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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자는 회귀했다-129화 (129/248)

어쩌면 원로원이 없었더라도 터질 감정인지도 모른다.

아리아가 싫었던 것 아니었다.

하지만 늘 만약을 생각하게 된다.

재능이 있었다면.

출신이 좋았다면.

가족이 있었다면.

그런 가정들이 열등감의 자양분이 되어주었다.

재능이 있었다면 아리아는 이겼을 거다.

출신이 좋았다면 더 강해졌을 것이다.

가족이 있었다면 행복과 만족을 알았을 텐데.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다.

그런 열등감은 레오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그게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누구의 잘못으로 시작된 것도 아니었다.

단지 안타까울 뿐이었다.

우연이 자아낸 운명에

***

레오가 집행 기사를 찌른 것은 그저 크리스의 눈을 찌른 것 때문만이 아닌, 여러 인과 관계가 연결되어 있었다.

레오나르도는 계속된 패배와 열등감으로 정신이 점점 피폐해지고, 그로 슬럼프를 이겨내지 못하고 있었다.

늦은 사춘기 덕에 감정 소모는 평소보다 극에 달해 있었고, 때문에 원만했던 기사들과의 관계도 망가져만 갔다.

-조금은 진정하지 그러나... 평소의 너답지...

-선배가 뭘 아는데요!! 패배주의로 냉정한 척 핑계나 대는 주제에...!!

-...조금은 쉬어라. 거울도 좀 보고.

선배인 알폰스마저 당시의 레오는 대화를 포기해 고개를 저을 정도였다. 그 정도로 레오나르도의 정신이 몰아붙여져 있었다.

그리고

흑마법사를 생포하는 작전에서 일은 터지고 말았다.

-기다려!! 레오나...!

조금만 더 냉정히 상황을 바라볼 수만 있었더라면.

-끄아아악!!!

흑마법사가 갓 전개한 의식진에 들어가는 참사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레오나르도는 그대로 폭주했다. 의식진은 조종당하는 이유의 힘을 강제적으로 뽑아내는 금술, 덕분에 동료 중엔 레오를 막을 수 있는 기사가 없었다.

-비켜라!! 내가 막지!!

평소 제자의 열등감을 회복해주지 못해 죄책감을 느끼던 크리스가 조금 망설이지 않았더라면.

콰득...!

-...어...?

-...드디어... 눈을 뜬 건가...

아리아가 간신히 흑마법사의 목을 베었을 때가, 레오가 크리스의 눈을 꿰뚫었을 때가 아니었더라면.

-...으아아아아...악...!!!

이렇게까지 정신이 망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원로원은 이때를 기회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는 마르켄과 크리스 때문에 제대로 건드리지 못한 레오나르도를 확실히 베제할 기회라고.

-너의 실수로 흑암 크리스티나가 당한 거다!!

그리고 비열하게도 그 계획은 성공적이었다.

크리스는 몇 달 동안 기절해있었고, 마르켄도 외동딸이 그렇게 된 사태에 혼란, 동시에 부상으로 입원해있었다.

평소라면 어느 정도의 변호라도 할 레오나르도는 그대로 정신이 붕괴해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하고 받아들였다.

이후에 크리스가 항변이라도 해보려고 했으나, 레오나르도 쪽에서 먼저 자포자기를 했다.

그 뒤로 레오나르도는 집행 기사를 그만두었다.

이후에는 순탄하게 나락으로 갈 수 있었다.

점차 레오는 좌천을 당하며, 몰락을 겪어갔다.

직책을 뺏긴 것보다 정신을 무너뜨렸던 것은, 자신의 나약으로 스승에게 장애를 만든 것이 가장 큰 고통이었다.

원로원은 그걸 보며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레오나르도와 아리아스필은 점점 멀어졌고, 그녀는 용사로서의 삶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점차 권력의 방향도 가주에게서 원로회에게로 기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원로원들은 확신했다.

연심인지는 몰라도, 아리아는 레오에게 마음이 있을 거라고.

그 증거로 아리아는 늘 레오가 위기일 때, 빠르게 뛰어가 그를 구했다.

그러니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기회는 왔다.

-미궁 토벌에 대한 청문을 시작하지.

원로원에겐 발록에게 전멸당한 정찰대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조장인 레오나르도를 추궁하기 시작했다.

