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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자는 회귀했다-159화 (159/248)

[...그래서 넌 뭐라고 했냐?]

뒤늦게 찾아온 현자는 레굴루스가 떠들어댄 장황한 담소를 요약해 들었다.

이야기 중간마다 내는 반응을 듣자 레오는 현자의 얼굴을 보지 않았음에도 각양각색으로 일그러지는 그의 표정이 자연히 연상되었다.

<...아 뭐...적당히 호응해주고 약속 시간 됐다고 나갔죠.>

지금 본인이 생각해도 기가 찼는지 헛웃음을 내면서 레오는 대답했다.

지금 자신이 전음으로 쌍욕하고 있는 인간이 현자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아마 왕자는 자지러지어 넘어져 머리가 깨질 것이다.

[뭐?! 쌍욕을 해도 모자랄 판에?!]

현자의 영체는 아직 나타나지도 않았지만, 얼굴이 연상될 정도로 길길이 목소리만으로 날뛰었다.

기껏 결계를 만들어서 인류를 지켜줬는데, 저들은 자기 멋대로 새로운 허수아비 현자를 만들겠다고 주장하는데 화가 안 나고는 배길 수 없었다.

<그럼 어떡해요. 착각을 하는 병신이어도 왕자고, 지금 말하는 건 때가 아니었다고요.>

레오가 한 호응은 동조의 의미가 아니라, 장단만 맞춰준 것이었다.

제국에서의 새로운 현자를 찾는다는 이야기가 뭐가 대수겠는가.

본인은 현자랑 직접 대면하면서 농담 따먹기까지 하는데.

처음에는 무언가 싶어 들어보려고 했지만, 들어보니 이미 내막을 알고 있는 일이었기에 대화에 그다지 가치를 두지 않았다.

오히려 레굴루스의 헛다리를 듣는 것이 버거운 것도 자리를 피한 이유 중에 하나였다.

[아니면 이번 기회에 ‘나 현자 제자입니다!’라고 딱 선언을 해! 말뼈다귀 같은 새끼들보다 현자 다는 것보단 네가 조금은 낫겠지.]

현자로서는 제국의 그런 판단이 모욕적이다 못해 저열했다.

마탑에서조차 현자라는 칭호는 그 누구에게도 임명하지 않았다.

현자라는 이의 업적은 신화이든, 사실이든 일일이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장대하기에.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명예로운 이름.

그게 현자였다.

<알았어요. 곧 말할 테니까 얼른 영체라도 복구하세요.>

[하고 있거든. 따지고 보면 너 때문에 이 꼴 난 거잖아.]

신경질적이었지만 현자의 화는 지극히 당연했다.

현자의 돌은 레오의 신체에 있기 때문에, 레오의 육체에 손상이 생기면 당연하게도 현자의 돌 또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며칠 전만 하더라도 레오나르도는 의문의 신성력에 정신력을 잃고 갖은 부상으로 육체마저 온전치 않았다.

현자는 영체를 포기하면서까지 주변 이들에게 전음을 보냈고, 모두 단합해 협력해준 덕분에 폭주는 막을 수 있었다.

<그건 미안하게 됐네요.>

말은 이래도 거짓 없는 진심이었다.

이 일이 아니더라도 현자가 아니었다면 이런 생활은 고사하고, 평생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 만큼 지옥밭을 굴러야 했으니까.

[그래서 지금은 어딘데?]

부유하며 올라가는 승강기 안에서 레오나르도는 현자에게 대답했다.

<마탑최상층이요. 가고 있죠.>

[...하... 또 탁상공론이야?]

현자가 내뿜는 한숨이 땅이 꺼질 정도로 울려퍼진다. 단언컨대 그가 마탑에서 제일로 혐오하는 것은 현장도 모른 채 읊어대는 비생산적인 토론일 것이다.

[걔내들은 영창도 나보다 못하면서 그렇게 아가리로 쳐떠드는 걸 좋아해.]

<현자님보다 영창을 잘하는 인간이 있나요?>

[아닌 게 참 안타깝다.]

안타까울 만도 했다.

본인은 영혼을 갈아 결계를 만들었는데, 자신의 후배들이 평화에 찌들어 이렇게 부진하다 못해 실적을 냈으니 화를 내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게다가

[...마탑주들 중에 내통자가 있다는 거지?]

이런 배신은 마법과 마탑의 대부인 현자에게는 쓰라린 손가락이 따로 없었다.

정신 충격의 수준만 놓고 보자면 원로회들이 단체로 썩어빠진 걸 체감한 라인하르트의 가주로서 있는 글라디오 이상일 것이다.

