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는 회귀 뒤에 아리아와 진심으로 겨룬 적이 없다.
적어도 본인은 그렇게 확신했다.
가볍게 싸웠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70년의 경험은 아리아라는 천재에게도 여유를 가질 틈을 만들어주었다.
거기에 이 몸은 무력만 놓자면 자신의 전성기에 미치지 못하니, 4년 전에 어쩌다 한번 진 것도 그리 굴욕적이지 않았다.
게다가 그건 성검의 기습적인 조력도 있었으니 더더욱 개의치 않을 요인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콰아아아아앙!!
방금 일어난 성검의 폭음에 레오는 여태까지의 독백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전력으로 피하지 않으면 분명 몸의 뼈와 살이 날아갔을 것이다.
“너 아까 도대체...!!”
“모르는 척 하지마!!”
흥분스러운 말과 함께 날아오는 연격, 저 검격 사이 사이에 한 소녀의 감정이 담겨져 휘둘러진다. 그 레오나르도조차 완력에 밀려 일순 몸을 구부릴 정도였으니 말이다.
“...으윽....!!”
카아아아앙!!
이번에는 레오도 성검을 받아쳐냈다. 울리는 파공음, 소리만으로 위력의 무게가 느껴진다.
방음 마법에 방호 마법까지 설치되었음에도 바깥 사람들에게도 그 음파가 울릴 정도였다.
퍼어엉!!
성검의 회전과 함께 주변의 정령이 감응한다. 동시에 감응한 정령의 속성은 화염.
그녀의 격정적인 분노와 타오르는 사랑을 실체화시킨 열기가 주변에 흘러넘친다.
‘...무슨 화염이...!!’
냉기의 마법은 유효하지 않다. 그건 모닥불에 물 한 컵 붓는 것이나 다름없는 발버둥, 그렇기에 레오는 다른 힘을 이용했다.
아공간 망토에서 나타난 것은 폭렬의 도끼 엑스 플로, 원로원들의 마법 무기 중 하나였다. 폭발력으로만 놓고 보자면 용암검 화청마저 뛰어넘을 냉병기의 탈을 쓴 화기였다.
“[템페스트 블래스트]”
폭발하는 도끼날에는 바람이 휘감아졌다. 고유마법에 따라 마법진이 완성되어가며 거대한 폭풍을 몰아치게 만들었다. 덩달아 불이 붙고 있던 공기도, 마나에 스며들어있던 정령들도 휘말려 날아갔다.
‘...우선 정비를....’
반격의 틈을 잡기 위해 레오는 거리를 벌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 틈조차 주지 않는 것이 아리아스필이었다.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그녀는 일순의 틈을 주지 않고 타오르는 불꽃마저 뚫고 달려들었다.
마탑의 빈터는 눈을 깜빡일 때마다 쑥대밭이 되었다. 바라보는 이들은 그 검격의 섬광에 눈도 제대로 뜰 수 없게 되었다.
카아아앙!!
다시 검은 서로 부딪쳤다. 아리아가 흥분한 나머지, 몸의 체중을 한 방향에만 쏠려놨기 때문에 반격이 가능했다.
순백의 성검이 흑빛의 마검과 부딪치며 소리가 울린다.
[레오 네가 너무한 거야...!]
그저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아니었다.
[너 때문에... 너 때문에 내가...!]
오러가 공명하며 진동을 일으켰다. 그 진동에 따라 음성이 이루어졌다. 마치 은밀히 밀담을 나누기 위해 접촉해 오러로 소리를 낸 것과 유사했다.
[진짜 좋아서 미치겠는데...!!]
카아아앙!!
난도질하는 난격 사이로 토로가 이어진다. 아마 사랑을 이렇게 폭력적으로 고백할 수 있는 인간은 용사 아리아스필 이외에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왜...!! 한번도 내 마음에 답해주지 않는 건데...!!]
레오나르도는 일순 그 한 마디에 떨었다.
이미 본능적으로도, 감각적으로도 알 수밖에 없었다.
아리아스필이 자신에게 어떤 감정을 지니고 있는지.
처음부터 알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단지 알면 돌이킬 수가 없었기에.
그저 현재 상태를 유지하고자 했다.
파앙!!
일방적인 공격을 끊은 것은 폭렬 도끼의 격발, 충격으로 양쪽 다 밀려나게 되었다.
“나라고...!”
레오나르도는 이를 악물었다. 화가 나는 건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울분을 내는 것은 아리아스필만의 특권이 아니다. 100년을 살았든, 300년을 살았든 상관없었다.
“가만히 있고 싶겠냐...!!”
아리아스필만 보면 항상 그 나이때로 돌아가는 기분이었으니까.
레오나르도의 손에 쥐인 것은 ‘전’ 원로원이 사용했던 인피니보우, 무한의 화살을 쏘아댈 수 있는 무구였다.
‘...레오가 활을...?’
