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오스가 적탑주가 있던 자리에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두 가지의 행운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첫 번째는 아리아스필의 빠른 정보 통신.
[오빠...!]
폭발 때문에 텔레파시가 사용 불가능해지자, 아리아스필은 급히 주변에 있는 정령을 소집해 정보를 전달했다.
“...아...아리아? 괜찮아?!”
“아리아스필? 레오나르도는 괜찮은 건가?!”
아인의 비행 속도가 생각 이상으로 빨라 정령을 운용할 수 있는 사정거리로 들어올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행운이었다.
[그게...지금 적탑주랑 다시 싸우고 있는데...]
“그게 무슨 말인가?! 그럼 방금 폭발한 건 다른 이라는 건가? 그보다 어째서 같이...!”
[아 좀 다물어요! 말 좀 하게!]
에일린이 걱정하듯 아리아도 걱정되기는 매한가지였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레오의 실력을 신뢰하기에 지금 다시 마탑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적탑주는 자기 몸을 복제했단 말이에요.]
“...자기 몸을?”
그 말에 리오스는 자연스레 라인하르트 연회 때의 일을 기억하게 되었다.
그때 레오의 어머니는 진짜는 아니었지만, 물리적으로 신체가 두 명분이 있었다.
그걸 적탑주 본인의 몸에 적용시킨다면 목숨이 추가적으로 있다 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잠깐만...! 그렇다면...!”
[레오 말로는 마탑 내부에 적탑주가 따로 있을지도 모른데. 그러니까...]
그 이상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내부에 적탑주가 있어...!”
그 사실을 안 에일린과 리오스는 황급히 마탑 내부로 돌입했다.
내부에 적탑주 본인이 있다는 것은 다르게 말하면 아까와 같은 대폭발을 일으킬 수 있는 폭탄이 설치되었다는 의미였다.
그렇기에 적탑주는 찾고 제압하는 것에 일행들은 전력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마탑 내부로 향한 리오스는 두 번째 행운을 찾게 된다.
‘...이건...’
두 번째 행운은 도서관으로 향한 것, 그게 현재 리오스에게 있어 가장 큰 행운이었다.
도서관에는 적탑주의 화염이 그을린 자국으로 남기도 했으며, 동시에 아메리의 순간이동 지도의 흔적도 남아있었다.
그랬기에 리오스는 보다 빠르게 아메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판단을 마칠 수가 있었다.
‘...순간이동의 좌표를 역산해서...’
아메리의 지도는 본래 리오스의 조력으로 만들어진 마도구, 구조에 대한 이해도로는 제작자인 아메리에게도 못지않았다.
적탑주가 남은 지도 조각을 보고 좌표를 추적했던 것처럼, 리오스는 아예 이동의 흔적만 보고도 아메리의 위치를 알고 순간이동을 시전할 수 있었다.
***
그렇게 현재.
“아메리.”
리오스가 그 불길이 들끓는 현장으로 바로 등장할 수 있었다.
“...어...어...?!”
그런 리오스의 등장에 아메리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 속으로는 몇 번이고 구해주기를 바라오기는 했지만, 정말로 이 긴박한 순간에 즉각적으로 등장할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그런 아메리의 상태를 배려할 여유가 없던 리오스는 현자의 지팡이를 든 채로 냉랭한 지시를 내렸다.
“얼른 그 멍청이 들고 바깥으로 도망쳐”
레굴루스는 멍청이라 자신을 하대하는 리오스의 표현에 뭐라 반박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하기엔 리오스의 기백이 두려울 정도로 서늘했고,
본인은 짐덩어리라 표현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말해야할 정도로 무능력했으니까.
“...저 미친년은 내가 상대할 테니까,”
리오스의 손은 눈에 보일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유일하게 떨리지 않는 것은 눈빛과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두 다리 뿐.
아메리는 리오스가 저 말을 어떤 각오로 내뱉었는지 이해해버렸다.
“...얼른!!”
리오스의 일갈에 아메리는 급히 황자를 등에 업었다. 적탑주의 화염은 그런 둘의 대화를 그대로 들어줄 만큼 배려가 넘치지 않았다.
퍼어어엉!!
“이야기는 끝났는가?”
폭발로 생긴 것은 으레 생기는 검은 매연이 아니었다. 화염과 물이 만나면서 생기는 흰 증기, 그 증기가 점차 걷히며 리오스의 얼굴이 다시 드러났다.
