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가 죽는다.
그것만으로도 정신의 냉정이 사라진다.
분노에 앞서 이후가 두려워진다.
죽어서는 안된다.
난 아직 아무것도 보답하지 못했다.
레오는 아직 아무것도 보답받지 못했다.
이대로 죽어선 레오의 모든 삶도, 회귀도 모든 게 의미가 없지 않은가.
“레오나르도!!”
뼈가 부러졌다. 그래도 상관없다. 장기가 파열되었어도 뛰어야한다.
마법으로 치료하는 것은 안 된다. 그만큼 마나가 낭비되고 시간이 지체된다.
그저 골절된 뼈의 부위를 오러로 고정하기만 할 뿐, 다리의 속력을 조금도 줄이지 않아야한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레오나르도가 죽는다.
내가 받아야할 치료 마법은 전부 레오에게 사용해야한다.
그리고 저 가증스러운 작자들에게 되돌려줘야한다. 특히 레오에게 불타다 만 저 흡혈귀와 레오의 배를 뚫어버린 저 존재에게도 복수를 해야...
“...으아...어...”
그 순간, 레오나르도가 지면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선혈을 낭자했음에도, 장기가 고깃죽이 되어 바닥에 흩어졌음에도 레오나르도는 다시 일어났다.
“...레오...레오나르도...!”
알고 있다. 신성력으로 알 수 있었다.
죽은 게 아니다. 흡혈귀가 된 것도 아니다.
의식진이 정신에 간섭하고는 있지만, 레오나르도는 버티고 있다.
그 지옥을 버틴 게 허세가 아닌 것처럼.
당당히도 신체의 고통을, 정신의 조종을 이겨내고 있다.
그리고 이내 움직인다. 광기에 가까운 근성으로 방심한 존재에게 돌진한다.
푹석...!
가슴팍을 확실히 찔렀다. 심장을 꿰뚫었다. 근성의 극치에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이격으로 레오는 창을 빼내 존재의 머리를 베었다. 베어진 목은 깔끔히 지면을 굴렀다.
얼굴을 가리고 있는 가면 또한 그대로 함께 얼굴에서 떨어진다.
“...어...?”
순간, 내 시야가 잘못됐다고 생각해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상황이 전혀 개연적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사고가 정지되고, 발상이 마비된다.
차라리 의식진에 환각이 있었으면 했다.
“...어머님...?”
분명 저건 레오의 어머님이었다. 신성력 때문에 착각이라 치부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괴리감이 들었다. 사건이 너무 극단적이었기에 든 의문이었다.
저게 레오의 어머니라면, 또다른 존재는 무엇이란 말인가.
의문의 찰나, 동시에 느껴진다. 또다른 신성력이.
다른 이가 쓰는 신성력의 의미가 아닌,
여태까지의 신성력과는 전혀 다른 신성이 느껴졌다.
***
“...으아...”
혼란스럽다.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눈앞의 굴러져 있는 무언가가 눈이 마주치고 있었다.
공허한 눈이었다. 저게 엄마의 눈이었나.
“아...아아...!”
머리가 아프다. 아파서 미칠 것 같다. 미쳐서 아프다. 머리를 날선 도끼가 깨부셔서 내용물을 전부 씻겨내리고 싶었다.
“끄아아...!!”
머리카락을 잡아뜯는다. 두피에서 머리카락이 한 줌 뽑힘에도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다. 내 검은색 머리는 어째서인지 너무 하얗게 보였다.
[정...! 신...려...!! ⬛⬛야..저.건...!!]
현자가 뭐라고 말하고 있다. 뭐라고 말하고 있는데 들리지 않는다. 어쩌면 듣고 싶지 않아서 내 감각이 귀를 닫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왜...! 왜 조종이...!”
무언가가 울음소리를 내고 있다. 저게 내 머리를 아프게 하는 존재일 것이다.
죽여버려야 한다. 늘 그랬듯이.
여태껏 살아온 70년처럼.
카아아앙!!
내 창을 막은 것은 분명 또다른 존재였다.
“도망쳐야 합니다. 저 남자는...!”
