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인자는 회귀했다-128화 (128/248)

원로회의 설립 목적은 라인하르트의 전통을 지키고, 젊은 가주가 독단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막기 위해 조율할 조언자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동시에 현재는 은퇴하게 된 라인하르트의 노기사들에게 그에 대한 공로를 인정하여 마련해준 직책이기도 했고.

실제로 원로회가 처음 설립됐을 당시에는 용사가 마왕을 처리하고 남은 악마들을 처리한 전사들만이 원로회에 들어오게 되었기에.

실질적으로 존경받고 우수한 업적과 지식을 남긴 이들만이 원로원이 될 수 있었다.

그들은 300년 뒤인 지금보다 열악한 전장에서 싸워갔으니, 실전적으로 도움이 되는 조언자이자 조력자가 돼줄 수 있었다.

하지만 300년의 시간은 길고, 동시에 평화로웠다.

라인하르트의 기사들은 그런 시간 동안 나태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현상일지도 모른다. 당연히 전시보다는 평화가 있는 상황에서는 정신과 정비가 물러질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나태 이상의 단계에 향했을 때 있었다.

‘내가 다름 아니라 부탁하고 싶은 것은 아리아스필에 대한 거란다.’

타락, 본래 지켜야할 본분을 잊고 과욕을 부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어디까지나 조언로서 있어야할 원로원들은 점차 방계를 장악해나가며, 가주가 지켜야할 영역을 침투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자녀와 휘하에 있는 가문들을 밀어주며, 동시에 원로원에 반대하는 개혁파들과 불순 분자라 생각되는 이들은 점차 배제하기 시작했다.

대놓고 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새로운 신시대의 인물들을 자신들이 고른 이로 채운다면 판도는 원로원에 유리하게 흘러갈 것이 분명했다.

레오나르도도 그 중 한 명이었다.

크리스의 직속 제자이며, 아리아와 친분이 깊으며 암묵적으로 유일한 친구.

이 어린 소년을 미리 포섭해둔다면 상황에 따라 사용하기 좋은 조커가 될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불우한 형편과 과거사는 이용하기 좋은 교섭 수단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걸 이용한다면 설득을 쉬울 거라 생각했다.

‘...그러니 아리아의 행동을 주기적으로 원로원회에 말해줄...‘

’그건 아닌 것 같은데요? 가주 님께서 직접 지시를 내린 건가요?‘

하지만 레오는 생각 외로 원로원의 술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계획을 직접으로 간파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용병 생활로 다져진 눈치는 그리 가벼운 능력이 아니었다.

그렇게 레오나르도를 원로회에 귀속시키는 것은 실패로 돌아갔다.

원로원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웠다. 원로원 측에서는 아리아스필이라는 가주 후보이자 천재를 통제할 몇 안 되는 수단 중 하나를 잃은 셈이었다.

사실 원로원에겐 본가의 집단에 장악할 명확한 명분이 존재하지 않았다.

해봤자 가주의 판단에 찬반 정도나 결정에 조언하는 정도지, 그 외의 본가의 인물들을 쥐고 흔들만한 권한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지능적으로 명분 없이 암묵적으로 권한을 늘리는 것도 불가했다.

행동이 예상되는 인물이 없었으니까.

대표적인 예시로 아리아와 같이 가주 후보인 장남 리오스 라인하르트는 원로원의 지시를 전혀 따르지 않았다.

애당초 아버지이자 가주인 글라디오의 말도 제대로 듣는 법이 없는 리오스가 뒷방에서 은퇴한 늙은이의 말을 들을 이유는 없었다.

‘이런 약혼은 순애가 아니외다!’

‘저의 순애보는 그렇지 않아요!’

자연스러운 만남 추구라는 이유로 주선한 약혼이나 맞선을 전부 파탄내는 것이 그 증거이자 전적이었다.

그뿐일까,

‘검에 서린 녹이나 빼시고 말했으면 좋겠군요.’

‘내가 더 현역에 있었는데 충고를 하는 것도 우습지. 말하는 것이 자유이듯 받아들이는 것 또한 나의 자유다.’

크리스는 현 원로원 체제를 경멸했고, 마르켄은 그들 이상으로 경험이 있는 현역 노익장이었기에 통제할 명분도 없었다.

