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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자는 회귀했다-145화 (145/248)
  • 쪼오옥...

    현자 연구부실에서 날카롭게 빨대 소리가 울렸다. 이미 냉커피의 물은 바닥을 보이고 있었음에도 아리아스필은 빨대의 흡입을 전혀 멈추지 않았다.

    “...저...아가씨...”

    “쪼오오옥!!”

    아리아스필은 레오나르도의 말을 자르기라도 하듯 더 강하게 빨대를 빨아들였다. 거칠게 액체와 공기가 빨대에 뒤엉켜 빨아드려지며 괴성을 형성해냈다.

    “...진정해... 동생...”

    리오스는 그렇게 대놓고 불만을 드러내는 동생을 보며 진정시키려고 했다. 따지고 보면 이 사태의 원인은 전이를 시킨 자신에게 있었으니 책임을 지려 한 것이었다.

    찰싹!

    “악!”

    물론 그런 리오스의 손길을 매섭게 쳐내었다. 사실 지금 아리아에게 더 화가 나는 존재는 레오보단 리오스에 가까웠다.

    “...그... 리오스도 반성하고 있으니까 용서해주세요. 아리아스필 양...”

    이내 아리아는 살기가 가득찬 눈으로 아메리를 째려보았다.

    “히익...!”

    아메리는 그 살기에 이겨내지 못하고 비명을 내질렀다. 저 눈, 4년 전에 레오나르도와 여자 화장실에서 같이 나올 때도 봤던 눈이었다.

    인간을 벌레처럼 짓이길 듯한 눈동자, 그 시선에 아메리는 자신이 공포에 깔려 찌부러지는 감각을 느꼈다.

    “...진정하시죠. 아리아 언니.”

    “아인아.”

    직접적이지는 않았지만, 아리아는 아인에게도 크게 화가 나있었다.

    “...나 말고 다른 사람한테도 ‘언니’라고 부르는 거니?”

    “예. 그 호칭을 쓰는 분들은 아리아스필 님과 아메리 에스프 님 뿐입니다.”

    “...그렇구나... 저... 사람한테도...”

    아메리는 자신의 머리에 식은땀이 폭포처럼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사실 아메리에겐 언니라는 호칭은 부르든, 안 부르든 그다지 상관없었지만, 이미 아인에게는 그 호칭이 굳어져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감수성 키우기에서 호칭 변경은 빼는 건데...’

    감수성을 키운다고 호칭을 친숙한 것으로 바꾸자고 의견을 낸 것에 아메리는 극심한 후회를 느꼈다.

    “...아인 님, 저는 꼭 언니라고 부를 필요는...”

    “하지만 아메리 님은 제가 아는 분들 중 아리아스필 님과 동급으로 친분이 있는 여성이십니다. 그에 따라 언니라는 호칭을 쓰는 게 맞다고 생각됩니다.”

    “아~ 그렇구나~ 몰랐네~ 모른 내 잘못이네~”

    아리아는 운율있는 목소리와는 정반대로 죽은 눈으로 아메리를 바라보게 되었다. 저 죽은 눈으로 쓰러지는 것이 자신의 운명일까, 아메리의 눈에는 두려움이 가득 들어찼다.

    “...아...아리아 님이랑 레오나르도 님하고 아인 님 같이 있으니 꼭 한 가족 같네요!! 아하하!!”

    그랬기에 아메리는 살기 위한 발버둥으로 급히 아리아와 레오나르도를 묶어서 칭찬했다.

    거의 급조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저 서슬푸른 성검에 토막날 것이 분명했다.

    “...에...에이... 갑자기 무슨 소리에요? 레오 곤란하게~”

    하지만 다행히도 상대는 레오와 아인이 관련된 일이면 지능이 3분의 1로 줄어드는 쉬운 여자였다.

    “레오나르도 군도 그렇게 생각하죠?”

    아메리는 ‘이게 진짜 먹혔다고?’라고 생각하면서도 이 기세를 더 몰고자 했다.

    “...아...그런 말은 조금 자중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사람들이 오해하면 라인하르트의 후계 문제로도 번질 수 있거든요. 그리고...”

