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자는 모든 상황을 빠르게 전달하고 설명했다. 다들 거기에서 질문하지 않았다.
현자는 평소와 달리 진중한 표정으로 진지하게 전략적인 분석을 해, 설명을 이어갔다.
의문점은 전혀 존재하지 않을 만큼, 합리적이며 논리적이고 현명한 전략이었다.
여태까지 간섭하지 않은 게 너무하다 느낄 정도로 최선의 계획을 짜냈고.
동시에 천사인 앤젤라는 그런 현자의 계획에서 보조할 수 있는 영역이나, 추가나 제외할 부분을 지적해주었다.
신성에 대한 지식은 현자보다 성녀인 그녀가 더 풍부한 지식을 지니고 있었다.
마치 딱딱 맞는 둘의 합에 그 자리에 있는 이들은 저 둘이 어떻게 용사의 힘이 되어주었는지를 여실히 알 수 있었다.
“...가능할까요?”
루미네는 둘의 기행은 잠시 잊어준 채, 이 계획에 대해 마지막 질문을 했다. 대답에 따라 계획에 진심으로 신뢰하고 실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건...그...]
사념에 잡음이 생긴다. 레오나르도의 움직임도 다시 커지기 시작했다.
{현자는 이제 한계인 듯하군요. 결국은 각오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성녀 앤젤라는 그렇게 말하며 휘광을 내보였다. 그녀의 형상을 유지하고 있던 신성력이 루미네에게로 스며들며 자신의 후계자에게 힘을 북돋아 주었다.
“...그럼, 시작하죠.”
글라디오는 현자의 계획을 상기하며, 진두지휘를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아!!”
레오나르도는 검은 가면째 고개를 돌리며 창을 들었다.
그대로
카아앙!!
돌진해
‘...너무 빨라...!’
선두에
카가가가앙!!
있던
카아아앙!!!
글라디오와
파앙!!
격돌한다.
이미 인식한 찰나에 검합이 열 열몇 번은 오갔다.
아니, 사실상 일방적으로 글라디오에게 쏟아지듯 오는 걸 막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만약 방패 없이 검만 썼더라면 글라디오는 그대로 레오나르도에게 베어졌을 것이다.
콰지지지지직!!
이내 레오나르도에게서는 검은 전격이 폭발한다. 폭발의 방향은 글라디오가 있는 정면, 이내 전격은 계속해서 방패에 부딪친다.
“끄읍...!!”
신성은 제대로 부여가 되지 않았음에도 풀고르의 위력은 몇 배로 증폭되어 있었다. 흑마법에 가까운 신성이라는 말이 뭘 의미하는지 글라디오는 살갗이 저릿거리는 것으로 바로 체감할 수 있었다.
파악...!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었다. 레오나르도는 이미 배후로 달려가 검은 돌의 칼날을 팔에 뽑아내었다. 검은 돌은 혈관처럼 붉게 퍼지며 동시에 굳은 혈전처럼 빛났다.
“...이런...!”
레오나르도는 팔에 난 검을 내세우며 뛰어들었다. 검으로 막으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스릉...!!
어느샌가 레오의 손에 쥐어진 풀고르는 아예 글라디오의 검을 토막내버렸다. 마법은 쓰지 않았음에도 마법 같다고 생각해버린 광경이었다.
카아아앙!!
“...격정을 이겨내라. 레오...!!”
도중에 막아낸 것은 크리스였다.
“용서하게. 레오나르도.”
이내 글라디오는 원형으로 된 방패를 집어던졌다. 방패는 마도구의 능력대로 중력을 거부한 채 날아가며 레오에게 적중했다.
파아앙!!
하지만 적중할 뿐이었다. 닿았을 뿐, 공격이 되지 못했다. 레오나르도는 거의 몸을 꺾는 것처럼 회전시켜 방패를 낚아챘다. 이내 다시 레오는 그 방패를 집어 날렸다.
“...돌아와라!”
레오에게 하는 말은 아니었다. 얼굴에 닿기 직전인 방패는 아슬아슬하게 글라디오의 손에 다시 이동했다.
만약 1초라도 늦었다면, 그 전에 방패에 다시 되돌아오는 전이의 능력이 없었더라면 방패의 충격에 완전히 두개골이 깨부숴졌을 것이다.
“현자님 말대로군요.”
“...그래.”
죽일 각오로 덤벼야 죽지 않는다.
-죽일 각오로 덤벼야 너희가 죽지 않아. 기억해둬. 그거 잊고 망설이면 진짜 훅 간다.
자신들이 죽지 않는 것이 첫 번째 조건이다. 그건 본인들의 안전 때문도 있었지만, 더한 목적은 레오의 정신에 있었다.
-너희들 중 하나라도 다치면 레오는 진짜 망가질 거야. 너희들이 살아야 레오도 제대로 살 수 있어.
진짜든 가짜든 이미 자신의 어머니를 죽였다는 충격은 레오의 정신을 무너뜨렸다.
