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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자는 회귀했다-125화 (125/248)

난 라인하르트를 사랑했다.

사랑하지 않았더라면, 이 가문에 이렇게 오랫동안 있지 않았을 것이다.

무작정 라인하르트가 천국처럼 아름답고, 낙원처럼 행복한 곳은 아니었다.

비리도 있었으며, 무시나 악의 또한 존재했다.

하지만 나에게 그런 것은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밑바닥의 사회를 맛본 자에게 그 정도는 당연하다 못해 물을 필요가 없는 기본적 진리였으니까.

그렇지만 라인하르트에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 불신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있더라도, 등을 맡길 상대가 있었다.

그리고 내 삶에 여유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재미가 무엇인지, 행복과 휴식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었다.

그러니 원망하지는 않는다.

단지 많이 그리울 뿐이다.

돌아올 수 없는 일상에.

사무치게 막연해진 평화에.

***

영상은 계속된다. 레오의 인생이 그랬던 것처럼.

다만 보여주는 것은 미래가 아닌, 과거의 파편에 있었다. 레오가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라인하르트와의 추억이 이 영상에는 담겨 있었다.

[네가 크리스티나의 제자냐? 실력이 그런 걸로 봐선 운이 아주 좋았나보군.]

이번에 나온 것은 마르켄이었다. 마르켄은 일관적이라는 듯 까칠하게 말을 내뱉었다.

[...자기 가족 안목을 그런 식으로 깎아내리면 좋은 게 있나요?]

레오는 지금과는 달리 능숙하고 자연스러운 대답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리숙하고, 계산 없이 속마음을 꺼낸 듯 보였다.

[...말은 잘하는군.]

당시의 마르켄은 할 말이 없었는지, 그런 식으로 쏘아붙이면서 날카로운 시선을 보냈다.

[예. 근데 크리스 님 풀네임이 크리스티나였어요?]

[...크리스가 또 자기 이름을 숨겼나?]

[저도 지금 알았네요.]

하지만 어째서인지 이때의 상황이 더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지금의 레오가 불쾌하거나 신뢰가 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너무 완전무결한 감각이 강했기에,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면모가 느껴지지가 않을 때가 많았다.

그건 레오가 천재여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하물며 악인이어서 그런 것 또한 아니었다.

거리감

단지 고의적인 거리감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저 영상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저 기억에는 레오가 감추고 있는 비밀이 없어 보였다.

이윽고 영상이 바뀐다.

[...그렇게 한 눈 팔지 말라고 했잖나. 어리석은 놈...]

마르켄은 그렇게 말하며 피식 레오를 노려보았다. 몸은 마법 공격으로 그대로 받은 충격 덕에 넝마가 되었다. 무기로 들었던 화청은 바닥에 떨어진다.

[어리석군. 우두머리가 부하를 위해 몸을 날리다니.]

[어리석어...? 웃기는 소리로군. 난 어차피 살 만큼 살았다. 그러니 적어도 이런 풋내기의 밑거름이라도 되는 게 좋겠지.]

이윽고 적인 마인은 레오를 노린다. 빠른 손날 찌르기, 찌르는 것만으로 급소가 날아갈 것이다.

카앙...!!

[...도망치라고 했잖나...! 굼뜨게 있지 마라...!!]

마르켄은 간신히 든 방패로 막았다. 그렇지만 도저히 패링으로 튕겨낼 수 없는 상태였다.

몸에서는 쌓여온 상처에선 피가 뿜어졌다. 근육의 이완과 수축으로 출혈이 더 극심해진 것이었다.

[어리석은 네 쪽인 게 확실하군.]

화륵...

기억 속 마인은 반대팔로 마르켄에게 화염 마법을 날리려고 했다.

[너의 희생은 개죽음이다.]

카앙!!

그 순간, 레오나르도는 화염의 칼날로 반격했다.

[...누구 마음대로 도망가라 마라야...! 이 늙은이가!!]

