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이 그리 곱지는 않구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레오나르도는 태연히 내준 차를 마셔대었다.
[니가 한 짓을 생각해.]
현자의 말은 천박했으나 이들의 마음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기억을 잃었다는 하나, 레오가 한 무례들은 충분히 이들을 불쾌하게 만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말하면 딱히 할 말은 없지만.”
딱히 레오나르도는 여유롭게 찻잔을 내려놓았다.
“...레오.. 아니, 레이널드 씨는...”
아리아스필은 그런 레오를 보며 잘린 자신의 머릿결을 어루만졌다. 난폭한 맹격의 흔적은 지금도 몸에 오랫동안 잔류하고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강하신 거예요?”
본능적으로 나온 질문이었다.
“뭐?”
그 질문에 레오나르도는 어이가 상실했는지 퉁명스레 되물었다. 항상 본인보다 위에 있다 생각한 1인자가 저리 물으니 차마 곱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럼 20대도 안 된 너한테 내가 지는 게 당연하냐?”
“...그게...! 그런 말이 아니라...! 제가 알던 레오보다...”
“아~ 그런 뜻이었어?”
증오어린 살기에 일순 말을 떨던 아리아을 용케 이해한 레오나르도는 이내 느끼한 미소를 지었다.
“어째서 내가 미래의 나보다 강한지?”
“...”
모두 그 말에 암묵적인 침묵을 내보였다.
누가 더 강한지는 딱 잘라 말할 수 없었지만, 지금의 레오가 밀린다고는 결코 생각할 수 없었다.
분명 육체에는 차이가 없었고, 미래보다 경험도 부족할 터였다. 게다가 미래의 레오는 신성을 안 쓸지언정 현자의 마법으로 보충해내었다.
그렇기에 지금 일어난 결과에 이 자리에 있는 모두 쉽사리 납득할 수 없었다.
“이유는 제법 많아. 하지만 지루할 테니 간단하게 한 가지 이유로 설명해주지.”
레오나르도는 탁자에 다리를 올리며 설명을 시작했다.
“경험이야. 난 용사인 너보다, 하물며 다른 사람들보다도 경험이 많다 자부할 수 있어.”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1회차의 레오나르도는 아리아는 물론, 마르켄보다도 더한 전장과 전투를 경험했을 것이다.
그만큼 노련한 전투와 기술을 지닌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치면 기억을 잃기 전이 더...”
“바보냐? 루미네, 끝까지 설명을 들어.”
성인을 바보 취급하며 레오나르도는 의문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저들의 의문은 듣지 않아도 뻔했다.
“그래, 시간상 내가 그 잘나신 현자의 후계자보다는 경험이 밀릴 수밖에 없지.”
하지만 지금 존재하는 레오나르도는 그걸 전면으로 부정하고 있었다.
“다만 그 위선자는 신성을 쓰지 않았잖아.”
그게 결정적인 차이였다.
“하지만 대신으로 마법을 사용했잖아요. 그것도 충분히 대단한데...”
레오는 리오스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찼다.
저들은 하나는 알아도 둘은 몰랐다.
“확실히 길바닥 출신의 고아 새끼가 마법을 배운 건 놀랍지. 근데 말이야.”
경험과 시간은 엄연히 별개라는 것을.
“배운 기간은 어떨까?”
그 질문 형태의 설명에 모두 지금 일어난 모순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독학이어도 난 신성을 20년을 족히 넘게 사용했어. 그에 비해 마법은 해봤자 10년도 안 되겠지.”
“...확실히 그건...”
레오가 1회차에 산 나이만큼 비례해 신성을 사용한 기간도 길 것이다. 그에 따라 신성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축적됐을 터.
하지만 마법은 달랐다.
“아무리 현자라는 거장에게 배워도 10년도 안 된 수준으로는 비비기가 어렵지. 하물며 범재인 나한테는 마법에도 재능이 없고.”
“...네놈이 범재라고?”
다들 그 발언에 납득하지 못한 눈치였다.
현자에게는 지금 상황이 레오나르도와 처음 만났을 때 겹쳐보였다.
“그럼 천재겠어? 50대까지 개같이 고생해도 20대 천재 한 명하고 비기는 수준인데.”
억지처럼 느껴졌지만 레오는 진심으로 이 결과에 억울함과 열등감을 느꼈다.
본인은 이 경지에 오르기 위해 적어도 30년은 넘게 사선을 넘는 단련을 했는데, 아리아스필은 고작 10년 동안 정석적인 훈련과 경험만으로 저정도 경지에 오른 것이니.
불공평하다 생각될 수밖에 없었다.