“아니, 댁이 다 망쳤잖아.”
리오스의 얼굴에는 살기가 등등했다.
아마 점토사를 상대했을 때에도 저런 표정을 짓지는 않았을 것이다.
“...재밌었어? 다 알고 있는 채로 기만하고 있어서?”
그건 단순한 적의가 아닌, 배신감이라는 새로운 감정이 덧씌웠기 때문이라 짧게 추측이 가능했다.
“...너 때문에 아우가...”
믿었던 인물에게 자신의 동생이나 다름없는 레오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생각하니.
“레오가 어떻게 살았는지 알기나 해!?”
리오스의 얼굴은 자연스레 일그러진다.
“...하...”
적탑주는 이젠 대꾸하기도 귀찮다는 듯 한숨을 내쉰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가치도 이해하지 못하는 저 무지렁이들에게 일일이 대꾸하는 것도 지긋지긋했다.
본래라면 자신은 마탑에 황자와 있는 것으로 알리바이가 성립되고.
경보를 일으킨 이는 또다른 몸으로 대화하든, 제거하든 정리해서 시체를 불태울 생각이었다.
하지만 예상 외의 상황은 계속해서 벌어졌다.
애시당초 자신은 연구한 샘플이 레오의 부모였다는 것부터 일의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이었다.
“...그래서 죄책감이라도 느끼길 바라나? 리오스 라인하르트?”
적탑주의 지팡이에서 불이 타올랐다. 용사 일행을 상대하던 몸들은 이미 터지고 뜯겨 패배했다.
그래서 차라리 황자를 인질로 잡고자 했다. 어차피 마탑에서의 인생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고, 그럴 바에는 연구 자료라도 챙기는 것이 답이었다.
황자는 그에 필요한 인질이었고.
“뭐... 자네여도 상관없겠지.”
리오스도 라인하르트라는 용사 명문가의 장남.
인질로서의 가치는 레굴루스 황자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적당히 제압해서 서클을 깨부순 뒤, 사지를 녹여버리면 자료를 전부 뺄 때까지의 사용할 수 있는 인질이 될 수 있었다.
‘...최대한 조종 방식을 집중해서...!’
쏟아져 나오는 물이 창날처럼 솟아오른다. 얼음으로 고체화된 것은 아니었다. 액체 스스로가 의지를 지닌 것처럼 물이 아예 대형 창처럼 회전한다.
“...늘 자네 고유 마법을 보면 떠오르는 것이 있지.”
이윽고 회전하는 창날이 그대로 발사된다.
“미숙하다.”
치이이익
날아오는 고유 마법의 창들은 화염에 맥없이 증발한다. 물로 이루어졌다는 전제가 허무할 정도로 창들은 화염에 일일이 증발된다.
“자네 고유 마법은 기가 찰 정도로 미완성되어있어. 같은 마법사라는 게 수치스러울 정도야.”
그 조롱에 리오스는 손을 부들거리며 떨면서도 반박하지 못했다. 적탑주의 말은 본인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었다.
자신이 만든 물의 고유 마법은 어디까지나 저수 지역 한정용, 건조한 지역에서 사용하면 하잘 것 없는 위력을 자랑하는 불완전한 마법이었다.
하지만
퍼어엉!!
그렇다고 해서 그게 싸움을 포기할 만한 이유가 되지는 않았다.
증발한 수증기들은 다시 압축되며 이내 적탑주의 정면에서 폭발했다.
‘...수증기 형태는 오래 가지 않지만...’
단발 위력만큼은 기체 형태일 때가 유리했다.
“...호...”
여유를 부리던 적탑주도 증기의 폭발에는 베리어를 구축하며 방어에 집중했다.
‘...다시 창을...’
지금 중요한 것은 적탑주의 베리어를 깨부수는 것.
그리고 물을 닿게 하는 것으로 저 여자의 체내 수분을 조종하는 것이었다.
아직은 천장 내 파이프에서 물을 공급되고 있었다. 수도가 끊기지 않았다는 점에서 승산은 남아있었다.
이내 다시 물의 창들은 다시 형성되었다.
“확실히 물이 있으니 마법이 제구실을 하는군. 그렇다면...”
그런 물의 창을 보며 적탑주는 응수한다는 듯, 거대한 화염의 구체가 형성되었다.
리오스의 창날들이 발사될 틈도 없이 거대한 화염 덩어리는 그대로 천장 틈으로 투척되었다.
