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탑 총괄 회의는 오전 11시 마탑 최상층 중심에서 시작된다.
네 가지 빛깔의 탑들의 중심에 떠있는 것은 작은 부유탑으로, 이는 초대 마탑주들이 단합의 의미로 함께 만들어낸 연합 지대였다.
본래라면 현자의 유산을 찾아냈을 때에도 그곳에서 확인하는 것이 통상적이었다. 이후 4년 동안 추가적으로 찾아낸 몇 개의 현자의 유산은 그곳에서 감정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럼 좀 더 준비해서 가야되는 거 아니야?”
시체의 부검을 끝낸 뒤, 레오와 아리아는 까놓고 말해 마탑에서 날뛴 것 외에는 특별히 한 것이 없었다.
사실상 놀았다고 봐도 무방했다. 실질적으로 준비한 것은 없었기에 그 행동은 결론적으로 '여가'나 다름없었다.
그렇지만 문제는 없었다.
“그럴 필요는 없죠.”
레오나르도의 목적도 그거였으니까.
그 기행 덕분에 각종 고위층에는 제대로 된 정보가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아리아는 의도치 않았겠지만, 레오의 의도대로 오늘자 신문에는 레오와 아리아의 결투로 도배되어 있었다.
그 덕에 시신에 대한 연막은 확실히 진행되었다.
“그래도...”
“그럼 뭘 준비하실 건데요?”
본질적인 질문에 아리아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슬며시 입을 열었다.
“...그건 그렇네. 해봤자 질문 정도인가...”
그러다 이내 아리아는 깨달은 듯이 입을 열었다.
“아, 거짓말 탐지기 목걸이 있잖아! 현자님이 만드신 거!”
하지만 레오도 방식을 생각 못해본 것도 아니었다. 그게 만능적으로 진실과 사실을 판별 가능했다면 레오나 에일린도 이렇게 고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도 만능이 아니에요.”
진실과 사실의 목장식이 유용한 것은 사실이었다.
실제 심문에도 유용하기에 마도 처형자들이 마인이나 흑마법사를 심문할 때, 필수적으로 지참하는 것이 현자의 목장식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진실과 사실의 목장식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거짓을 말할 때 나오는 마나의 흐름을 완벽히 조절할 수 있는 자라면 그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해요.”
진실과 사실의 목장식은 인간에게서 두뇌에서 나오는 마나의 파장을 탐지해 진실과 사실의 여부를 가리는 것이다.
그 미세한 파장을 외부적인 장치로 탐지해내 급격한 변화를 계산해내 거짓말인지 진실인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후에 나오는 빛의 세기에 따라 그 거짓의 정도를 판단하는 것이다. 거짓의 정도가 심하면 심할수록 파장도 크게 변화하기에 판별하기가 더욱 쉬워지는 것이다.
“...그걸 통제하는 사람이 있다고?”
“이론상으로 가능하다면 실현시키는 게 마법사니까요.”
몇몇 마인이나 흑마법사를 구타해서 심문했을 때 알아낸 사실이었다.
구타 이후 말하는 모든 증언이 거짓말이 되었다는 시점에서 진실과 사실의 목장식이 만능이 아니라는 것은 밝혀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마나를 초계산으로 통제해 뇌파의 주파를 조절한다면 거짓말을 완벽히 숨기는 것도 가능하고, 정체를 들키지 않은 채로 텔레파시의 도청과 단절 또한 가능했다.
“그리고 그건 마탑주라면 충분히 해낼 수있죠.”
실제로 마탑주와 동등한 수준이라 에일린은 목장식의 탐지를 피하고 거짓말을 성공하는 것을 시연해보았다.
그 실험 이후로 목장식을 사용하는 심문의 비중은 크게 줄어들었고, 아예 폐지하자는 의견도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쓸모없는 것도 아니지만요.”
기습적으로 사용하면 거짓말 한 두 번 정도는 구분할 수 있고, 일반인이나 마나의 통제력이 둔한 인간에게는 충분히 사용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적어도 지금 상황에서는 유용하게 사용될 것이다.
이번 마탑 회의에서 사용할 히든 카드니까.
“근데 레오.”
마탑주들이 도착하기까지 기다리고 있던 아리아는 의문스럽다는 듯 레오의 이야기를 끊었다.
지금 이야기가 진중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안 물어보고는 배길 수 없는 의문이었다.
[왜 존댓말하는 거야?]
레오의 손을 슬며시 붙잡으며 아리아스필은 슬며시 질문했다. 단지 붙잡은 것이라면 익숙할지도 모르겠지만, 서로의 굳은살이 비벼지도록 깍지를 끼는 것은 레오에게 크나큰 자극이었다.
“...그게...”
[아...무래도 사람이 많은 장소이다 보니까...? 조심해서 나쁠 건 없겠지.]
말이 헛 나올 뻔한 것을, 간신히 오러로 대신해 대답할 수 있었다.
깍지는 끼기도 전부터 레오는 아리아를 제대로 된 시선으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별달리 추측할 것 없이 어젯밤에 꾸었던 음몽이 원인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왜 그런 꿈을 꿔가지고...’
