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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자는 회귀했다-146화 (146/248)
  • 늘 속으로 생각했다.

    아리아와 예전처럼 있어도 되는가.

    회귀 처음에는 그렇게 개의치 않았다. 돌아왔으니 예전보다 더 나은 실력으로, 더 당당히 그녀 곁에 있으면 될 거라고.

    하지만 있을수록 괴리감을 느꼈다.

    아리아스필이 아니라 나한테.

    아리아는 그대로였는데, 나는 너무 변해있었다.

    70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자신은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변해버렸다.

    아리아스필과 예전에는 당연히 생각했던 것을 하지 못하겠다.

    예전이라면 질리지 않고 대련을 신청해댔을 것이다.

    예전이라면 늘 그녀의 라이벌이라며 뻐겼을 것이다.

    그렇게 부딪치며 구르고 이를 갈면서 한편으로는 낄낄댔을 것이었다.

    그래 왔으니까.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내가 있었던 위치는 금방 사라지는 것이었고.

    나는 그녀를 따라잡기에는 너무 평범한 인간이었다.

    그리고 그녀도 특별할지언정 인간이었다.

    어떤 사고가 생기면 죽을 수 있는 인간.

    무서웠다.

    지난 세월이 나를 무섭게 했다.

    아리아 없이 살아온 70년이 두려웠다.

    더 이상 애로 있을 수 없었고, 있어서도 안 되었다.

    그래서 내면을 잘라내었다.

    외면만을 신경을 썼다.

    정신에서 외부 자극만을 고려했다.

    익숙했다.

    목적에만 충실한 기계가 되어가는 감각.

    그렇게 살아오는 것은 당연했다.

    만족할 수 있었다.

    스승이자 제2의 부모나 다름없는 크리스가 양눈 멀쩡히 허세를 부리고,

    딘 만큼으로, 때로는 그 이상으로 좋은 형이 되어주었던 리오스가 순애에 지론과 헛소리를 늘어놓았다.

    늘 인자하게 자신을 아리아의 친구로 인정한 가주 글라디오도,

    아리아스필을 진심으로 이기고 싶다는 것에 코웃음을 치면서도 훈련해주신 마르켄도,

    일개 기사를 늘 티타임에 초대하며 담화를 나누던 시리카도,

    그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아리아스필을 볼 때는 달랐다.

    만족할 수 없었다.

    왜인지 계속 욕심이 났다.

    더 웃는 모습을 보고 싶었고,

    더 멋있는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다.

    그저 좋은 라이벌이자 기사로서 있어야하는데.

    그 너머를 원하게 되었다.

    그럴 때마다 되뇌었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왜일까.

    지금 저 말을 엿듣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플 정도로 어지러웠다.

    ***

    “...괜찮습니까? 아버지?”

    늑대의 모습을 한 아인은 레오나르도를 바라보며 태연히 말했다. 아까의 대화를 전부 들은 아인이었지만, 어째서인지 그녀는 레오의 혼란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갑자기 경어를 쓰시는 이유가 뭡니까?”

    혼란에 극치에 빠진 레오나르도는 말을 거는 이가 리오스인지, 아인인지조차 분간하지 못했다.

    “아...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조금 피곤해서 그래.”

    “...그래...? 아니면 아까 오브랑 아리아가 같이 나가서...”

    “아니요! 오브가 얼마나 착한 애인데요! 걱정할 게 뭐가 있어요!”

    되려 큰소리를 내자 다들 식은 눈빛으로 레오를 바라보았다. 사실 레오나르도 본인도 자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레오나르도는 떨릴 수밖에 없었다.

    ‘...진짜 착한 애니까...’

    오브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고 있다.

    눈치가 없고 둔한 면모가 있지만, 오브라이언 리제르트는 레오가 인정할 만한 수재에 선인이었다.

    리제르트 가는 마도 명문가로서 현대에 와서는 실적이 부진했을지 몰라도, 근본은 뼈대있는 집안이었다.

    거기에 오브라이언은 레오나르도도 진절 머리가 날 정도로 고지식하게 청렴한 인물이었다.

    회귀 전에도 자신을 집요하게 죽이고자 했지만, 거기에 개인적인 감정은 없었다.

    실제로 레오 본인이 그를 반죽음 상태까지 몰고 갔지만, 싸울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자 보복 없이 협력했을 정도였으니까.

    인성적으로 하자는 없었다는 의미였다.

    ‘...대화를 좀 더...’

    레오나르도는 혹여나 자신이 오해하는 게 있을까, 더욱더 귀에 오러를 주입했다.

    저벅...저벅...

    하지만 귓가에 울리는 소리라고는 멀어져만 가는 발소리뿐이었다. 이윽고 발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게 되었다.

    “레오나르도.”

    “악!!”

    귀의 감각이 너무 강화된 나머지, 가볍게 이름은 불렀음에도 레오나르도는 고막에 멍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왜 그러나? 갑자기 놀라기나 하고.”

    “...에일린... 씨...”

    에일린 템페리우스였다. 선배라고 부르지 않아 시무룩해야하는 에일린은 놀란 레오나르도를 바라보며 물었다.

