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고 해서 성욕이 없던 것은 아니다.
누군가와 사랑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으며, 여자를 아무 생각없이 안고 싶은 욕정에 몸을 맡기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도 참았다.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저 욕정을 억누른 것이 아니라, 여러 문제로 인해 사실상 성행위는 반쯤 포기했다.
나이나 상황이 맞는 마땅한 여자가 없기도 했고.
창관에 가자니 금제와 어머니 생각이 나서 갈 수가 없었고.
그렇다고 아무나 껴안고 원나잇을 보내기에는 용의 피가 문제였다.
잘못했다가는 자신조차 예상하지 못할 혼종의 아기가 함께 즐긴 여자의 배를 뚫고 나올 가능성이 있었다.
그리고 치료된 후에는 너무 늦어있었다. 나이는 이미 먹을 대로 먹어서 성욕을 즐기는 것은 주책에 주접이 다름없어졌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몸은 혈기왕성할 할지 몰라도, 정신은 늙은대로 늙은 노인이다.
독신으로 살아온 기간이 인생의 전체나 다름없는 만큼, 이번 생에도 독신으로 살 생각이었다.
애초에 색과 성의 유혹에는 이골이 날 정도로 당해봤기에 별 감흥이 없었기도 했고.
“...아...아가씨...”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레오나르도는 옆에 있는 흉악한 존재를 제대로 마주볼 수 없었다.
“...어...! 혹시 별로야!?”
별로일 리가 없었다.
당황스러워하는 기류에 맞춰 아리아의 흉악한 흉부가 흔들린다. 신경 쓰고 싶지 않아도 부드러우며 역동적으로 흔들리는 교복 셔츠 속의 유혹은 레오의 시선을 확실히 사로잡았다.
“...아...아뇨. 아주 잘 어울리십니다.”
레오는 필사적으로 이성의 동아줄을 붙잡았다.
“잘 어울려...?! 다행이다!”
그렇게 안심하며 아리아스필은 해맑게 웃었다. 그 웃음에 레오는 자신의 철심 같은 정신력이 후들거리는 것을 느꼈다.
사실 잘 어울리는 수준이 끝은 아니었다.
적당히 조이는 셔츠는 탐스러운 가슴을 더욱더 도드라지게 만들었고,
아카데미 교복의 재킷은 청순한 매력에 피부와 셔츠에 대비를 이뤄 지적인 미색마저 끌어내었다.
그뿐일까, 잘록한 허리 경계 아래로 있는 교복 치마는 평소에 있던 갑옷으로 가려져 있는 탄력 있는 허벅지를 여실히 내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현자님...!’
레오는 그 징글징글한 현자가 돌아오는 것을 비는 지경에 이르렀다. 차라리 그가 헛소리나 개소리를 해대면 흥분되던 감정도 차게 식으니까.
“...좋아!? 어디가!?”
아리아 입장에서는 용기를 내어 질문한 것이었다. 예전에 피시스가 주었던 셔츠와 치마는 평상복으로 생각하고 입어도 그다지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이 교복은 다르다. 아카데미의 재학생도 아닌 아리아가 교복을 입는다는 것은 분명 다른 속내가 있다는 의미였다.
이를테면 ‘유혹’이라던지.
-괜찮을까요? 제가 교복을 입어도...
-괜찮아. 남자는 교복에 로망이 있거든!
그랬기에 아리아는 알고 싶었다. 레오가 어떤 마음으로 자신의 매력을 보고 있는지를.
“...그게... 그전에....”
레오나르도는 이성이 점점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성의 끈을 팽팽히 잡으니 오히려 끊어질 것 같았다.
레오는 천천히 아리아에게 다가갔다.
“...어...레오?”
레오나르도의 표정은 심상치 않았다. 짙게 음영이 져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마치 물을 며칠 동안 먹지 못해 갈증이 난 사람처럼 맹목적으로 아리아스필을 노려보고 있었다.