    아메리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 난 이제 죽었구나. 다음생엔 대학원 없는 세상에서 태어나게 해주세요.’

    ...라며 고인의 명복으로 속으로 빌던 찰나.

    “그리고... 저도 좀 부끄러우니까...”

    “...부끄러워? 뭐가?”

    “예?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니긴, 얼굴이 완전 빨개졌는데!”

    이윽고 둘이 계속해서 꽁냥거리자, 아메리는 자신이 목숨을 부지한 것을 느꼈다.

    다만 후유증으로 옆구리가 극심히 시려오는 것이 문제였을 뿐이었다.

    “...어쨌든 다들 건강한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신문에선 큰 일이 났다고 들었는데...”

    “...여러가지 일이 있었죠. 다행히 잘 해결됐어요.”

    레오나르도는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도 태연히 거짓말을 내뱉었다. 이번 일은 비밀을 감출수록 안전한 일이었다.

    아메리에게는 부탁한 장비의 제작과 공수를 부탁했을 뿐, 자세한 것은 설명하지 않았다.

    이 비밀을 아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이 사태와 연관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의미였고.

    그건 위험에 빠질 인간이 늘어난다는 뜻이기도 했다.

    “아, 그렇군요... 전 분명 이번 사태 때문에 온 건 줄 알았거든요.”

    “사실 그런 거기도 하죠. 이번에 제작한 장비를 받아가는 것도 방범을 한층 더 강화하기 위해서거든요.”

    거짓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단지 방위의 목적만이 아닌, 공격을 위해서도 필요한 장비들이었다.

    “필요한 장비들은 전부 에일린 님하고 완성을 끝내놓은 상태에요. 챙겨가기만 하시면 돼요.”

    “...근데 아메리 씨.”

    다 마신 커피잔을 내려놓은 아리아는 유심히 아메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처음 봤을 때는 분명 구울이나 언데드의 아종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야위어 있었는데, 지금은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될 정도로 생기있는 여성으로 탈바꿈되어있었다.

    “...많이 변하셨네요? 운동이라도 하셨어요?”

    “아, 그건 이거 덕분이에요.”

    기다렸다는 듯 아메리는 자신있게 손에 끼워진 반지를 내밀었다. 그건 현자의 유산 중 가장 유용하다 불리는 최상급 마도구였다.

    “평유와 평복의 반지 덕에 몸에 있는 피로와 독소가 전부 빠져나오고 있거든요.”

    “...아...그렇다는 건...”

    원래 모습은 저랬다는 건데, 대학원 생활로 그런 몰골이 됐다는 건가?

    “...대학원이 원래 그런 건가요?”

    “...예. 가급적이면 오라고 해도 넘어가지 마세요. 특히나 교수님이 따로 밥 먹자는 건 절대로 피하세요.”

    다들 아메리의 경고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식사는 악마의 계약보다도 잔인했다.

    “...그럼 아직 졸업을...”

    “...석사를 땄으니... 박사만 따면 돼요. 얼마 안 남았어요... 졸업 연구만 해내면... 아하하하하....허허허엉...”

    웃는 건지, 오열하는 건지 헷갈리는 상황에 다들 떨떠름히 아메리를 바라보았다.

    사실 반지 덕에 피로와 카페인에 찌든 몸을 회복할 수 있었지만, 덕분에 담당교수인 흑색 마탑주는 그녀에게 몇 십배나 과중된 업무를 지워주게 되었다.

    그 덕에 아메리의 정신만큼은 24시간 쉴새없이 돌아가야만 했고.

    그 광기를 엿본 리오스는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닦았다. 유일한 친우가 지옥에 가는 것을 말리지 못한 것은, 분명 자기 잘못도 있었으니까.

    아리아도 너무 불쌍한 한 노예를 보며 질투심과 적개심을 순간적으로 사그라뜨렸다. 세상에는 저런 안쓰러운 인간도 있었다는 것을 그녀는 다시 상기할 수 있었다.

    “...그럼 가실까요?”

    “...아...예...”

    숙연한 분위기가 흐르며, 일행들은 밖으로 나갔다.

