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이 처음으로 마을로 왔을 때는 거의 거지꼴이었다.
쫄쫄 굶은 채로 숲 주변에 쓰러져 있어서, 딘이 들쳐업은 채로 마을회관에 데려온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아이고, 잘 먹었다!! 고마워요!’
힘쓰는 일을 도와주는 대신, 렌은 마을회관에서 얻어자는 것을 부탁했다. 애초에 사람이 별로 없는 마을인지라 마을 사람들은 딱히 불만 없었다.
까놓고 위험인물이면 아누스가 정령술로 때려눕히면 그만이었으니까.
그리고 얼마 지나지 도론에 있는 가축의 피를 먹어치우는 괴물이 있다는 괴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그래요? 그렇단 말이지...’
렌은 신경쓰는 눈치로 이야기를 듣더니,
-‘...흠... 꽝인가? 어쨌든 잡은 거죠?’
추파카브라라는 마물을 일격에 때려잡았다.
그게 시작이었다.
용병 렌과 마을 도론의 인연은.
시간은 지나고, 렌이 마을을 찾아오는 빈도는 점점 늘어났다. 올때마다 늘 거지꼴인 것이 신경 쓰였지만 용병업이 일상이라고 했으니 그다지 의심할 문제는 아니었다.
가끔 게이트에서 잔류한 마물을 잡아주기도 했으니 오히려 있으면 도움이 되기도 한다고 하기도 했다.
“...아누스 할멈...”
그리고 비가 폭풍처럼 내리는 밤날에.
“응애...! 응아아...”
힘겹게 울어대는 아기를 든 채로 렌은 말했다.
“혹시 애 볼 줄 알아?”
부모였기에 그런 말을 한 거였지만, 부모라고 하기엔 모자란 말이었다.
***
“...그럼 제 친어머니는...”
“...미안하구나. 그건... 나도 모른다.”
아누스의 이야기에 반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반응하기에는 이야기가 너무 충격적이며 무거웠다.
“...왜... 숨긴 거예요...?”
“렌이 그걸 숨기길 바라는 눈치기도 했고...”
아누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 얘기를 하면 자신은 분명 미움을 받을 것이다.
“...난 네가 창관 출신일 거라 생각했다.”
“...”
창관 출신이라는 말에 레오나르도는 입을 다물었다. 자신도 회귀 전에는 아리아에게 강조해 화를 냈으니까.
생각해보면 아누스도 예언자를 만나러 갔을 때, 딘이 렌의 냄새를 맡았다고 말하자 그녀는 그 말의 화제를 황급히 돌렸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으니 그게 착각이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네. 창관보다 더 심한 것도 있네요.”
출생의 비밀 중에 창관의 사생아보다 더 지독한 게 있을 줄은 몰랐다.
“...제가 사실은... 인간이 아닐...”
“...그래도 가족이다.”
아누스는 말했다. 염치없더라도 말해주고 싶었다.
“...내 멋대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 너도 네 멋대로 생각해라.”
자신들은 가족이라고, 설사 지금 레오가 부정한다 할지라도.
그렇게라도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예전에 가출했을 때, 기억나세요?”
그때 레오는, 자신은 말했었다.
‘이딴 지루한 마을 더 있어 주질 못 하겠어서요!’
마을이 지루하다는 것을 핑계로 고향을 떠나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이 붙잡았을 때, 그리도 모질게 말하며 레오나르도는 죄책감 하나 느끼지 않았다.
그런 감성을 느끼기에는 감정이 여물지 않았다.
그래서 딘의 얼굴에 피를 끼얹었을 계책과, 나무에 잔뜩 깔리게 할 함정도 쓸 수 있었을 것이었다.
“...사실 돌아오는 게 무서웠어요. 제가 한 짓이 있다 보니.”
회귀 전에는 돌아가는 게 무서웠다.
그렇게 모질게 하고 고향을 나간 것이었다.
대접받지 못해도, 오히려 매도 받아도 이상할 게 없다고 생각했다.
“...레오...”
아리아는 알고 있다. 그게 단지 현재의 일이 아닌, 회귀의 70년까지 포함되었을 거라는 것을.
“...그래서 살갑게 받아줬을 때는 정말 감사했어요.”
편지를 보내고, 처음으로 마을로 갔을 때.
마을 사람들 중 자신을 반기지 않은 이는 없었다.
오히려 밥은 잘 먹고 다녔는지.
혹여나 돈이 궁한 건지 아니었는지.
병이나 상처가 있는 건 아닌지를.
질릴 정도로 물어보고 확인했다.
회귀 전에 뒤늦게 페허가 된 마을을 봤을 때가 바보같이 느껴졌을 정도였다.
“받으세요.”