“아마 확신하건대 저 순애 뺀질이만큼의 무골만 있었다면 내 인생도 이렇게 꼬이진 않았을 거야.”
그 말에 리오스는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은 분명 마법사일 텐데, 레오는 그런 이의 무골을 원한다 말했다.
“뭐 태생적인 건 탓해봤자 개소리지만.”
{...당신, 그렇다면 외경은 어디서 얻었죠? 어떻게 알게 된 겁니까?}
성녀의 관심은 이단 행위에 더 깊게 관심이 있었다. 지금 레오나르도는 이단심문관에 보인다면 즉결 심판이 가능할 정도로 중대한 문제였다.
“몰라서 묻는 거면 대답하고, 신성모독이라 따지려고 물은 거면 대답 안 할 거다.”
{...우선 대답하시죠.}
“암시장 경매에서.”
그 한 마디에 신전의 성인들과 용사는 경직된 얼굴로 레오나르도를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얻은 출처가 불순했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말도 안 돼요. 그건 사제나 성기사가...”
“그래, 그들이 외부로 빼돌렸어. 뒷돈 두둑이 받고 말이야.”
신성 모독의 극치를 레오나르도는 기억하고 있다.
마왕의 강림 이후 몰락으로 향한 집단은 라인하르트 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신전은 말 그대로 개판이었어. 용사인 넌 성검 든 채로 저승으로 휴가 갔고, 성자인 너도 눈이 완전히 멀어버렸지. 교황도 마침 죽어가던 참이니... 나머진 안 말해도 알겠지?”
대부분의 사제와 성기사들은 차례로 믿음을 잃어가고 포기했다. 그 덕에 종교를 유지하던 신성도 점차 줄어들어 몰락의 길을 차근차근 걸어갔다.
그런 종교를 형태라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들이 금물하던 세속의 물질이었다.
“...그렇다 해도 직접 유출한 게 아니라, 혼란을 틈타 훔쳤을...”
“내가 우연히 외경을 얻었다고 생각해?”
레오나르도는 미래에 일말의 희망도 품지도, 주지도 않았다.
“너희에게서 정보를 빼내서 나도 알게 된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전국에서 하는 갖은 뒷거래 현장에서 어떻게 외경을 찾았겠어?”
“...그런...”
신실한 사제인 루미네는 미래의 진실에 절망하지 않고 배길 수가 없었다.
자신이 믿고 있던 종교가, 몸을 담갔던 신전이 그렇게 철처히 타락했다는 사실을 듣고 멀쩡히 버틸 수 있는 종교인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럼 그 혈액을 사용하는 기술도 외경에서 얻은 건가...요...?”
흑암 크리스에겐 방금부터 묻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인간의 몸으로 흡혈귀와 같은 혈액의 기술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은 어쩐지 위험한 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만약 부정한 기술만 아니라면 기꺼이 제자로 들어가 배우고 싶을 정도였다.
“당신이 왜 안 물어보나 했어.”
“...큭...!”
그런 크리스의 성격을 뼈저리게 알고 있는 레오나르도는 이미 머릿속으로 설명를 정리해놓은 차였다.
“성혈투술은 내가 만든 기술일 뿐이야. 외경이나 금제를 안 써도 신성만 있다면 충분히 쓸 수 있는 신성술의 일종이지.”
“...아...”
그런 치곤 결코 정상적이지 않다는 감각은 지울 수 없었다.
성기사보다는 광전사에 가까운 싸움법, 신성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신성술이었다.
“...그렇다면 다른 성기사나 사제들도...”
“이론적으로는 쓸 수 있지. 이론적으로는.”
이론적이라는 말을 강조하지 않아도 몇몇 사람들은 어째서 쓰지 않는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아프거든. 정말 아파. 쓸 때마다 혈관이 끊어지는 통각을 느껴야하고, 상처를 재생시키지 말고 혈액 재생에만 집중해야해.”
그렇기에 사용하지 않는 이가 태반이었다. 인간 중에, 생물 중에서 적응하기 어려운 분야 중 하나가 통점의 통각이었다
“...자네는... 어떻게 버티는 건가?”
“참는 거지. 범재인지라 마땅한 수단도 없었고... 그래서 금제에 외경까지 쓴 거잖아.”
[...지금 금제가 다시 생겼냐?]
현자는 때아닌 진지한 모습으로 레오에게 질문했다. 다른 이들도 궁금한 것은 매한가지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신앙심도 없는 내가 이런 걸 쓸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역시 2회차의 난 금제도 안 새겼나보군.”
{새기지 않는 게 당연한 겁니다. 그건 엄연히...}
“그래, 마인 산제물이나 만들려고 출산율이 증진된 세상에 퍽도 가릴 게 있겠네.”