저 가면을 보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깨질 것 같다. 저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내 귀를 뜯어버리고 싶다.
차라리 내가 죽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는 감각이 들었다.
신성의 강제성이 느껴진다.
금제가 발동했다. 금제의 힘이 그걸 방해하고 있다.
왜지?
갑자기 머리가 멍하다. 뭐가 뭐였는지 모르겠다.
낮인가? 밤인가? 몇 시지? 오늘은 며칠이지? 지금은 몇 년도지?
지금 난 어디에 있지?
사실 전부 환상인 건가?
몽마의 여왕이 또 장난질을 벌인 것인가. 저주의 왕이 새로운 저주로 날 가지고 논 것인가.
원한에 가득 차서 된 마검이 드디어 내 정신을 잡아먹은 것인가.
계속된 환각제, 자백제, 마약의 주입으로 내가 완전히 미친 것인가.
상관없다. 늘 했던 대로 하면 그만이다.
“모두 죽어버리자.”
그럼 이 악몽은 끝나고, 다시 지옥이 시작될 것이다.
그래도 이 지긋지긋한 두통은 잠깐 사라질 것이다.
그 순간, 검은 가면이 내 얼굴을 가렸다.
***
아인은 지원을 태우고 있었다. 라인하르트 가의 정예 전력은 전부 와이번이 된 아인의 등에 타있었다.
가주인 글라디오를 시작해, 원로원과의 전투를 막 끝낸 마르켄까지, 잔류한 모든 하급 흡혈귀를 모두 잡은 크리스도, 각종 보조 마법으로 마나가 거의 동 나버린 리오스와 루미네조차도 한 명도 빠지지 않은 채 아인에게 올라탔다.
그랬기에 아인은 속력이 조금 느릴 수밖에 없었다. 속력이 빠른 실피드 와이번 대신, 대형 와이번을 골랐기 때문이었다.
“...괜찮을까요? 아까부터 레오가 텔레파시를 안 받아요...!”
리오스는 이 상황이 진심으로 심각한 것을 알았는지 남은 마나를 짜내 계속해서 텔레파시를 수신했다.
하지만 레오나르도는 전혀 연결을 받지 않았다. 아예 말조차 전달되지 않았다. 평소라면 어떻게든 상황을 전달했을 레오가 말이다.
“...아인, 재촉해서 미안하다만...”
“속력을 더 내겠습니다. 급강하할 테니 비늘을...”
이내 바람을 가르는 소리에 말이 잘린다.
사실 꽉 잡으라는 말 따위는 필요가 없었다. 지금 아인의 등을 지키고 있는 자들은 라인하르트라는 거대한 가문을 받치고 있는 굳건한 기둥들이었다.
하강의 힘과 중력을 통해 가속해 아인은 그대로 바닥을 향해 창공을 질주했다. 점점 가속도가 붙으며 아인은 지면에 닿았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내 아인의 몸은 원래대로 돌아갔다. 착륙도 어설픈 채로 그대로 소녀의 몸으로 돌아가버렸다.
“...아인아?! 괜찮니?! 무리한 거야?!”
마르켄은 드물게 높은 목소리로 쓰러진 아인을 감싸안았다.
“...아버지에게... 이상이 생긴 게 분명합니다... 전 괜찮으니...”
아인의 코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안전을 위해 마나는 이미 차단해두었다. 그럼에도 사념은 끝도 없이 전달해왔다.
형용할 수가 없었다. 한 가지 감정도 간신히 파악하던 아인으로서는 도저히 표현할 수가 없었다.
온통 모순투성이인 생각과 감정이었다. 앞뒤가 잘리고, 억지로 고통으로 이어붙인 듯한 감각만이 기워져 있었다.
“...미안해. 아인아.”
리오스는 포션을 들이키고, 아인의 머리를 만졌다.
“조금 자고 있어.”
리오스의 손에서 마법이 발동되었다.
발동된 건 사역마 차단의 마법식, 아인의 항마력이라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지만 아인은 그러지 않았다.