레오나르도는 직사각형 형태의 작은 판을 내밀었다. 검은 유리의 액정으로 이루어진 것이 마치 손거울처럼 보이기도 했다.
“긴급 연락기에요. 저 때문에 두 사람 모두 표적이 될 가능성이 있으...”
“...너 때문이 아니야.”
이번에는 딘이 말했다.
“...그 흡혈귀 새끼들이 나쁜 거지. 네가 뭘 잘못했냐... 좋은 여자친구에 딸까지 뒀으면서...”
그러자 아리아는 슬며시 얼굴을 붉히면서도, 레오나르도의 눈치를 보았다.
분명 이런 상황에서 레오나르도는 늘 부정하고 지적해왔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분명...’
“그러게. 내가 생전에 나라를 구했나봐.”
그렇게 말하며 레오나르도는 피식 웃어보였다. 아리아마저 얼굴이 완전히 익어버릴 정도였다.
하지만 둘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어쩌면 그 나라를 구했다는 말이 씁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 아닐까.
레오나르도는 홀로 내뱉은 말을 곱씹었다.
“...그럼 가볼게요. 고마워요. 얘기해주셔서.”
레오나르도는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잠시만.”
딘은 레오의 팔을 붙잡으며 멈춰세웠다. 방금 전의 무례도 그렇고, 사과해야할 것이 잔뜩이었으니까.
그러니.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내가... 찾는 걸 도울 수 있지 않을까...? 냄새로도 알아냈으니까...”
“...안돼. 이건 마을 멧돼지 사냥 같은 게 아니야.”
레오는 딘을 비하할 의도가 없었다. 하지만 오히려 차라리 불쾌해서 안 하겠다는 말을 듣고 싶기도 했다.
“아마 그 존재와 다시 만나면 형은 20초도 안 돼서 두 갈래로 찢어질 거야.”
“그건...”
레오나르도는 딘의 손을 가볍게 잡았다.
“끄악!!”
다만 오러를 주입했다. 그것만으로도 딘은 그대로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봤지? 이것도 못 버티면 실전에선 바로 죽을 거야.”
지금 딘은 잘 쳐줘봐야 라인하르트의 하급 종자 수준일 것이다. 예전처럼 형의 등에 의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먼저 갈게.”
“...자...잠깐 레오!”
레오나르도는 그렇게 말하며 먼저 숙소 바깥을 나갔다.
“...죄...죄송해요. 레오나르도 많이 힘들어서...”
“괜...찮아요. 애초에 내가 나댄 것도 있고...”
딘은 털에 뭉친 먼지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약한 오러임에도 전달된 충격은 낙뢰처럼 딘의 몸에 큰 충격을 일으켰다.
그 증거로 이미 넘어졌으니까.
“...그래도... 죄송합니다.”
아리아의 표정은 고개를 내린 채로 그 둘의 시선과 마주보지 못했다.
“...애초에 가문에 안 왔으면 이럴 일도 없었는데... 저희 때문... 아니... 저 때문에...”
“아니, 그건 아니다.”
아누스의 단호한 부정에 아리아는 고개를 들었다. 그 단호함이 한 편으로 인자함처럼 보이기도 했다.
“...예...? 하지만...”
“난 분명 말했지. 레오를 지킬 필요는 없다고, 너 스스로 지켰으면 한다고.”
그래, 분명 아누스는 그렇게 말했다.
부디 레오보다 먼저 죽지 말라고.
“...그럼 염치는 없지만, 다시 한번 부탁하마.”
아누스는 자신의 양손으로 아리아의 손을 감쌌다. 아름다운 미색과는 달리 그녀의 손은 굳은살과 물집, 흉터로 가득했다.
아마 용병인 렌과 손과 비슷한 느낌이 드는 건 착각이 아닐 것이다.
“...레오를 부탁하마.”
“...네.”
아리아는 그 온기를 쥔 채로 나간 레오나르도를 따라갔다.
***
“...아, 죄송해요. 먼저 나가버려서...”
따라오는 아리아를 뒤돌아 바라보며 레오나르도는 사과했다. 너무 상황에 감정이 고조되어버려 독단적으로 행동해버렸다.
“...사과하지 마... 부탁할 테니까.”
아리아는 레오나르도의 손을 강하게 쥐며 말했다. 이래서는 뛰쳐나가 도망칠 수도 없었다.
그러자 레오나르도는 피식 웃으면서 손을 같이 잡았다.
“...조금 걸을까요?”
레오나르도는 아리아의 손을 잡은 채로 거리를 걸었다. 거리는 어느샌가 밤의 그림자가 드러누워 어둡게 달빛이 빛났다.
“회귀 전에도 이렇게 걸은 적이 있었어요.”