본래 이런 투기장 형태의 결투에선 활은 극단적으로 유리한 상성을 갖지 못한다.
쐐액!!
특히나 오러를 날릴 수 있는 아리아와 같은 적수에, 저격전을 중시하는 레오의 주 전법을 생각하면 궁술을 사용하는 것은 악수로 보일 수도 있었다.
실시간으로 아리아가 레오의 저격을 피하며, 역으로 마나로 이루어진 화살을 두동강내는 것이 그의 증명으로 보였다.
하지만
‘활시위에 무슨 화살이...?!’
활도 사용하는 이에 따라 최적의 무기가 될 수도 있었다.
지금 인피니보우의 활시위에는 수십개의 화살이 동시에 걸려 당겨져 있었다. 인피니보우의 화살은 활대에 내재된 마나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론상 무한의 화살을 쏘는 것이 가능하다.
그랬기에 이런 응용 또한 가능했다.
쐐애애애애애액!!
수십 개의 화살 소리가 바람을 가르며 기묘한 화음을 낸다. 발사한 방향은 포물선의 각도, 직선으로 쏜다면 이 많은 화살이 아리아에게 닿기도 전에 지면에 꽂혀 낭비될 것이다.
아리아스필처럼 마나가 차고 넘치는 체질이라면 모를까, 단련을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노력해도 아리아의 반의 반도 쫒아가지 못하는 레오의 마나량으로서는 지나치게 값비싼 전략이었다.
‘...전부는 못 피해...!’
하늘을 에워싼 것은 포화하는 화살 뿐.
회피로서는 그 아리아스필조차 불가했다.
그렇기에 아리아스필은 몸에 오러를 모아 방어를 준비했다. 오러를 쏘아 요격하는 것은 이후에 돌진해 공격할지도 모르는 레오 때문에라도 해서는 아니되었다.
카아아앙!!
예리한 화살 하나 하나가 부딪쳐도 아리아가 만든 오러의 강기를 뚫지는 못했다. 당연했다. 저격도 아니고, 산탄으로 포화시킨 전략, 오러의 강기를 뚫을 만한 관통력은 없었다.
퍼억!!
“꺄악...”
그 대응이 레오의 계산대로였다. 레오의 검은색 철권이 아리아의 왼팔에 깔끔히 들어갔다.
‘...어디서...?!’
레오는 이미 타점을 날린 지점에서 사라져있었다.
카앙!!
그리고 다시 공격은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도끼와 성검이 부딪쳤다. 반사신경이 조금이라도 떨어졌다면 아리아는 그 도끼질에 폭발까지 당해 완전히 제압당했을 것이다.
‘...알겠네...’
그리고 그 반사신경 덕분에 간신히 레오가 어디에 있는지 볼 수 있었다.
카앙!!
“...잔재주 하나는 잘 부리네?”
“...너랑 달리 대단한 재능은 없는지라.”
레오나르도와 아리아스필을 서로 빈정거리며 말했다.
레오는 아까 뿌린 화살로 ‘무예와 마법의 아리아’를 이미 발동시켜둔 후였다. 단거리 점멸 마법을 몇 번이고 발현시켜 아리아의 사각지대를 노린 것이었다.
“[블링크]”
아직 발현해둔 마법은 남아있었다. 레오나르도는 아리아를 놀리기라도 하듯 화살의 좌표에 따라 몸을 점멸시켰다. 이번에는 활을 제대로 잡고 저격의 방식으로 원거리 견제를 날리는 건 확실한 위협이 되었다. 이미 점멸의 기습으로 상처는 입었기에 더한 공격을 허용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화살을 피해 나가는가 싶던 아리아스필은 성검을 수직으로 잡은 채 지면에 내리찍었다.
크르르르...
지진이라도 난 것 같은 떨림과 울림. 지면이 갈라지며 신성의 빛이 점차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악!!
화산의 화구가 폭발한 것처럼 신성력이 지면에서 신성력의 기둥들이 솟아올랐다. 화살은 물론, 아예 지면 자체를 갈아엎을 정도로 가공할 신성이 폭발했다.
빛의 작은 기둥들이 마탑만큼이나 화려하게 본연의 자태를 드러내었다.
콰지지직...!
방호 마법마저 금이 갈 정도의 위력, 여유를 부리던 리오스와 몇몇 고위 마법사들은 급히 배리어를 강화시켰다.
그 덕에 배리어 내부는 완벽한 암실이 되어 아무도 바라볼 수가 없게 되었다.
몇몇 사람들은 원성을 내뱉었지만, 그 이상은 어쩔 수가 없었다. 애초에 저들에게 보여주려고 한 싸움도 아닐뿐더러.
휘말리면 정말 죽을지도 몰랐다.
“...꽤... 난폭하게 저질렀네...”
그 난장판 속에서도 레오나르도는 쓰러지지 않은 채, 검은 돌로 이루어진 갑옷을 입고 있었다.
