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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자는 회귀했다-163화 (163/248)

“...으어...”

“...저...아메리 씨?”

기껏 찾아간 아메리의 상태는 초췌하다 못해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그녀는 반지가 없었을 때처럼 검댕을 눈가에 직접 바르기라도 한 듯 진한 다크서클이 눈에 베여있었다.

“...아, 레오나르도 군...! 오셨군요...!”

초췌해진 그녀를 보자 레오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입가에서 나는 진한 커피향은 그녀가 얼마나 피로한 지를 후각으로 설명해주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아...예! 괜찮아요!”

다크서클이 잔뜩 그려진 눈웃음이 그 대답의 신빙성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아... 황자 님께서 말씀해주신 내용을 조사해보고 검토해보느라... 시간이 좀 걸렸어요.”

황자가 말했던 아다만티움으로 만들어낸 제3의 현자의 유산.

현자 본인과 대놓고 쌍욕까지 하는 막역한 사이인 레오로서는 전혀 흥미 없는 소재였지만, 아메리에게는 아닌 눈치였다.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아요. 설계도...라고 해야 될까요. 그런 것도 있는데...!”

아메리는 다크서클 위로 눈빛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찾아낸 고서문을 내밀었다.

“...아...”

이젠 빼도 박도 못하겠다. 설계도만 봐도 알 수 있겠다.

[이건 어디서 났데? 원본은 휴지 대신으로 썼는데.]

...그 휴지가 화장실 뒤처리로만 쓰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레오의 유일한 바람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저 대학원생이 불쌍하다 못해 안쓰러우니까.

“물건 받으러 오신 거죠?! 얼른 앉아보세요!!”

다행히 레오가 죄악감을 더 느끼기도 전에 아메리는 스스로 화제를 돌렸다. 그러는 것과 동시에 흰 천으로 둘러진 수제 마도구를 챙겨오는 것은 덤이었다.

“완성해주셔서 감사해요. 많이 힘들었을 텐데...!”

“아뇨아뇨! 설계도면만 봐도 즐거워서 오히려 맡겨주셔서 영광이에요! 예산도 많이 주셨잖아요!!”

피로한 기색이 싹 가실 정도로 아메리는 흥분한 채로 제작한 마도구를 자랑스러워했다.

평소 마탑에 있을 시절에도 여러 과제를 도움받고, 현자의 유산으로 지식을 함께한 아메리로서 레오나르도를 도울 수 있는 것에 거리낄 것이 없었다.

게다가 레오나르도가 부탁한 마도구의 매력은 만들 때마다 마법사로서의 재미를 자극해서 창작의 가속을 가했다.

“확신하건대! 이건 제가 만든 역작이에요!! 원격으로 작동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마 다른 형태로 양산하면 손이나 다리에 결손이 있는 분들도...!!”

“...확실히 깔끔하긴 하네요.”

다 좋았지만, 너무 장황한 아메리의 이야기를 멈추기 위해 레오나르도는 마도구의 포장을 풀어 꺼내보았다.

“...예상한 것 이상이네요!”

천에 감싸져 있던 것은 손잡이가 없는 6개의 대검, 사실 검이라고 보기도 어폐가 있었다.

윗부분이 찌르기 쉽도록 날카로운 것, 옆부분이 예리한 날로 되어있지만 않았더라면 그저 적당한 크기의 패널처럼 보였다.

“회로 연결은 흑탑주 님과 비견될 정도에요!”

하지만 레오나르도는 이 마도구의 진가를 알 수 있었다.

“...에이... 너무 띄여주지 않으셔도 돼요...”

“아뇨...! 이거 봐요...!”

레오나르도는 손으로 약간의 마나를 불어넣어 대검 모양의 판넬을 놓았다. 판넬에는 푸른 빛이 들어오면서 자기력에 밀려나는 금속처럼 공중에 떠올랐다.

“이 정도 마나에도 바로 감응하잖아요! 솔직히...! 기대했던 것보다도 더 잘 나왔다고요!”

“...아하하!! 그런가요!! 최근에 흑탑주 님께서 마도구 회로 연결일을 많이 주셨거든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오랜만에 만난 탓일까, 아메리와 레오나르도의 대화는 길어졌다.

“...어...”

“...저...”

정확히 표현하자면 더 길어질 수도 있었다.

“...으...하하...”

“...으긋...”

백발의 두 남매가 이글거리는 푸른 눈빛으로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었기에, 대화가 더 길어질 기회는 없었다.

