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가 인기가 많은 건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죽었던 70년의 세월이 결코 짧지 않은 것 또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저건 확실히 정도를 넘었다.
한두 명도 아니고 세 명이다.
그것도 종류별로 황녀에, 성녀, 거기에 엘프라니.
나만 바라보는 순정남인 줄 알았는데, 아주 가는데만 여자를 후리고 다니는 바람둥이었다.
기절한 아리아의 머릿속에는 악몽이 뒤엉킨다.
[...레...레오?]
꿈 속의 레오나르도는 갖은 여자를 몸에 안은 채로 아리아를 바라고 있었다. 황녀는 레오의 뺨에 농밀한 키스를 주고 있었고, 성녀는 레오의 팔에 풍만한 가슴을 감싸고 있었다.
[...그 여자들은 뭐야...?]
그리고 엘프 여자는 강아지 같은 자세로 레오나르도의 의자가 되어주고 있었다.
[아, 제 아내들이예요.]
[...아내드을...?]
레오나르도의 아내들은 신음을 내며 발정을 드러내었다.
[...아가씨도 제 첩실로 받아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처...처처처첩실...?!]
악몽 속에서 레오나르도와 그 계집년들이 낄낄댄다. 비웃음 속에서 아리아스필은 절규를 내뱉는다.
이건 악몽이다. 현실이 아니다.
하지만 꿈은 종종 현실이 되는 법도 있잖아.
그럼 이 악몽도 현실이...
“아가씨...?”
“안 돼애애애!!!”
퍼억!!
이윽고 깨어난 아리아스필과 레오나르도의 머리가 부딪친다.
“...으악...! 괜찮아?”
“...악...! 죄송해요...”
서로 머리를 부딪친 레오와 아리아는 서로의 이마를 걱정했다. 절규를 내며 갑작스레 올려쳐졌지만, 다행히도 두 명 다 머리에 이상은 없었다.
“네 아내들은...?!”
다만 아리아는 정신적 머리엔 이상이 있는 눈치였다.
“...예?”
“아...그게 아니라...”
머뭇거리던 아리아스필은 떠올린다. 그 색욕의 주지육림이 이루어진 기억이 머릿속에 아른거린다.
아무리 레오나르도가 자신을 떠올리며 몇십 년을 헌신했더라도 이것은 그렇게 쉽게 넘어갈 수 없는 문제였다.
[걱정말라고. 꼬맹아.]
그렇게 어른스러운 모습으로 ‘여자’를 지켜주는 모습도,
[자, 쇼타임이다...!]
오만스럽게 날뛰면서 ‘여자’ 앞에서 멋을 부리는 것도,
[귀쟁이 중에 싫지 않은 건 네가 처음이었거든.]
마치 새침데기처럼 까칠하게 '여자'에게 호감을 표현한 것도,
전부 배가 아파서 도저히 끝까지 볼 수가 없었다.
추하다고 해도, 이건 아리아로서 어쩔 수 없는 본능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간신히 질투심을 억누르며 아리아스필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주변에는 어째서인지 아리아와 레오나르도 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조금 바쁠 거예요.”
글라디오는 리오스의 경솔한 판단을 혼내기 위해 직접 훈계에 벌을 세우고 있었고,
마르켄은 크리스가 멋있다는 이유로 멋대로 검집을 작동하려고 했기 때문에 그것대로 벌을 주었다.
시리카는 그 둘이 아이 교육에 안 좋을 것 같아 아인을 데려간 채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렇구나.”
하지만 아리아의 안중은 그런 것보다 아까의 기억들에 있었다. 여자들과 그런 가증스러운 시간을 보낸 것은 계속해서 아리아스필의 머릿속에서 맴돌며 왜곡되고 있었다.
“...그...레오...”
“...그게... 죄송해요. 아가씨.”
사과를 먼저 꺼낸 것은 레오나르도였다. 사과를 듣자마자 아리아스필은 당황했다. 분명 레오는 이런 부분에서는 항상 둔감했기에 눈치채지 못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으...응? 뭐가...”
“...제가 좀 더 빨리 알아차렸으면... 좋았을 텐데.”
레오의 슬픈 눈이 아리아의 얼굴이 비쳤다. 아리아스필은 그런 눈을 보며 그 슬픔에 공감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설레기도 했다.
‘...설마 내 마음을...’
자신의 사랑을 드디어 본인 쪽에서 눈치챈 것인가.
