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리에 있는 대부분 사람들의 시선이 싸늘한 것은 레오나르도가 소변을 먹어서가 아니다.
위급한 전장이나 밀폐된 장소에 갇혀 식수가 없을 때는 동료나 자신의 소변으로 수분을 보충하는 것은 생존에서 기본적인 상식이었다.
갓 나온 소변에 신성으로 정화까지 했으면 감염이나 식중독의 우려도 없으니까.
하지만
‘...정말 그냥 생존을 위해 먹인 건가?’
...라는 의문이 여전히 뇌리에 남았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일주일 정도로 놀릴 거리나 그냥 웃기고 슬픈 이야기 정도로 넘길 테지만, 레오와 아리아의 관계라면 이야기는 달랐다.
특히 루미네의 경우에는 신전에 있는 동안, 아리아의 집착을 제대로 보았기에 그에 대한 광기도 여실히 알고 있었다.
“하아...! 하아... 츄릅...”
그 광기는 지금 아리아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따스한 홍조를 넘어선 이글거리는 적조(赤潮)
그리고 계속해서 영상을 보면서 입맛을 다시고 침을 닦는 기행을 보였다.
‘...내 소변을 먹었다고? 내 몸의 노폐물을? 체액을? 그것도 살기 위해서?! 과거의 난 이런 부러운... 아니! 부끄러운 짓을 한 거지?!’
아리아의 머릿속에는 각종 생각이 다 들었다.
자신의 소변이 한때의 레오의 피와 살을 이루었다는 기쁨.
그리고 그건 현재의 자신이 아닌, 회귀 전의 자신이 했다는 것에 있는 질투.
이런 영상을 가족 다 같이 봤기에 생긴 부끄러움.
동시에 저런 활달하면서도 인간적인 레오를 볼 수 있는 행복과 사랑.
그 중에서 가장 명확하고 확실히 떠오른 망상은 이것이었다.
‘...다음에는 아예... 내가...’
자신 쪽에서 ‘받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 생각한 아리아였다. 물론 동시에 하는 것도 환영이었고.
그렇게 망상을 펼치며 헤실거리는 건 덤이었다.
“그만...! 제발 그만!!”
그에 비해 레오나르도는 고통과 수치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사실 이런 검게 타버린 흑역사들은 대부분 의미가 없었기에 ‘편집’을 해둔 지 오래였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자료는 다른 형태로 보관만을 해두었는데, 아까의 실금으로 고장나서 그 영상들이 전부 풀린 것 같았다.
“으그...그그그!!”
레오나르도는 갖은 발악을 해대며 몸에 묶은 얼음 사슬을 풀어내려고 했다.
‘마나를...!! 다음 장면은 꼭 막아야!!’
[아리아스필!! 오늘은 꼭 이긴다!!]
또다시 시작되었다.
새로운 영상이, 또다른 흑역사가.
저것만큼은 막아야 한다.
“으아...!!”
레오나르도는 온몸에 남아있는 마나를 짜낸다. 가뜩이나 부상을 입은 몸인지라 힘도 부치고 통증도 심히 몰려왔다.
“아우! 무리하지 말고 풀어줄 테니...!”
“으...! 억...”
이내 레오나르도는 탁하고 사슬을 푸는가 싶더니, 억하고 침대에 쓰러졌다.
“...아우!?”
레오가 그대로 졸도하자 리오스는 급히 포박의 사슬을 풀었다. 사슬이 풀리자 마치 실이 끊긴 꼭두각시 인형처럼 레오는 맥없이 침대에 엎어졌다.
“레오 기사님?!”
루미네는 치료사인 만큼 급히 레오나르도에게로 뛰쳐갔다.
“괜찮아!? 레오나르도?!”
“...아...”
아리아도 레오나르도를 향해 뛰어갔다. 설마 부상 때문에 몸이...
“아... 그나마 다행이네요. 그냥 과로에 흥분하셔서 기절한 거에요.”