이윽고 아인은 편안히 눈을 감았다. 새근거리는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죽은 것은 아니었다. 그건 기절에 가까운 수면이었다.
“얼른... 우읍... 가요. 포션을 더 먹을 수도 없어요.”
이미 약물의 복용량을 넘긴 지 2병째였다. 이 이상 포션을 마시면 정말 약물 중독으로 쓰러질 것이다.
“...알았다. 미안하다. 리오스.”
“순애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모든 해야하죠. 동생들도 걱정되고요.”
리오스는 그렇게 말하며 웃어보였다. 글라디오는 그게 힘겹게 짜낸 미소임을 알고 있음에도 차마 지적하지 않았다.
그건 리오스의 각오를 무시하는 행위일테니까.
우선 아인은 안전하게 아공간 가방에 집어넣었다.
사람을 아공간에 넣는다는 시점에서 미친 것처럼 보이겠지만, 아인은 이미 본인 입으로 자신이 아공간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생명체에서 동떨어져 있었다고 공인했다.
하지만 그건 지금으로서 다행이었다. 적어도 아인을 안전한 아공간에 넣는 것으로 혼자 두지는 않아도 됐으니까.
“...이제...!!”
콰아아아아앙!!
폭음처럼 터지는 굉음, 자연히 라인하르트의 기사들은 자신들이 가야할 곳을 알았다.
“...레오나르도!! 아리아!!”
그렇게 달려가 도달한 곳에는,
“아아아악!!!”
비명만이 울리고 있었다.
“...이게 무슨...”
선혈이 낭자하고, 살점이 계속해서 튄다.
퍼어억!!! 철퍽...!!
레오나르도의 온몸에는 피로 도배돼 있었다.
“...제발...! 내가 잘못했...!”
콰직...!!
그건 레오나르도의 피가 아니었다. 레오나르도가 쥔 것은 메리 라미아의 머리였다.
간신히 재생한 그녀의 사지는 계속해서 토막이 난 지 오래였다. 몸은 마치 예술 조각의 토르소처럼 덩어리만 존재한다. 머리도 사실상 두어번은 넘게 으스러졌다.
“왜 의식도 멈췄는데...!!”
메리 라미아에게는 납득이 안되는 것 뿐이었다. 사실 이번 일은 루벤의 시체가 아니더라도 라인하르트의 전 고위층과 옛 선조들을 탈취하는 것만으르도 이기는 게임이었다.
하지만 루벤의 시체는 그렇다 쳐도, 영묘 자체를 의식장으로 뒤덮었음에도 시체 한 마리도 흡혈귀로 변모하지 않는다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더 상정하지 못한 대상은 자신의 머리통을 쥔 이에 있었다.
-레오나르도, 이 자도 분명 위험분자다. 분명 무골과 태생적 재능은 약한 편이지만, 그의 무서운 점은 지력에 있어. 그러니 접근전...
우드득...
생각할 시간도 없이 또다시 레오나르도는 재생된 머리를 쥔다. 이제 의식장으로 회복한 힘은 다 떨어진 지 오래였다.
‘이 녀석의 도대체 어디가 지략가인데...!!’
꽈득...!
다시 사지를 재생하며, 그녀는 그런 설명해준 정보원을 끝없이 원망했다.
부욱...!! 쫘악...!!
레오나르도는 맨손으로 또다시 메리 라미아의 사지를 찢는다. 비명조차 안 오게 머리통을 내리찍어 뇌수을 터트렸다.
이미 또다른 존재는 주먹의 충격만으로 배와 가슴에 크게 구멍이 뚫려있었다. 무의식만으로 이미 저 존재들은 회생이 불가할 만큼 손상되어 있었다.
“아리아...!!”
아리아도 그 충격에 나가떨어져 있었다. 기습적이었지만 반사적인 공격만으로 제대로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타격을 입어버렸다.
“...할아...버지...!”
“말하지 마세요...! 충격으로 폐가 헤집어졌어요...!”
루미네는 급히 아리아의 목에 신성력을 불어넣었다.
아리아의 자가회복은 치료 사제인 루미네조차 인정할 정도였는데, 이정도로 회복이 늦은 건 내상이 그만큼 심각했기 때문이었다.