아리아는 잠잘 때도 갈지 않은 이빨을 불똥이 튈 정도로 뿌득거리고 있었고.

리오스는 갑자기 사백안이 된 채로 눈의 흰자에 혈관이 보일 정도로 알아먹지도 못할 소리를 웅얼거리고 있었다.

“...일행 때문에... 지금 가야할 것 같네요. 아가씨는 또 왜...”

“...그래야할 것 같네요... 리오스는 또 왜 저런...”

두 둔감한 현자의 후계자들은 안타깝게도 그의 능력을 물려받아 남녀 관계에 심히 둔감했다.

다행인 점이 있다면 상대방 읽는 눈치가 빠삭한 점 뿐이었을까.

“...그럼 가보겠습니다.”

“...저...레오나르도 군.”

아메리는 잠시 눈치를 보더니 리오스와 아리아가 보이지 않는 각도로 말했다.

“...싸우러 가시는 거죠?”

둔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메리는 이미 눈치를 챈 것 같았다.

“...네. 좀 위험한 싸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럼...”

아메리는 잠시 반대쪽에서 바라보고 있는 리오스의 눈치를 보았다. 이내 작게 레오의 귀에 속삭여대기 시작했다.

“...리오스가 안 다칠 수 있게 잘 지켜주실 수 있을까요? 리오스가 자주 덜렁거리니까...”

“...하...”

알만했다.

저 순애를 부르짖는 용사 가문의 장남은 알고 있을까?

자신을 저렇게 진지하게 걱정하고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물론이죠. 안전하게 돌아올 거예요.”

“고마워요. 레오 군!”

이때 이런 대답을 한 레오나르도는 생각지 못했다.

이 귓속말 이후에 라인하르트의 두 남매가 지독히도 무슨 말을 했는지 캐물은 것을.

그걸 해명해도 ‘아메리가 내 걱정을?! 그럴 리가 없잖아!’, ‘역시 엘프를 좋아한다니까!’라면서 지독히 추궁한 것을.

안타까운 일이었다.

***

마탑의 깊은 밤.

“...준비됐니?”

아인이 입은 로브의 후드를 씌우며 레오나르도는 물었다.

아인의 로브에는 천을 짤 때부터 방검, 방염, 방냉 소재로 제작했기에 각종 공격에 방어가 가능했고, 지금 레오나르도가 다시 한번 각종 방호 마법을 덧씌우는 것으로 방어 능력을 강화시켰다.

아마 드래곤의 브레스를 직격해도 1분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거라고

“...괜찮을까? 변신할 때는 로브가 안 보이던데...”

“괜찮아요. 변신할 때는 융합할 수 있도록 조정해 놓을 거라 효과는 그대로예요.”

오히려 로브에 걸린 마법이 전신에 그대로 적용되기에 방어력은 더 높아질 것이다.

“...그럼 시작하자. 아인아.”

“예, 아버지.”

대답을 듣자 레오나르도는 손톱을 꺼내들어 아인의 팔뚝에 박아넣었다. 흰빛의 얇은 손톱은 아인의 팔에 박혀들어가며 그 작은 소녀의 몸을 변형시키기 시작했다.

흰 머리칼은 검게, 자주빛의 눈은 붉게 물들며 몸의 크기도 점차 성장시켰다.

자신의 딸이나 다름없는 아인이 저렇게 어머니와 똑같은 모습으로 서있으니, 도덕적인 감각이 따가워져만 갔지만 필요한 선택이니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그래.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도망쳐. 교전은 다 같이 하면 되니까.”

아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커진 손을 쥐었다.

아인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미끼, 직접적인 교전은 아리아와 레오나르도 그리고 에일린이 담당하고

리오스와 오브는 추가적인 적이 오는지 정찰하며 외부와의 연락을 맡을 것이다.

“...그럼...”

아인은 창문을 넘어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다녀오겠습니다.”

기숙사의 고층에서 그대로 아인은 뛰어내렸다.

‘...그럼 이제...’

레오나르도는 눈을 감으며 아인의 시야를 공유했다. 사역마인 만큼 서로의 감각을 공유하는 것 정도는 장거리에서도 간단히 해낼 수 있었다.

[...도착했습니다.]

작전대로 아인은 ‘진실과 사실의 목걸이’가 담긴 전시관으로 뛰어갔다. 전시관의 잠금 장치는 레오가 미리 해제해둔 뒤였다.

[...이제... 훔치겠습니다.]

늘상 무감정한 태도를 유지하던 아인도 지금만큼은 경직된 어투로 상황을 보고했다.

