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하르트 쪽에서 레오나르도에게 보상을 주려고 한 적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레오를 필두로 한 기사 부대의 대장직 주는 것도 제안해보았고.
아예 마나체련술을 개발했으니 그걸 집중적으로 가르켜주는 사범직을 권유해보기도 했다. 마나체련술은 상급 기사들조차 힘겹게 사용하는 고난도 수련법 중 하나였으니까.
이 직책들은 귀족 출신은 물론, 라인하르트 출신조차 쉽게 얻지 못하는 중책들이었다.
하지만
-죄송합니다. 전 아가씨의 전속 기사에 만족합니다.
레오나르도는 늘상 자신의 부족함을 말하며, 항상 아리아의 전속 기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곤 제안을 거절했다.
-필요하다면 다른 기사들의 교육에 협조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언제든 부탁해주세요.
거기에 추가적인 일마다 하지 않고 제안한 이들의 체면을 세워주었다. 그 정도면 일에 중독되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레오는 독하게 성실했다.
그나마 받는 것이라고는 월급과 추가 급료 뿐이었다.
레오나르도 쪽에선 월급 인상을 전혀 요구하지 않았기에, 글라디오에 크리스까지 합세해서 봉급을 인상해야만 간신히 돈을 더 쥐어줄 수 있었다.
그래봤자 고위 기사의 봉급 따윈 레오가 마탑과 다양한 논문 및 활동을 통해 버는 것보다 못 했지만 말이다.
그랬기에 라인하르트의 일가는 생각했다.
레오나르도가 바라는 것은 도대체 뭐냐고.
그렇게 나온 결론이 아리아에 대한 사랑이었다.
아리아에게 연심을 품고 있었기에 이런 행동을 하는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 유일하게 레오와 진솔히 이야기할 수 있는 상대는 아리아스필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당연히 부담스럽지 않게 처신을 잘 하겠습니다. 아인에게도 부끄럽지 않게요.
사랑이라고 하기엔 너무 눈치가 없었다.
흑심이고 마음이고 간에, 레오는 단 한번도 애정공세를 인지조차 하지 못했다. 둔감한 걸 넘어 무감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아무도 그걸 납득하지도 못 했고, 이해하지도 못했다.
그리고 지금,
[아리아스필, 너 바보냐?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
회귀자이기 이전에 2인자의 추억이 사라진 역사에서 천천히, 그리고 확실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기억 속의 레오나르도에겐 예의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허물이 없어서 시골 마을의 옆집 친구 같은 태도를 보여서 괴리감마저 들 정도였다.
[네가 뭘 알아...! 분명 구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고!! 근데...! 내가...]
아리아는 드물게 격앙한 목소리였다.
무표정했지만, 한편으로는 흥분한 느낌이기도 했다.
레오를 평소보다 더욱 경멸하며, 분노한 채 노려보고 있었다.
[개소리하네. 결국 못 구했잖아. 그게 현실이야. 그게 결과라고.]
냉혹하며 모욕적인 일갈, 그 한 마디에 아리아가 담아두었던 분노가 폭발한다.
[이게 진짜...!]
찰싹!!
레오나르도는 아리아에게 장갑을 집어던졌다. 그것의 의미는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레오와 아리아 사이에서는 더욱 각별한 뜻이 담겨있었다.
[한 판 붙자. 아주 묵사발 내줄 테니까.]
이윽고 대련을 빙자한 개싸움이 시작된다. 레오도 일방적으로 맞지 않았다. 아리아가 이기고 있는 형세였지만, 왠지 모르게 계속해서 레오의 검이 스치고 있었다.
[윽...!]
그야말로 난투였다. 난투가 점차 혈투가 돼가고 있었다.
[넌 아무렇지도 않아?! 눈앞에서 아이가 무력하게 죽었는데!!]
아리아는 수직으로 연속해서 내리찍으면서 레오를 밀어붙였다. 강박적으로 보일 정도로 저돌적이었다.
레오의 팔은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눈빛과 마나의 기백이 바뀌었다.
[그딴 걸 보는 게 일상이었어!!]