이 나이에는 때 아닌 주책이었다.
아무리 아리아가 회귀 전에는 친구였다 한들 정신연령은 자신의 딸의 딸뻘인데.
그렇게 혈기왕성한 어린애처럼 그런 발랑까지고 음탕한 꿈을 꾼 것은, 레오에겐 가장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 꿈에서 쾌감을 느꼈다는 걸, 아리아를 볼때마다 곱씹게 되어 레오의 감정은 본의 아닌 수모를 겪게 되었다.
오늘따라 저 아리따운 용사 아가씨에게는 성숙한 색기가 깃들어 있었다.
[흠... 그래?]
그렇게 대답하면서 아리아는 어젯밤의 일을 떠올렸다. 꿈에 취한 것처럼 아리아는 레오를 탐닉하고 탐하며 음미했다.
“...그...그렇네...! 아무래도...!”
갑작스레 그 사실을 상기하니 아리아도 부끄러워졌는지 붉어진 얼굴을 돌린 채 양손으로 붙잡았다.
자연히 레오나르도와 깍지를 낀 손도 빠지게 되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던 레오나르도로서는
‘...그래도...’
웃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제 연인으로서 한 단계 진전한 셈이었다. 레오의 정기를 섭취한 것은 아리아 본인 세상유일무이할 것이다.
“...흐흐...”
“너 왜 갑자기 웃니?”
“...아...하...”
아리아의 미소는 리오스의 등장과 함께 차갑게 얼어버렸다. 리오스는 그러건 말건 싱긋 웃으며 자신들의 소중한 동생들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왜 정색하고 그래? 오빠 섭섭하게.”
“미안. 습관적으로.”
“...너무하네. 안 그래? 오브?”
따라온 오브는 대답 대신에 정색으로 회답했다. 햇살이 내리쬐는 이 볕들에서도 오한이 들만한 싸늘한 시선이 리오스의 주변을 에워쌌다.
“...너무하네. 내 편인 아인이는 어디로 갔을까~”
안타깝게도 아인도 딱히 리오스의 편은 아니었다. 리오스도 그걸 반 정도는 눈치채고 있는 것이 그 비극성을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리오스는 생글거리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잃을 수가 없을 정도로 달콤한 먹거리가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잘 잤어~? 동생들?”
어젯밤 갓 탄생한 연인을 보니 리오스의 입에는 부드러운 생크림이 가득 차는 것만 같은 당의 맛을 느꼈다.
“...아...네...뭐...”
“...그...그렇지 뭐... 푹 잘 잤어!”
저 반응을 보아라.
서로 눈도 못 마주치고 붉어진 저 얼굴을.
아마 루미네가 이 자리에 있다면 저 아름다운 연인의 미래를 축복해달라 간청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제가 없으니 리오스는 축복을 대신할 응원을 내었다.
“키야...! 보는 것만으로 배부르...”
“닥쳐. 오빠.”
“입 좀 다물어주시죠. 리오스 님.”
그런 풋풋한 표정마저 리오스의 헛소리 덕분에 순식간에 일그러졌지만, 리오스는 그럼에도 저들의 순애를 진심으로 응원했다.
물론 응원이 도움된다는 보장은 전혀 없었지만 말이다.
“아메리 씨는요? 리오스 님하고 같이 계시는 줄 알았는데요.”
평소에 틱틱대기는 해도 아메리는 리오스가 있는 날이면 일이 있더라도 항상 곁에 있기 마련이었다.
마찬가지로 리오스도 마탑에 있는 날에는 가능한 아메리와 함께 다니려고 노력했기에 저 둘이 따로 다니는 것은 자주 보지 못할 드문 광경이었다.
“...그게 나도 모르겠어. 분명 여기서 보기로 했는데 통 안 보이네.”
“그래요? 아메리 씨가 약속을 어길 리는 없는데...”
아메리가 약속을 어기는 것은 드물다 못해 레오는 한번 경험해보지 못한 이례적인 일이었다.
소심한 성향과 선량한 인품이 맞물린 그녀의 예절은 철저하다 못해 강박적일 정도였으니까.
“아 저기... 늦어서 미안해요...!”
추측만 오가던 와중, 불안정한 호흡을 내뱉으며 이 담화의 주인공이 피곤한 목소리를 내며 뛰어왔다.
“아메리~! 모닝 커피 카페인 빼고 먹었어~? 늦었...네...”
리오스의 능글거리던 말투는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리오스의 눈동자에는 정말 만나고 싶지 않았던 남성의 미소가 비쳐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랜만이군. 리오스 라인하르트. 4년 만인가?”
진한 금빛의 머릿결을 하고, 그에 따라 맞추어 진한 피부를 한 남성은 턱을 쓸어넘기며 주변을 부드럽게 바라보았다.
안경 너머로 흐르는 시선은 마치 가늘고 긴 실이 몸을 휘감는 감각을 자아내었다.