만약 이 중 한 명이라도 다치는 순간, 그 이상으로 죽는다면 레오는 레오로서 살 수 없을 것이다.
“...크륵...”
짐승과 같은 울음 소리가 울린다. 호흡이 멈추며, 레오나르도는 달려들었다.
레오나르도는 갑작스럽게 생긴 신성으로 강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 레오나르도는 죽기 직전으로 몰아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금 장기 상태는 검은 돌로 꿰고 메우고 있기에 살고 있는 것일 뿐, 사실 치료는 전혀 되지 않았다.
파지지지지직!!
다시 전격이 날아온다. 이번에는 아까의 것보다 몇 배는 고압으로 엮어진 전류의 폭탄이었다.
이미 글라디오의 방어를 학습한 것인지 아예 전격의 구체 형태로 집어던졌다. 만약 검이나 방패로 막는다 해도 그대로 전격 구체는 폭발해 전격을 흩뿌릴 것이다.
파앙!!
하지만 구체는 충격에 닿았음에도 폭발하지 않았다. 반대로 반사라도 된 것처럼 튕겨져 나가 그대로 레오에게로 되돌아갔다.
“내가 준 거지만, 낙뢰창만 너무 줄창 쓰는 거 아닌가?”
마르켄은 그렇게 말하며, 패링에 성공한 거울의 방패를 들었다. 현자가 말한 계획대로 전격을 되돌리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하지만 그게 반격에 성공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파악...!
레오나르도는 비꼬기라도 하듯 반대팔에 검은 돌로 방패를 만들어 전격의 구체를 다시 튕겨내었다.
마르켄의 방패술을 그대로 따라한 것이었다. 부족한 무골은 몸을 최대로 혹사시키는 것으로 극복하고 있었다.
퍼엉...!
“...할아버지...”
리오스는 급히 얼음의 벽을 만들어 전격을 막아내었다. 지금 나설 타이밍은 아니었지만, 현자의 부가적인 조언을 생각하면 과한 간섭은 아니었다.
얼음의 벽은 부서졌지만, 완충제의 역할을 해주었기에 글라디오가 다시 방어하는 것을 성공해낼 수 있었다.
“...미안하구나.”
마르켄은 리오스의 나직한 지적에 할 말이 없었는지 바로 사과를 내었다.
“그럼...! 시작하지...!”
마르켄은 화청을 쥐면서 푸른빛의 화염을 불살랐다. 색은 아리아가 쥐었을 때와 똑같았지만, 동시에 나오는 불의 빛은 아리아와는 격이 달랐다.
화염을 고도로 압축시켰기에 나올 수 있는 장렬한 불꽃의 색이었다.
“네...! 할아버지...!!”
아리아도 준비했는지 루미네로부터 충전된 마나를 신성으로 치환시켰다. 빛으로만 놓고 보자면 아리아의 것이 훨씬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콰아아아아아!(쿠와아아아아!!)
동시에 화음을 울리는 폭음, 레오의 좌우에서 완벽히 감싸며 날아왔다. 레오나르도는 급히, 그리고 당연히도 후방으로 피하려고 했다.
콰드득...!
하지만 리오스의 얼음벽은 양쪽 앞뒤를 막고 있었다.
발차기로 충격을 줘도 의미가 없었다. 금이 가는 것까지는 허용했지만, 리오스는 현자의 마법 지팡이를 사용하는 것으로 공기 중에 수분과 고체화된 수분까지도 유동적인 통제가 가능해졌으니까.
“...으아...!”
레오나르도는 그랬기에 이번에는 위로 도약하려고 했다.
지금의 레오는 마법을 쓸 수는 없었다.
마법을 쓴다는 것은 이성적으로 마법을 계산하고 도출한다는 것.
지금 감정이 무너지고 폭발한 레오에게는 마법은 너무나 무리한 작업이었다.
“...개인적인 감정은 없다. 꼭 구하겠다.”
그렇게 말하며, 크리스의 분신들은 공중으로 뛰어올라 증식검을 복제시켜 레오에게 계속해 투척했다.
“으아...아아아!!”
물론 증식검만을 던진 것은 아니었다.
“크리스 님!!”
“알고 있다!!”
리오스의 얼음 단검들이 크리스의 손에는 쥐어져 있었다. 증식검 사이 사이에는 리오스의 얼음 무기들이 들어있었다.
그리고 리오스의 고유 마법은,
푹...!
“끄아...!”
마나가 주입된 ‘물’을 완벽한 상태로 조절하는 것, 그게 설사 고체 상태로 레오의 몸에 박힌 단검이라 할 지라도 말이다.
“아아아악...!!”
단검은 그대로 용해되어 레오의 체내로 흘러들어가기 시작했다.
주입된 양이 적었고, 저수 지역이 아닐 때의 지속 시간을 생각하면 살상에는 턱없이 부족했지만, 그 정도만 되어도 충분했다.
“끄아...! 아악...! 으아악...!!”
레오의 체내에 지속적으로 회복 성분이 포함된 성수가 주입된다. 성수 자체를 얼려 단검으로 만든 것이었다.