그러고는 주운 화청의 불꽃을 뿜어내었다. 화청의 위력 덕분에 마인은 한 발 물러나 레오와 마르켄을 바라보았다.

[...화청이라, 놀랍지만 뻔하군. 네 녀석의 실력으로 화청은 무리다.]

마인의 말대로였다. 당시의 레오는 현재 레오의 반의 반도 안 될 정도로 약한 오러를 지니고 있었다.

그 증거로 화청의 힘을 못 이기고 손에는 화상이 나고 있었다.

[...무리다!! 도망...!!]

[당신이 여기서 뒈지면 아리아 그년을 꺾을 자격이 없어진다고...!!]

그렇게 외치며 레오나르도는 마인을 향해 달려갔다. 평소 알던 실력이라면 바로 참살할 적임에도 레오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네 녀석...! 오러를 몸에 집중해라!! 그 이상 쓰면 팔이...!]

[걱정 마라. 그 전에 타 죽을 거다.]

그렇게 말하며 마인은 레오를 향해 화염구를 던졌다. 크기와 양만으로 회피는 불가능했고, 그만큼 위력도 생사를 가를 만큼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콰아아아아앙!!

[...누가 죽는다는 거야아아!!!]

레오나르도는 그대로 화청의 힘을 추진력 삼아 위로 치솟았다. 그리고 동시에 그 힘에 몸을 맡긴 채, 포탄처럼 내리꽂아 마인의 몸을 찔렀다.

[...힘이...]

마인의 몸을 찔렀음에도 레오는 공격을 이어가지 못했다. 이미 팔은 넝마가 된 직후였다.

[이대로...!]

마인이 반격하려던 순간,

[마무리가 어설퍼. 쥐는 힘이 부족하군.]

마르켄은 레오가 쥔 화청의 손잡이를 같이 잡으며 푸른 화염을 날렸다. 그대로 마인은 숯덩이가 되어가며 푸른 화염의 장작이 되었다.

[...그래도 봐줄 만했다.]

[...칭찬 한번 감사하네요.]

지금의 마르켄과는 이런 추억이 없었다. 애당초 저런 마인과 만난 기억이 없었다. 그보다 저런 관계가 지금은 형성되지 않았다.

마르켄은 늘 본심을 잘 드러내지 않는 레오를 보며 경계의 끈을 부여잡고 있었다. 그건 레오가 악인이라는 걱정보다 본능적인 경계에 가까웠다.

이유없는 호의만큼이나 의심스러운 것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기억은 지나간다.

레오가 선을 그은 것처럼.

영상은 다음 장면을 향해 넘어간다.

이번에는 차와 다과가 놓여진 테이블에 레오가 있었다. 그 주변에는 알프레드와 시리카가 있었다.

[차는 괜찮으십니까? 처음 드렸던 차와 같은 것인데.]

[아...예... 좋네요...]

레오는 시리카의 눈치를 보며 쓴 약을 먹는 것처럼 차를 마시고 있었다. 지금과는 달리 과하게 시리카를 신경쓰고 있었다.

[절 너무 신경쓰지 않으셔도 돼요. 따지고 보면 제가 알프레도와 당신의 시간을 방해한 것이니까요.]

대화 내용으로 봐선 알프레드가 레오를 티타임에 초대한 뒤, 시리카가 그 자리에 온 것 같았다. 당연하게도 가주의 반려가 있는 자리인 만큼 레오는 갖은 눈치를 봐가며 차를 즐겨야만 했다.

[아리아가 당신 이야기를 많이 해요. 말하는 걸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아리아가 사담을 나눌 때는 항상 당신 이야기를 하더군요.]

[...아... 감사합니다.]

어설픈 대답이었다. 평소라면 능숙히 말을 꺼낼 텐데, 지금은 마치 긴장해 얼은 것처럼 어색하게 대답을 근근이 이어갔다.

[항상 고마워요. 당신이 온 뒤로 아리아가 많이 말을 하게 됐거든요.]

[아... 그런가요?]