레오의 한 마디에 아리아의 눈이 바뀐다.
[좋은 집에 사는 아가씨는 모르겠지만...!! 나한텐 그렇게 골로 간 애는 길가에 버린 쓰레기를 보는 것만큼이나 흔했어!!]
카아앙!!
다시 맹공은 이어진다. 아리아는 더 세게 검을 휘둘렀다. 그렇지만 몸의 궤적이 커져서 요령을 안다면 방어하기에는 더욱 쉬운 검격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그게 옳은 거야?! 막을 수 있다면 막는 게 맞는 거잖아!]
[그래! 근데 이미 뒈졌고! 이미 끝난 일이라고! 병신아!!]
레오의 일갈에 아리아의 감정은 폭발한다.
아리아의 폭발에 레오의 감정도 격발한다.
[으아아아아아!!]
[이야야야야악!!]
퍼억!! 파아앙!!
서로의 공격이 오간다. 서로의 검이 교차하며 각각의 얼굴에 직격한다. 아리아에겐 늘 유효타를 냈기에 당연한 것이었지만, 레오에게는 정말로 드문 일이었다.
레오로선 머리를 친 것은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왜 그렇게 말하는 건데...?! 나도...!]
아리아는 공격을 당했음에도 부상이 얕았다. 오러를 늘 몸에 두르고 있었기에 검으로 막지 못해도 최소한 방어는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녀의 눈은 죽어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늘 무표정했지만, 지금은 생기조차 전혀 없는 인형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좆같다고...! 그 병신 같은 표정...! 자기가 무슨 비극의 영웅인 줄 아는 그 오만하게 찌찔한 표정이 역해서 못 봐주겠다고...!!]
그에 비해 레오의 얼굴은 잔뜩 부어있었다. 아마 턱도 가격됐으니 서있는 것도 벅찰 것이다.
얼굴은 부었지만 어째서인지 아리아의 눈빛보다 강해보였다. 기백은 이미 아리아를 누르고 있었다.
[네가 뭐라도 되는 것 같아...?! 너도 결국은 인간이야....! 신도, 뭣도 아니야...! 고작 실패한 걸로 징징대지 마...!!]
[내가 언제 징징댔다는 거야...!! 사람이 죽은 걸로 슬퍼하는 게 그렇게...!]
아리아의 말에 레오는 온몸이 떨리는 것도 잊은 채, 검을 쥐면서 외친다.
[내가 너한테 화를 내는 건!!!]
레오는 패배가 일상이었다. 승자였던 적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고작 실패로 질질 짜서 그런 거야!!]
하지만 그게 실패가 익숙해졌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레오의 일갈에 아리아의 손에서 힘이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자신이 보지 못한, 보려고 하지 않은 감정을 끄집어내려고 한 것 같아 반격도, 반박도 할 수 없었다.
[난 여태까지 내 목숨을 부지하려고 칼을 잡았어.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검을 휘둘렀다고!!]
아리아와 레오의 경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분명 그건 넘을 수 없는 차이일지도 모른다.
[근데 너 때문에 내 좆 같은 칼도 사람을 살릴 수도 있는 걸 알게 됐어!! 그게 어떤 기분이었는지 알아!?]
하지만 하늘이 존엄하고, 땅이 천하다고 누가 정했는가.
[그런 네가 지금은 고작 한번 실수 한 걸로 자기연민에 빠져선 허덕이는 꼴을 보는 내 기분을 아냐고!!]
사람은 본디 땅에서 문명을 일궈냈으니.
하늘에 도달할 방법을, 수단을 인간은 분명 땅에서 찾아내었다.
[내 앞에 섰으면 당당히 가란 말이야!! 재수 없는 년아아!!]
레오가 돌진한다.
퍼억!
이윽고 들어오는 카운터, 깔끔한 반격에 레오는 회전하듯 지면에 꽂힌다.
[...바보...]
아리아는 그렇게 말하며 얼굴을 붉혔다.
[...재수없는 년이...]
이미 붉어진 얼굴로 레오는 그 말을 끝으로 쓰러졌다.