시리카는 권력이 없었고, 글라디오의 반려인 만큼 그를 위한 행동만 할 뿐 원로회를 따를 이유는 없었다.

그나마 가주인 글라디오는 원로회의 결정도 존중했지만, 그건 전통과 예의를 지키는 것일 뿐, 진심으로 그들의 결정이 결정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원로회에선 용사의 환생이라 평가 받는 아리아스필을 쥘 수단이 절실했다.

그래서 레오나르도를 이용할 계획이 그런 식으로 어그러진 것도 그들 입장에서는 큰 실책이었다.

회귀 전 아리아스필은 사교성이 부족하다 못해 존재하지 못했다.

너무나 뛰어난 능력 덕분에 그녀는 타인을 이해하는 감각이 결여되어 있었고, 때문에 진심으로 감정을 나눌 이가 적을 수밖에 없었다.

라인하르트의 직계 가족들조차 당시의 아리아는 쉽게 대화하기 힘들 정도라고 공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레오나르도의 등장으로 거기에는 변화가 생겼다.

당시 레오나르도는 귀족의 예절은커녕, 긴 용병 생활으로 정치적인 시야는 좁은 편이었다.

그 단점이 아리아에게는 역으로 호재로 작용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아리아는 계산적으로 접근하는 이들에게 환멸을 느낄 시기였다.

능력이 부족한 이들은 아리아를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기만 했고, 그나마 같은 높이에 있는 이들은 ‘아리아스필’이라는 존재보다는 라인하르트의 천재 또는 라인하르트와 연결될 연줄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래서 아리아는 또래 친구는커녕 가족 외에는 제대로 이야기할 사람도 없었다. 곁에 있는 호위 기사 제하드마저 사실상 감시역으로 비위만 맞춰주는 간신배에 불과했다.

‘너 진짜 바보냐?!’

하지만 레오나르도는 달랐다. 아리아스필이 어떤 지위에 있는지 알아도, 사석에서는 항상 반말했고 격식도 차리지 않았다.

‘하지만 아까 가라고...’

‘세상 어느 멍청이가 가란다고 진짜 가냐?! 저건 누가 봐도 위로를 해야할 타이밍이잖아!!’

지적할 것은 확실히 지적했다. 아리아의 부족한 공감 능력과 상식 면모를 채워주었다.

‘아리아스필!! 오늘은 꼭 이긴다!!’

‘...아 그래. 노력해봐.’

거기에 레오는 늘 진지하게 아리아를 이길 방법을 고려했다. 경의는 표할지언정 아리아를 경외하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다들 레오를 철없는 바보라 생각했지만, 10번이 넘게, 30번이 넘게 근성으로 덤비는 마음 한편으로 응원하기 시작했다.

마치 재능보다 노력이 더 의미있다는 이야기를 동경하는 사람처럼, 레오의 존재를 인정해주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의 이야기는 사람들이 흔히 좋아하는 역전의 서사시가 아니었다.

분명 야유투성이가 될, 슬프고 재미없는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

레오나르도는 숨을 가다듬고 있었다. 흥분된 감정을 고르게 만들기 위해, 호흡부터 고르는 것이었다.

주기적으로 대련은 하지만, 지금 하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150번째 대결, 이는 0승 149패라는 굴욕적이며 기이한 전적을 뒤집을 전투가 될 것이다.

100번째 대결에서도 이런 기분이었다.

어떻게든 이기기 위해 연구하고 연구했지만, 아리아에게 그대로 파훼 당해 패배했던 그날.

레오는 아마 렌이 안 온다는 것을 짐작했을 때보다 심히 울었을 것이다. 온몸의 수분이 끓는 것처럼 분하고 억울해서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후...”

오늘은 다를 것이다. 연구하고 확인했다. 오늘까지 해온 크리스와의 특훈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마르켄에게 얻은 교훈은 절대 가볍지 않았다.

글라디오가 해준 조언, 시리카와 글라디오가 북돋아준 격려는 검을 쥔 손에 힘을 준다.

“...준비는 됐나?”

크리스는 준비 중인 레오나르도 옆에서 어느샌가 나타나 서 있었다.

“...예!”