⸺⸺
⸺⸺⸺⸺
폭발이 울렸을 때는 이미 늦어있었다.
화염이 작렬했을 때에는 반 정도만 무너져 있던 천장은 완전히 반파되며 그대로 잔해가 떨궈졌다.
“...젠장...!”
리오스는 폭발에 대한 방어만 집중하다 천장 잔해에는 대처하지 못해 그대로 깔려버렸다. 압사하지는 않았자만, 대처하기에는 이미 부상이 너무 컸다.
“...이거 물이 없으니 맥을 못 추는군.”
적탑주는 잔해 사이를 유유히 걸으며 잔해에 깔린 리오스를 바라보았다.
아끼의 폭발에도 흘러내려오는 물의 양은 전혀 늘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화염으로 벽과 파이프들이 엉겨붙어 완전히 막혀버렸다.
지금 상태로는 적탑주를 공격하기는커녕 잔해를 들어올릴 마법조차 준비할 수 없었다.
“...하아...하아...”
“고통스러워 보이는군. 리오스. 아까의 용기는 어디로 간 거지?”
리오스의 호흡은 점점 빨라졌다. 산소를 운반할 피가 점점 외부로 흘러나갔기 때문에 몸은 산소를 호흡으로 채우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그것도 의미는 없었다. 리오스는 점점 죽어가고 있었고, 그에 비해 적탑주의 몸에는 상처 하나 나있지 않았다.
“그거 아나? 난 자넬 그 잔해 속에서 구할 생각이라네. 자네는 살아있는 편이 나에게 이득이거든.”
적탑주는 진심이었다.
리오스를 살려두면서 인질로 쓰는 것이 적탑주에게는 더 큰 이득이었다.
연구 자료를 챙기고 탈출하는 동안, 리오스는 좋은 미끼가 될 것이고, 덤으로 흡혈귀에게 데리고 간다면 나름대로 좋은 자원이 될 것이다.
그러니 죽일 리가 있나.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상태로 만드는 것이 훨씬 큰 이득인데.
“...자... 이제...”
촤아아아아악!!
그 순간, 리오스의 혈액이 튀어오르며 칼날처럼 날아갔다. 베리어를 차례로 깨부서가며 칼날은 적탑주의 목죽지를 향해 돌진해갔다.
“...건방지군.”
치익...
그 혈액마저 적탑주에게 감싸진 화염에 즉각 증발된다.
“...하아...쿨럭...”
통한의 일격이 실패한 것에 대해 비통한 감정이 느껴진다.
아까의 기습이 리오스에게는 최선이었다.
이제는 혈액을 조종할 마나도, 몸을 가눌 체력도 없었다.
점점 죽어가는 것이 호흡으로 느껴졌다.
덜컷 죽는다고 생각하니 죽음이 두려워진다.
너무 같잖게 죽는 것 같았다.
여동생과 아우는 적탑주 본인을 간단히 해치웠는데, 자신은 고작 몇분조차 못 버티고 이렇게 민폐가 되어가는 꼴이다.
이대로 적탑주에게 잡힌다면 자신은 그저 인질로서 폐가 될 뿐이었다.
슈욱...
혈액이 다시 움직이며 팔을 타고 올라간다.
남은 방법은 자결 밖에 없었다.
이대로 가면 적탑주가 연구 자료를 챙겨나간다면 그거야말로 패배였다.
‘...아메리 보고 싶네.’
막상 죽고자 하니 그 처녀가 리오스의 머리를 스쳤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장난은 덜 치는 건데, 하는 생각이 깊게 배여든다.
아니면 차라리 제대로 고백이라도...
“...리오스!!”
그때 리오스가 그토록 애타게 바라던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어?”
리오스가 눈을 제대로 떴을 때에는 아메리가 자신을 안아들고 있었다.
“...아메리...?!”
리오스의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이 스친다.
지금 네가 오면 어떡하냐 위험한데
그보다 어떻게 자신을 안아든 것이냐.
적탑주는 어떻게 된 것이냐.
아메리는 그런 질문을 전부 들은 거럼 한 문장으로 압축해 대답했다.
“마탑주님들 데리고 왔어!! 지금!!”
이미 적탑주와 남은 3명의 마탑주는 서로 교전하고 있었다.
그 든든한 한 마디에 리오스는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이래서 널 좋아하나봐... 아메리...”
소꿉친구는 진리였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그래도 소꿉친구는 진리라고 전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