<예, 지금 모은 자료대로라면 남은 범인은 마탑주 뿐이에요.>

지금 모은 자료에서 알아낸 내통자에게는 두 가지의 조건이 필요하다.

첫 번째는 원로원와 뱀파이어 측 모두에게 연줄이 있을 정도의 지위가 있는 사람일 것.

두 번째는 아인의 정보를 이해하고 키메라 제작에 협력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날 것.

이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이들은 마탑주 외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아마 본인이 직접 흡혈귀가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흡혈귀가 되는 것은 결코 메리트가 아니다.

당장은 큰 힘과 젊음을 가져다주지만, 어설프게 된 뱀파이어는 계속된 흡혈 충동에 시달리고 햇빛 아래에 걷는 것도 불가능해진다.

마탑주라는 고명한 이들이 그런 리스크를 안고 흡혈귀가 되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회귀 전 지식으로 알아내는 건 안 되는 거냐?]

<그게 문제이긴 해요.>

레오의 회귀 전에서 가장 큰 전환점은 아리아스필가 떨어졌던 5년 사이, 그 동안 제국 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레오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특히 마탑은 리오스가 괴랄한 사고를 쳐서 크리스를 따라간 것 외에는 거의 가본 적이 없기에 정보는 더더욱 부족했다.

[넌 왜 이렇게 알멩이 없이 회귀했어?]

<회귀할 거라고 생각은 했겠어요.>

현자가 끌끌대는 도중, 옆쪽에 있던 오브가 레오를 바라보았다.

“...선배님, 괜찮으십니까?”

오브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레오나르도를 바라보았다.

“어? 왜?”

“아까부터 멍하니 계셔서 혹시 몸이 안 좋으신가 했습니다.”

오브로서는 선배인 레오나르도의 상태가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라인하르트에서 겪은 사고에 부모를 직접 해부한 것도 모자라서 지금은 마탑의 내통자까지 찾아내야 하니 무리가 오는 것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아, 아니 괜찮아.”

“정말이십니까?”

“그럼 뭐 내가 가짜로 괜찮다고 하겠어?”

오브를 포함한 레오와 연이 있는 많은 사람들은 속으로 ‘어, 늘 그래왔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선배를 존경하는 오브라이언은 후배로서 그런 말은 삼가도록 주의했다.

“다른 일행 분들이 걱정되십니까?”

“걱정? 왜 멀쩡히 식사 드시고 계실 텐데.”

지금 최상층으로 가는 일행들은 마도 처형자인 레오나르도와 오브라이언 뿐이었다.

마탑 회의는 본래 관계자만 참여할 수 있는 마탑 최고 정책심의였다.

레오나르도 정도만 된다면 관계자가 아니여도 참여가 가능하겠지만, 아리아스필이나 리오스와 같이 부외자에게는 참여할 권한이 없었다.

[용사인데 안 돼?]

<강제로는 가능하겠지만, 대외적으로는 욕을 먹겠죠.>

용사의 권한을 이용한 마탑의 능멸, 이런 감각으로 마법사들과 민간인들은 받아들이지도 모르는 일이니 주의할 필요는 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지금 할 일은 조금 그렇고요.>

차라리 점심이라도 먹으면서 쉬는 것이 레오에게는 마음이 편한 일이었다.

“그게 아니라, 왕자가 용사님께 접근하면 어떡하냐는 질문이었습니다.”

눈치없으면서도 예리한 질문에 레오나르도의 시선도 예리해졌다. 오브는 순간 그 날카로운 시선에 찔린 것처럼 따갑게 몸을 세웠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아무 것도 아닙...”

“뭐가 아니야. 계속 말해봐.”

무를 수는 없었다. 도망칠 때는 승강기에 탄 이후로 놓친 지 오래였다.

저 서슬푸른 눈빛에 오브는 자신의 포커페이스가 급격히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외람되지만, 레굴루스 왕자가 미색을 탐한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지 않잖습니까...? 그래서...”

“그래서?”

온몸에 식은땀이 흐른다.

오브는 마도 처형자의 후배로서 레오나르도의 저런 광기에 번들거리는 눈빛을 본 적이 있었다.

‘...마인의 상처에 수십 개의 바늘을 쑤셔박을 때 보던 눈인데...’

그 고문의 대상이 미래의 자신이 아닐까, 오브는 온몸에 바늘이라도 찔린 것처럼 계속해서 뜨끔거리며 두려워했다.

“왕자가 행여나 용사님께... 연애 작업을 건다면... 걱정이 될 것 같아 말씀드렸습니다아...”

“괜찮아. 전혀 문제 될 건 없지.”

