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풋한 두 남녀의 첫사랑이 익어가는 동안,
라인하르트의 장년들은 회의로 바빴다.
사태가 사태인 만큼 회의 한 두 번으로는 일을 쉽게 처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금부터 흡혈귀 추적 사태에 대한 회의를 시작하지.”
거기에 이런 초유의 사태에 일처리는 결코 간단히 할 수도, 해서도 안 되었다.
“현 내통자 색출은 어떻지?”
글라디오는 냉철한 눈빛으로 회의의 진행을 맡았다.
“...현재로서는 추가적인 마인, 흑마법사는 없습니다. 루미네 성인의 검증 덕에 수월했습니다.”
“...하지만 마기를 갖지 않고 내통하는 경우를 고려하면 추가적인 색출이 필요하겠습니다. 그건 저희...”
“아니. 그럴 필요는 없네.”
글라디오의 단언에 이곳에 있는 모두가 얼어버렸다.
“...그게 무슨, 혹시 모를 내통자를 색출하는 것은 중요...”
“이미 충분한 확인이 끝났지. 이 이상으로 하는 것은 군사 운용에도 무리를 줄 테니까.”
마기가 없는 내통자는 실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기가 없는 이들은 아무리 조사를 한다 할지라도 철저히 걸러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럴 바에는 그 위험 부담을 안고 가는 것이 답이었다.
“같잖은 정치로 인력을 잃는 것도 큰 손실이잖나.”
“...그렇습니다만...”
다들 표독한 글라디오의 어투에 한꺼풀 꺾이고 있었다. 사실 원로회 사태 때문에 연회가 망가진 것을 생각하면 불쾌하는 것도 이상하진 않지만, 이 날따라 글라디오의 표정은 무거웠다.
‘...미래라...’
그건 레오나르도에게 미래의 일을 보고 들었기 때문이라고, 크리스는 옆에서 예상하고 공감했다.
지금 눈 앞에 있는 이들은 배신하지 않았지만, 전 회차에는 자신들이 살기 위해 가문을 배신했다.
자신의 반려인 시리카가 홀로 외롭게, 본가에서 자살할 때까지 저들은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부아는 차올랐다.
행동의 인과 자체는 이해가 되었다. 사태가 사태인 만큼 가치가 없어진 시리카는 내치는 게 효율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글라디오의 노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을 주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참고는 되는군.’
누가 적이고, 동료인지 갈피를 잡을 수는 있었다. 선입관이나 편견을 가질 수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가문의 판도가 어떤 지 미래의 지식으로 판가름할 수 있었다.
“...지금은 흡혈귀를 소탕하는 것에 전념할 때이지. 불확실하게 존재하는 내부의 적보다 확실히 실체가 존재하는 적이니까.”
흑암 크리스 라인하르토도 한 마디 거들었다. 정치에는 그리 능하지 않았지만, 그게 얼마나 같잖고 진저리가 나는 일인지는 알고 있었으니까.
“그럼... 흡혈귀를 추적하는 방법은...”
“그건 영묘에서 죽은 두 시신 중 하나를 마탑에서 해부하는 것으로 단서를 찾기로 했네. 그리고 남은 시신 한 구는 수인과 같은 후각 뛰어난 기사와 와이번들에게 채취를 인식시킬 생각이네.”
레오나르도에게 들은 정보 덕분에 추적 방법에 갈피는 잡혔다. 마나가 없다면 고전적인 추적 방식을 응용하면 된다.
사냥개와 수인의 후각을 사용한 추적 방식을 응용할 것이다. 실제로 레오나르도의 가족인 딘 하운즈는 뛰어난 후각으로 씻어내린 지 오래된 피 냄새를 맡아내었다.
“...그럼 마탑으로 가는 이는 누구입니까?”
“우선 레오나르도 본인이 직접...”
“그건 반대입니다. 가주님.”
반대 의견을 제시한 자는, 라인하르트 휘하 기사단의 올리비에 암스트롱이였다.
알폰스와 동성인, 암스트롱 가는 대대로 라인하르트를 섬겨온 휘하의 가문이었다.
“어째서지?”
“...듣기로는 그 존재가 레오나르도 기사의 모친과 똑같은 외형의 여성이라 들었습니다.”
렌과 똑같이 생긴 마인에 대한 정보는 결론부터 말해 극비로 두지 않았다.
이미 영묘를 향해 추가로 온 지원군들이 시신을 회수할 때, 그 시체의 얼굴을 보기도 했고 이단심문관과 마도 처형자가 왔을 무렵 정보가 새어나가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본가, 직계 일원 외에도 방계의 수장은 각자의 정보원과 루트를 통해 그 정보를 습득해둔 뒤였다.