    “오랜만입니다, 선배.”

    그 순간, 문 앞에 한 짧은 단발의 마법사가 벽에 기댄 채로 슬며시 레오를 바라보았다.

    “오브, 오랜만이네.”

    “잘 지내셨습니까. 사태를 듣고 많이 걱정했습니다.”

    정자세로 걸어온 오브는 그대로 90도 자세로 허리를 숙이며 레오나르도에게 인사했다.

    “괜찮아. 루미네 성인님이 깔끔히 치료해주셨거든.”

    이내 오브는 옆에 있는 일행들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입니다. 리오스 님. 아인 님. 잘 지내셨습니까?”

    “오브! 오늘따라 표정이 다채로운데!”

    “그렇군요. 눈썹 근육이 훨씬 많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확실히 오늘 오브 군은 기분이 좋아보시네요.”

    아리아는 의아한 눈치로 오브라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봤을 때는 너무 차가운 인상이여서 다채롭기는커녕 칙칙하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오브라이언 리제르트라고 합니다. 용사님과 뵙게 되어 영광스럽습니다.”

    말과는 다르게 오브라이언의 표정은 전혀 미동하지 않았다. 마치 도박을 능숙히 플레이하는 베테랑의 얼굴처럼 완벽한 포커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 오브라이언 씨도 마법사이신가요?”

    “네. 전 레오나르도 선배님의 다음 기수로, 선배께는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저의 아버지라고 해도 부족할 게...”

    “그건 너무 갔어.”

    아버지는 아인의 부모만 해도 충분히 지치는 레오였다.

    “죄송합니다. 정정해서 스승이라고 하겠습니다.”

    “그것도 너무 갔다니까. 넌 날 너무 띄워준다고.”

    “하지만 실제로 도움을 많이 준 것은 사실입니다. 마법부터 시작해 전투적인 센스까지...”

    이윽고 오브라이언은 미동 하나 없는 표정으로 레오나르도의 전설을 설파했다. 아리아스필은 그걸 보며 신전에서 경전을 읊는 사제를 보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자자, 진정하고. 본론은 그게 아니잖아.”

    “죄송합니다. 그럼 출발하죠.”

    오브는 그대로 레오나르도 일행을 안내했다.

    중간에 아메리는 교수의 부름으로 떨어져야했지만, 그럼에도 일행은 그녀를 붙잡을 수 없었다.

    대학원생이라는 그런 것이었다.

    ***

    “...도착했습니다.”

    도착한 장소는 거대한 돔으로 이루어진 건물이었다. 원형으로 투박하게 이루어진 건물은 마치 뒤집어진 육중한 원형 방패를 연상케했다.

    “...여기가 마도 처형자의...”

    “마인 연구실이기도 합니다. 생포나 사살한 마인을 연구하는 장소이기도 하죠.”

    그렇기에 대외적인 이미지는 그리 좋지 않았다. 실제로 이런 연구를 이용해 흑마법의 길에 걷는 어리석은 마법사들이 수없이 마탑에서 속출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선배가 선별한 세대들 중에는 한명도 흑마법사가 나온 적이 없습니다. 실력과 동시에 인성을 강조한 테스트를 개발했기 때문인데, 이는...”

    “오브.”

    “죄송합니다. 선배.”

    그렇게 말하며 오브는 문의 손잡이 부근에 손바닥을 펼쳐 대었다. 그러자 문의 잠금 장치가 작동하며 입구를 열어주었다.

    “우와...이런 장치도 있군요!”

    “네, 마인과 흑마법에 대한 정보가 많은 장소이기에 철저히 경비할 필요가 있거든요.”

    문에서 공기가 빠져나오며 기압이 외부와 맞춰지게 되었다. 이윽고 복잡한 기계음을 내더니 문이 열리게 되었다.

    “본래 원칙대로라면 외부자는 출입이 금지되었지만, 용사님 일행은 레오나르도 님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는다고 들었으니 특례로 출입이 허가되었습니다.”

    “...절대적인 신뢰...”

    아리아스필은 절대적인 신뢰라는 말에 레오나르도를 바라보았다.