지금의 레오나르도는 세상 모든 것에 혐오하고 증오했다.
“하...그래서 싫은 거야.”
모든 이에게 말투부터 시작해 행동 하나하나가 전부 무례한 것이 그에 대한 증명을 해주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 레오나르도가 무엇보다 증오하는 이는 따로 없었다.
“잘난 미래의 난 자기 몸 사리느라 때문에 금제 안 새긴 거잖아?”
“...그건 억지잖아...요!! 부작용이 있으니...!”
“넌 나한테 쳐맞고도 이해를 못 했어? 만약 이 힘에 마법까지 추가했으면 어땠을 것 같아?”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를 변호하고자 했던 아리아스필은 그 장본인의 말에 반론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위선자인 거야. 자기 몸을 신줏단지처럼 모시다가 결국 기억도 잃었잖아.”
“말을 가려서 해라! 그런 같잖은 이유가 아니라는 건...!”
“어차피 나잖아. 내가 날 욕하는데 무슨 문제라도?”
할 말은 없었지만 마르켄을 포함한 모두가 불쾌감을 감출 수 없었다.
마치 본인들을 함께한 레오나르도라는 존재를 전면에서 부정하고 모욕당하는 것 같았다.
“...눈빛을 보아하니 내가 어지간히 싫은 것 같은데, 배려해서 나가주도록 하지.”
“나간다고? 어디로 간다는 거지?”
레오나르도는 아공간 망토를 겉옷에 두르며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질문에 대답했다.
“잠깐 봐야할 사람이 있거든. 이틀 안에는 올 테니까 도망칠 걱정은 안 해도 돼.”
[그 정신나간 상태로? 기억 되돌릴 방법부터 확인하고 시도해도 늦지 않...!]
“지금 봐야 의미가 있는 사람들이야.”
어째서인지 레오나르도의 등은 외롭고 쓸쓸하게 느껴졌다. 가려진 표정이 어떤 형태일지 감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고독한 뒷모습이었다.
“필요할 때 부른다면 바로 가서 협력할게. 하지만 착각하지 마. 그렇다고 해서 네놈들 동료가 될 생각도, 부하가 된다는 의미도 아니니까.”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니잖나! 현 상황은 아직 위험에서 벗어나지 않았어! 단독 행동은...”
“가게 해주세요.”
아리아스필은 그런 글라디오의 일갈을 멈추며 레오나르도를 붙잡지 않았다.
“돌아올 거잖아...요? 고향을 보고 오면...”
“...넌 역시 재수가 없어. 아리아스필.”
속내와 목적을 들키자 레오나르도는 그런 독설을 짧게 퍼부었다.
그럼에도 독설은 다른 때와 달리 차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리운 애칭을 부르는 것 같은 목소리였다.
“전 재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레이널드 씨.”
마지막에 보았을 때의 이별과는 다른 어투였다.
“당신이랑 만났으니까. 전 무척 재수 있는 사람이에요.”
“...멋대로 생각해. 그게 너다우니까.”
퉁명스레 말하며 레오나르도는 문손잡이를 잡아돌렸다.
“그럼 레이널드 그레이브 님은 아리아스필 님을 싫어하시는 건가요?”
아인의 목소리였다. 눈치없고 난데없는 질문에 레오나르도는 잠시 경직하며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윽고 전혀 변화없는 대답이 레오나르도의 입에서 쐐기처럼 튀어나왔다.
“뭘 물어? 내가 세상에서 아리아스필만큼 싫어하는 인종은 따로 없어. 지금은 운이 좋았지만, 용사로서 가치를 잃었다고 생각하면 주저 없이 예고한대로 목을 쳐줄 테니 각오하라고.”
화아아아악!!
그 순간, 뒤에서 강렬한 붉은 빛이 폭발하듯 발광했다.
“뭐야! 이건...! 다들 괜...!”
“...확인했습니다.”
빛의 근원은 아인의 왼손에 쥐어진 목걸이에 있었다.
“...뭐야 그건...? 섬광탄이라도 터뜨린 거냐?”
진실과 사실의 목장식을 보며 레오나르도는 당황스럽게 질문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질문의 대답에 만족한 아인은 태연히 거짓말을 내었다.
“...뭔데? 왜 갑자기 웃고 난리야?”
그때 아인은 처음으로 웃었다.
뭐냐고 연신 캐물은 레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TMI: 현자의 유산 [진실과 사실의 목장식]은 상대의 마나에서 거짓말을 탐지해 빛을 낸다. 고로 거짓말이 심할수록 빛의 세기는 더 커진다.
참고로 레오는 그 목걸이의 존재를 아예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