‘...설마...’
아리아는 몸이 뜨거워졌다. 설마 오늘 거사를 치르는 것인가. 무서웠지만 흥분하는 감각이 더 컸다.
뜨거운 숨이 들이쉬어진다. 다가오는 레오의 숨도 느껴진다. 서로의 숨이 공유된다. 공기에 들어있는 남녀의 온기와 습기가 폐를 채우기 시작했다.
“...오브하고 무슨 이야기를 하셨어요?”
레오는 다른 의미의 이성을 놓은 채 물었다. 아리아의 질문에는 대답도 하지 않은 채로 말이다.
“...으...응?”
아리아는 그때까진 이해하지 못했다.
레오도 집착한다는 것을.
***
아리아스필은 빠르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오브가 어째서 거짓말을 했는지.
그리고 무슨 말을 했는지를.
레오는 의심스러운 나머지 몇 번 구체적인 상황을 캐묻긴 했지만, 아리아가 티켓을 보여주며 결백을 증명해내자 더는 묻지 않았다.
“...그렇게 된 거였군요. 오브... 그냥 주면 될 걸 왜 복잡하게...”
괜스레 오브가 원망스러워지는 레오였다. 쓸데없는 짓을 해서 사람을 헷갈리게 하는가.
자신한테 주면 끝날 일을.
“...오브가 바로 주면 안 받을 거라는데?”
“상황에 따라 다르죠. 꼭 그런 건 아니예요. 어쨌든 다행이네요. 아가씨가...”
레오는 멈칫했다.
다행이라고 한 건가?
어째서 다행이라고 한 것이지?
안도한 것인가?
오브가 아리아에게 데이트 신청한 게 아니여서.
안심한 건가?
“레오~”
하지만 이내 아리아는 능글맞은 표정으로 레오를 부르기 시작했다. 리오스와 같은 경박한 미소를 지으면서 레오를 잔망스레 바라보는 건 덤이었다.
“다행이라고 했어~?”
“...아 예...뭐...”
“왜애~? 왜 다행이야~?”
아리아스필은 레오의 심경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매번 질투를 반복하는 아리아로서 알 수 있었다.
‘질투했구나...헤헤...’
행복하다. 질투를 할 때는 속이 그렇게 탈 때도 없었는데, 질투를 보는 건 이렇게 달콤할 수가 없었다.
“...그건...”
레오나르도는 잠시 우물쭈물거렸다. 본인도 본인 마음을 잘 몰랐기에.
대답하는 건 더더욱 고역이었다.
이윽고 레오가 낸 것은,
“...오브가 내통자일 가능성이 없어져서 다행이라는 거죠. 혹시나 했는데, 아니라는 게 증명됐으니까요.”
비겁한 선택지였다. 아인의 데이터와 키메라의 연관성은 오브에게도 말했다.
그렇다는 것은 애초에 오브를 신뢰하는 인물로 생각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아...그래?”
아리아스필은 정말 실망한 눈치였다.
레오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자기 감정을 저런 식으로 숨긴다.
“...레오.”
“예?”
아리아는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전에 대답을 안 했지?”
“네, 뭘...”
“어디가 좋은지.”
“...아...”
레오는 다시 아리아의 교복을 바라보았다. 학생도 아니면서 입은 교복은 범죄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잘 어울렸다.
왜 학생들만 교복을 입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될 정도로, 아리아의 교복 차림은 예술적이었다.
셔츠가 조금 풀려있어 드문드문 보이는 쇄골부터.
단추가 흔들리는 유방 때문에 터질 듯이 떨리는 것도.
평소 입던 옷보다 작아서 드러나는 몸매의 곡선까지.
어설프게 매여 흔들리는 넥타이마저 매혹적이었다.
“...왜? 대답 못하겠어?”
“그런 게 아니고...”
레오는 얼굴이 붉어진 채로 고개를 돌렸다. 눈은 이곳저곳 방향으로 뒤흔들어지며 갈곳을 완전히 잃었다.