말을 듣지 않아도 레오도 알 수 있었다. 시야 공유를 통해 지금 아인이 손이 점차 유리통 너머에 있는 목장식으로 향하는 게 눈에 보였다.

이윽고

쨍그랑!!

아인은 주먹으로 장식장을 깨부섰다.

애애애애애애앵!!

목장식을 낚아챔과 동시에 울리는 경보음.

고의적으로 울린 것이라고는 하나, 고막을 난도질하는 것만 같은 사이렌 소리에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들마저 번뜩이며 놀랐다.

[진실과 사실의 목장식이 도난당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마나가 없는 존재에게 현자의 유산을 도난당했습니다!!]

경보를 울리며 경고문을 큰 소리로 읊는 것은 오브라이언, 일부러 지금 시각에 경비 맡도록 지시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지금 타이밍에 나서야하는 것은 레오나르도였다.

[마나가 없는 존재에게 시체를 도난당했습니다!! 지금 추적 중입니다!!]

텔레파시가 울려퍼지자 상황은 더욱더 요란하고 혼란스럽게 진행되었다. 마법사들은 급히 추적대를 편성하며 '마나가 없는 존재'처럼 보이는 아인을 추적할 것이다.

“...출발하죠.”

“...응. 가자.”

레오나르도와 아리아스필도 바깥으로 나가 아인을 ‘추적하는 척’을 할 것이다.

***

아인은 지정된 장소에 보관해둔 관을 든 채로 이동하고 있었다.

일부러 보이기가 쉽도록 아공간에 집어넣지 않으라는 레오나르도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에 맨손으로 들고 운반해야했다.

크기만 해도 제법 들기에는 무리가 있었지만, 아인은 기본적인 형태로도 말 한 필 정돈 한 손으로 가볍게 들 정도의 근력을 탑재하고 있었다.

관 정도는 어깨에 들쳐멘 채로 충분히 전력질주를 할 수 있었다.

‘...추적자 쪽들은...’

평범한 마도 처형자나 전투 전문 마법사들은 레오나르도와 오브라이언이 합심해서 이쪽 방향이 오지 못하도록 교란할 것이다.

[마탑주들이 지금 움직인다.]

마탑주들을 감시하고 있던 것은 에일린, 그녀는 마탑주가 갑자기 돌발행동을 하지 않을까 원거리에서 관찰하고 있었다.

[...장소 도착까지는 얼마나 남았지?]

아인은 관짝을 든 채로 정면을 바라보았다. 멀찍이 보이는 작은 폐저택의 크기와 현재 뛰고 있는 속력을 계산한 끝에 아인은 대답했다.

[5분 32초 후에 도달할 것 같습니다.]

[속력을 높여라. 지금 청탑주와 흑탑주가 한 자리에 있다. 찢어지게 만들어야 해.]

[알겠습니다.]

대답한 아인은 아예 숲의 가지에 뛰어오른 채로, 큰 가지와 가지 사이로 보법을 쓰듯 뛰어나갔다.

“...”

5분 32초 후, 폐저택에 도착하자 아인은 알 수 있었다.

이 자리에는 이미 누군가가 도착해있었다.

육감적으로 느껴지는 마나의 열기는 아인에게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리고 있었다.

화아아아악!!

순간적으로 바닥에서 터져나오는 화염의 기둥.

기계처럼 정밀한 반응을 내보이던 아인마저 관을 바닥에 떨어뜨릴 정도로 폭발적인 열기를 자랑하는 마법이었다.

“...이거 이상하군! 뱀파이어 로드는 분명 자신 수하 흡혈귀를 보내겠다고 전했는데!”

저택의 음영에서 걸어나온 이는 붉은 로브를 입은 전투 마법의 전문가였다.

“...아니면!”

활기찬 목소리 아래로 잔혹한 감성이 드리운다.

“함정인가?”

적탑주 제인 나르샤가 화염을 불태우며 걸어나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긴 휴재를 끝내고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후기로는 뭘 쓸지가 도저히 떠오르지 않더군요.

그래서 작품에서는 풀어내지 못한 있으나마나한 설정을 풀어내고자 합니다.

예를 들어 극중에서는 흑암다운 모습을 보이는 크리스지만, 회귀 전에 레오나르도가 담배를 한번 몰래 피자 손바닥에 회초리를 날리며 혼을 낸 적이 있습니다.

물론 레오가 담배를 자신보다 자연스럽고 멋있게 피어서는 이유에 포함되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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