    “...갑자기 왜 놀라고 그러나?”

    “죄...송합니다. 잠시 생각이 다른 곳에 팔려서...”

    “...그럴 만도 하지.”

    에일린은 본디 누군가를 동정하지 않는다. 동정만큼 양쪽에게 불쾌하고 소모적인 감정은 따로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저 사내에게만큼은 동정을 안 보일 수가 없었다.

    몇십 년도 전에 생이별한 부모가 흡혈귀의 주물이 되어 자신의 손으로 직접 죽여야만 했다.

    그리고 앞으로의 위험을 위해서라도 해부를 직관해야한다니.

    비극을 넘어 자신의 일이었다면 바로 정신을 놓아버릴 광극(狂劇)이나 다름없었다.

    ‘...아리아가... 데이트라니...’

    물론 레오나르도는 정신은 다른 문제로도 혼란스러운 것 같았지만, 다행히 그건 아직 에일린에게는 들키지 않았다.

    “그보다 그 용사는 어디에 있나? 늘 동행하는 줄 알았는데...”

    다만 에일린은 눈치채지 못했기에 더한 질문으로 레오의 마음을 후벼팠다.

    평소라면 못 붙어 다녀서 안달인 그녀가 보이지 않는 것은 분명 이상했으니까 말이다.

    “오...브랑 같이 나가셨어요. 피시스 씨께서 부르셔서요.”

    “피시스? 이상하군. 그녀는 아까 가는 도중에 봤었다만, 누군가를 부른 것 같지는 않았다.”

    레오나르도의 표정이 전기 충격이라도 당한 듯 후들거렸다. 얼굴에 식은 땀이 흐르며 털이 곤두서게 된다.

    “...화장실에라도 다녀온 거겠죠.”

    그래야만 했다.

    “아, 그런 거겠군.”

    에일린도 그 말에 별 위화감을 느끼지 못했다. 사실 레오는 심정과 달리 표정 관리는 확실히 지키고 있었다.

    “...휴...”

    숨을 내쉬며 레오나르도는 이내 정신을 가다듬었다.

    지금은 그런 문제보다 앞서 처리할 일이 있지 않은가.

    사적인 감정으로 일을 그르쳐서는 아니되었다.

    “...조금은 쉬고 하는 게 어떻지? 아니면 리오스 라인하르트, 네가...”

    이런 상태로 해부를 직관했다가는 정말 정신이 망가질지도 모른다. 여러 문제로 레오의 정신은 몰아질 대로 몰아져 있었다.

    “...아뇨.”

    그 중에서 레오의 정신을 가장 모는 사람은,

    “...제가 할 수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본인이었다.

    ***

    아리아스필은 오브의 뒤를 걸으며 생각했다.

    ‘...피시스 씨가 불렀다고?’

    아리아는 감각으로 알 수 있었다.

    “오브라이언 씨.”

    “오브라고 부르셔도 됩니다.”

    “아뇨. 괜찮아요. 줄여부르는 건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요.”

    이름을 갑자기 줄여 부르는 것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물론 상대가 자신을 아리아라 멋대로 부르는 것도 불쾌했고 말이다.

    “그래서 오브라이언 씨, 거짓말을 하신 이유가 뭐죠?”

    “...알고 계셨습니까?”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피시스가 불렀다는 말은 거짓말이었다.

    “피시스 씨가 부를 거면 정령에게 부탁하면 그만이거든요. 그것도 이렇게 따로 부를 거면요.”

    정령사들 간에는 그게 더욱 편하고 효율적이었다. 정령들은 실체화하지 않는다면, 유용한 정보원이자 파발이기도 하니까.

    “예, 그건 그렇군요. 다음에 거짓말할 때는 참고하겠습니다.”

    “...아...네...”

    아리아는 진심으로 오브라이언에게 질환이나 병이 있는가를 의심했다. 개인의 특성이라고 하기엔 그의 말투는 너무 기계적이며 딱딱했다.

    “그럼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죠.”

    오브는 걸음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준비해놓은 이야기를 꺼냈다. 이 정도 거리면 아무리 레오나르도라도 듣지 못할 것이다. 저 문의 격벽 두께만 해도 40cm는 넘어 방음 효과는 확실하니까.

    “많은 사람이 아리아스필 님과 레오나르도 선배에게서 불화가 생기는 것을 노리고 있습니다.”

    “...네...네?”

    아리아스필은 당황스럽게 오브를 바라보았다. 설명한 내용도 놀랍긴 하지만, 저 내용은 마치 조립 설명서마냥 딱딱히 말하는 저 마법사의 언변에 당황을 금치 못했다.

    “그러니 부탁하겠습니다. 이걸 받아주시죠. 이 티켓은 교내 축제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무료이용권으로 각종 식당은 물론, 마법 체험장까지...”

    중요한 설명은 거두절미했으면서, 쓸데없는 설명은 길다 못해 장황했다.

    대강 1분을 넘게 티켓의 세부 설명을 듣던 아리아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번거로운 웅변을 끊어내었다.

    “아... 그럼 감사히... 쓰고는 싶은데요...”

