 과장스럽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랜만에 보는데, 손주라는 놈은 며느리도 안 데려오는구나.”

“...어...네? 며...? 뭐요?”

“애엄마가 안 오니 네 손녀만 고생이잖냐. 아인아, 이리 와보렴.”

아누스의 말에 갈등하던 아인은 약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식은땀을 흘렀다.

“...손녀요? 아니...! 그게...”

급격하게 지진이 일어난 레오의 동공은 천천히 아인과 마주쳤다.

“설마...”

“...전... 그게...”

아인은 피난이라도 가듯 조심히 아누스의 곁으로 갔다. 아마 아인은 지금 레오에게 자신을 사역마라 소개한 것은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다.

“...쟤가... 아니, 아인이 손녀면...! 며느리는 도대체 누구예요?!”

“야, 갑자기 왜 그래? 왜 이미 끝난 얘기를 다시 하냐?”

거친 말과 달리 딘은 진심으로 레오가 걱정되는 표정으로 질문했다. 설마 그 고운 아가씨랑 싸우기라도 해서 따로 온 것인가?

“너 설마 아리아스필이랑 싸웠어?!”

“...아리아...?”

“그래, 네 며느리가 아리아 아니냐.”

레오나르도는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실실거리는 현자가 다시 죽이고 싶을 만큼 얄미울 때가 따로 없었다.

“...서, 설마...”

레오는 본능적으로 아이와 아내라는 단어 때문에 이 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그건 그리고 기억상실 기간 중 가장 굴욕적은 흑역사로 장식되었다.

“나 아리아랑 잔 건 아니지...?”

...싸늘했다.

그날, 아인은 해학과 슬픔이 공존하는 모순의 감정을 이해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TMI: 참고로 레오가 질문하기 전까지 이미 거사를 치른 줄 알았다. 그래서 더 대답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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