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인자는 회귀했다-175화 (175/248)

묶인 지도 2시간이 지났다.

인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또렷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해는 갈수록 혼돈에 빠진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이미 뒈져 버린 ‘망자’들이 하는 소리를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

“...그걸 나보고 믿으라고? 진심이야?”

레오는 불신에 드글거리는 눈동자로 이미 죽어버렸던 일행들을 흘겨보았다.

“...아...예... 그러니까...”

“이봐, 내가 아무리 새치가 많다지만 치매 걸린 노인네로 보이냐?”

설명한 루미네도 레오나르도의 반응에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기억이 사라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기억이 사라졌다면 자신이라도 저리 반응하리라.

“그러니까 지금보다 더 늙은 내가 과거로 회귀해서 10년 정도 니들이랑 부대끼고 지냈는데 갑자기 치매에 걸렸다 거잖아. 안 그래?”

천박하고 걸걸한 방식으로 요약한 내용이었지만, 반론을 제기한 이는 없었다.

오히려 저런 식으로나마 이해하기 쉽게 간략화한 것이 대단할 지경이었다.

“...그게 좀 다르긴 한데요...”

“루미네, 우리들의 자랑스러운 장님 여장 성자님.”

당황스러워하는 루미네의 설명을 레오는 도끼처럼 끊어버렸다. 루미네는 점잖았던 레오가 극단적인 변화와 조롱에 사뭇 곤욕스러워하는 눈치였다.

정말 지긋지긋하고 질린 표정이었다.

“난 말이야. 정말 50년 넘게 살면서 갖은 개소리는 다 들어봤어. 영생의 약이니, 대가 없는 사자소생이니, 금단의 지식이니, 뭐 그런 거 있잖아.”

레오의 눈에는 살기가 등등해졌다.

“이건 내가 들어본 것 중에 가장 질나쁜 개소리야. 알아?”

“...납득하기 어렵겠지만 레오나르도 군, 지금은 믿어주지 않으면...”

“그럼 묻겠는데.”

레오나르도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대부분 면식이 있다 못해 익숙했던 이들도 있었고, 전혀 보지 못한 초면의 녀석들도 있었다

하지만 방금의 대화에서 증거가 될만한 인물은 확실히 보이지 않았다.

“그 ‘현자’라는 노인네는 어딨는데?”

“...그게...”

그게 현재 설명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지금 현자의 영체는 완전히 소멸된 상태, 이미 죽었지만 생사여부도 확실치 않았다.

그 원인은 레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칠흑의 신성에서 바로 알 수 있었다.

{...당신, 그 검은 신성은 어떻게 다룰 수 있는 겁니까? 그보다 회귀 전에도 지니셨다는 겁니까?}

“...생긴 건 새끈한 천사인데, 의외로 머리가 나쁘시네. 백치미도 나쁘지는 않지만...”

자연스러운 성희롱과 함께 레오나르도는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신성에 색이 어딨어? 다 하나의 빛으로 통일인데.”

{...}

“...”

레오의 말은 상식에서는 정론이었다.

신성이라는 것은 본디 빛의 성질을 지닌 마나.

그렇기에 색이라는 개념이 존재할 리가 없었다. 모두 한 가지 형태로 통일되어 있으니까.

{...당신, 본인이 쓰는 신성의 색은 보셨습니까?}

하지만 레오나르도가 그 유일한 예외였다.

어둠에 가까운 신성, 마기와 같은 성질을 지닌 신성력이 레오를 폭주시켰다.

“...당연히...”

이내 본인에게서 나오는 신성을 인지하자 레오의 표정이 굳는다.

“...문제가 있긴 하네.”

“이제... 이야기를 들을래? 아우...?”

고개를 끄덕거리며 우드득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그게 관절이 뒤틀리며 내는 탈골과 골절의 음색이라는 것을 알아채는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20대한테 아우라고 듣는 건, 기분이 더럽지만.”

레오의 양손과 발목과 묶인 밧줄이 풀어졌다.

“...레오 기사님...! 관절이...!”

고작 밧줄을 벗어나기 위해 레오는 자신의 손과 발의 뼈를 꺾고 뒤틀었다. 덕분에 포박에서 풀어지기는 했지만 손발 전부 걸레짝이 되어버렸다.

“이야기 정돈 해주도록 할게.”

투드득...

밧줄에서 벗어나기 위해 꺾어놨던 손과 발의 관절이, 뼈가 붙으며 재생되었다.

“그래도 설마 천하의 라인하르트가 꼭두새벽까지 포박 플레이로 대화할 건 아니겠지?”

백발의 레오나르도는 더할나위 없이 요란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아무도 그 미소에 화답하는 이는 없었다.

* * *

레오가 선택한 장소는 본가의 식당.

식사 시간은 이미 지나 있었지만, 레오나르도는 접대실보다 식당이 백배 낫다며 발길을 고집했다.

“흠...알베르트 집사장님은 안 계신가?”

그렇게 식당을 돌아보던 레오는 돌연 식사를 담당하고 있는 메이드를 붙잡았다.

“...레...레오나르도 님! 네! 집사장님은 휴가를 잠시...”