하지만 어째서인지 레오는 한편으로는 웃고 있었다. 시리카가 아리아에 대해 말해줄 때마다 레오나르도는 나름 이런 시간도 나쁘지 않다는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레오는 라인하르트 가에 온 뒤로 수련에만 매진하고 있었다. 아리아와 가끔 산책이나 시내에 나가는 것 외에는 모든 시간을 수련에 투자하고 있었다.

여가 시간을 아예 보내지 않은 건 아니었지, 논다는 게 유희가 아닌, 그저 휴식처럼 보였다.

지금 이 영상과 지금의 레오를 얼핏 봐도 차이는 완전히 컸다.

감성적이며, 동시에 인간적이었다.

이윽고 다음 영상이 이어진다.

[자네는 어째서 늘 아리아에게 대련을 요청하는 건가?]

이것 또한 이들의 기억에는 없는 과거였다.

영상에는 글라디오가 정원에 서있었다. 레오나르도는 그 옆에서 글라디오를 따라가며 정원을 놀랍다는 듯 구경하고 있었다.

분명 정원을 같이 간 기억은 있었다. 하지만 저 기억 속의 레오는 글라디오의 기억보다 성숙히 자라있었다.

[...확실한 이유를 대자면, 딱히 찝어서 말할 건 없군요. 굳이 이유를 대자면...]

레오나르도는 조금 생각하더니 짧게 대답했다.

[오기가 나서요.]

[오기? 아리아에게 말인가?]

[아리아...스필...님도 아리아...스필...님이지만, 당연히 못 이길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요.]

그 말에 영상 속 글라디오의 표정은 조금 변했다. 약간 놀란 눈치로 보이기도 했다. 이내 그는 고의적으로 비웃듯 웃음이 섞인 말을 내었다.

[...하지만 실제로 자넨 한번도 이기지 못했지 않은가. 이길 거라 믿는 까닭이 뭔가?]

레오는 약간 화가 난 눈치였다. 하지만 그것이 흥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까 한 말 그대로였다.

[글쎄요? 사람들이 항상 인생에 꼭 성공할 거라고 확신한 채 사는 건 아니잖아요.]

오기가 나있는 목소리였다.

[...아리아에게 인생을 걸었나?]

[걸기 이전에 인생이 바뀌었거든요. 걸 것도 없어요.]

그 말에 가주 글라디오는 호탕히 웃었다. 처음 만난 레오의 목표를 듣고 호탕하게 웃었던 날처럼.

영상이 전환되는 동안, 다들 말이 없었다.

레오의 설명에서 듣기로는 회귀 전의 자신은 이들에게 받기만 했을 뿐인 관계라고 했다.

좋은 상사와 부하 정도의 관계.

그 정도로만 표현했다.

물론 받은 걸 축소하지는 않았다. 분명 라인하르트가 자신에게 해준 것을 가벼이 표현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레오의 설명을 듣고 이런 유대관계를 떠올리는 이는 없을 것이다.

이윽고 장면은 바뀌었다.

지금 나오지 않은 주요 인물은 한 명뿐이었다.

[아리아스필, 오늘은 꼭 이긴다.]

레오나르도는 진지하게 검을 뽑아들었다.

[...저번에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

그에 비해 아리아는 감흥없게 칼을 뽑아들었다.

둘 다 아직 어렸을 때였다. 그럼에도 둘의 태도는 회귀 후에도, 지금에도 볼 수 없는 행동이었다.

카앙!! 카캉!!

레오의 검술은 조잡했다.

세련되지도 않았고, 위력이 강한 것도 아니었다.

그건 라인하르트의 기사와 비교해도 마찬가지였다.

조금 괜찮은 정도였다.

레오의 재능은 그 위치에 있었다.

[이제 그만하는 게 어때. 너 이미 서기도 힘들잖아. 이미 차이는 확실하다고.]

그에 비해 아리아는 회귀 전과 극단적인 차이는 없었다. 아마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고, 고된 수행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지금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도 허황되지 않을 정도였다.