경계를 풀게 되면서도 한편으로 몸은 긴장시키는 강단이 있는 눈이었다.
“...5년 만이죠. 레굴루스 왕자님.”
레굴루스 펜드래곤
그는 제국 황실의 제2왕자뿐만 아니라 동시에 5서클에 도달한 뛰어난 마법사이기도 했다.
“소문을 들었습니다. 용사님께서 친히 마탑까지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왕자님.”
정치에 약한 아리아가 보기에도 저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일부러 용사인 자신이 있는 때를 노려 이곳에 온 것임에 분명했다.
“레오나르도 기사, 오랜만이군. 자네의 고유 마법 논문은 흥미롭게 보고 있다네.”
“영광이군요. 레굴루스 왕자님.”
레오나르도는 체통에 맞는 사무적인 인사를 한 채, 머릿속으로 생각을 굴렸다.
‘...지금 나타난다라...’
예고도 없이 찾아왔기에 놀랄지는 몰라도 이상한 것은 없었다.
마탑에 소속되지는 않았지만 그 또한 엄연한 마법사였고, 동시에 제국 전체를 통솔하는 황실의 피를 이은 남자였다.
라인하르트가 흔들리는 틈에 따라 이득을 취하는 것도 충분히 있을 법한 행동 전략이었다.
‘...예전부터 황실은 라인하르트를 복속시키고 싶어했으니까.’
그 기류를 나타내기라도 한 듯, 용사의 피를 이은 남자와 황실의 피를 잇는 남자의 눈에 신경전이 이어졌다.
“연락도 없이 오셨군요? 갑작스럽게 오신 까닭이 있나요?”
평소와 달리 건조하고도 표독한 목소리로 리오스는 질문했다.
그 에일린에게조차 여유와 장난기를 드러내었던 리오스가 저 왕자에게만큼은 적대적인 기류를 내뿜고 있었다.
“마탑에서 마침 축제를 하니, 나도 한번 참여해볼까 하여 와봤네. 자네 친구가 이곳 지리에 해박해 안내를 부탁했지.”
그렇게 말하며 레굴루스 왕자는 아메리의 손에 짧게나마 입을 맞추었다. 방향은 공교롭게도 현자의 반지가 끼워진 손가락을 향해있었다.
“고맙군. 아메리 마법사. 현자의 유산을 찾아낸 그대의 명성은 황실에도 자자하다네.”
분명 친구에 대한 칭찬을 하는 것인데, 리오스의 표정은 여태껏 보지 못한 것처럼 날이 서 있었다.
“...여...영광입니다...! 왕자님!”
“그대와 같은 아름다운 여인에게 영광을 받는다니, 내 쪽에서 영광이네.”
그런 말에 아메리는 어설프게 미소로 대답했지만, 이내 리오스의 곁으로 급히 뛰어갔다.
그건 저 남자가 싫어서라기 보다는 저런 고위층을 자주 상대해보지 못한 아메리가 소심하게도 도망을 택한 것이었다.
[...오빠가 이상하네. 원래도 이상하기는 하지만... 좀 화난 것 같아.]
아리아는 레오의 옷깃을 뒤로 살짝 잡으며 몰래 말을 걸었다. 평소에도 이상했던 적은 많았지만 리오스가 저런 상태를 보인 것은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이상할 거 없어.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거니까.]
[본능?]
아리아스필은 4년 동안 신전에 있었기에 모르는 것이 당연했다. 게다가 사교계면 몰라도, 언론과 같은 대외적인 정보로는 알려지지 않았으니 알 방법은 따로 없을 것이다.
[성생활이 문란해.]
레오나르도도 저 왕자의 공무는 몰라도, 사생활은 썩 긍정적으로 생각지 않았으니까.
[예절은 지켜도 뒤에서는 안은 여자가 수십은 넘어.]
[...진짜...?]
레굴루스 왕자의 사교계 별명은 지적인 난봉꾼.
강제로 여자를 겁탈하지는 않았지만, 굳이 찾아오는 여자를 거절하지 않는 것이 그의 연애관이었다.
오죽하면 뒤에서는 마법을 피임 용도로 배웠다는 소문까지 돌 정도이니, 리오스가 그를 좋아할래야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예전에 공주를 구했던 거 본 적 있지?]
아리아는 왕자가 보이지 않을 각도와 속도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레오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은 채로 오러를 진동시켜 대답했다.
[그 애가 저 양반 사생아여서 그랬던 거거든.]
[...]
잠시 흐르는 싸늘한 침묵 속에서 아리아는 생각했다.
이쯤 되면 레오는 정신력만큼은 천재가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저런 상대 앞에서 얼굴색 하나 안 바뀌고 인사가 가능한 것일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여담]
[...그리고 내 촉으로 봐선 리오스 님이 화낼 이유가 더 있지.]
[뭔데...?]
[아메리 씨한테 약간 작업을 거니까. 예전부터 생각했던 건데 두 분 사이가 묘해. 내가 이런 거에는 감이 또 좋거든.]
[...]
현자가 봤다면 이리 말했겠지.
지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