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인자는 회귀했다-181화 (181/248)

금제 외에도 신전에는 사장된 여러 기도법이 존재한다.

레오나르도가 지금 사용한 신성술은 그 중에서도 가장 금기시되는 기도였다.

{...외경의 기도문...}

경전에서 배제된 외경(外經), 정경으로 인정되지 않아 2경전에 속하는 영창이었다.

[...외경이라면.... 위경 말이야?]

{조금은 다르지만... 그렇게 부르기도 합니다.}

외경은 배제된 경전, 위경은 거짓된 경전.

결은 다르지만 정경에는 속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은 존재했다.

“...사용해도 괜찮은 겁니까?”

{상식적으로 안 됩니다. 경전에서 배제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거짓되었지 않았다 해서 사용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외경의 영창은 기본적으로 술자의 몸에 부담을 준다. 분명 마나를 신성을 치환하는 과정은 빠를지언정 고통을 줄 터.

또한 정도의 경전이 아니기에 점차 신을 공경하는 것이 아닌, 집착하는 수준의 환청과 착란에 시달릴 부작용을 줄 것이다.

“...제정신이야?! 그걸 쓰는 게 무슨 의미인지...!”

“....제정신? 루미네? 나한테 제정신이냐 물었어?”

성자인 루미네마저 존칭을 생략할 정도로 경악하며 레오에게 일갈했다.

모든 것을 포기했다 할지언정 금제에 이어 외경까지 병행해서 사용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애초에 제정신이었으면 이렇게 안 살았지.”

그렇게 조롱하며 레오나르도는 양손에 피를 적셨다. 피의 사슬로 감싸진 아리아스필은 레오나르도가 여유를 부리고 있음에도 손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네 괴력으로 어떻게 못 할 거야. 물리적인 사슬로 묶은 게 아니거든.”

혈액의 형상이 사슬처럼 보일 뿐, 속박의 근원은 물리력이 아닌 신성력에 있었다.

신성력이 아리아스필의 근육과 신경에 지속적인 마비를 주는 속박법이다.

“자, 이제...”

레오나르도가 천천히 아리아스필의 목덜미를 붙잡았다.

“...천천히 마음을 부러뜨려주마.”

의도는 아리아의 마음에 공포를 심어 전투를 거부하거나, 적어도 경각심을 품게 하는 것.

진심으로 자아나 정신의 붕괴를 의도는 없었다.

“...큭...그런 걸로... 나... 난...”

아리아는 치욕스러운 듯 간신히 입술을 깨물었다. 몸이 대부분 마비됐음에도 파르르 떨리는 입술은 그녀가 얼마나 이 능욕을 참을 수 없는지 알 수 있었다.

“...난 절대 굴복하지 않아...! 어디 한번 해볼 테면 해봐!!”

포부 넘치는 목청이었지만, 무언가 대본을 읽는 것 같은 어색함이 느껴졌다.

[...저 정도면 병 아니야?]

한 광인을 제외하면 그 어색함이 어디서 나오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사랑이란 병에 걸렸군요.}

[너도 많이 아프구나. 불쌍해라.]

{괜찮습니다. 지금의 당신이라면 치료할 수 있는 병이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앤젤라는 아리아 못지 않은 표정으로 흥분한 채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깨물었다.

그 기행들이 가히 소름끼쳤는지 어린 몸을 움츠러뜨리며 현자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처리할까요? 루미네 성인님.”

“...아직은 자제해주세요. 아인님.”

차마 믿을 이가 아인밖에 없다는 사실이 루미네에게는 크나큰 시련으로 다가왔다.

“...내 손녀가... 하...”

“...이런 순애도 나쁘지 않을지도...”

“저곳에 어디에 순수한 애정이... 아...하...”

충격으로 다가온 것은 라인하르트 일가도 매한가지였다. 가문을 대표하는 용사이자 자신들의 손녀이자 딸이며 여동생이 저런 욕망을 내보이고 있으니 이를 당연시 받아드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아리아스필.”