아니, 추궁보다는 능멸에 가까웠다.

혹시 나가자고 했음에도 공적에 눈이 멀어 계속 전진하자고 한 건지.

홀로 살아남기 위해 동료들을 버린 것은 아닌지.

그리고 아리아를...

-요즘 그런 추문이 있더군. 임무 도중, 네가 자고 있는 아리아스필의 몸을...!

그 순간, 피폐해진 정신의 끈이 끊겼다.

-끄악!! 경비..! 경...!! 끄아악!!

퍼억! 퍽!! 빠악!!

레오나르도는 부상이 있는 몸으로도, 원로원 3명의 안면을 구타해 골절시켰다.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아 경비병 4명이 붙잡고 제압해야 간신히 포박할 수 있었다.

***

“결과적으로 전 라인하르트에 쫒겨나게 되죠.”

송출되는 영상을, 안타깝게 덤덤히 보는 레오나르도는 부연 설명을 이어갔다.

“...쪼...쫒겨났다는 건...?”

글라디오가 파리해진 입술과 눈매로 떨린 말투로 물었다. 지금까지의 영상만 해도 상상 이상으로 피폐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였다.

본인은 그저 태연히 영상을 보고 있었지만 말이다. 부연 설명은 덤이었다.

“말 그대로입니다.”

설명을 돕기라도 하듯 영상이 시작되었다. 영상에 나오는 사람은 가주인 글라디오였다.

-...기사에 복귀하고 싶다면... 원로원에게 정식으로 사과해야한다더군... 미안하네... 이건 어쩔 수가...

“웃기고 있네.”

그리고 이 말을 나직이 읊은 것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아리아스필이었다. 자기 아버지한테 반말을 한 셈이었지만, 사실 이 자리에 있는 대부분의 이들이 공감하고 있는 말이기도 했다.

글라디오는 묘하게 자신의 어깨가 위축되는 것을 느꼈다.

-...거절하겠습니다.

그렇게 레오는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인간 관계는 대부분 파탄이 나있었기에 작별 인사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크리스나 리오스 같은 몇몇 사람들은 레오나르도를 붙잡기도 했지만, 레오는 그들의 곁에 있을 힘도, 염치도 없었다.

그리고 용사 아리아스필은,

턱...

레오에게 장갑을 던졌다.

-무슨 뜻인지는 알고 하는 거지?

-이게 우리가 납득하는 방식이잖아.

그렇게 둘은 결투를 시작했다. 내기를 한 것도 아니었다. 이 대련으로 남거나 가는 걸 결정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둘은 무기를 맞대었다. 그게 둘이 대화하는 방식이었으니까.

-하아...쿨럭...

하지만 처참했다.

-...왜냐고...왜냐고... 왜... 왜!! 한 자루도 안 꽂히는데...!! 왜 조금도 안 아파하는데...! 난 죽기 직전인데...! 넌 왜 땀도 안 나는데!!

지금 이 부분만큼은 레오나르도조차 표정을 떨었다.

추하기 짝이 없었으니까.

결국 자기가 열등한 것을 타인에게 푸는 것밖에 되지 못했다.

그 증거로 이 영상을 보는 이들은 내 추함에 입을 가리고 있지 않은가.

-...왜...난 널 이길 수가 없는데...

-...미안해.

가버리는 아리아스필을 보며, 레오나르도는 지면을 엎드리며 땅을 손으로 두드린다..

-뭐가...!! 동료인데...!! 뭐가 친구냐고...!! 너랑 난 결국...!

오열하는 추한 모습으로 레오는 외친다.

-아무 관계도 아니잖아...!!

레오나르도는 결국 눈을 돌리게 된다. 저 한마디도 아리아스필에게는 큰 상처가 됐을 것이다. 지금 보는 것도 역겨울 가능성이 있었다.

그 증거로 다들 할 말을 잃었지 않은가.

“...어...아...아우... 아니, 레오나르도 씨... 혹시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지...”

레오나르도는 자신의 가슴이 조여오는 고통을 느꼈다. 이래서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실망하셨겠지...’

리오스가 자신에게 실망했다고 레오는 생각했다. 실상은 레오가 눈치가 없다 못해 감각이 반전된 수준으로 달랐지만 말이다.