레오나르도는 각오를 다졌다. 오늘만큼은 이길 것이다. 이번만큼은 질 수 없었다.

비기는 것 따위로도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고작 2인자로 끝나지...

“...아까 음유시인이 하던 노래가 신경쓰이나?”

레오의 표정을 보자 크리스는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특훈을 끝낸 보상으로 보양식을 사준 찰나, 길가에서 음유시인이 부른 노래가 아리아와 레오를 다룬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아마데우스... 제목 하나는 잘 지은 노래였죠.”

아마데우스, 신에게 사랑받는 자라는 단어로.

용사 루벤 라인하르트의 재림이라는 아리아스필에겐 정말 어울리는 단어가 따로 없었다.

“괜찮아요."

동시에 레오에게는 잔인한 말이 따로 없었다.

“...그럼 갔다오겠습니다.”

레오나르도는 등에 각종 장비를 챙긴 채로 문 밖을 나섰다. 장비의 정비는 확실히 확인했고 완벽했다.

“...열등감에 먹히지 마라.”

크리스는 레오의 어깨를 두드리며 조언했다.

“네가 열등감을 먹어 성장하는 거다.”

그 한마디에 레오의 표정이 풀어졌다.

“...아시잖아요? 저 편식 안 하는 거요.”

“...착한 어린이로군.”

“좋은 스승을 둬서 그래요.”

농담이 오가며 경직된 분위기가 풀어졌다. 레오나르도는 자신있는 발걸음으로 나아갔다.

“레오나르도.”

“아, 알폰스 선배.”

약속된 연무장으로 가려던 순간, 이번에는 기사의 선배인 알폰스 암스트롱과 마주쳤다.

“오늘이 대련날이었나? 응원하지.”

“예! 컨디션도, 무기 상태도 최고에요.”

그러자 알폰스의 시선은 자연히 무기 쪽으로 향하게 되었다. 창부터 시작해 단검, 활, 장검까지 날붙이라는 날붙이는 전부 챙긴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 검... 조금 휘어져 있는 것 아닌가?”

“...예?”

레오나르도는 자신의 주무기인 검을 보았다. 보급형이라도 라인하르트의 검인 만큼 그리 쉽게 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알폰스의 말대로 장검을 제대로 확인해보니, 검의 가드가 조금 금이 가 틀어져 있었다.

“...정말이네요.”

“너답지 않게 실수를 했군. 긴장한 건가?”

분명 크리스와 이야기하기 전까지는 멀쩡했다고 생각했는데, 검날은 휘어져 있었다. 분명 싸우다 알았으면 큰 타격을 입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행이네요. 말씀해준 덕분에 예비용으로 바꿀 수 있겠어요.”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군. 나도 네가 꼭 이겼으면 좋겠다.”

알폰스는 예비용 검을 챙기러 가는 레오나르도를 보며 말했다.

“네가 이긴다면 다른 기사들도 의욕이 생길 테니까.”

***

“...왔어?”

연무장 중앙에는 아리아가 서있었고, 그 주변에는 기사들과 사용인들까지 관객으로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녀 또한 대련의 무게를 실감하고 있었는지, 정비한 대련용 검과 갑옷을 입고 있었다.

“왔으니까 대답하지.”

레오나르도도 이를 알아챘지만, 평소처럼 가벼운 어투로 대답했다.

“이젠 공적인 자리에서도 반말이야?”

“...오늘은 제가 이길 테니까요. 아리아스필 님.”

여유를 지키며 레오는 장갑을 들어 내밀었다.

“장갑이 떨어지는 게 시작입니다. 상관없죠?”

“그래. 장갑에 잔재주는 없네.”

아리아는 마나로 강화한 눈을 내보이며 말했다. 그녀 말대로 장갑에는 전혀 속임수가 있지 않았다.

“...그럼...”

레오나르도는 장갑을 그녀와 자신 사이 중앙에 집어던졌다. 높게 떠오른 가죽 장갑은 나풀댈 새도 없이 바닥으로 낙하를 시작했다.

시선은 모두 장갑으로 향했다. 초단위로 빠르게 가속하는 순간,

빠각!!

