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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자는 회귀했다-117화 (117/248)
  • 레오나르도는 와이번이 된 아인을 붙잡으며 낮은 목소리로 회귀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막상 입을 떼니, 몇 년 동안 감추어두었던 비밀은 천천히 흘러나왔다.

    회귀 전의 아리아가 어떻게 끝났는지를.

    회귀 전에 레오나르도 자신은 어떻게 살았는지를.

    70년의 모든 세월을 고작 이동하는 7분 안에 설명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70년의 세월이 적어도 이 7분의 시간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숨겨왔던 비밀은 쉽게 베일이 벗겨져 나갔다.

    “...그래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겁니다.”

    레오나르도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뒤를 돌아볼 용기가 없었다.

    자신에 대해 태도가 바뀌는 것이 두려웠다.

    아인마저 그 대화에 끼어들지는 않은 채 입을 다물고 있었다.

    “...속여서 정말 죄송...”

    아리아는 레오의 등을 껴안았다.

    그저 허리를 붙잡는 것에 끝나지 않고, 팔을 감아 몸을 밀착시켰다.

    어느덧 숙녀가 된 그녀의 온기가 심장 고동과 함께 점점 빠르게 퍼져나갔다.

    “...미안하다 말하지 마.”

    아리아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부탁했다.

    뒤를 돌아보아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지만, 아리아는 이 남자에게 그런 수고를 지워주고 싶지 않았다.

    그럴 염치가 없을 정도로.

    “...네가 잘못한 게 아니잖아.”

    이 자학적일 만큼 올곧은 남자가 사랑스러웠으니까.

    동시에 너무 미안할 정도로 감사했다.

    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계속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 사과를 끝내고 싶지 않았다.

    “...미안해... 내가 아무것도 못 해줘서...”

    한없이 무거울 시간 동안 자신을 잊지 않은 남자에게.

    “...정말...”

    그때, 레오나르도는 입을 열었다.

    “...곁에 있는 것만으로 행복했어요.”

    무언가를 해주지 않은 것도 아니었고.

    “지금도 행복해요. 아가씨가 곁에서 계주셔서.”

    무언가를 해주지 않아도 행복한 사람이었다.

    레오에게 아리아는 그런 사람이었다.

    “...혹시 이야기가 끝나셨습니까?”

    아인은 이제 어머니라고 불러도 될만큼 관계가 깊어진 아리아를 보며 질문을 넌지시 던졌다.

    “그렇다면 혹시 모체 흡혈귀의 이야기를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아아, 미안... 사실 이게...”

    아리아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지금 들은 이야기도 중요한 이야기인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레오나르도에게 실례가 되지 않을까, 아리아는 조심히 말을 단속했다.

    “이게 더 급한 불이니 설명을 빠르게 하겠습니다.”

    정작 레오 본인은 객관적이며 냉철하게 이야기를 주도했지만, 그 건에 대해서는 지적하지 않는 아리아였다.

    [...그래서 이 피의 축제를 벌인 우두머리는 누구냐?]

    현자의 재촉스러운 질문에 레오나르도도 정리한 설명을 요약해 꺼내었다.

    “...확신하기는 어려워요. 다만 가능성이 높고 방식이 유사해서 의심하는 거죠.”

    적어도 10년은 뒤에나 활동하는 녀석이었다.

    흡혈귀가 되어 죽은 이의 피를 빠는 걸 즐기는 네크로필리아.

    동시에 레오나르도에게도 상대하기 어려운 난적으로 꼽히기도 했다.

    “메리 라미아, 흡혈귀 네크로멘서이면서 뱀파이어 로드에게 직접 피를 받은 고위 흡혈귀 중 하나예요.”

    메리 라미아

    다른 흡혈귀와 같이 즉석적으로 피가 빨리고 성분이 주입되어 만들어진 흡혈귀가 아닌, 흡혈귀의 왕에게 힘을 하사받은 존재.

    아까의 원로원은 우습고, 우리 전원을 마안에 가둘 수도 있는 흡혈귀 중 최강이나 다름없는 사령술의 대가.

    본래라면 10년 뒤 정도는 뒤에 나타나는 것으로 기억하는데...

    ‘...판단이 안일했어.’

    제하드 때 이후로 더한 경각심을 가져야했다.

    이미 미래는 바뀔 대로 바뀌었다. 그게 차라리 나은 거기도 했지만, 그로 인한 나비 효과에 대해 너무 물렁하게 생각해버렸다.

    [잠깐, 지금 로드가 있어? 내 때 녀석이 설마 살아있는 거야?]

    현자는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외쳤다. 아마 저렇게까지 경기를 부리는 것을 본 것은 루미네의 뒤에 있는 성녀여서는 안 될 미친 천사를 본 뒤로 처음이었다.