“...레오...!”
레오나르도는 기괴한 자세로 서있었다. 인간의 자세와는 거리가 있었다. 한 마리의 짐승처럼 사냥을 하기에 최적의 자세로, 동시에 무술에도 어긋나지 않는 검형을 잡았다.
“으어...”
얼굴에는 검은 가면이 씌워져 있었다. 머리는 하얗게 질려 있었다.
검은 돌은 레오나르도의 감정과 필요 이상으로 공명 중이었다. 이성과 자아는 아까의 충격과 의식진의 세뇌로 붕괴되었다.
“...아...으아아아아아아!!!”
이내 그는 포효했다.
모든 걸 먹어치울 짐승처럼. 그리고 갓 태어난 아이처럼.
“...어떡하죠...!? 레오가...!”
“제압하는 수밖에.”
마르켄은 검을 쥐었다. 화청의 열기에도 손에는 식은 땀이 계속 흘러내렸다.
“제압이요...?! 하지만...!”
“기절만 시킬 거다. 저 상태가 계속 되면...”
[아니, 그건 안 돼. 그냥 기절시키면 바로 즉사할 게다.]
누군가가 머릿속에 말을 걸었다. 처음 듣는 이의 목소리가 텔레파시의 형태로 들렸다. 유일하게 이 목소리의 주인을 아는 이는...
“현자 님?!”
루미네와,
{당신이 어떻게...!}
천사인 앤젤라 뿐이었다.
[나도 없는 힘을 짜내서 하는 거야...!! 영체도 유지할 수가 없다고...!!]
현자는 힘겨운 말투로 말했다. 레오가 강제적으로 마나를 짜내는 덕분에 사념의 사용 범위가 늘어났지만, 그만큼 부하도 심각해졌다.
“현자...?! 설마 그 현자가...!”
리오스가 갑작스러운 상황에 경악할 틈도 없이, 현자는 설명을 속행했다.
[놀랄 시간은 없어. 지금 상황 설명해줄 테니까. 우선은 들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현자 자신이 억지로 억제하는 것도 몇 초 후면 바로 해제될 것이다. 그럼 이렇게 사념을 전달하는 것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지금 레오는 세뇌 마법에 자기 엄마까지 죽여서 완전히 자아가 나가버렸어. 거기에 세뇌의 잔여 때문에 폭주했지. 이젠 보이는 게 있으면 전부 죽여버릴 거야.]
“...엄마...렌 씨가 여기에 있었다고요?!”
[아니. 정확히는 똑같이 생긴 전투병기야. 나도 상황 파악은 안 되지만, 저것들은 분명 레오의 어미가 아니야.]
현자는 쓰러져 있는 두 존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가면은 벗겨져 맨얼굴이 완전히 들어나 있었다.
[...엄마가 똑같은 모습으로 두 명이나 있을 리가 없잖아.]
두 명 다 똑같이 렌의 얼굴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그럼... 현자...? 님...! 어떻게 해야합니까?!”
[레오나르도를 죽일 각오로 싸워야해.]
“...예?”
[그래야 안 죽고 제압할 수 있어. 내가 지시하는대로 따라. 그래야...]
레오나르도에게서는 검은 어둠이 흘러나왔다.
“...흑마법...!?”
{아뇨. 루미네 수사... 저건...}
흑마법의 어둠처럼도 보였지만, 동시에 신성의 편린처럼도 느껴졌다.
{...신성력입니다.}
[그래... 신성력이야. 흑마법에 가까운 신성...]
옛 영걸이었던 현자와 성녀는 그렇게 말했다.
저 검고도 신성하게 폭주하는 어둠을 향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하지만 당신을 어떻게 믿죠? 만약 또 흡혈귀가 농간을 부리는 거라면...!"
[난 레오 편이야. 레오가 떠먹여줘도 도로 뱉는 고자 새끼인 거 알 정도로 오래 알고 지냈지.]
"믿겠습니다."
가주 글라디오는 즉시 현자의 지시에 따랐다.
[연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