기둥 자체를 피하는데는 성공했으나 그 열기과 충격을 맨몸으로 받아낼 수 없었기에 레오는 갑옷을 입는 선택을 고르게 되었다.
“...간신히 버틴 거 다 알아...”
아리아의 말대로였다. 갑옷은 오래 가지 못하고, 부서지고 있었다. 간신히 액화를 시켜 다시 무기의 형태로 되돌리는 것이 지금으로서의 한계였다.
“...너야말로... 무리한 거 아니냐?”
아리아스필이라고 해서 멀쩡한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무한정한 마나를 지녔다고 칭송받은 그녀일지라도, 아까의 반격은 지나치게 감정이 실려있었기에 절제도, 절조도 없었다.
아마 같은 기술을 또 한번 쓰는 것은 절대 가능하지 못할 것이다.
“...후...”
“...하...”
스렁거리는 금속음이 울렸다. 아리아의 하얀 검도, 레오의 검은 검도, 서로 베기 위한 최적의 자세를 잡고 있었다.
카앙!! 캉!! 파앙!!
이윽고 무차별적인 검격이 오가기 시작했다. 자세도, 특별한 비기도 없었다. 백병전이 연속해서 이어졌을 뿐이었다.
앞에서 보였던 싸움을 생각하면 수수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이 둘에게만큼은 이 격돌이 대련의 진면목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서로 주고 받는 단출한 검격을 느끼며, 이 둘은 서로가 처음 만났을 때를 회상할 수밖에 없었다.
[...기억나냐? 처음 만났을 때...]
전음을 사용하지 않아도 검기의 울림으로 알 수 있었다. 레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내가 기억하는 거랑... 네가 기억하는 게 다르잖아...! 늘 예전 아리아만 생각하면서...!]
아리아스필은 또다시 질투심을 불태웠다. 하지만 평소처럼 살의가 뜨인 질투보단 자신의 마음에 둔감히 대한 남자에게 투정을 부리는 것에 가까웠다.
[...많이 섭섭하냐? 화났어?]
레오의 검격은 부드럽게 흘려쳐진다.
[당연하지...! 하지만...]
아리아의 검격은 그에 따라 다시 비켜서 다시 휘둘러진다.
[...그렇게 화가 난 건 아니야.]
그렇지만 의외로 그 검격은 예리할지언정 난폭하지는 않았다.
[...레오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알고 있어...]
부드러우면서 온화한 유술처럼 아리아의 검극은 레오의 검에 타고 흘러나갔다. 역설적이게도 검격을 날릴 때만 본심을 숨기지 않고 말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그런 거짓말할 필요는 없었잖아...!]
검이 길게 맞닿으며 긁히듯 날카롭게 금속음이 울린다. 분명 불쾌한 소음이 울려도 이상할 것은 없을 텐데, 어째서인지 검의 소리는 소녀의 울음처럼 구성졌다.
[...왜 그런 거야...?!]
아리아스필은 눈물이 흘러넘칠 것 같아, 차마 오러로도 표현할 수도 없었다.
[...내가 진절머리가 날 만큼 미웠어? 아니면 나를 용서할 수가 없었어...? 아니면... 나라는 여자가...]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레오는 이미 자신에게 노력해 관계를 물었다.
그리고 회귀 전의 자신은 비겁히 대답했다.
[동료이자 친구]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사실 아리아도 알고 있다.
이게 얼마나 큰 욕심이고, 오만이며, 만용인지.
레오가 자신을 성적인 눈으로 보고 있을지언정.
자신은 레오를 욕심내서는 아니되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레오도 완곡히 거절하고자 한 것이었다.
회귀 전의 일을 꾸며내서라도... 자신을 밀어내고자 한 것...
[...그거 하나 알려줄까?]
하지만 그 부드럽고 둔탁한 검격을 끊어내는 것은 레오의 칼날이었다. 지나치게 예리한 나머지 아리아의 사색마저 베어내고 말았다.
[내가 동정인 이유.]
아리아는 그 한 마디에 검에 전혀 힘이 들어가는 것을 체감했다.
[사실 용의 피? 금제? 나이? 그런 것 따윈 문제도 안 됐어.]
레오가 진솔해지면 진솔해질수록 아리아스필은 자신의 검에 힘을 잃어가는 것을 느꼈다.
[여자로 안 보였거든.]
하지만 레오나르도도 마찬가지였다. 부끄러운 나머지, 몸에 힘이 안 들어가는 것을 체감했다. 하지만 오러로는 이미 사념은 흘러간 뒤였다.
[...너 말고는 아무리 예뻐도 여자로 안 보이더라.]
레오는 피식 웃으면서 검을 집어던졌다.
“...너 때문이니까 책임져라.”
그 행동 하나에 아리아마저 성검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이젠 나도 못 참겠거든.”
레오나르도는 그렇게 말하며 아리아의 입술에 자기 입술을 포개었다.
“어때? 밑바닥이랑 한 키스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제 심정을 간략히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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