레오나르도는 갑자기 창을 반절로 부러뜨렸다. 큰 소리가 울리며 아리아느 물론, 사람들의 시선마저 레오 쪽으로 향했다.

규칙을 어긴 것은 아니었다. 난데는 없었지만, 공격을 한 것도 부비트랩을 만든 것도 아니었으니 ‘어긴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함정은 맞았다. 사람들의 시선은 다시 장갑으로 향했다.

이미 장갑은 바닥에 떨어졌다. 창을 부러뜨린 장본인인 레오는 가장 먼저 그걸 확인할 수 있었고.

휘익!!

고로 선제공격으로 부러진 창 손잡이를 던지는 것도 가능했다.

카앙!!

투척된 손잡이의 절반은 아리아의 발도에 튕겨져 나갔다. 평범한 기사라면 찔렸을지도 모르지만, 아리아의 반사신경은 그에 반응하고도 남았다.

쐐액!!

그건 레오도 알고 있었다. 레오가 던진 것은 창날 뿐만이 아니었다. 궤적에 숨겨져 있던 단검은 그대로 아리아의 근처까지 도달했다.

캉!!

그마저도 튕겨냈다. 상관없었다.

그 암기들은 미끼였다. 아리아와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눈속임이었다. 레오는 이미 아리아와의 거리를 좁힌 지 오래였다.

무기의 사정거리를 넘어 서로의 호흡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그리고 동시에 한 손으로 잡은 창의 절반으로 단검 같이 공격을 시작한다.

카앙!!

자세는 조금 흐트러졌지만, 아리아는 즉각적으로 장검으로 창날을 막아내었다. 하지만 계산대로였다.

‘느려졌어...!’

아리아의 약점 중 하나였다. 장검을 주무기로 쓰는 이의 전형적인 약점이기도 했다.

‘...역시 거리폭이 답이었군!’

보통 아리아를 상대하는 이들이 자주 착각하는 것은 ‘근접 무기를 사용하니 거리를 벌린다’는 전략을 택한다는 것이다.

특히나 중거리나 원거리 공격 수단을 사용하는 이라면 자주 하는 실수였다.

‘그런다면...’

오러를 날려 공격하는 건 기본, 거기에 찰나의 틈만 생기면 1초도 안 되어 돌진해 거리를 좁혀 벤다.

그렇기에 거리를 벌리면서 공격을 하는 것이나, 원거리나 중거리 공격을 지속적으로 시도하는 것은 하책 중에 하책이다.

카아앙!!

검격이 3합 이상 부딪치자, 레오는 드디어 주무기인 장검을 빼들었다.

스릉!!

역수로 발도해 날리는 기습 공격, 아리아는 급히 허리를 꺾으며 공격을 피한다. 의도치는 않았지만, 풍만한 가슴 덕에 흉부의 보호구가 조금 깎여나갔다.

“...오우... 저건 좀 야한...”

퍼억

음흉한 말을 하는 즉시 마르켄이 때려눕혔으니 안심하고 싸움은 진행되었다.

아리아는 당황하고 있었지만, 레오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있었다. 이미 그런 걸 신경쓸 신경의 여유는 없었으니까.

“...이런 수로...!”

아리아는 평소와 달리 돌진 대신 한 발 물러나는 것을 택했다. 거리를 벌리고 재정비를 한다면 공수의 방향을 바꾸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쐐액! 휘액!!

이또한 상정 범위였다. 레오나르도는 챙겨온 단검을 투척했다. 대각선 하단 방향으로 던지는 이유는 세 가지였다.

“...치잇...!!”

발목을 중점적으로 노려 이동을 제한하고,

‘...공격 방향이 너무 낮아...!’

하단 공격은 장검으로 막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아리아는 회피에만 집중해야했고, 간신히 피한 아리아는 돌진해 레오에게 접근하려고 했다.

콰직!!

하지만 실패했다. 아리아는 지면에 박혀있는 장애물 때문에 발이 찧고 말았다.

‘...단검이 장애물처럼...!’

투척물로 단검을 쓴 이유는 그저 던지기 쉽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피하기만 한 덕분에 단검은 단단히 지면에 박히는데 성공했다.