이윽고 아리아는 쓰러진 레오를 데리고 간다. 질질 끄는가 싶더니 이내 그녀는 레오를 등에 업었다.
그러고는 피식 웃었다.
[...진짜 바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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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내 장면이 넘어간다.
이번에는 레오나르도는 부은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넝마가 되어있었다.
서있는 것은 빈터의 중앙, 주변에는 기절한 기사들과 몇몇 마인들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그 자리에 유일하게 서있는 자들은 레오와 곤충처럼 생긴 마인들 뿐이었다.
[대단하군. 출중한 기예야. 재능 하나 없는 육체를 순수히 단련하면 이런 형태가 되는군.]
우두머리인 곤충 흑마법사는 레오의 기량을 보며 진심으로 경탄했다. 몸에는 이미 독이 돌았을 텐데, 레오의 몸은 떨지도 않았다.
[씨발, 욕을 하든지 칭찬을 하든지 하나만 해.]
그렇게 말하며 레오나르도는 쥐고 있던 검을 집어던졌다. 회전하는 검날은 그대로 적의 얼굴을 향해 날아갔다.
[다중인격이냐?!]
[난 진심이다.]
그러고는 이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거미 형태의 마인은 그대로 저주의 각인이 그려진 벌레를 내밀었다.
[너도 이 흑마충을 먹어라. 그러면 네 몸에 재능을 심어줄 거다.]
[재능...이라고?]
[체내에 곤충을 심는 것으로 선천적으로 부족한 육체를 이 벌레를 통해 강화하는 것이지.]
곤충 흑마법사는 레오의 몸을 농밀하고, 끈적히 바라보며 말했다.
[너라면 알고 있을 테지? 재능이 없는 것으로 벌어지는 차이를.]
흑마법사의 명령대로 거미 마인은 레오에게 흑마충을 쥐어주었다.
[...먹는 것만으로 강해진다고?]
레오는 그 곤충을 천천히 입에 가져다 대려고 한다. 입도 벌리는 것이 정말 먹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그래! 거기에 곤충은 체내에서 계속 성장하면서 더한 힘을 줄 것이다. 그 용사 아리아스필을 꺾는 것도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니...!]
서걱...!
[지랄을 깐다.]
레오는 그렇게 말하며 거미 인간의 목을 베어넘겼다. 초록 혈액이 목과 머리에서 차례로 흘러내리며 거미 마인은 기괴한 발버둥을 치며 죽었다.
[네놈...! 기회를 주었건만...!]
[곤충으로 변태해서 아리아 쳐죽이는 게 뭐가 기회냐?]
레오는 거미 머리통을 발로 짓이겨 터트리며
[아리아는 내 힘으로 앞지를 거다...! 방해하지 말라고...! 해충 새끼들이...!]
그대로 격전은 이어진다. 레오는 거미 마인의 거미줄을 뜯어 적을 포박하기도 했고, 사마귀 마인을 다리를 뜯어 무기 대용으로 쓰기 했다.
강하지는 않았지만, 절실했다는 것은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한심하군. 그게 범인의 한계다.]
하지만 레오는 패배했다. 마인들은 전부 죽였지만, 우두머리이자 본체인 흑마법사는 죽이지 못했다.
흑마법사는 크고 긴 지네로 레오의 몸을 포박하며 말했다.
[마지막 기회를 주마. 흑마충을 먹어라.]
[...좆까...! 애초에 먹고 싶게라도 만들든가...!]
흑마충은 풍뎅이의 유충처럼 징그럽게 몸을 꿈틀거리고 있었다. 턱에서 나온 진액이자 소스는 입맛을 제대로 떨어뜨리고 있었다.
[어째서지? 너라면 알고 있을 텐데, 육체의 재능이 얼마나 불공평한지. 그걸 알면서도...]
[그럼 사람이 다 다르지. 공산품으로 찍어낸 물건마냥 다 똑같겠...으...끄아...!]
레오의 일갈에 흑마법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역린을 제대로 건드린 것 같았다.
[...강제라도 먹여주...!]
서겅...!!
그 순간, 아리아가 등장하며, 지네의 몸을 베었다.