정색이 가장 짙게 드리누운 사람은 이 상황을 조성한 레오나르도였다. 방금까지만 해도 단단히 착각했던 레오의 눈빛은 업화가 차있었다.

“너, 일부러 지려고 하냐?”

일순에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관객이고, 당사자마저 이 정적에 어색한 침묵을 내었다.

어쩌면 이들은 당연한 착각을 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지금의 레오나르도는 아리아스필의 감정을 아예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그건...”

“왜 대답 못하지?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나?”

하지만 레오가 잃은 것은 기억일 뿐, 지능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은 50대의 정신 상태로 돌아와 자아에 슬어있던 녹이 빠지기까지 했다.

“...1회차에 아리아도 같은 짓거리를 벌였지.”

레오나르도의 말에 모두들이 경악에 빠졌다.

설마 1회차에도 아리아스필은 저렇게 심각한 집착 증세를 보였던 것인가.

1회차 용사에 대한 우려와 걱정이 극단적으로 드러났다.

“그때도 똑같이 나에게 승리를 거저 내줄려 했지.”

하지만 뒤에 나온 말에 일행들은 말의 방향성이 다르다는 것을 눈치챘다.

레오나르도는 일행들에게 일부러 설명해주겠다는 듯, 마비된 아리아를 둔 채 연무장 주변을 돌아다녔다.

“아주 본인에게는 승리란 값싸고 흔한 것처럼, 불쌍한 멍청이에게 간단히 승리를 선물해주려 했어.”

말을 할 때마다 이해가 되었다.

레오나르도가 생각하는 깊은 착각이 무엇인지 모두의 머릿속에 연상되었다.

“아직도 날 동정하는 거냐? 아리아.”

레오나르도는 아리아스필이 자신이 불쌍해서 져준다는 느낌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아리아가 자신의 과거를 알고 있다는 점에서 도출된 안타까운 결론이었다.

[...난 이제 쟤가 불쌍하기까지 해.]

{열등감이란 사랑의 큰 장애물인 법이죠.}

“그렇군요. 데이터를 추가하겠습니다.”

“...추가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아인님.”

루미네는 아인이 영걸을 빙자한 두 괴인에게 옮을까 진심으로 걱정했다. 저 소녀가 자신에게는 유일한 정신 건강의 보루였다.

“...오, 오해야...! 레오...”

“열받는다고... 그 태도가...”

레오나르도는 손톱을 날카롭게 폈다. 손톱은 혈액과 검은 신성력을 잔뜩 머금어 날붙이와 같은 형태를 하게 되었다.

“날 불쌍하게 여기는 네가 역겹다! 아리아스필!”

촤아악!

날카로운 수도가 아리아스필에게 내리쳐졌다. 분명 맨손임에도 아리아의 어깨는 검상이 일었다.

“...헉...헉...!”

“...역시 움직일 여력이 있잖아.”

하지만 얕았다. 아리아스필은 오러를 방출해 마비된 몸을 최대한으로 틀었고, 방어력을 늘렸다.

검상은 피부를 베어났을 뿐, 뼈까지 절단해내지 못했다.

“재밌었냐?”

그걸로 안심할 수 없었다. 회피할 수 있었다는 방도가 있다는 점만으로 레오나르도는 증오와 경멸을 불태우고 있었다.

“...오해야...! 난 그럴려고...!”

“닥쳐. 너한테 기대한 내가 얼간이지.”

오해라고 말하기엔 결과가 똑같았고, 사실이라고 하기에는 의도가 전혀 달랐다.

“내 앞에서 결투를 모욕해?”

모욕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기에 아리아스필은 더는 변명할 수 없었다.

“...핸디캡은 이제 없다. 각오하는게 좋을 거다.”

충혈된 레오의 눈에는 광기어린 분노가 타올랐다.