크리스의 샤이닝 다크 오르비스를 참고해 만든 톱날 구조의 오러 덕에 돌부리처럼 고정되었으며,

동시에 골고루 투척한 덕에 어느 장소든 돌진하는 것은 쉽지가 않았다. 지면에서 접근하기 위해서는 일일이 장애물을 피해서 뛰어야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아리아는 검에 오러를 불어넣어 날렸다. 검기는 공기와 허공을 베어가며 레오를 향해 날아갔다.

쐐액!!

레오는 전부 예상했다. 이윽고 활을 빼든 레오는 검기를 전부 화살로 뚫어내었다.

사실 오러만 보자면 아리아가 우위인 것은 사실이었지만, 오러가 실체가 있는 화살에 담겼다는 시점에서 물리작용은 레오가 위가 될 수밖에 없었다.

퍼억!!

“...으윽...!!”

그리고 화살이 바닥나는 걸 기다리는 것도 무리였다. 레오의 화살은 그대로 검기를 뚫으며 아리아의 왼쪽 어깨에 박혔다.

형태만 봐도 알 수 있듯 활과 화살은 단검보다 일점 저격에 유일한 무구였다.

‘...남은 건...!’

남은 것은 도약 뿐이었다. 도약한 아리아는 그대로 공중에서 레오를 향해 검격을 날렸다.

하지만 이또한 레오가 유리했다. 레오는 최대한 화살로 착지를 교란하며, 아리아의 공격을 깎아내었다.

실제로 그녀의 몸에는 계속 화살이 스치거나 살점의 끝을 날리면서 부상을 늘리고 있었다.

그리고 중간 지점에 도달했을 때, 레오는 계획의 종지부인 검을 빼들었다.

‘...이길 수 있어...!’

유리한 건 지면을 디딘 채, 카운터를 날린 레오 쪽이었다. 아리아는 그대로 검격에 베이고 날아가 지면에 불안정하게 떨어졌다.

“...이길 수 있어!!”

레오나르도는 다시 활을 쥐었다. 지금 다시 접근한다면 아리아는 즉시 검에 오러를 불어넣어 필살의 일격을 날릴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는 저격이 아닌 속사, 연발로 날아간 화살들은 그대로 아리아에게 포화했다.

“...이걸로...!!”

분명 레오나르도는 철저히 아리아를 공략해나갔다. 전략도, 실력도 확실히 준비해 상대의 강점을 차례로 봉인하며, 약점을 집중적으로 공격해냈다.

파아아아...!

상대는 아리아였다. 호흡하는 찰나에도 성장이 가능한 천재, 하루 전의 자신보다 아리아는 이미 성장해있었다.

“...오러가...5성으로...?”

아리아의 코어는 또다시 성장했다. 예고는 없었고, 전조도 없었다.

당연하다는 듯이, 그녀는 성장해버렸다.

“...뭐야... 이 힘...”

레오는 너무 당황해 얼어버렸다. 오러 코어의 성장은, 적어도 이런 형태로 되는 경우는 본 적도 없었다.

자신도 간신히 수행을 통해 천천히 3성으로 만든 것이었는데, 아리아는 한 호흡만에 5성의 코어를 만들어냈다.

“...”

이윽고 아리아는 자세를 잡았다. 돌진의 자세였다. 장애물이 있음에도 레오는 왠지 모를 직감이 들었다.

그런 건 ‘장애물’조차 되지 못할 거라고.

급히 검을 붙잡는다. 아리아는 부상을 입었다.

왼쪽 어깨 부상에 치중해 카운터를 성공시킨다면 자신에게도...!

카...앙!!

생각도 이어지지 않았다. 레오도, 이 싸움을 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레오의 검은 아예 반으로 절단되어 날아갔다. 그대로 레오는 지면에 쓰러진다.

베인 것도 아니고, 칼등에 맞았음에도 도저히 설 수가 없었다.

“...”

아리아는 다른 때와 달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보통은 내가 이겼다고 말하거나 약하다고 말하는 게 습관이었지만, 지금은 왠지 모르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리아스필...님이...이겼어...”

누군가가 운을 떼고서야 다들 놀라기 시작했다. 경이에 경악하고 경원했으며, 경외해버렸다.