    <현자 님 때 로드는 아닐 겁니다.>

    [...또 새로 로드가 오른 거냐? 내 시절 모기 놈은 죽이는 거 확인사살까지 했는데.]

    <...저도 지금 벌써 등장할 줄은 몰랐어요.>

    뱀파이어에도 현자의 입김이 닿은 것일까, 몇백 년도 더 된 이야기일 텐데 이젠 저런 경험담이 놀랍지도 않았다.

    “로드가 제가 아는 녀석인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적어도 지금 공격한 녀석이 그 녀석이라는 확신은 들어요.”

    뱀파이어 로드는 인간의 왕위와 비슷하면서도 차이가 극단적으로 존재했다.

    그건 왕위의 계승 방식.

    뱀파이어들은 로드의 힘을 얻기 위해 몸을 가꾼다.

    좋게 말하면 몸을 단련하는 거고, 사실대로 표현하면 인간을 식량 삼아 몸을 최대한 묵히는 것에 가까웠다.

    그렇게 일정 기간이 지나고 몸이 햇볕 아래에 버틸 정도가 된다면, 그릇이 완성된 것이었다.

    “...내려온다고?”

    힘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다는 표현에 아리아는 이해하지 못한 눈치였다. 상식적인 지적이었지만, 비상식에 가까운 그녀가 의문을 보이니 묘한 감정이 들었다.

    “마인판 용사라고 생각해도 좋아요. 애초에 흡혈귀는 마인이라는 개념이 계속해서 지속돼서 만들어진 종족이나 다름없으니까요.”

    고대에 악마와 계약한 마인이 계속해서 스스로를 남기는 방법을 연구하고 연구한 끝에 만들어진 흡혈 감염종.

    그리고 자신의 힘을 반영구적인 형태로 만든 것이 영혼의 형태로 내려오는 로드의 힘이었다.

    “...그렇구나. 그건 신전에서 들어본 것 같아.”

    “...그래서 지금 로드가 같은 놈인지 모르겠어요.”

    이런 변수의 불확실성 때문에 로드를 먼저 색적해 잡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아무리 회귀자인 자신이라도 모든 흡혈귀를 잡을 수 없으니까.

    “...우선 가서 확인할 수밖에 없어요.”

    “...근데 시체를 되살려 흡혈귀로 만든다는 건...”

    “되살리는 게 아닙니다. 움직일 수 있는 상태로 만든다에 가깝겠죠.”

    강령이라고는 하나 그건 영혼을 부르는 일반적인 네크로멘서의 방식과 차이가 있다.

    아니, 결과 자체도 차이가 확실이 있었다.

    “그 녀석은 시체에 피를 공급하고 연료로 삼아 근육을 만들어 움직이게 합니다.”

    일반적인 강령술은 시체에 영혼을 집어넣거나, 망령을 집어넣는 것으로 그 힘으로 시체를 움직인다.

    그렇기에 네크로멘서의 수하가 많을수록 마나가 낭비가 크고, 제어가 힘들다.

    잡아둔 영혼이 순순히 따를 리도 없으니 관리도 필요하고.

    “하지만 그 녀석 방식은 달라요.”

    흡혈귀의 특성을 가장 잘 사용한 뱀파이어를 꼽자면, 메리 리미아는 아마 정점을 찍었을 것이다.

    발상이 그로테스크하다고 말할 만큼 응용력이 미쳤으니까.

    “피와 살점을 채워넣고 시체를 흡혈귀로 만듭니다.”

    뼈만 남아있더라도 상관없다. 시체가 흡혈귀가 됐다는 전제만 선다면, 혈액을 공급시키는 것으로 몸은 자연히 회복한다.

    그렇게 회복된 시체 흡혈귀는 자아도 없이 생전의 능력을 쓸 수 있다.

    흑마법과 흡혈귀의 특성이 최악으로 형태로 융합했기에 얻을 수 있는 최대의 비윤리적 장점이었다.

    “...그리고 라인하르트의 영묘는 화장이 아닌, 매장을 하는 방식으로 시체를 묻죠.”

    용사의 영묘는 라인하르트에서 큰 공을 세운 혈족들과 기사들이 용사 루벤가 있는 곳으로 간다는 의미에서 시체를 특수한 관에 넣은 채 보관했다.

    그 말인즉슨 멀쩡히 기워두기까지 한 최고급 재료가 넘쳐난다는 의미도 되었다.

    “...아...하지만 신성과 마법으로 겹겹이 막고 있잖아. 그러면...”

    “그렇게 안심할 수는 없어요.”