“...이건...!”

그 순간, 레오의 팔에 차져 있던 검은 팔찌가 촉수처럼 뻗어올랐다. 스스로의 의지를 가진 것처럼 검은 돌도 분노에 함께 공명했다.

“...오호, 나쁘지 않은데... 마검의 일종인가?”

이윽고 촉수는 크고 두꺼운 장검을 형성했다. 마치 몰락한 라인하르트 저택 정원에서 묻어있던 장검과 유사한 형태였다.

카아앙!! 캉! 콰아앙!

검은 마검이 순백의 성검을 거칠게 난도질한다. 아리아스필조차 막기 급급할 정도로 레오의 맹공은 무거웠다.

‘...우선 진정을...’

이윽고 마나를 전개시킨 아리아스필은 정령들을 불러일으켰다.

[뭘하면 될까? 아리아?]

<레오 양발을 붙잡아줘.>

[알겠어!]

계약되지 않았음에도 정령들은 스스로 레오의 움직임을 포박하고자 마력을 분출해내었다.

지면에서는 암반과 뿌리가 솟아나 레오의 양발을 포박했고, 그 위에서는 바람의 정령들이 레오를 향해 역풍을 일으켰다.

“조금 진정해애!!”

포효와 함께 아리아스필의 성검에 신성이 빛났다. 그저 신성만 빛나는 것이 아니었다.

냉기을 담당하는 얼음의 정령이 신성에 섞여들며 성스러운 빙결을 형성해내었다.

콰아아아아앙!!

[광색(光色)-청색]

냉기를 머금은 신성이 레오를 향해 격돌했다. 목적은 흥분한 레오를 안전히 제압하는 것, 냉기로 몸을 일시적으로 얼려 멈추려 했다.

“...킥...!”

그런 순간에 레오는 조소를 내보였다.

“...위력이 별 볼 일 없는데? 축 늘어졌어.”

조롱대로 아리아의 광선은 다른 때에 비해 위력이 떨어졌다. 레오가 그 광선에 직격했음에도 몸에 있는 피가 조금 언 게 다일 정도였다.

“...몸에 힘이...”

“슬슬 효과가 나네.”

연무장의 주변에는 붉은 진이 점차 발광하기 시작했다. 지면에 조금씩 묻어있던 혈흔들이 하나의 결계를 이루었다.

[성혈투술-붉은 성역]

사슬로 포박해둔 사이, 지면에 차례로 레오는 신성이 섞인 혈액을 뿌려두었다. 그리고 시간을 벌자 하나의 결계를 형성할 수 있었다.

‘...정령들도...!’

레오의 양발을 붙잡고 있던 정령들도 힘을 잃고 영체를 유지하지 못했다. 아리아도 본인의 몸으로 그 원인을 체감할 수 있었다.

이 핏빛의 결계는 천천히 내부에 있는 마나와 체력을 빼앗았다. 아까 냉기의 광선이 약화된 것도 붉은 성역의 영향 때문.

“...치잇...!”

아리아는 다시 몸에서 오러와 신성을 폭발시켰다. 결계를 설치했음에도 아리아의 체력에는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 그렇게 싸울 수 있잖아!”

촤아악!

그 이상으로 레오나르도는 빨라졌다. 일순 몸을 져쳤음에도 긴 머릿결 절반이 잘려버린 것이 그 증거였다.

‘...설마...!’

빼앗긴 체력과 마나는 그대로 사라지지 않았다.

“뭘 놀라? 아리아스필, 난 없는 게 있으면 뺏는다고!”

성역 내부에 빼앗긴 마나는 레오나르도의 몸에 축적되고 있었다. 방금보다 응축된 검기의 무게가, 가속된 레오의 속도가 그걸 증명해주고 있었다.

“좋은 머리카락인데? 간직하고 싶을 정도야.”

