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화염은 쉼없이 타오른다.
일반적인 마법이 아닌, 마기에 타오르는 업화.
“[더... 타올라야...]”
마기의 불꽃은 스스로의 몸집을 불려나가는 괴물처럼 주변을 집어삼켜갔다.
[적탑은 300년 전부터 싹수가 빨갛다 생각은 했는데...쯧... 결국 이렇게 되는군.]
현자는 끌끌 혀를 차면서도 애석한 눈으로 저 마염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지금이 현자에게는 마탑에서 봐왔던 그 어떤 것보다도 가슴 아픈 상황이 아닐까.
레오에게는 그 감정이 사뭇 무겁게 다가왔다.
[...자식아, 넌 그런 표정 짓지 마. 지금은 복수하는 때잖아. 가해자한테 가해하는 행복을 즐기라고.]
현자의 경박한 말은 그 감상을 깨부수며 현재의 싸움에 집중시켜준다.
“...알았으니까 그럼 저 불꽃부터 어떻게 해야할지 알려주세요.”
레오의 건방진 말투가 돌아오자 현자는 피식 웃으며 판넬의 목소리를 실으며 책략을 짜내었다.
판넬의 비행하며 회전할 때마다 마법의 범위가 넓어지며 텔레파시의 속도가 가속되었다.
[저 불은 마왕 때와 동급의 마기를 품었어. 주된 효과는 한번 붙은 불은 정화하지 않는 이상 꺼지지 않는 거지.]
{그럼 제가 성검으로...}
[아니, 성검은 화염 마법 대용으로 쓰긴 적합하지 않아.]
성검은 본디 빛의 힘을 지닌 성스러운 검.
마염을 걷어내는 것은 가능할지 몰라도, 화염 마법에 대응하는 것에는 썩 적합한 무구는 아니었다.
<그럼 저희가 해결하죠.>
[마법진하고 계산값은 내가 전해서 해결할 수 있어. 중요한 건...]
현자의 시선은 적탑주의 검붉은 화염으로 향했다.
적탑주라고는 볼 수도 없는 자색 불꽃의 덩어리는 1초도 안 되는 일행들의 문답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다른 마탑주들은 죽지는 않았지만, 아직 공격 내 범위에 있었다. 저 자색 불꽃은 닿기라도 한다면 회복할 수 없을 만큼 몸이 타오를 것이다.
[마무리를 짓는 거야. 성검으로.]
그 한 마디에 아리아가 성검을 쥔 소리가 울렸다.
몸이 쥐어터졌다고는 하나, 저 화마를 유지하고 있는 본체는 존재했다.
그 본체를 베어버린다면 저 억척스러운 불꽃도 사그라들 것이다.
“알겠어요.”
“그럼...”
[시작해보자고.]
이 짧은 문답을 통해 전략은 형성되었다.
전위에 선 소녀는 용사의 후예.
후위에 선 청년은 현자의 후예.
후위에 서고 있다고는 하나, 화마에 대한 대응은 레오나르도가 맡았다.
검은 돌의 장검을 양손에 쥐며 후방에는 겹쳐진 6개의 판넬이 펼쳐진다.
[어설프지만... 오랜만인 걸.]
쓰러져 있던 마탑주들은 위험 상황에 자신들의 시선이 생존과 전혀 무관한 방향으로 향했음을 인지했다.
이성적일 터인 마법사의 본능이 그들의 시야를 한 곳으로 집중시켰다.
[어디, 기강 좀 잡아볼까.]
현자의 마법 술식이 레오나르도의 머릿속에 흘러들어온다.
100자릿수는 족히 넘어가는 술식의 변환, 무예와 마법의 아리아의 형식으로 이미 재편찬한 것임에도 이해하는 것에 뇌에 부하가 작용한다.
<...제 기강까지 빠듯이 잡고 계시네요...!>
흘러나오는 코피에 신경쓸 겨를도 없이 레오나르도는 그대로 해석한 마법진대로 판넬과 검을 움직인다.
[몰랐어? 원래 마탑은 연대책임이야.]
뻔뻔한 말과 함께 검격에서 마법이 발현된다.
마탑주들은 그 기적과 같은 마법에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만약 몸에 불이 붙어있다 할지라도 저들은 저 마법을 눈에 담아둘 것이다.
서클 마법이되 서클에 구애받지 않는 마법.
“[어떻게...]”
마법진이 형성될 때마다 마기를 바탕으로 된 화염이 점차 사그라든다.
그건 불을 끈 것도, 냉기로 열기를 상쇄한 것도 아니었다.
흑마법이라고 할지라도 마법의 일종.
하물며 적탑주는 흑마법에 사용에 능숙치 않았다.