[...자기 입으로 자기 대단하다고 하면 안 부끄럽니? 크리스 님도 안 그래.]

당시 레오는 평소에는 입에 담지도 않을 말을 하며 아리아의 약을 올렸다. 아마 저게 원래의 성격이라고, 기억을 보고 있는 이들은 생각했다.

[입 다물어. 오빠한테 이상한 거만 배워 가지고.]

퍼억!!

검이 부딪치며 레오는 거리가 벌어진다. 이미 몇 대는 스치고 맞아 레오는 밀릴 대로 밀려있었다.

하지만 격차는 확실했다. 실력도, 힘도, 역량마저도 압도적인 차이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그걸 보고 있는 모든 이가 그 잔혹한 부조리를 알고 있었다.

[...어차피... 난...]

[아 그래, 또 잘난 재능론인지 뭔지는 알겠는데...]

레오나르도는 포기를 일축했다.

[어쩌라고.]

그 한 마디와 함께 검을 집어넣었다.

[결국 너도 사람이거든. 다리가 빠르든, 힘이 좋든, 재능이 있든 내 알 바냐?]

그러고는 레오나르도는 유술 느낌의 격투 자세를 취했다.

[...그럼 때려보든가...! 매일 실패했던 주제에...!]

아리아스필은 왠지 모르게 분한 표정으로 달려들었다. 이기고 있음에도 울분이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휘잉

그 순간, 레오나르도는 자세를 풀고 검을 붙잡으려고 했다. 아리아는 당황했다. 분명 그 자세는 그래플링 형태의 기술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수직으로 내리찍는 칼날을 붙잡기 위한 자세로 변형되어 있었다. 레오에겐 그걸 즉흥으로 바꿀 반사신경이 없었다.

‘...이미 알고 있었어...!’

아리아의 습관을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수직 베기를 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에 따라 아리아도 빠르게 대응했다. 더 빠르게 목검을 내리찍는다.

휘익... 파앙!!

그것마저 레오는 예상한 지 오래였다. 아리아는 항상 불리할 때면 신체능력을 밀어붙이는 걸 고수했으니까.

목을 살짝 돌리며 동시에 이마로 목검의 궤도를 튼다. 억지로 힘을 주어 가속한 만큼 아리아도 체축이 흔들렸다.

레오는 어깨가 다치는 와중에도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퍼어억!!

깔끔한 일격, 주변을 보던 모든 이들도 그 일격에 전부 경악했다. 12번 정도나 되었고 레오의 재능이 얼마나 변변치 않았는지 알았기에 낼 수 있는 경악이었다.

[어때? 밑바닥과 한 첫키스는?]

레오나르도는 자신만만하게 나가떨어진 아리아를 보며 말했다.

[...아니야...]

[아리아...?]

레오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리아의 표정은 묘했으니까.

눈을 피하면서 얼굴을 잔뜩 붉히는 것이, 한 대 얻어맞은 사람의 표정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이건 내 첫키스가 아니야아아!!!]

[아니... 그건 당연... 으헉...!!]

그렇게 외치며 아리아는 레오에게 목검과 주먹을 날렸다. 부끄러워하면서도, 한편으로 입꼬리가 올라간 채 레오를 패고 있었다.

“...아리아...?”

“...말 걸지 마세요.”

부끄러움은 어째서인지 지금의 아리아의 몫이었다.

회귀 전 아리아가 왠지 모를 상쾌한 표정을 짓는 동안, 지금의 아리아는 완전히 부끄러운 표정을 손으로 가려야했다.

이때 모두는 생각했다. 이 편집되기 전의 영상의 지닌 진의가 잊혀질 정도로 강렬한 의문이었다.

'...오줌 먹인 건 안 부끄러워하고 왜 이건...?'

그건 아리아만이 아는 진실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회귀 전 레오는 베지터보다는 크리링에 가까웠습니다.

근데 회귀 전에도 아리아는 이미 전투민족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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