    이내 아리아스필은 오브를 노려보았다. 여전히 의심을 전혀 거둘 수가 없었으니까.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많은 사람은 정확히 누구인지, 불화가 생기는 이유도, 제대로 듣지 못했어요.”

    그게 정말로 중요한 구간이었다.

    그런 되먹지도, 당치도 않은 걸 바라는 역적들이 누구인지도 확실히 알아놓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아, 그건 특정 인물들을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많은 사람들이라는 건, 정확히 모르는 불특정 다수를 아우르기 위해 사용한 관용적인 표현일 뿐이었다.

    “이번 사태에는 마도 처형자 간부는 물론, 마탑의 간부진에게도 정보가 들어갔을 겁니다.”

    “...그렇겠죠.”

    아마 역사상 라인하르트에 가장 치욕적인 사고로 기록될 거라고 언론에도 보도되었으니까.

    첩보원과 정보원까지 있는 고위층들이 모를 일은 전무했다.

    “문제가 있다면 저 시신에 대한 정보도 귀에 들어갔을지 모른다는 점이죠.”

    “...그건...”

    렌의 정보도 간부진에게 들어갔을지도 모른다는 의미였다.

    “...그로 인해 추문과 모함이 흘러나와도 이상할 게 없습니다.”

    이런 가십거리는 기자와 대중들이 좋아하는 극상의 진미다. 그것도 상대가 고명하고, 청렴할수록 진미의 맛은 한층 더 무르익는다.

    렌이 마인, 또는 흑마법사라는 의심부터, 레오도 그와 연결점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유언비어까지.

    진실보다 중요한 것은 보이는 그림이었으니까.

    “...그런 건... 너무하잖아요...”

    “너무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아인 님의 변호 사태에서도 여론전은 일어났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아인 본인은 정신적인 타격이 없었고, 레오 또한 그것에 분노했을 뿐, 트라우마적인 요소는 없었다.

    “다만 이번 일은 선배의 유년기 문제까지 연관된 일입니다. 정신적인 타격은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겁니다.”

    유년기에 느낀 부모의 결핍, 거기에 의도치 않은 재회와 살해.

    거기에 악의적인 여론까지 겹쳐진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확실히... 그건... 게다가 지금은 부상도 있었고...”

    게다가 치료되었다고는 하나 부상의 후유증도 있었다. 이미 몸의 체력은 한계에 다다랐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만약 정신을 흔드는데 성공했다면, 이제는 아리아스필 님과 불화를 조장하는데 신경을 쓸 겁니다.”

    “...불화는 왜...”

    “라인하르트의 연을 완전히 잘라내기 위해서... 실제로 지금 원로원 사태 때문에 시기는 적절하죠.”

    레오나르도를 우호적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신뢰할 수 없었다. 레오를 마탑에 종속하고자 하는 극단적인 이들도 이때를 기회로 노릴지도 모른다.

    사실상 그림으로만 보면 라인하르트 돌아간 직후 얼마 되지 않아 이런 사고를 당한 것이었고, 라인하르트 원로회가 렌을 실험했다는 추측도 그리 이상하게 보이지는 않았으니까.

    물론 그건 라인하르트 가에 마도 처형자와 이단 심문관들이 왔을 때, 결백한 것으로 증명됐지만.

    언제나 진실을 중상과 모략으로 덮어버리는 이들은 존재해왔다.

    “...그래서 티켓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제가 드리면 거절할 게 분명하니까요. 이런 일로 쌓인 피로를 풀고, 두 분의 관계도 돈독해지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오브라이언 씨가 저한테 그럴 이유는 없잖아요.”

    오히려 레오가 마탑에 종속될 기회이니 아리아와의 사이를 더욱더 악화시키는 것이 오브라이언에게는 좋을 수도 있었다.

    “그건 맞습니다. 이건 아리아스필 님을 위해서라기보단 선배를 위해서입니다.”

    오브라이언은 떠올린다.

    쓰레기 처리반이라고 조소받던 마도 처형자의 체계를 뒤바꾼 이를.

    “...이대로 가면 선배는 정말 망가질지도 모르니까요.”

    당연하다는 듯 사선에서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고, 마법의 앞길을 알려준 선배를.

    “그리고 이런 일을 도움줄 수 있는 이는 연인이신 아리아스필 님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예?”

    저 한 마디에 아리아가 느낀 오브라이언의 평가가 수직상승했다.

    “...연인 아니셨습니까?”

    반대로 오브라이언이 되물었다.

    “...아...그렇게 보이나요?!”

    아리아는 완전히 헤실거리고 있었다. 붉게 달아오른 양볼은 마시멜로처럼 부드럽게 방긋거렸다.

    “네, 그렇게 보입니다. 우선...”

    [아리아!! 오브!!]

    그 순간, 리오스의 텔레파시가 울렸다.

    [...부검이 끝났는데 갑자기 레오나르도가 쓰러졌어...!!]

    그때 두 사람의 속도는 음속을 주파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리오스와 오브]

    "오브, 내가 무서운 이야기 하나를 해줄까?"

    "저는 잘 안 놀라는 편인데 괜찮겠..."

    "아리아랑 레오 안 사귀어."

    "미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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