마기는 그저 마법에 저주 추가와 화력 증가를 사용하는 추진제일 뿐, 아이러니하게도 그 덕에 그녀가 사용한 화염 마법의 근간은 서클 마법에 가까웠다.
고로 마법을 역산해 분해해는 것 또한 가능했다.
“[어떻게...! 도대체...?!]”
온몸이 불타는 적탑주는 영혼마저 그 존재에게 넘겼음에도 이 현상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피부가 없음에도 전신의 땀샘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듯한 위기감이 느껴졌다.
그 존재는 분명 저 불꽃이 꺼지지 않는 업화라 말했다.
한번 붙으면 끝도 없이 불씨가 이어지는 화염이 이어질 거라고, 그녀의 익어가는 뇌세포는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저 마법은 뭐란 말인가?
검격이 닿는 부분마다 마기와 화염은 족족 사라지고 있었다.
그게 사라지는 것이 아닌, 역산 계산을 통한 분해 현상이라는 것을.
적탑주의 불타버린 지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으...그아악....!!]”
비명이 울린다.
답답한 감정에 적반하장의 포효가 울렸다.
난잡하게 뿌려진 화염이 형체를 갖는다.
화염을 두른 검은 거인, 구태여 정령에 비유하지 않은 것은 그 거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더러운 사기 때문이었다.
촤아아아악!
이번에는 용사의 참격이 그 거인의 팔을 날려버렸다.
“...칫...!”
원래는 전신을 날려버릴 기술이었다.
몸집이 쓸데없이 불어나지 않았더라면 성공했을 텐데, 저 가증스러운 년은 지금까지도 버티며 농성했다.
[...허, 발악을 하는군.]
하지만 현자에게는 ‘고작’이라는 감탄이 나올 귀여운 수준의 마법이었다.
[야, 레오. 내 식대로 해도 되지?]
으득, 이빨이 갈리는 소리가 울렸다.
현자는 저 건방진 마법사에게 가르쳐주고 싶었다.
그녀가 버린 마탑의 지혜가 어떤 것인지.
그녀가 죽인 이들은 어떤 심정이었는지.
그녀가 누구의 제자를 건드렸는지를.
톡톡히 녹아내린 내장과 뼈에 새겨줄 것이다.
<언제는 허락받았습니까?>
[새끼.]
현인의 얼굴에 피식 웃음이 났다.
[잘 아네.]
휘두르던 장검이 자의적으로 지팡이로 변한다. 검은 몸체에 붉은 구슬이 꽂혀 있는 것이 마치 홍옥처럼 빛났다.
“[야, 아리아. 마지막에 때리는 것만 노려.]”
“어! 어...네?”
아리아스필은 벙찔 수밖에 없었다.
그 말은 마치 현자와 레오가 동시에 말한 것 같았다.
“[...네... 이놈... 레오나르도... 너만큼은...]”
화염에 형상이 생긴 만큼, 그에 따라 적탑주의 지성도 회복되었다. 막무가내로 집어던지던 보랏빛 화염에도 균형이 생기고, 기술이 입혀졌다.
“[적탑주 제인 나르샤.]”
레오나르도의 양눈은 저 죄인의 면전을 향해 흔들림 없이 직진했다.
[난 마법의 정수이자 모든 마법의 시초, 현대의 마법을 정립한 이로서,]
현자의 푸른 눈 또한 곧바르게 저 죄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내 애제자인 레오나르도, 벗들인 초대 마탑주들의 명예를 위해 널 벌하겠다.]
판넬이 회전한다.
“[무슨 헛소리...!]”
적탑주의 말은 끝까지 나오지 않았다.
[베르난 베르데인이라고 했나?]
“...예?”
부상을 스스로 치료하고 있던 흑탑주는 경악한 표정으로 자신의 우상을 바라보았다.
[네 마법은 볼만 했어. 내 시대 때에도 통용될 정도로 훌륭해. 흑탑주.]
칭찬에 잇따라 레오의 그림자가 움직인다.
판넬의 그림자는 지면에서 솟아오르며 다시 회전에 참가했다.
‘...마법진이 겹쳐지고 있어.’
흑탑주를 포함한 모든 마탑주들은 경악했다.
무예와 마법의 아리아는 장점을 극대화시킨 사용법.
부족한 레오나르도의 서클과 마나를 고유 마법을 조합하는 것으로 만회하고 극대화시켰다.
추가된 판넬은 회전하고, 또다시 회전하여 거대한 포신을 만들었다.
레오나르도의 수준만으로는 도저히 쓸 수 없는 마법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영광으로 알아라. 이건 마왕을 잠시지만 물러나게 한 대마법이니까.]