“...그래?”
훈련이 끝난 아리아를 꼬셔 바깥으로 데려온 날이 있었다. 가끔은 이렇게 숨을 돌려주는 게 좋다는 크리스의 의견을 반영한 어린 아이의 유치한 발상이었다.
“아가씨는 그런 절 불량하다고 종종 지적했죠. 사실 몰래 나온 거였거든요.”
“...지금하고는 딴판이네.”
“...그러게요.”
어쩌면 처음부터 똑같이 대하는 게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저 밑바닥 세상물정밖에 모르는 어린 아이처럼 건방지고 걸걸하게.
아리아도 그런 자신을 특별하고 편하게 대해왔으니까.
하지만 그랬기에 연기를 했는지도 모른다.
[...동료야. 친구고.]
그 말대로 좋은 동료를, 좋은 친구이고 싶었다.
더 욕심을 내어도 라이벌 정도면 충분했다.
“...알아요? 전 아가씨를 질투했어요.”
“...”
아리아도 그걸 알고 있었다.
지금은 몰라도, 회귀 전 레오나르도는 누구보다 아리아를 존경하고, 동경했으며, 질투했다.
“...좋은 가족 분들에게 둘러싸이고, 좋은 집에서 살았고, 뛰어난 재능으로 모두에게 칭송받는... 아름답게도 멋지셨으니까요.”
그래서 질투했다. 그게 너무나 불공평해보였으니까.
“...그래서 2인자를 자칭했어요. 사실 그때 전 아가씨보다 몇 배는 약했는데 말이죠.”
아마 당시 레오와 아리아가 맞붙는다면, 아리아는 한쪽 손만으로 레오를 상처 하나 없이 제압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그것도 10초라는 찰나에, 실제로 비슷하게 당한 적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건...”
“...그래도 괜찮아요. 저도 노력해서 지금은 가문 사람들과 동등하게 겨룰 만큼 성장했으니까요."
크리스와 호각으로 겨뤘으며, 청탑주마저 단신으로 제압했다. 아마 회귀 전과 비교하면, 비교하는 게 무례할 정도로 괄목한 성정이었다.
“...아가씨, 아가씨께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응. 말해봐.”
레오나르도는 손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필히 자신의 손은 떨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리아의 손은 떨리고 있는가.
그건 모르겠다. 서로가 동시에 떨고 있기에 서로의 떨림을 구분하지 못했다.
“...제가 만약 또 어둠의 신성력을 못 버티고... 폭주한다면...”
마치 한 몸이 된 것 같은 감각이었다.
“...절 죽여서라도 멈춰주세요.”
아리아는 느낄 수 있었다. 레오의 떨림이.
하지만 그 이상으로 자신의 몸도 떨리고 있었다. 그랬기에 아리아는 대답했다.
“아니. 그건 못 해주겠어.”
“...죄송해요. 하지만 저도 이건 물러날 수 없어요.”
자신의 폭주로 모두를 죽인다. 실제로 일어날 뻔했다. 모두를 다치게 하고, 위험에 빠지게 한 것은 자신이었다.
그러니...
“그러니 절...”
“죽이지 않고도 멈출 수 있거든.”
아리아는 그렇게 레오나르도의 부탁을 돌렸다. 비관에서 해결로 붙잡아 올렸다.
“...예?”
“난 레오가 생각한 것보다 강한 여자야. 앞으로도 더 강해질 거고.”
오만한 말이었다.
“그러니까 절대로 안 죽일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안 죽게 할 거고.”
오만하다 못해 욕망적인 자신감이었다.
“난 네가 인정한 최강이니까.”
그건 그녀가 정점에 오른 1위였기에 가능한 말일 것이다.
“그러니까 그런 말 다신 하지 마. 알았지?”
이런 그녀였기에, 아리아는 용사가 된 것이었다.
“...그러게. 왜 몰랐을까?”
레오나르도는 그녀가 잡은 손을 놓았다. 더 이상의 떨림은 없었다.
“흐앗...!”
“넌 이렇게 재수없는 여자였는데.”
레오나르도는 아리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쓰다듬을 때마다 붉게 익은 얼굴이 떨리는 것이 예술이었다.
“...미안해요. 나쁜 말 해서."
아리아는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레오를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더 만져지고 싶어서 머리를 최대한 가까이 대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좋은 말 해줘서 고마워요. 용사님."
“...네... 네에...”
오히려 포부가 넘쳤던 자신 쪽에서 존댓말이 나와버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 '사실 더 나쁜 말 해도 상관없는데...'
[오랜만에 연참했습니다. 컨디션 나빠서 휴재를 했으면 컨디션 좋을 땐 연참을 해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