몇몇 기사들은 아리아스필에게 축하를 해주러 뛰어갔다. 물론 아리아스필의 능력이 뛰어났고, 이번 대련의 승리가 손에 땀을 쥘만큼 격렬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눈치있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그게 얼마나 지독한 행동인지를.

“...어떻게 그렇게 싸울 수 있어...? 도대체...어떻게...?!”

레오나르도는 자신이 어떤 감정을 지녔는지 몰랐다.

초초한 것인지, 절박한 것인지.

분노한 것인지, 절망한 것인지.

그 순간, 아리아는 말해버렸다.

“...지금도 충분히 대단해.”

위로를 해버렸다.

“노력하면 되겠지. 언젠간 나를 이길 수...”

그 위로에, 폭발해버리고 말았다.

“네가 뭘 아는데...”

웃어넘길 수 있는 상황이었는지도 모른다. 화를 내더라도 욕설 한 마디 끝낼 수 있었지도 모른다.

“네가 뭘 아냐고!!”

음유시인이 자신을 2인자라 조롱하지 않았다라면.

“...레오...?”

“넌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가 없는 상황을 알아?”

출신이 조금 괜찮았다면.

“자기 엄마가 창관 출신일가 걱정해본 적은?”

부모의 사랑을 조금 더 가졌더라면.

“아니면 자기의 핏줄이 거기에 섞여있을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 있어?”

이렇게 열등감에 찌들지 않아도 됐을 텐데.

“밖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없이 홀로 살아본 적은? 동료인 줄 알았던 거한에게 강간당할 뻔한 적은? 믿었던 친구가 배신했던 기억은 있나?!”

재능이라도 있었더라면.

“그리고 손톱이 빠지고, 손이 온통 굳은 살로 박히고, 매번 조롱을 당하면서 무기를 휘두르는데도 매번 지는 사람 기분은 알아...?”

이렇게 비참하지는 않았을텐데.

“전부 불공평하잖아...! 가족도, 돈도, 명예도, 그리고...재능도...”

그리고 이후에 레오가 알게 된 것이었지만.

“전부 가진 네가 뭘 아냐고...! 아무것도 잃어본 적도 없으면서...!!”

이 사건을 일으킨 후, 원로원은 고의적으로 레오와 아리아의 사이를 직접적으로 이간질을 시작했다.

“...미안해.”

레오에겐 열등감을, 아리아에게는 죄책감을.

감정의 골을 깊게 만들어 둘의 관계를 갈라놓으려 했다.

실제로 음유시인에게 돈을 주어 ‘아마데우스’의 이야기를 퍼뜨린 것은 원로회였다. 죽인 원로원의 노트를 본 후, 레오는 추측이지만 검의 가드를 부순 것도 원로회라 생각해버렸다.

“닥쳐...!”

그래야 아리아의 정략 약혼을 보다 쉽게 사용할 수 있었으니까.

“너도 사람 새끼면 화를 내라고!!”

아리아스필의 감정을 흔들지도 모르는 변수인 레오나르도를 배제할 좋은 기회였으니까.

그리고 결정적인 사태는 레오가 크리스의 눈을 찌른 후에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원로원의 등장씬 반응]

“...내 인생의 유일한 한이 있다면, 그 골방의 늙은이들은 너무 쉽게 죽인 거로군.”

농담조의 말이었지만, 마르켄의 표정은 심히 어두웠다. 사실상 본인들의 관심이 적었기에, 레오는 정치 싸움에 말려들고 열등감과 죄책감에 휘감기는 고통을 겪게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자신들도 떳떳하지는...

“그러게요. 그냥 태우지 말고 눈꺼풀을 낚시줄에 걸어서 눈을 계속 햇빛에 지지고, 배를 성수를 묻힌 손톱깎이로 살점을 계속해서 뜯어서 내장이 난도질당해야 레오가 느낀 고통에 반에 반의 반 정도는 알 수 있을 텐데... 저도... 떳떳하지는 못하지만요.”

아리아가 죄악감에 잠긴 표정을 짓는 동안, 마르켄은 생애 처음으로 생각을 해버렸다.

자신의 손녀가 이젠 정말 무섭다고.

거기에 당연한 말을 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손자도 걱정된다고.

<분량이 폭주했습니다. 다음에는 조절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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