레오나르도와 눈이 마주칠수록 두근거리는 심장의 고동이 점점 빨라진다.
레오나르도에게도 들릴까? 내 심장소리가...
“...저한테 생긴 부상이 악화한 거죠...?”
“...응...어...?”
난데없는 추측에 갑자기 심장이 본래의 박자대로 돌아갔다. 오히려 고동이 너무 느려져 저혈압이 의심될 정도로 열기가 식어버렸다.
“...저한테... 당한 가슴 부상이 계속 몸에 무리를 주고 있었잖아요.”
레오나르도의 기가 막힌 헛다리에 아리아스필은 안면 근육의 힘줄이 탄성을 잃은 고무줄처럼 쳐지는 것을 느꼈다.
사실 그럴 만도 한 것이 레오나르도 입장에선 사람이 아무리 질투를 한다고 해도 설마 기절할 거라고는 전혀 추측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니 공격을 당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가슴 쪽의 부상으로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추측되는 요소가 그것밖에 없기도 했고 말이다.
“...그게 아니라...”
“...아니긴요! 루미네 님이 직접 치료했는데도 흉터가 남았던데요!!”
“...아...그건...”
레오나르도는 몰랐다. 아리아가 그 흉터를 어떻게든 남기기 위해서 부린 생떼를 말이다.
오죽 그 사람좋은 루미네마저 마음대로 하라고 역정을 냈을 정도이니까.
하지만 아리아에게도 양보할 수 있는 선이 있었다.
‘레오가 내준 커플 흉터니까...’
아리아에게 있어 이건 추한 흉터가 아니라, 고결한 성흔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자신도 성검으로 레오나르도에게 상흔을 내지 않았는가.
마치 커플처럼 낭만적으로 영원한 문신을 새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잠깐 내 가슴을 봤어?”
아리아는 예리하게 그 부분을 집고 넘어가자 레오나르도의 표정이 파랗게 식는다.
“...예? 그건...”
아리아의 질문에 레오는 눈의 시선을 피했다. 사실 응급처치를 위해 옷을 풀어해친 것은 레오나르도 본인이었다.
이는 그만큼 아리아의 은밀한 속살을 봤다는 의미도 될 수 있었다.
거기에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불가피한 접촉으로 음부(陰部)를 더듬었으니 더더욱 양심에 찔릴 수밖에 없었다.
“...죄...죄송합니다... 응급 사태이기에 어쩔 수 없이...”
“...그래? 어쩔 수가 없었어?”
아리아스필은 냉정한 표정으로 레오를 노려보고 있었지만,
‘레오나르도가 내 가슴을 만졌어... 레오나르도가 내 가슴을 더듬었어...! 레오나르도가 드디어 내 가슴을 젖소 짜듯이 주물럭거렸다고!!!’
속마음은 이렇게 발정난 듯 흥분해있었다. 그녀에게는 저렇게 부끄러워하는 레오조차 먹음직스러워서, 가만히 있는 것 자체가 벌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괜찮아. 윽...”
아리아스필은 가슴을 고통스럽다는 듯 부여잡았다. 사실 전혀 아프지 않았지만, 저런 사랑스러운 레오를 더 보고 싶었기에 조금의 엄살을 부려보았다.
“괜찮으세요?!”
“...으응... 괜찮아... 하읏...”
그러면서 동시에 레오나르도에게 매달려보았다. 혹여나 치료사를 불러오겠다는 둔감한 대처를 막기 위해서였다.
“...어...어떻게 하죠...?! 치료 마법에는 소질이...”
“...괜찮아. 참을 만해.”
참을 만하다는 거짓말이 아니다. 아주 조금은 쓰라린 것을 참고 있으니까, 그렇게 표현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죄...죄송해요...”
레오나르도는 몸을 떨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껴안은 아리아마저 눈치챌 정도였다.
“...레오...?”
“...저 때문에... 또...”
그때 아리아는 불현듯 떠올렸다. 레오나르도가 회귀 전에 가문에서 쫓겨난 까닭을.
‘...설마 고모 때 일을...’
크리스의 눈을 찌른 것을 지금 일은 겹쳐진 것처럼 똑같았다.
나약한 정신력으로, 자신의 실책 때문에 중요한 사람을 다치게 한 트라우마가 레오나르도의 몸을 떨게 만들고 있었다.
“...사실 괜찮아!! 장난친 거라니까!”
“괜찮을 리가 없잖아요!! 그렇게 거품을 몰고... 손에 피가 흐를 정도로 억지로 참았으면서...!”