이윽고 영상은 시작된다.

[동방 영상은 넘긴다. 어차피 시간도 없고, 번역 자막도 없어.]

현자는 미번역된 동방 기억을 빨리 감기로 넘기며 대충 설명했다.

“...아...예...”

현자는 어느샌가 긴장을 푼 채, 늘 상 행동했던 대로 경박한 어투를 구사하기 시작했다. 레오나 루미네는 그렇다 쳐도, 주변 이들은 저 인간이 정말 현자인지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레오나르도...니...?

영상을 시작되니 이번에는 수척해진 시리카가 나왔다. 시리카는 역변한 자신의 모습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미안해요... 집안이 많이 누추해졌죠...?

라인하르트 일가는 모두 경악했다. 폐허가 된 본가를 보니 도저히 놀라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것이다.

“...어...어떻게... 이렇게까지...”

이윽고 시리카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가주 글라디오가 부상과 독으로 병석에 눕게 되었을 때, 실질적으로 권력은 원로회가 갖게 된 것을.

그렇게 차례차례 전장에서 죽어나갈 때, 원로원들은 자신의 보신만을 생각해 살아남고, 결국 라인하르트는 제국의 신뢰를 잃었다는 것마저.

마지막에 가서는 원로원주의 죽음으로 원로원은 서로 잇속만 챙기느라 실질적으로 파벌이 갈린 것까지도.

-...아리아는 어딨죠?

레오나르도는 텅 비어버리고, 실성해버린 듯한 표정으로 시리카에게 물었다. 이런 상황에선 이미 답이 나왔지만, 그럼에도 부정하고 싶은 진실은 있었다.

-...아리아는... 이미 죽었단다...

영상 속 레오나르도의 표정은... 가히 형용할 수가 없었다. 얼굴에 음영이 너무 진 나머지, 그곳에 조명이 없다 착각할 정도였다.

-...아리아는 당신이 살기를 바랬어요... 그래서... 한번도... 널...

시리카는 말했다.

아리아스필은 레오나르도를 전장에 끌어들이기 싫었다고.

그래서 일부러 연락을 보내지 않았다고.

-...하지만 전 편지를...

-...편지라니... 그런 건 한번도...

당일 레오나르도는 쉰다는 명목으로 남은 방에서 잠을 청했다. 자는 것보다 가문 사람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눈물을 쏟아내고, 토를 쏟아내며 자학을 해대는 레오의 모습이었다.

-...난... 난...우웩...아아아...!

다음날.

-...시리카님...?

시리카는 정원의 나무에 목을 매달았다.

“...아...아...”

다들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특히나 본인인 시리카는.

레오나르도도 이해했다.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자살한 영상을 본다면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시리카 님!!

영상 속 레오나르도는 급히 시리카의 목에 걸린 밧줄을 잘랐다. 그리고 이내 맥을 짚으며 절망한다.

[레오나르도 군, 전 살아있는다면 당신을 이용할 인질이나, 잔류한 일부 가문들에게 이용당할 게 분명해요.]

[그러니 자결을 택했어요. 그러니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묘비에는 아무 말도 적지 말아주세요. 전 무능한 엄마에 안주인이었어요. 적어도 당신 보낸 편지가 제대로 아리아에게 갔다는 것만 확인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지도 모르니까요.]

[...정말 죄송해요...저도 지쳤어요...]

유서를 뒤로 하고, 레오나르도는 정원 나무 밑동에 흙을 삽으로 팠다. 시리카의 시신을 담을 관은 가문에 남은 나무 상자로 대신했다.

캉...

그 순간, 삽이 흙 속 무언가와 부딪쳤다.

-...이건...

검은 철통이었다. 자물쇠로 잠근 철통이었다.

레오나르도는 자물쇠를 찾을 것도 없이, 그걸 그저 검으로 잘라 열었다.

-...이...바보가...

그 안에는 장검이 들어있었다. 자신이 가문에서 처음 받은 장검과 같은 롱소드였다.

[Have a wonderful life]

그렇게 검의 각 면에는 새겨져 있었다.

-...왜 마지막까지... 사람...비참하게...

레오나르도는 이내 검을 껴안고 흐느낀다.

그리고 동시에 눈을 부릅뜬다. 이는 라인하르트의 일가와 시선이 마주친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강렬한 눈빛이었다.