“레오나르도 기사가 유능한 것은 사실이나, 이번 일에는 신뢰하기가 어렵습니다.”
그 말에 다른 이들도 동의하는 눈치였다. 논리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이번 상황을 통해 레오나르도를 견제하고 통제할 기회를 얻어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암스트롱 쪽의 말에 거들기 위해 다른 가문의 기사마저 입을 열었다.
“이단심문관의 말이 무조건 옳은 것은 아니지만, 내통자일 가능성도...”
내통자라는 말이 다시 올라오자 본가 일원, 직계 라인하르트가 아닌 몇몇 이들마저 그 경솔한 발언을 내보인 기사를 노려봤다.
“허...내통자라...”
마르켄은 헛웃음을 내며 그 단어를 되내였다. 한편으로는 기가 차면서도, 어째서 레오나르도가 남은 라인하르트의 잔류한 기사를 베었는지 이해가 되는 단어였다.
“...그러면 내가 하나만 묻지.”
마르켄은 저들의 얼굴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저들 중에는 레오나르도의 기억에서 참살당한 이들도 몇몇 보이고 있었다.
“레오나르도가 내통할 동기가 뭐지?”
“...그건... 흑마법을 통해 이득을 취하거나... 라인하르트의 외부인이기에 생긴... 열등감으로...”
차마 본인 입으로 ‘신분 차이에 대한 복수’라고 말할 수 없었는지, 최대한 본인들에게 책임이 없는 형태로 순화시켜 말을 꺼냈다.
그 꼴이 어지간히 보기 흉했는지 크리스는 아예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열등감?”
마르켄은 허파에 바람이라도 들어간 것마냥 실실대었다. 평소 근엄한 태도를 유지하던 마르켄을 알던 이들은 그런 그의 웃음에 몸에 소름이 이는 것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자네는 며칠 전에 코어가 5성에 도달했지. 안 그런가?”
그 기사는 마르켄의 질문에 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그 무뚝뚝한 마르켄이 그걸 기억해주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눈치였다.
“그때 훈련에 썼던 마나연공법을 누가 만들었지?”
그 한 마디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기억하고 있다.
그때 보았던 마나체련술, 그건 마치 현 마나호흡법에 문제를 완벽히 보완해낸 신기술이었다.
단순히 마나를 쪼개 피부에 흡착시키는 것이라면 마나 감응력이 뛰어난 이들만의 기술이 될 터였지만, 거기에 체술을 더해 범용성을 높이고 육체 훈련에도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그건 충분한 보상...”
“다른 곳에 돌려가며 넘긴다면 그 이상도 받아갈 수 있을 테지.”
마르켄은 저 이기주의와 기회주의적 언행에 신물이 났는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러니 라인하르트가 그리 망가져도 이상할 게 없었다.
“애당초 부당한 이득을 취하려면 굳이 흑마법사와 결탁할 필요도 없지. 복수라면 더 쉬운 이야기고.”
굳이 그러지 않고도 안전히 부정할 수 있는 방법은 차고 넘쳤으니까.
그걸 하지 않았다는 시점에서 답은 나와있었다.
“...이번 기회에 레오나르도 군의 이야기가 나왔으니 제대로 말하도록 하지.”
글라디오는 저들을 바라보며 그때의 레오나르도를 되새긴다.
자신의 딸의 유일한 친구인 한 소년이 권력의 암투에 어떻게 휘말렸는지를.
“난 레오나르도 기사를 정식으로 봉신 남작으로 삼고자 하네.”
그 한 마디에 또다시 기류가 뒤바뀌었다.
라인하르트의 남작이 된다는 것은 그저 직위 하나를 하사한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그건 현재 상황에서 하기엔 무리가 있지 않습니까? 지금 현 황제도 저흴 황실기사단으로 견제하려는 마당에...”
각종 재산에 영지까지 내주는 것은 저들에게 있어 그다지 달갑지 않은 이야기임에 분명했다.
게다가 고아에 평민인 레오나르도가 여기서 귀족까지 된다면, 더욱더 그의 입지는 굳건해질 테니까.
“그렇기에 더욱 의미가 있는 것 아닌가?”
글라디오는 역발상적으로 그들의 반론을 막아내었다.
“황실기사단이 라인하르트를 견제하고자 한다면 당연히 빼내기 쉬운 인력을 흔들리는 현 상황에서 빼내지 않겠는가?”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그 ‘빼내기 쉬운 인력’이 누구인지 연상해내었다.