흰 빛이 응축된다. 신성에 다가고자 했으나 실패한 연구의 부산물.
그럼에도 그 빛은 신성에 비견될 만큼 찬란했다.
닿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은 분해시키는 삭제의 마법이 지금 재현되고 있었다.
아무리 그런 대마법이라 할지라고 해도 지금 재현될 수 있는 근간은 ‘무예와 마법의 아리아’.
그랬기에 발동을 위해서는 영창해야했다.
“[신살(神殺)]”
외침에 응한 마법은 응축시킨 빛을 발산시킨다.
포신은 차례대로 폭발한다.
빛이 나아갈 때마다 한 차례씩 회전하던 복제 판넬이 튀어나가며 부서진다.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본디 이 마법은 스스로의 능력으로 발현시켜도 위험한 미완성품.
작은 풍선에 바닷물을 욱여넣은 것이나 다름없는 기행.
그런 억지를 고유 마법을 통해 재현시킨 것도 현자였기에 가능한 기적이었다.
“[...저건...]”
“...이건...”
그 직진하는 빛줄기를 보며 마탑주들이 생각한 문장은 하나였다.
으레 사람들이 ‘기적’을 치환시켜 부르는단어.
하지만 마법사로서 한번도 담지 않은 비유이기도 했다.
‘마법 같다.’
마왕을 물러가게 한 일격이 적탑주의 전신을 날린다.
화염을 확산시켜도 불은 더는 붙지 않는다.
신살은 마나의 근본을 분해시키고 있었다.
동시에 분해시킨 마나를 연료로 마법을 가속시킨다.
마왕을 물러가게 했다는 것이 허풍이 아니라는 것이 이해되었다.
마왕이 대수인가, 용사조차 저 공격에는 멀쩡치 못할 것이다.
“[끄아]...아...!”
비명조차 이어지지 않았다. 소리, 그리고 목소리에 섞인 마나조차 저 신살은 분해내고 있었다.
지금 자신이 비명을 지를 수 있었던 것은 그저 분신은 영혼만큼은 생존시키기 때문.
저 진짜 마법 앞에서는 새로운 힘 따위는 한없이 장난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아리아스필! 지금이다!]”
그 목소리가 울렸을 때에는 이미 적탑주의 시야은 다른 곳에 있었다.
서걱
신살의 틈에서 미동하듯 울리는 절삭음.
시야가 포물선 방향으로 떠올라 돈다.
그리고 지면으로 떨어지며 몇 번 굴렀을 때, 그녀의 눈을 가리고 있던 화염은 꺼뜨려졌다.
“...당신은...”
잘려진 적탑주의 눈에 보인 것은 유령이었다.
죽음에서 보이는 환상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확연한 존재감.
“...현자...?”
적탑주는 그제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진정으로 자신이 배신한 편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왜 더 일찍...”
그녀의 머리는 천천히 사라진다.
신성이 그녀의 머리에 타고 소멸시키고 있었다.
지금 하는 말이 그녀의 마지막 유언이 될 것이다.
“왜 더 일찍 나타나지 않으셨습니까...?”
현자의 눈은 싸늘했다.
저 질문이 아니더라도 그녀는 충분히 경멸스러운 악인이었다.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타인의 부모를, 모두의 마탑을 짓밟은 죄는 죽음으로 씻을 수 없을 정도로 무겁다.
현재는 하물며 악‘인’이라 칭하기도 어려운 괴물.
그런 질문에 현자는 친히 입을 열었다.
[난 언제나 있었다. 깨닫지 못한 것은 네 년 한 명뿐인 것 같지만.]
“...그렇습니까...”
제인 나르샤의 눈은 풀어졌다.
현자의 마법이라면 이리 패배하는 것이 영광일지니.
자신의 어리석은 선택에 후회와 죄악을 느낄 뿐이어...
[그리고 너 말이야 쪽팔리니까 어디 가서 마법사라고 말하지 마라? 알았지? 나 참, 표정이 ‘졌지만 잘 싸웠어.’ 같으니까 말해주는데. 너 레오보다 좇밥이거든. 어? 알았으면 산소하고 마나 아깝게 떠들지 말고 뒤져라?]
“잠...!”
적탑주는 더 이상 말을 쏟아낼 수 없었다.
그건 다른 마탑주들처럼 벙찌는 사이.
레오의 발이 적탑주의 면상을 짓눌러 으스러뜨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저번에 형이 특촬물을 보고 있던 저에게 아직도 그걸 보냐며 놀리더군요.
그래서 보던 가면라이더 아마존즈를 보여줬습니다.
아마 형도 가면라이더에 나오는 히어로의 참맛을 느꼈을 거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