참기는 했다. 솟아오르는 질투심을.
“...진짜 괜찮다니까!”
“거짓말하지 마세요!! 기이한 신성으로 폐가 넝마가 됐었다고요!! 평범한 사람이라면 후유증이 평생 남아도 이상할 게 없어요!!”
레오나르도의 표정을 보자 아리아스필은 그 죄책감의 강경함을 시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저런 상태의 레오일 때는 도저히 말로서 설득이 되지 않았다.
“...그럼 사과하는 의미로 뭘 할 건데.”
설득의 방향을 바꾸기 위해 아리아는 냉정한 목소리로 레오에게 물었다. 그러자 오히려 레오나르도 쪽에서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었다.
“...그게... 제가 가능한 선에서... 원하시는 것이라면...”
“...정말?”
그러자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아리아에게 행운이 굴러들어왔다.
“예. 제가 가능한 선이라면 금전적인 것이라도...”
“정말이지?”
아리아스필은 날카로운 표정으로 되묻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금전 따위는 전혀 바라지도 않았다.
원하는 선물은 레오나르도 그 자체였다.
흉터의 온찜질을 할 겸 태어난 그대로의 모습으로 서로의 가슴을 비벼볼까.
흉터의 소독을 위해서 레오나르도에게 직접 가슴을 핥아달라고 부탁할까.
수분 보충을 위해 레오나르도의 구강에 모인 침도, 쇄골에 모인 땀방울까지도 빠짐없이 달라고 할까.
모두 먹음직스러운 부탁뿐이어서 아리아의 흉터가 그려진 가슴마저 두근거렸다.
‘...하지만 안 되겠지.’
‘아직은’ 부탁할 순 없었다. 의외이겠지만 아리아스필에게도 눈치는 있었다.
그런 부탁을 하면 레오나르도 쪽에서 자신을 거부할 지도 모르는 노릇이었다.
그런다면 강제적으로 속박하고 감금해야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었다. 물론 그것도 유열이 될 수 있었지만, 레오나르도의 행복도 중요했기에 최소한의 자유를 주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그럼 한 대만 때릴게.”
그래서 아리아는 본인 나름의 재치를 발휘하기로 했다.
“...네?”
“...레오나르도가 뭐든 해도 된다며.”
“...예...예에...”
레오나르도는 식겁한 표정으로 아리아에게 얼굴을 갖다대었다. 아무리 반성하는 의미라지만, 아리아에게 진심으로 한 대를 맞았다가는 자신이 골로 갈 것이 분명했다.
“...그럼... 원하시는대로...”
“...그래...”
아리아는 레오나르도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약간 연배가 있는 얼굴도 멋있었지만, 역시 레오나르도의 지금 얼굴이 진국이었다.
이내 감상을 끝낸 아리아는 레오나르도를 때리기 위해 손을 폈다.
“...이제...”
짝...!!
“...정신 차렸지?”
아리아스필은 레오나르도의 양볼을 양손으로 치면서 말했다. 약한 통증과 함께 큰 소리가 울리자 레오나르도가 질끈 감은 눈이 크게 떠졌다.
“...아가씨...”
“난 정말로 괜찮아.”
“...하지만 저 때문에...”
아리아는 양손으로 잡고 있는 레오의 얼굴을 가져오며 웃어보였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해. 그런 약함도 누군가에게는 강한 힘이 되어줄 수도 있고.”
아리아는 떠올린다. 자신이 늘 싸울 수 있었던 건, 레오나르도가 곁에 있어주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받은 신탁대로 레오나르도의 어둠도 받아들일 거야. 그게 설령 틀렸다 할지라도 후회하지 않아.”
아리아스필은 레오나르도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맞댄다. 따스한 온기가 서로의 몸을 부드럽게 덥혀주고 있었다.
“난 그런 레오도 너무 좋으니까.”
붉은 황혼빛이 창문 넘어로 넘실거린다. 하지만 그 붉은 빛조차 붉게 익어버린 두 남녀의 얼굴을 가릴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사랑은 황혼 아래에 달게 익어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여담(?)]
“...근데 그 영상에 나온 여자들은 전부 어디에 있어?”
좋은 건 별개로 이건 확실히 물어봐야했다.
“...예? 아... 아직 안 태어났어요. 그리고 아까 그 엘프는 남자예요.”
그 한 마디에 아리아는 생각했다.
혹시 모르니 태어나기 전에 사랑의 결실을 따먹어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