메이드는 식은땀을 잔뜩 흘리며 질문의 맥락을 이해하고자 했다. 갑자기 중상을 입었던 용사의 유일한 기사가 머리가 하얗게 샌 채로 자신을 붙잡은 건, 도대체 어째서일까?

“존댓말...? 나한테 존댓말을 한다고?”

“...다...당연히 경어를 써야죠...! 기...기사님...”

“...그래...?”

불쾌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괴리감에는 익숙치 않았던 레오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음식은 풀코스로 부탁할게~! 위스키와 테킬라도 한 병씩 부탁하고.”

“...예? 위스키와 테킬라...요?”

“어? 안 되나?”

“...아...아닙니다! 바로 가져오겠습니다!”

미쳐버렸다 생각될 정도로 변해버린 레오에게서 벗어나고자 메이드는 급히 식당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술은 싫어하는 게 아니었나? 취중에서의 대화는 도움이 되지 않을 텐데.”

“괜찮아. 가주. 날 취하게 하려면 아까 뱀독 수준은 되야하거든.”

동시에 레오는 아리아의 옆에 있는 아인을 바라보았다.

저 소녀에게 당했던 마비독은 인상적이었다.

자신이 취약해하는 형태의 독들,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나 약화시키고 정지시키는데에는 최적화되어 있는 독들을 조합하여 자신을 가사 상태에 빠뜨렸다.

자신이 직접 약점을 알려주지 않고서야 그런 재주는 부릴 수 없었을 테지.

“...그래서 요약해볼까?”

메이드가 가져온 술병들을 직접 받아오며 레오는 일가들을 천천히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너희들은 라인하르트 일가지만, 내가 알고 있는 라인하르트 일가는 아니야.”

잔도 없이 술을 들이켜는 레오의 손가락은 루미네로 향했다.

“너도 내가 알고 있는 루미네 앙겔루스는 아니고.”

삿대질이 천사인 앤젤라에게 향하자 위스키의 병이 비워졌다.

“그쪽은 300년 전의 대단하신 성녀님.”

그리고 데킬라의 병을 열자마자 레오의 손가락은 아인을 마지막으로 멈췄다.

“넌 누군지 모를 유능한 꼬맹이, 아마 역사가 바뀌어 나타난 잔해라고 판단되는데 맞나?”

아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며 레오는 퍽 웃겼는지 비어진 술병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허...참, 차라리 그 자리에 죽는 편이 기분은 나았겠어.”

“...이야기는 믿어주시는 건가...요?”

아리아스필은 조심히 레오의 눈치를 살폈다. 지금 여타 레오와 다르게 야생마처럼 난폭하고 뒷골목의 건달처럼 거칠었다.

그런 만큼 더욱더 세심히 레오의 감정을 살필 필요가 있었다.

“네가 나한테 쓸데없는 호감을 보이는 것 빼고는 믿을 수밖에 없어서.”

“...윽...”

아리아의 심장을 사포로 긁어내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바보가 아니여도 레오의 적의는 알 수 있었다.

그것도 아리아에게는 특히나 말이다.

“쓰읍, 그것보다 당최 이해가 안 되네?”

레오나르도는 과장되게 고개를 가웃거리며 입으로 숨을 차대었다.

“뭐가 이해가 안 되지?”

“댁들과 내 관계.”

레오는 아까의 추리가 완전히 헛다리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 발정났다 말한 것이나 서큐버스 퀸이라 칭한 것은 과장을 섞은 것이고, 익숙지 않은 신성에 의한 실수라 쳐도.

아리아는 확실히 자신에게 호감을 지니고 있었다. 적어도 기사 이상의 관게일 테지.

“솔직히 지금 설명으로는 전혀 감이 안 잡히거든.”

아리아 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이들도 신성으로 분간할 수 있었다. 모두 자신에게 필요 이상의 호감과 호의를 품고 있었다.

지금의 무례가 허락된 것도 그 감정으로 인한 배려일 터.

“댁들이 시체가 됐던 때와 괴리가 어느 정도인지는 설명을 듣고 싶은데?”

하여 레오는 성질을 돋우기 위해 비아냥대는 어투를 대었다.

전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토가 나올 정도로 역겨웠다.

“...좋네. 자네가...”

무례에도 글라디오는 당황치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냉정을 유지하는 것이 가주로서의 책임이었다.

“아니, 댁 말고. 라인하르트에서 제일 센 사람이 대표로 말해. 그편이 예의라고 생각되는데.”

그게 누굴 의미하는지 라인하르트의 이들은 명백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설명하라는 거지?”

“아~ 딱히 너라고는 안 했는데. 여기 용사님은 많이 자의식이 과잉되셨네.”

“...그럼 누가 하는데?”

조롱에도 아리아스필은 분노하지 않았다.

평소라면 분명 감정에 흔들렸을 테지만, 레오의 목적이 노골적으로 보였기에 화가 날 것도 없었다.

“그럼 해보시죠. 용사님.”

루미네는 아리아의 소매를 붙잡으며 작게 속삭였다.