    역시 레오나르도였다. 자신을 그렇게 믿어준다고 강조한 것은, 임자가 있다고 강조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적어도 아리아는 그렇게 맹신했다.

    “...그럼 시신을...”

    “그 전에. 선배.”

    오브는 건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피시스 나트라 님께서 아리아스필 님을 부르셨습니다.”

    “...네? 저를요?”

    “예, 용사 아리아스필 님만을 불렀습니다.”

    아리아스필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큰 의문까지는 아니었다. 자신만 전문적으로 정령술을 가르쳐준 분이기에 따로 불러 말할 게 있어도 이상할 것은 없었으니까.

    “...그럼 나도 같이 안내를...”

    “아뇨. 안내는 제가 하겠습니다. 선배는 하시던 일에 집중해주십시오.”

    단호한 어투에 모두가 위화감을 느꼈다. 그 순간 아리아 쪽에서 먼저 입을 열었다.

    “괜찮아 레오나르도. 금방 다녀올게. 늦으면 미리 이야기할 거고.”

    “...알겠습니다.”

    레오나르도는 약간 시무룩한 기색을 보이면서도 큰 이견을 내보이지 않았다. 피시스라면 자신과도 지인이니 그리 크게 의심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오브와 아리아는 문 바깥으로 나갔다.

    “아인아.”

    “예.”

    하지만 레오나르도도 가만히 있을 생각은 없었다. 레오의 지시에 아인은 바로 딘에게서 얻은 발톱을 들었다.

    추적을 위해 레오나르도가 하나 받아온 것이었다.

    늑대인간의 발톱을 꽂자 아인의 외형이 딘에 가깝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귀에서는 늑대의 귀가 추가로 돋아났으며, 손톱은 검고 예리하게 자라났다.

    “아우...? 갑자기 왜...”

    “아, 별 거 아니에요. 혹시나 마인이나 마물이 탈출하는 경우도 있어서 미리 대응하기 편한 상태로 만들어두는 거거든요. 겸사로 냄새로도 탐지도 가능하고요.”

    리오스는 납득하긴 했지만, 이를 자연스럽다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그걸 하필, 아리아스필과 오브라이언이 같이 나가는 타이밍에 그럴 필요가 있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물론 레오나르도는 아인을 이용해 아리아스필과 오브라이언의 대화를 엿들을 생각은 없었다.

    ‘...오러를 귀에...’

    자신이 직접 하면 그만이었으니까. 평소라면 신뢰했을 테지만 아까 오브라이언은 누가 봐도 이상했다. 혹시 모르니 확인해둬도 문제가 되지는 않을 테지.

    아인에게 지금 변신을 부탁한 것은, 그에 따른 시선을 살짝 교란하기 위해서도 있었다.

    [...예...건...]

    하지만 문이 워낙 두꺼운 탓일까 하는 말은 명확히 들리지 않았다.

    정말 엿들을 의도가 없었지만, 혹여나 바깥에 적이 있을 것을 염려한 레오는 귀의 감각을 더욱더 예민히 강화시켰다.

    [...많은 사람이... 아리아스필... 노리고 있습니다.]

    [...네...네...]

    오브와 아리아의 목소리였다. 그 말에 레오나르도의 눈이 조금 흔들렸다.

    [부탁하...이걸 받아주시죠... 이 티켓은... 교내 축제의...]

    [...아 그럼... 감사히...]

    축제라... 이런 상황에 남녀가 마탑 아카데미 축제에 사용할 티켓을 준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아...아우...?”

    리오스는 떨리는 기색으로 레오나르도를 바라보았다.

    “괜찮아?”

    “네, 괜찮아요.”

    “갑자기 왜 그래...? 입이 왜 그렇게...”

    “아하하..."

    레오나르도는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요...!"

    다만 혈관이 도드라질 정도로 안면 근육에 힘을 주며 불안하게 미소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흠이었다.

    입술은 경련이라도 난 듯 파르르 떨고 있었다.

    "아..아주...괘...괜찮아...요..."

    안타깝게도 전혀 괜찮아보이지 않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인은 바깥의 대화를 잘 들었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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