또다시 이어지는 싸늘한 침묵.
그 기절한 사유가 흥분이라는 것은 다르게 말하면...
[그니까 쪽팔려서 기절한 거라고?]
{현자, 그런 격 없는 표현은 삼가시죠.}
[어쩔 수가 없어. 너무 충격적이잖아.]
그렇게 굴욕적인 해석도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피로와 부상이 낫지 않은 상태로 마나를 끌어썼기 때문이었지만, 이미 사람들의 뇌리에는 ‘쪽팔려서 기절’이라는 인식이 박힌 뒤였다.
“아무래도 체력적인 문제이다 보니 신성술로는 치료하기 어려운 부분이에요.”
신성술이 치료할 수 있는 것은 부상이나 내상 뿐, 체력과 마나가 한계에 다다랐을 때에는 편히 휴식을 취하게 하는 것 외에는 효과적인 방법은 없었다.
[그럼 그냥 냅둬. 걘 좀 자게 둬야지.]
그러면서 자연히 현자가 담겨있는 붉은 구슬은 검집을 향하게 되었다. 자연히 아인의 시선과 붉은 구슬의 초점이 마주보게 되었다.
[검집 좀 가져와라. 뭐가 고장났는가 좀 보게.]
“예. 지금 가져오겠습니다.”
아인이 그대로 검집을 현자에게로 가져왔다. 주인인 레오가 기절했음에도 검집의 실금은 여전히 틈 사이로 빛과 영상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흠... 이거 내 생각에는 레오가 편집한 기억들이 생으로 넣어져 있는 것 같은데?]
현자는 조잡한 검술로 떡이 되도록 목검에 얻어 맞고 있는 레오와, 실금이 가있는 기억 저장 장치를 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편집된 기억 말입니까?”
크리스는 그 말에 의문이 들었는지 영상과 현자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아까 레오 말로는 모든 기억을 숨기지 않고 보여준다는 듯한 의미였는데, 편집을 한다는 것은 그걸 가린다는 것이나 다름 없었으니까.
[상식적으로 70년치 기억을 전부 다 보여준다는 것 자체가 무리니까. 시간 감각을 환상으로 뒤틀어도 그 전에 보는 사람이 미치지.]
현자의 태연하면서도 신랄한 말에 다들 감정이 무겁게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레오나르도가 너무나 태연하게 설명해서 몰랐을 뿐, 레오는 70년이라는 억겁의 시간을 홀로 나아간 것이었다.
[어디... 고칠 필요는 없겠네. 영상 자체는 각자 잘 나뉘어있어. 그리고 밥 먹는 거나 잠을 자는 것 같이 쓸데없는 건, 제대로 지워져 있고.]
현자는 검집을 몇 번 흝어본 것만으로 마도구의 상태를 감정하며, 구슬 속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괜찮을까요? 레오 기사님이 일부러 지워놓은 기억인데...”
[괜찮아. 오히려 너희들이 문제지.]
현자는 그렇게 의문스러운 말을 하며 영상의 재생을 재촉했다. 이윽고 영상의 화면은 바뀌게 된다.
[여~! 너구나!! 아리아한테 계속 지면서도 싸우는 근성남이~!]
영상 속에는 리오스가 나온다. 평소와 같이 해맑고 능글거리는 리오스가 말이다.
[아, 안녕하십니까. 리오스 라인하르트 님.]
레오나르도는 조금 눈치를 보면서 리오스에게 허리를 숙이면서 인사했다. 리오스와 첫만남을, 검을 내리치며 시작된 것과는 사뭇 달라보였다.
[어? 날 알아?]
[크리스 님께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뭘~ 별건 아니고~ 용병으로서 따끈한 순애 스토리가 있나 해서~? 내가 그런 걸 듣는 게 취미여서~]
그러자 전원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리오스를 바라보았다. 저 장남은 회귀 전이든, 지금이든 변함없고 참 한결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흠... 용병 얘기는 그리 재밌는 게 없을 텐데요... 그보다... 순애가 뭔가요?]