보통이라면 적을 회복시키는 미친 짓, 하지만 현자의 지시는 그에 대한 확실한 이유가 있었다.
-레오의 혈관에는 지금 흡혈귀가 피가 스며들어가 있어. 감염될 정도는 아니지만, 정신을 혼란시키는데 그것도 영향이 있을 거야.
지금 강제로 하고 있는 치료는 그걸 중화시키는 것이었다. 동시에 성수에 있는 빛의 신성이 레오의 몸에 흘러넘치는 의문의 신성을 방해하고 중화시키는 역할을 해줄 것이다.
콰아앙!! 콰앙!!
레오는 계속해서 주변을 때려부순다. 공격의 세기는 점점 줄어들고 있고, 정신의 통각이 점차 완화되었지만 이성은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이었다.
본능은 계속 박히는 단검에 고통을 발버둥칠 뿐이었다.
“아...아......”
이내 레오의 폭주는 점차 진정되었다.
가면은 아직 벗겨지지 않았고, 백발의 머리도 그대로였지만 비명 같은 포효도 줄어들고, 분간 없이 공격하는 세기도 완화되었다.
“...이제 끝내겠습니다!! 여러분...!!”
이제는 루미네의 역할이었다. 앤젤라에게 얻은 신성력으로 파손된 레오의 장기와 내상을 치료하고 그대로 기절시킨다.
그걸로 레오나르도는 안전히 제압하는 것이었다. 현자의 지시대로 루미네는 자신의 역할을 완수하기 위해 레오를 향해 달려들었다.
사실 지금 레오는 계속 이성이 돌아올수록 통각이 극심해지고, 죽어가는 감각은 더 여실해질 것이다.
“...가만히 계세요. 레오...”
루미네가 손을 갖다 대 치료하려던 순간,
“거...절하지.”
레오나르도는 본인의 입으로, 본인의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퍼억...!
그리고 간결한 발차기와 함께 루미네의 한쪽 다리가 꺾이고, 그대로 바닥으로 굴러 고꾸라졌다.
“...어...어째서...”
“이 멍청이들아...! 내가 여기서 죽을 것 같아...?!”
메리 라미아였다. 사지는 피부가 수분기가 없어 갈라지고 주름이 많았지만, 그녀는 몸을 재생시킨 채로 자리에 서있었다.
레오가 흘린 장기와 살점으로, 미약하게 남아있는 의식진에서 회수한 마나로 회복한 라미아는 광소에 찬 표정으로 외쳤다.
“레오나르도!! 저 녀석들을 공격해!!”
“...네...”
제압하려는 행동 덕에 그녀는 어부지리로 레오의 정신을 조종할 수 있었다.
몸에 흡수된 피와 의식진의 영향은 별개의 문제였다. 강제력을 더 부여한다면, 부모의 죽음으로 혼란스러운 인간을 가지고 노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놓칠 것...!”
아리아가 분노한 채 추격하려는 순간 레오나르도가 그들을 가로막았다. 지금 레오나르도는 지능 자체는 회복되었기에 마법의 사용도 가능해졌다.
“...하핫...! 이제 난...!”
메리 라미아는 이곳에서 도망칠 것이다. 그리고 로드에게 약속받은 지위를 양도받을 것이다.
이곳을 뜨기만 하면 뱀파이어의 퀸 자리에 앉는 건 분명 자신...
“...죽어...! 이 사도가...!!”
루미네가 메리 라미아의 머리통을 부여잡았다. 이미 거리를 벌리고 있었음에도 추격해 간신히 머리를 붙잡고 메달리고 있었다.
“...다리가 부러졌을...?!”
“날개는 장식인 줄 알아!?”
루미네는 양날개를 펄럭이며 말했다. 이윽고 천사의 날개와 같이 그의 신성력이 메리 라미아를 태워 녹이기 시작했다.
비명을 지를 새도 없다. 성인의 신성은 즉시 그 존재의 혈액과 뇌수를 끓여녹여버린다.
고인을 능멸할 죄를 되갚는 것처럼.
그녀는 화형에 처하는 마녀처럼 신성의 업화에 재가 되었다.
악녀를 징벌하는 것을 돕기라도 하듯, 눈 앞에는 점차 태양이 올라오고 있었다.
일출이 시작된 것이었다.
"...어?"
하지만 어째서인지 루미네에게는 의구심이 들었다. 다리가 부러진 통각이 있었어도, 눈 앞의 광경에 본질적인 의심과 의문이 머리를 채우고 있었다.
죽어있는 흡혈귀의 시체는 분명 일광에 닿는 것만으로도 소멸할 텐데...
"...저 시체들은 왜..."
렌의 얼굴을 지닌 시체들은 일출에도 재가 되지 않았다.
마치 평범한 인간의 시체처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러고 보니 쟤 조류 수인이었지? 왜 기억을 못 했지?]
작가가 외형 묘사를 잘 못해서 그래요.
<지각해서 죄송합니다... 시간을 잘못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