장면은 바뀌고 레오나르도는 가면을 쓴 채로, 원로회에 오른다.

레오나르도의 머리는 완연한 백발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내 차례로 원로원를 몰살한다.

-네놈은... 도대체...

-어둑시니, 그 이상 기억할 필요는 없지.

원로회장에 있지 않은 채, 다른 곳에 있었던 이들도.

-용사의 명예를 위해서였다!! 세계의 존속을 지키기 위해...!!

-...명예...? 존속... 고작... 그딴 거... 그딴 거 때문에 그 앨 죽인 거냐!!!

그리고 그들을 지키는 가문과 방계마저.

-...네놈들이 뭔데 내 스승의 무기를...!!

-끄아악!!

방해하는 이라면 상관하지 않고 베었다.

그렇게 추악한 과거가 계속되고, 레오는 이내 꺼진 영상을 멈추며 말했다.

“...용서를 구할 생각은 있어도, 받을 생각은 없습니다. 절 욕하셔도 좋아요. 전 여러분을 기만한 게 맞으니까요. 그러니 미래의 사건을 막기 위해서라도...”

레오나르도가 자신을 죄를 인정하는 사이,

“아..아닙니다!! 도...도련님...!”

갑자기 글라디오가 자신을 부르는 호칭이 격상했다.

“...레오나르도 라인하르트 만세!!”

“...만세...! 만세...!”

갑자기 리오스가 자신을 찬양한 건 덤이었다.

그보다 왜 자신이 라인하르트의 성을 갖게 된 것인가.

왜 나한테 미친듯이 만세를 부르고, 사과를 하는 것인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병맛 여담 <라인하르트 상사>]

“본의 아니게 여러분들을 속인 점... 매우 미안하게 생각...”

“아닙니다!!”

“괜찮아요!! 더 속여!! 막 속여!!”

다들 레오는 사과는 끝내지도 않았는데, 석고대죄 수준으로 허리를 굽었다. 하는 수없다는 듯 레오는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은, 혹시나 미래에 큰 문제가 생길까 하는 지적이니 너무 유념치 마세요.”

그렇게 말하며 레오나르도는 글라디오를 바라보았다.

“가주님.”

“...예예...!”

“가문에 있으면서 많은 걸 배웠습니다.”

레오나르도는 숨을 들이마시며 말했다.

“전통주의적이고 통솔이 미흡한 가주는, 병사들의 운용 능력을 저하시킨다는 점, 잘 알게 되었습니다.”

“...예예... 시정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번엔 마르켄을 보며 말했다.

“마르켄 님...”

“...예...에...”

“화만 낸다고 뭐가 해결이 됩니까? 그런 성격을 고쳐야해요.”

다음은 시리카였다. 시리카는 고개도 들지못했다.

“...시리카 님은... 아까 보셨죠. 나무...”

“...네, 봤습니다. 직접 봤으니...”

“너무 무능력해. 뭔가 자기 분발을 해야 하지 않겠어요?”

안 그래도 분량이 없는 시리카로선 뼈아픈 조언이 따로 없었다.

“리오스 님.”

순번대로 흘러가 이번엔 리오스였다.

“예엣!!”

“...난 이런 게 싫어요.”

레오는 리오스의 기운찬 대답에, 식은 눈빛으로 말했다.

“아부, 잔머리... 이런 걸로 전장을 버틴다는 생각들이... 패배로 가게 하는 지름길로 만드는 겁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순애의 화신이시여...!!”

이제는 크리스와 아리아만 남았다.

“크리스 님.”

크리스가 먼저 선택 당했고, 덕분에 아리아는 울상이 되었다.

“여기가 소설이에요? 현실이에요?”

“...소설 아닙니다. 현실입니다.”

“소설이에요? 현실이에요?”

“...현실입니다.”

그런 반복 학습에 레오는 더 말하지 않았다.

“...크리스 님은... 착하니까...”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남은 건, 아리아스필 뿐이었다.

"자, 끝났어요."

"...예? 아리아는요?"

리오스의 말에 레오는 눈을 흘기며 말했다.

"아리아 아가씨는 좋아요. 왜 리오스 님이 그래."

이윽고 지적에 리오스는 코피를 흘렸다.

이게 순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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