레오나르도는 지금과 달리 힘이 잔뜩 들어가고, 어리숙한 태도로 리오스를 대하고 있었다. 다들 거기에서부터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순애? 되게 철학적인 이야기인데... 우선 기본적으로 널 태어나게 해주신 어머니와 아버지가...]
[저 아버지 본 적 없는데요?]
[...음...?]
리오스는 그런 돌직구에 당황한 듯, 입술을 떨었다.
[엄마도 10살 이후로 본 적이 없어요. 죽었거나 다른 곳으로 도망치지 않았을까 싶네요.]
레오나르도는 비극이 일상이었다. 굳이 70년이 지나기도 전부터.
[근데 순애가 뭐예요? 최근에 모르는 단어 배우고 있는데 그 단어는 몰라서요.]
레오의 질문에, 리오스는 능글거리는 입과 실눈을 크게 벌리며 경악하며 말했다.
[순애를 모른다고?! 실화야?! 너 뭘 위해서 사는 거야?! 인생 완전 손해 보면서 살았네!!]
그렇게 말하고는 레오의 팔을 부여잡고는 순간이동의 마법을 썼다. 그리고 순간이동으로 도착한 장소에는 넓고 큰 리오스 본인의 서재였다.
[얼른 읽어!! 이거!! 이걸로 네 순애는 시작되는 거야!!]
[...예? 예예...]
리오스는 마치 경주마 같은 속력으로 레오의 팔에 순애 소설을 한 아름 올려놓았다. 레오는 당황스러워서 하면서도 책 페이지를 넘겼다.
그리고...
[...흐...흑... 이거 왜 이렇게 슬퍼요...?]
[자자, 눈물 닦고, 이걸 읽어봐. 후편인데, 반전이 있으니까.]
순애의 맛을 알게 되었다.
지금 있는 리오스는 떠올린다. 분명 레오나르도는 리오스의 사적인 만남은 대부분 거절했다. 물론 그게 무례했다기 보다는, 무의식적으로 거리를 둔다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영상은 넘어간다. 레오의 중요한 기억을 차례로 읽어내는 것처럼.
[퍽...! 팍...!]
영상 속 레오는 누군가에게 맞고 있었다. 아리아만큼은 저 폭력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기억하고 있었다.
“제하드...”
“제하드 다이논스가... 왜...”
제하드는 레오를 때리면서 말한다.
너 같은 것은 하찮다고, 운이 좋게 종자가 된 쓰레기일 뿐이라고.
그렇게 아이에게 열등감을 폭발하고, 넝마를 만들었다. 잔혹하게도.
“...저런... 일이 있었는데...”
모두 충격 받은 눈치였다. 루미네도, 아인도, 한번 본 아리아조차 또다시 그 참상에 눈을 떨었다.
[...추운 날에 이렇게 계시면 안 됩니다.]
그 순간, 낡고 중후한 턱시도를 입은 한 노집사가 쓰러져 있는 레오에게 와있었다.
[...누구야...]
[집을 지키는 기사, 흔히 집사라고 합니다. 이름은 알프레드 세바스찬이죠.]
낡은 개그를 던지자 레오는 피식거렸다. 이내 쓰러지자 기억 속의 알프레프는 쓰러진 레오를 들어 따스한 방으로, 침대로 데리고 갔다.
[...여긴...]
침대에 눕혀져 있는 레오나르도는 이내 치료된 자신의 몸을 더듬는다.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자 옆에는 팔짱을 낀 크리스가 있었다.
[...크리스 님...]
영상 속 크리스는 이미 저 상처를 낸 이가 누구인지부터 시작해 상황의 내막을 전부 파악한 뒤였다.