돌진하던 레오나르도는 잘려버린 머리카락을 잡아들며 신성을 주입했다. 그러자 머리카락은 마치 침처럼 경질화되어 직선으로 펴졌다.

쐐애애액!

그리고 그 머리카락은 다시 원주인인 아리아에게로 다트처럼 날아갔다. 아리아는 성검을 회전시켜 머리카락의 침을 튕겨냈지만 숫자가 너무 많았다.

푸욱...

“...으윽...!”

몇 가닥 뿐이지만, 박힌 지점이 안 좋은 위치였다.

오른쪽 무릎과 왼쪽 종아리, 평범한 침이라면 독이 발려있어도 버틸 수 있지만 지금 하늘은 아리아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흡수하는 양이 늘었어...!’

머리카락에 담긴 검은 신성이 체내에서 더 빠르게 마나를 흡수해내었다.

게다가 위치는 이동을 담당하는 다리 부근, 이미 승부의 결착은 막바지에 다다랐다.

“비겁하잖나! 레오나르도! 승부는 이미...!”

이걸 가만히 보고 있을 일행들이 아니었다. 결계를 파괴하기 위해 모두 결계를 향해 다가갔다.

“외야는 닥치시지? 아리아가 죽었을 때도 혼자 뒀으면서 이제 와서 말이 많아.”

그 한 마디와 함께 붉은 성역의 범위가 늘어났다.

[...너 이 자식...!]

{현자...! 몸이...!}

마나로 이루어진 영체들은 아예 형체가 희미해졌고, 다른 사람들도 몸이 나른해지는 것을 느껴졌다.

“...끝내기 전에 첫 만남 때 빚을 받아야지.”

레오는 아리아의 발을 걸고, 그대로 몸 위로 올라탔다.

양손에는 검을 들고 높게 치켜든 것이 어떤 행동을 하고자 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었다.

“내 심장에 흉터를 남겼듯, 네 심장에도 흉터를 낼거거든...!”

그대로 마검은 하강한다. 승부 따위는 어찌되든 상관없는 눈이었다.

아까의 착각으로 레오는 아리아스필에 대한 열등감이 폭발했다.

죽이지 않을지도 확신할 수 없을...

“...너...”

없을 터였다.

“...가슴이...”

레오나르도는 아리아스필의 가슴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그건 성욕이나 육욕에 의한 시선이 아니었다.

“...왜 다친 거냐...”

아리아의 가슴에는 이미 깊은 흉터가 나있었다.

루미네가 있음에도 저렇게 흉터가 남은 것은 필히 흉터가 남을정도의 중상이었다는 의미.

그리고 모양으로 봐서 누가 그 상처를 냈는지 알 수 있었다. 레오이기 알 수밖에 없었다.

“...내가... 낸 거냐?”

“...그건...”

아리아스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레오는 답을 알고 있었다.

“...”

이내 검은 내려갔다.

“관둘란다.”

다만, 레오의 허리춤 방향으로 거둬졌다.

뒤이어 손가락을 한번 튕기자, 만들어두었던 결계는 소멸했다.

“이 결투는 무승부야.”

뒤늦게 들어온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리고 동시에 아리아의 눈과 흉터를 살폈다.

[...뭐? 갑자기 뭔...]

“싸우기 전에 말했잖아. 무기는 안 쓰겠다고. 그걸 어겨서 이겼으니 승부는 성립이 안 되지.”

억지였다.

그러나 아리아스필에게는 친숙한 억지였다.

마치 레오와 처음으로 만나고 싸웠을 때처럼.

“다음에는 내가 이기겠지만 지금은 봐주지.”

첫 만남의 추억은 아련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누군가의 속마음: ‘제가 진 걸로 해주세요! 제가 졌어요! 졌습니다! 지금이라도 항복하면 안 될까요?! 항복! 백기 들게요! 전 실패자에요!! 전 레오의 영원한 패배자에요옷~♥!’

[프라이버시를 위해 실명을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