“음...그러고 보니 이상하네.”
아리아는 그런 레오의 양볼을 잡으며 말했다. 그래서 아리아와 레오의 시선은 서로를 마주본 채로 고정되었다.
“레오는 왜 나한테 존대하는 거야?”
“...어...예?”
난데없는 이야기 흐름에 레오는 계속해서 평정심을 잃어버렸다. 아리아는 그럴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간지러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특히나 저 탐스러운 입술이 떨릴 때마다 더더욱 가슴은 쿵쾅거렸다.
“처음 만났을 때도 그렇고, 회귀 전에도 나한테 반말했잖아. 왜 이제 와서 존대하는 건데?”
“그거야 공과 사를 구분하기 위해서...”
“그러면서 우리한테는 반말하라며. 그걸 하는 편이 공과 사를 나눌 수 있을 텐데?”
“...그건...그러니까...”
“그리고 너도 가끔 흥분할 때 반말했잖아. 이제와서 반말하는 게 뭐가 이상해?”
갑작스러운 아리아의 공격에 레오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맥락이 전혀 없었기에 대답할 변명이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했던 약속도 있었지.”
레오나르도는 분명 약속했었다.
종자로서 가문에 막 왔을 때 즈음에.
[네가 말 한 마디 하면.... 그래, 종자보단 나은 직급을 꿰찰 수 있겠지. 근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데? 그래선 네 곁에 내가 있는 걸 누가 인정하겠어?]
라고 말했고,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줘. 너한테 반말해도 괜찮을 입장이 될 때까지.]
라면서 부탁했다. 아리아스필은 한시도 그 약속을 잊은 적이 없었다.
“...어...”
레오나르도는 좀 다른 것 같았지만 말이다.
‘...잊고 있었네...’
반쯤 잊고 있던 일이었다. 사실 기억 못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아리아와의 관계에 선을 긋기 위해 일부러 사용한 경어가 너무 익숙해진 것도 한몫했다.
“...레오... 설마...”
아리아는 진심으로 실망한 눈치였다. 설마 그 약속마저 잊어버린 것인가. 우리의 추억은 이렇게 가벼운 것이었나.
“...어떻게 그 약속을 잊을 수 있어?!”
“그게... 잊은 게 아니라... 아직 때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진심이야?”
자신의 전속 기사가 되고, 가문을 구한 은인에, 마탑에는 다양한 활약을 펼친 인기인이 됐는데.
거기에 회귀에 대한 비밀은 이미 밝혀졌기까지 했다.
“...정말 아니라고 생각해? 내 눈 똑바로 보고 말해봐.”
아리아의 눈은 화로 가득 차있었다.
아까 대답을 피한 것도 그렇고, 이젠 어린 시절의 약속마저 까먹었다.
용서할 여지 따윈 없이 분노는 타오르고 있었다.
레오의 대답에 따라 벌은 정해질...
“...부끄...러우니까요...”
레오는 붉어진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
“...뭐...?”
“옷차림이 어떤지 말하는 것도... 반말하는 것도... 부끄러워서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으...응?”
아리아스필은 저 말을 들으면서 생각했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꼴릴 수가 있을까?’
부끄러워하는 레오는 최고라고.
얼굴이 붉어진 것도, 그걸 어설프게 가리려고 하는 것도.
마치 평범하는 물을 먹는 레오를 보는 것보다, 자신의 소변을 정화시킨 액체를 마시는 레오가 더 먹음직스럽듯.
부끄럽게 익은 레오는 더욱 탐스러웠다.
“...부끄러우세요? 레오 오빠?”
더 부끄러워하는 레오가 보고 싶었다.
“...오...오빠...?”
“왜요? 저보다 나이도 많잖아요?”
아리아는 점점 얼굴을 갖다대며 말했다. 서로의 가슴은 이미 밀착해있었다. 심장 박동음은 커져만 가며 공명하고 있었다.