[어째서 말하지 않았지? 도움을 청하는 게 부담스러웠나?]
[...]
침대에 있던 레오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이내 이빨을 뿌득 갈며 크리스에게 묻는다..
[...제가 불쌍한가요?]
[...뭐?]
[제가 불쌍한 거지 같아서 뭐라도 챙겨주고 싶었어요?]
[...무슨 말이지? 난 널...]
[그럼 왜...!! 왜 날 챙겨주는데요...! 자꾸 사람 비참하게...! 내가 한심한 거...! 내가 가장 잘 아는데...!!]
레오나르도는 이내 흐느낀다. 크리스의 잘못이 아님에도, 스스로가 너무나 한심하고 비참해서.
[...같잖군.]
그러자 크리스는 이내 독설을 박는다.
“...크리스 님...”
“나도 모른다! 그보다 왜 저런 상황에서 내가...!”
[내가 단순히 연민하고자 널 데려왔다고 생각하나?]
영상 속 크리스의 말에 레오는 고개를 든다.
[생색을 내자면, 라인하르트의 종자는 동냥처럼 던져줄 만큼 가벼운 자리가 아니다.]
종자는 기사를 따라다니는 노예 따위와는 전혀 다르다.
적어도 라인하르트 내에서는 종자가 된다는 것은, 기사로서의 학생으로서 대우받으며 기사의 길을 깨닫게 된다.
라인하르트에는 그런 체계성이 확립되어 있었으며, 동시에 기사로 되는 등용문 또한 열려있었다.
아마 시킨 것만 확실히 익히고 한다면 라인하르트의 기사가 되는 것도, 이걸 경력 삼아 다른 휘하 가문의 기사가 되는 것도 가능했다.
당시의 레오는 그걸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네가 아무것도 없다고? 그럴 리가 있나.]
크리스는 레오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넌 그런 환경에서도 인간으로서 신념을 지키면서 살아왔다. 그랬기에 흑마법사의 거처에서 모두를 구한 것이 아니었나?]
[...그건... 그저... 그럴 수 있었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냉정히 모두를 구할 방법을 생각했다. 그건 성인 기사조차 힘겨운 일이지.]
맞는 말이었지만, 아무도 몰랐고 인정해주지 않았던 사실이었다. 레오 본인조차 부정할 정도로.
[자랑스러워해라. 스스로를. 너만큼은 네 편이 되어라.]
그런 칭찬에 레오는 눈물을 흘린다.
[괜찮을까요...? 제가 여기 있어도...?]
[흑암의 안목은 본질을 꿰뚫지. 너를 믿기 힘들다면, 우선 나를 믿어라. 너를 신뢰하는 나를 믿어라.]
이윽고 알프레드가 따스한 차를 가지고 온다. 영상의 레오나르도는 그 차를 마시면서 연신 맛있다는 감탄을 했다.
그런 맛있는 차는 처음 먹어봤다는 듯이.
"...어째서 레오는 이걸 말하지 않은 겁니까...?"
크리스는 사뭇 충격을 받은 듯, 현자에게 물었다. 아까 레오에게 들었던 설명에서 나왔던 관계하고는 판이하게 다른 분위기였다. 거기에 지금과의 관계에서도 그랬다.
지금 관계에서는 이런 사적인 유대가 레오와 크리스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일부러 그러기라도 한 것처럼.
[걔가 그걸 바랬거든. 멍청하게도.]
답답한 나머지 현자는 한숨을 내쉰다.
[...그래야 자기한테 정을 덜 줄 테니까.]
추측이었지만, 확신은 있었다.
현자가 봐왔던 레오는 그래왔으니까.
영상은 멈추지 않는다. 레오의 기억이 그랬듯.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사랑하는 사람의 삶을 위해, 그는 사랑하는 사람의 무언가가 되고자 하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자신을 얼마든지 도구처럼 쓸 수 있도록. 70년 동안 그랬듯이.
<지각해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