[...징그럽게 레오한테 그런 걸 먹이지 마.]
등장한 아리아스필은 무표정한 얼굴로 신성이 둘러진 검으로 적을 토막내었다.
[...너무 늦었잖아... 병신아...]
[...미안.]
[...얼른 응급처치나 해줘.... 다들 살아는 있어...]
아리아는 레오에게 응급적인 치료를 해주었다.
[야야...! 아파...! 쓰읍...!!]
[참아.]
손길이 전혀 섬세하지 않은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지만 말이다.
[그보다... 왜 마인이 되지 않은 거야?]
[...말 되게 심하게 하네. 지인이라고 할말 못할 말이 있...쓰읍...!]
[...너 강해지고 싶었잖아. 그냥 묻는 거야.]
전혀 섬세함이 없는 건조한 질문이었다. 마찬가지로 섬세라는 개념이 없는 손길로 치료하는 것은 덤이었다.
[...쪽팔리니까. 그런 식으로 이기는 건 반칙이잖아.]
그렇게 말하며 레오는 쓰러졌다. 아리아의 표정에는 묘한 기색이 들어있었다.
이걸 보는 일가의 표정도 묘했다.
이윽고 기억의 영상이 넘어간다.
[...여기 있을 줄 알았지...아이고...]
레오는 숨이 가빴는지 몇 번이고 크게 숨을 내쉬고 들이켰다. 급하게 돌아다녀 도달한 장소는 아리아가 숨어있는 마구간이었다.
[...어떻게 알았어?]
[너 꽁해있으면 꼭 여기 있잖아.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꽁한 게 아니야. 그냥 고민이 조금 있는 거지.]
[그게 그거지.]
레오는 피식대며 아리아의 옆에 앉았다. 가쁜 숨도 아리아를 보니 점차 진정되었다.
[...용사 되는 게 무섭냐?]
[...부담스럽지.]
아리아의 눈은 아래로 쳐져있었다. 평소의 고고한 표정과는 사뭇 다른 시선이었다. 그건 분명 눈에 부담감이 짓눌려서 그런 것일 거다.
[내가... 초대 용사만큼... 잘할 수 있을지를 모르겠어. 그리고 용사로서 살게 되면... 내 인생이 없어지는 게 아닐까... 걱정돼.]
레오나르도는 묵묵히 아리아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리고 이내 말했다.
[약한 척하긴.]
[...넌 어째 말 한번 곱게 한 적이 없다? 사석에선 항상 반말이야.]
아리아는 레오의 한 마디가 얄미우면서도, 왠지 모를 감정을 느꼈는지 언성은 높이지 않은 채 쏘아붙였다.
[존댓말은 다음 생에나 할게.]
그런 웃지 못할 농을 던지며 레오는 말했다.
[굳이 초대 용사처럼 할 필요가 있냐? 넌 너고, 초대 용사님은 초대 용사님이잖아. 어차피 네가 세상에 하나 뿐인 용사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너다운 용사가 돼. 그럼 된 거 아니냐?]
레오의 퉁명스러운 위로에, 아리아는 볼을 약간 부풀리며 말했다.
[...재수없어.]
[너만 할까.]
***
...영상을 잠시 멈추고, 현자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얘 진짜 정신병 있는 건 아니지? 진지하게 내가 걱정돼서 그래.]
그 질문에 또다시 침묵이 흘렀다. 너무 복잡하면서도, 한편으로 해석과 이해가 되는 여지가 너무 많아 섣부르게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이윽고 이 상황을 종결시킬 용자가 입을 열었다.
“아버지께 여쭤볼까요?”
타입- 디아트, 아인이었다.
“...레오를 깨우자고? 하지만 그건...”
“아뇨. 아버지는 이미 일어나 계십니다. 10분 전부터요.”
그러자 기분 탓이었까, 레오의 고요한 숨결이 떨리며, 눈꺼풀에 미세한 진동이 울렸다.
분명 기분 탓은 아닐 것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전 개인적으로 2호 라이더가 히로인이었으면 했던 적이 많았습니다.
좋아하는 2호 라이더는 반죠 류우가와 이치죠 형사님이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