“...흥분하시면 안 됩니다. 지금 레오 기사님은...”

“알고 있어요.”

지금 레오나르도가 가장 증오하는 이는 아리아스필 본인.

지금 시선 하나하나에서도 살기가 엿보이고 있었다.

“...나에게 레오는...”

아리아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지금 연인이라 말하는 것은 저 레오에겐 오만이자 기만이 아닐까.

아리아스필 본인은 계속해서 속으로 곱씹고 있었다.

그렇다고 친우나 동료를 운운할 수도 없었다.

[...결국... 아무 관계도 아니잖아...!]

그 말이 아리아의 귓가에는 아른거렸다.

다가가서는 안 되었지만, 그렇다 하여 도망쳐서도 안 됐다.

“...내 목표였어.”

긴말은 아니었다.

용사와 기사로서의 여정도, 함께했던 일상도, 나누었던 사랑을 말한 것도 아니었다.

그걸 말한다는 것은 이기심이라는 것을 아리아는 알고 있었다.

레오의 얼굴에 냉담했던 미소가 사그라들었다.

“...하.”

짧은 숨이 내뱉어진다.

“좋은 술이였는데... 확 깨게 만드네.”

레오는 부스스한 자신의 백발을 뒤로 넘겼다. 그의 붉은 눈은 천사에게로 향했다.

“아까 누님, 나한테 까만 신성이 어쩌고 했지?”

{맞지만 그런 언행은 주의해주십쇼. 현자의 후계자라 해도 그런 말은...}

“사람이 살해의식 죽이고 이해적으로 해결하려 하는데 잘난 듯이 훈계하면 질문 대답 안 한다. 비둘기.”

그 언행에 다들 앤젤라를 포함한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어째서 현자가 레오를 후계자로 삼았는지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누가 보면 레오가 현자의 친아들이라 생각될 정도였다.

“우선 확실히 해두자면 내 신성은 용사인 너도, 성자인 너에 비해 허접해도 확실한 빛의 신성이야.”

아리아도 기억하고 있다. 회귀 전 레오의 신성력은 빛의 형태로 띄고 있었다.

금제라는 외도의 방식을 택했어도 그건 분명 일반적인 신성과 성질이 일치했다.

“근데 이 검은 신성을 통제하는 건 어찌저찌 될 것 같단 말이지. 대충 어떻게 써먹을지는 알겠다는 느낌이 들어.”

레오나르도는 외부에 검은 신성을 다시 방출했다.

일행들은 반사적으로 무기를 치켜들었다. 공격의 의도보다는 방어와 제압의 목적으로 무기를 잡았다.

“...아서라. 지금은 죽일 기분 아니니까.”

레오는 자신의 손아귀를 펴 다섯 손가락에 검은 신성을 응축시켰다.

“내 심장에 그 현자의 돌이라는 게 박혀있다며?”

“...그렇긴 하지만... 그게 왜...?”

“공교롭게도 내 심장에도 지금이 이 새까만 신성이 듬뿍 차있거든.”

그 두 문장으로 현자의 실종은 설명할 수 있었다.

레오의 다섯 손가락은 가슴팍에 박혀든다.

표정은 무표정했다. 살점을 헤집는 소리가 울림에도 레오의 표정에는 떨림이 전혀 없었다.

“...레오...! 위험...!”

“이제와서 말하는데 날 레오라고 부르지 마라. 정신 사나워져.”

심장에 있는 검은 신성이 질척하게 손가락에 끌려나왔다. 심장에 있는 신성이 점차 비워졌다.

“...오... 이제 좀 보이는 것 같네.”

심장 부근에서 현자의 마나가 점차 응축되었다. 현자는 처음부터 신성, 그것도 검은 신성에는 취약한 면모를 내보였다.

이윽고 현자의 영체가 점차 복구되었다.

[...으아...! 레오! 성검에...!]

“...이건 진짜 아닌 것 같은데.”

현자의 유령을 바라보는 레오나르도의 눈은 정말 싸늘했다.

레오 뿐만 아니었다. 라인하르트 일가도, 아리아스필도, 리오스나 루미네마저도 충격에 빠져 싸늘한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현...현자님 왜...?”

[...뭐가? 지금은 레오가 더 문제잖...]

시선의 방향을 파악하자 현자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아...지금 안 되는데...]

현자는 급히 자신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네의 얼굴이라고는 하기에는 지나치게 부드러웠다.

[...왜 하필 지금...!]

현자의 푸른 눈, 흰 머리칼은 그대로였지만, 그의 몸은 완전히 짜리몽땅한 소년이 되어있었다.

“...이 미취학 아동이 현자는 아니지?”

레오는 현자를 내려다보며 손가락으로 삿대질했다.

이는 현자 사후 가장 수치스러웠던 굴욕이었다.

참고로 생전에 가장 큰 치욕은 지금 뜨거운 숨을 헉헉거리는 성녀 앤젤라와 용사 루벤만이 아는 비밀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레오는 생각하는 자신은 죠스타 가문에 간 DIO 정도일 겁니다.

흠... 먼 미래에 죠죠의 몸을 갖는다는 점에서 비슷할지도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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