오브의 예상과는 다르게 레오나르도는 해맑게 웃으면서 자신의 후배를 안심시켰다.

저 해맑은 웃음을 보자 오브는 자신이 쓸데없은 긴장을 했나 싶어 포커페이스마저 풀면서 어설픈 웃음을 내었다.

“아가씨가 그럴 리가 없거든.”

오브가 긴장된 웃음을 내는 것에 무색하게 레오나르도는 진심으로 아리아스필을 신뢰하고 있었다.

신전에서 신실히 자기수행을 한 아리아스필이 그렇게 간단히 몸을 놀릴 일은 없었고, 회귀 전에도 연애 한번 없이 모든 남자에게 철벽을 친 그녀였다.

게다가 혹시나 해서 레굴루스 왕자에 대해서 사실에 근거한 악담을 말해두었으니 근심 걱정은 덜을 수 있었다.

“하긴 어제 일도 있었으니 괜한 걱정일지도 모르겠군요. 하...하...하...”

어제 대련이 끝난 직후, 레오나르도는 대련이 끝나고 아리아스필을 업고 기숙사방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내일 아침이 될 때까지 아리아스필과 레오나르도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성숙한 남녀가 함께 하룻밤을 보낸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성교육이 철저히 받은 인간이라면 바로 감이 올 것이다.

‘...어제 일이라... 하긴 대련으로 많은 감정을 풀어냈지.’

물론 레오나르도에게는 단순히 대련을 하고 같이 순수히 잠을 잤다는 의미일 뿐이었지만 말이다.

“...선배, 하지만 어떻게 내통자를 밝혀냅니까?”

화제를 돌려 다시 마탑의 내통자를 밝혀낸다는 주제로 돌아가자, 레오나르도의 표정도 한결 진지해졌다.

“...밝혀낸다기 보다는 스스로 나오게 만들어야지.”

“스스로 나오게 만든다고요?”

패를 아무리 채워도 부족한 것은 우리 측이었다. 마인 측은 이 마나가 없는 시신에 정보도 유리할 것이며 동시에 레오 본인의 출생의 비밀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심리전을 걸어야지.”

레오나르도는 망토를 잡아끌어 검은 천을 넓게 펼쳤다. 작은 우주처럼 넘실거리는 아공간은 레오나르도의 망토 속에서 완벽히 물건들을 수납하고 있었다.

“지금 이 안에는 우리 어머니와 똑같이 생긴 키메라의 시체가 관에 담겨져 있어.”

“...그렇죠.”

관의 보관은 레오나르도가 부탁한 것이었다.

어떤 이는 화장을 제의해보기도 했지만, 레오나르도는 증거가 될 수 있는 시신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직접적인 보관을 요구했다.

“그리고 우린 대외적으로 이 시체에서 범인을 유추해내지 못했다고 말했지.”

“...그렇습니다만... 무언가 문제가 있습니까?”

오브는 처음에 잘 대답하는가 싶다가 이내 계속되는 사실 점검에 약간 당황한 기미를 보였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되짚어서 얻는 이득이 무엇인지는 오브에게는 제대로 와닿지 않았다.

“별 건 아니야. 이러는 편이 설명이 쉽거든.”

레오나르도는 그렇게 말하며 마지막 사실의 점검을 끝내었다.

“그리고 똑같은 시신은 라인하르트 지하실에 보관되어 있지.”

“예... 일행 분들과 전부 이야기한 내용이죠?”

이 존재가 레오나르도의 어머니가 아니라는 증거는 거기에 있었다.

같은 외모를 한 존재가 두 명이나 있다는 것은 복제품 외에는 쌍둥이라는 질나쁜 농담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 묻겠는데...”

레오나르도는 본론으로 넘어갔다.

“만약 연구 소재로 넘긴다고 했을 때 이건 얼마의 가치를 지니고 있을까?”

“...예?”

얼마라는 말에 오브는 당황한 듯 다시 되물었다.

“...아, 돈의 가치보다는 얼마나 노력을 들일 가치가 있을까에 대한 질문이야.”

그 말은 마치 물건의 시세를 따지는 상인과 같은 말투였다.

“...그...그건... 선배...”

마나가 0에 수렴하는 지금까지 찾지 못한 새로운 연구 소재.

마법사들에게는, 특히나 마탑주에게는 이보다 군침 도는 연구 재료가 따로 없을 것이다.

[...너...]

현자는 오브보다 먼저 내용을 이해해버렸다.

만약 예상대로 된다면 범인인 작자는 어떻게든 행동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난생처음으로 불효자가 되보네요.>

난생처음으로.

레오나르도는 부모를 팔 것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드디어 아다 뗀 거야?]

<닥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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