“...우후후... 부끄러우세요? 레오 오빠는 의외로 쑥맥...”
“...난...네 흰 머릿결이 늘 청초하다고 생각했어. 아리아.”
하지만 레오도 가만히 있을 성격은 아니었다.
“...어어? 뭐라고...”
레오는 이내 볼을 잡은 아리아의 양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반격의 태세를 갖추는 것이었다.
“왜? 네가 얘기해보라며. 어디가 좋은지.”
“...어...으... 그건 교복을 얘기한 거...”
“파란 눈동자가 늘 보석처럼 빛난다고 생각해. 라인하르트 사람들 중에 네가 제일 빛나는 눈동자를 지니고 있어.”
레오나르도는 칭찬의 맹공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긴 생머리도 항상 어울려. 묶음 머리를 할 때 보이는 목선도 늘 매혹적이지.”
물론 교복보다 아리아 본인에 대한 칭찬이었다.
“그러니까... 나보다... 내 옷 얘기를...”
“싫은데? 반말하는 김에 반항도 좀 하려고.”
레오나르도는 피식 웃으면서 아리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아리아 쪽이 더욱더 붉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네 몸도 참 아름답다고 생각해. 건강하면서 여성미가 있기는 쉽지 않으니까.”
“...으...으...”
“그리고.”
레오는 아리아의 목에 손을 올렸다.
“하으...!”
“...그런 옷차림도 다 좋은 것 같아. 물론...”
그러고는 헐렁한 넥타이를 잡아 천천히 조이기 시작했다.
“넥타이는 좀 풀어진 것 같지만.”
“...저...정말로...?”
“그럼. 난 거짓말을 모르는 남자야.”
레오나르도는 그렇게 거짓말하며 아리아의 검집을 들었다.
“대신 손버릇은 나쁘지만.”
“내 검집!”
레오나르도는 이미 아리아에게서 멀어져 있었다. 검집을 흔들면서 놀리는 것은 아리아의 약을 올리기에 최적이었다.
“이건 압수야. 그렇게 누가 어른을 놀리래? 꼬맹아?”
아리아는 꼬맹이라는 말에 부들거렸다. 설마 아까 했던 모든 말은 자신의 마음을 흔들기 위한 농락인가.
“누가 꼬맹이야! 그거 내 꺼거든!”
아리아는 이내 검집의 끝자락을 붙잡으며 잡아당겼다.
“내가 만든 거지. 그러게 누가 남의 흑역사를 멋대로 보래? 영상 기능만 뺄 테니까...”
“그게 제일 중요한 거라고! 내가 투자한 게 얼만데!”
“투자하긴 뭘 투자...!”
튕
둘이 옥신각신하는 사이, 검집은 튕겨져 바닥을 나뒹굴었다. 이윽고 떨어진 검집에선 진동이 울리더니 보석 부분에서 영상을 송출했다.
송출한 영상은
[내가 이긴 거지?]
레오에게 잊혀진 기억이었지만
[응... 내가 졌어...]
레오의 기억이었고
[잠깐... 뭐하는... 레오...! 흐앗...!]
아리아만이 기억했던
[레...! 레오...! 이....! 이게...! 무슨...!]
[왜? 하기 싫어?]
아리아 본인의 진정한
[...시...싫은 건... 아닌데... 이건 뭐랄까아... 그게... 사귀는... 게... 먼저... 하윽...]
[선택은 승자에게만 있는 거야. 자기야.]
첫 입맞춤의 추억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 시각, 리오스 일행]
“...아리아스필 양이 너랑 같은 방을 쓸 가능성은 생각...”
“아리아가 미쳤니?”
"..."
...솔직히 좀 미치긴 했지만, 그럴 일은 없을 거라 확신은 드는 아메리였다.
[후기를 수정했습니다. 아인은 다른 장소에 있는데 같은 장소에 있다고 착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