“황실이라면 더한 직위도 줄 수 있을 테지.”
황실의 힘이라면 남작 수준이 아니라, 자작을 넘어 백작마저도 가능할 것이다.
물론 간단치는 않겠지만, 레오나르도는 그 정도 무리를 할 정도의 가치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마탑에서도 교수직과 마탑주 직을 권유했었더군요.”
크리스는 슬며시 그렇게 그 사실을 정직히 곁들였다. 그 위협과도 같은 진실에 어설프게 자리를 지키려던 휘하 가문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이후 안건들은 매우 레오나르도에게 유리하게 흘러갔다. 가문들과 방계들도 어디에 붙어야 유리할지를 갈피를 잡았기 때문이었다.
“그럼 레오나르도의 지인 분들은 저희 기사단의 병사들이 책임지고 보호하겠습니다.”
딘과 아누스의 호위부터,
“라인하르트의 성을 쓰는 것은 당장은 무리지만, 본가에 있는 것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레오나르도 기사의 사역마이기도 하니, 있는 편이 좋겠죠.”
타입 디아트, 아인을 라인하르트의 일원으로 받아들인다는 안건까지.
큰 차질 없이 모두 진행되었다.
물론,
“차라리 레오나르도 군을 제 양자로 삼는 것은...”
“훗, 어찌 개가 범의 아비가 될 수 있겠나?”
부모와 관련된 문제나,
“차라리 레오나르도 군을 저희 딸과 혼약을 맺는 건...”
“그건 절대 안 된다.”
이런 혼례에 관해서는 빡빡한 본가 일행들이었지만 말이다.
***
그 시각, 신전에서는 한 성인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자료와 서적을 뒤지고 있었다.
{...이제 그만 쉬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루미네 수사.}
앤젤라는 이제 50권째 넘어가는 책의 페이지를 넘기는 루미네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미 양쪽에서 코피가 줄줄 흘러나와 붕대를 말아 콧구멍을 막고 있었다.
“...죄송하지만... 아직 단서가 안 잡혀서요. 조금만 더 읽고...”
{지금 먹은 커피잔의 수부터 세고 말해주시죠.}
루미네는 힐끗 쌓아둔 커피잔들을 바라보았다. 아마 양으로만 따지자면 하루 샤워하는 분량으로 써도 될 정도로 지나칠 것이다.
“...하지만... 레오나르도 님의 증상은 정말 위험하니까요. 하나라도 더 알아내야 방법을...”
그렇게 말하던 도중 루미네는 쓰러지듯 책상을 향해 머리를 숙이기 시작했다. 이미 체력적으로 루미네는 한계였다.
점점 정신에 한계가 오며, 눈이 점차 감겨나간다. 파르르 떨리던 눈꺼풀은 그대로 힘없이 떨어진다.
[야, 비둘기.]
“우왁...씨...!!”
그 갑작스러운 한 마디에 루미네는 평소라면 하지도 않을 속어를 사용하며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현자, 당신입니까!?}
[내가 아니라 니 제자 비둘기부터 챙겨.]
그러자 앤젤라의 시선은 넘어진 루미네에게로 향했다.
“...으아...”
루미네는 바닥에 찧은 머리를 어루만지며 위와 주변을 돌아보았다. 현자의 모습을 찾으려고 했지만, 어디에도 현자의 영체는 보이지 않았다.
[나 거기에 없다. 목소리만 전음한 거야.]
“...아... 그렇군요...”
민망한 표정으로 루미네는 다시 의자에 앉았다. 만약 다른 사람이 봤다면, 과로로 실정해서 허공에 삽질하는 광인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무슨 일로 연락하신 거죠? 현자~?}
앤젤라는 한쪽을 살짝 감고, 반댓눈을 슬며시 뜬 채로 현자의 대답을 기다렸다. 얼핏 봤을 때는 원하다는 답을 기대하는 눈치이기도 했다.
[레오에 대한 걸로 말할 게 있어.]
{...아... 그렇습니까?}
앤젤라는 팍 식은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루미네는 원하는 정보가 들어왔나 기대하며 귀을 기울였다.
“...어떤 이야기인가요?”
[...설명하자면 복잡한데...]
현자는 한숨을 내쉬며 뒷말을 이었다.
[...레오나르도, 걔 인간이 아니었을지도 몰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참고로 이마를 맞대고 있던 아리아스필은 레오 모르게 방문을 잠갔습니다. 하지만 운이 나쁘게도 3분 뒤 정도에 몸에 축적된 소변이 급해진 게 안타까운 일이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