    들어가는 데는 보안 덕분에 시간이 걸릴 것이다. 아마 하급 흡혈귀들이라면 장벽을 뚫는 순간 몸이 산화돼 부서질 것이다.

    하지만.

    “...그 녀석이라면, 성공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떻게 그걸...”

    “...”

    레오나르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고 싶지가 않았으니까.

    “...미...미안...! 그게...”

    아리아도 자신이 경솔한 발언을 했다고 생각해버렸다.

    그걸 안다고 확신한 이유가 미래에 있다면.

    레오나르도는 모독당한 사자(死人)와의 싸움을 경험했다는 의미도 되었으니까.

    “...괜찮아요. 지금이라도 막으면 되니까요.”

    [...그래, 막자고.]

    현자도 이번만큼은 진지하게 대답했다.

    포기하지 않고 싸우는 애제자를 위해서.

    관에 자고 있을 자신의 옛 제자를 위해서도.

    “도착...한 것 같습니다.”

    아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지면을 본다면 그런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무표정을 짓는 것이 특기인 아인이라 할지라도.

    “...저건...”

    영묘의 주변은 붉었다.

    그것 외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푸른 호수를 보고 그저 푸르다 표현하듯.

    지금 공중에서 육안으로 보일 만큼 뿌려진 선혈은 하나의 거대한 의식진을 그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 선혈의 중심에는 흰 신전과 같은 성스러운 무덤이 있었다.

    [...미친 새끼... 영묘째 의식을 감행할 생각이야.]

    “...젠장...”

    아직 완성되지도, 발동되지도 않았지만 상황이 최악으로 향해가는 건 확실했다.

    영묘 전체를 의식으로 삼는다는 건, 영묘에 있는 모든 시체가 살육 기계로 재탄생한다는 의미였으니까.

    “...어떻게 합니까? 주변에 착륙할까요?”

    “아니, 아인 넌 공중에서 대기해.”

    “네? 하지만...”

    레오나르도는 아인이 논리적인 설득을 하기 전, 선수를 쳤다.

    “놀고 있으라는 게 아니야. 지금은 지원 인력이 더 중요해. 지금 시각이면 진압도 끝날 거야.”

    점점 동은 트고 있었다. 고위급 햇볕 아래에선 약화되는 것으로 끝나겠지만, 구울들이나 하급 흡혈귀들은 햇빛 아래에 전부 불타 재가 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착륙은...”

    “그럴 필요는 없어. 아인아.”

    이번에는 아리아스필 쪽에서 입을 열었다.

    “엄마 다녀올게.”

    이런 상황에서까지 엄마...

    ...라고 따질 시간도 없이 아리아는 검은 돌의 벨트를 푼 채 공중으로 뛰었다.

    “잠시만요.”

    레오도 아리아처럼 뛰어내릴 준비를 시작했다. 물론 맨몸으로 뛰어내리면 무릎을 골절될 테니 마법을 응용해 낙하를 대비할 것이다.

    “예, 부모님끼리 역시 마음이 잘 맞는군요.”

    “...그러니까...”

    [정말 아니냐? 깔 거 다 깠는데.]

    레오나르도는 이내 한숨을 피식 웃으며 내쉬었다. 근심보다는 웃기면서도 한편으론 안도가 되어 나오는 한숨 같았다.

    “...그래, 우리 딸 말이 맞네.”

    그렇게 말하고는 레오나르도는 지면으로 뛰어들었다.

    쐐액!!

    아인은 이내 다시 창공을 가르며 저택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보면 다시 텔레파시로 리오스가 아인에게 지시를 내려줄 것이다.

    쿠웅!!

    착륙을 빙자한 폭격이 떨어진다. 지면이 갈라지며 붉은 선혈로 이루어진 마법진에도 충격이 간다.

    메리 라미아도 그 난폭하면서도 덤덤한 행위에 당황한 듯, 용사를 바라본다.

    “...쳇... 빗나갔네.”

    아리아스필은 몸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내며 말했다. 착륙은 정말 덤이었고, 폭격이 주된 목적이었다.

    “이거 오늘은 무슨 날일까~? 용사가 별똥별처럼 떨어지네.”

    메리 라미아는 어린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장년은 우습게 넘겼을 나이임에도 그녀의 모습은 아리아가 10대 초반이었을 때보다도 어려보였다.

    “대단할 거 없어.”

    아리아의 목소리는 침착했다.

    그렇다고 분노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오히려 격정하고 화가 나 머리에 불이 나는 것 같은 감정이 전신을 휩쓸었다.

    저 암캐 또한 레오를 고통에 빠뜨린 저열한 족속 중 하나였다.

    아리아는 그저 그걸 냉정히 인내하는 것에 불과했다. 그 격정을 몸에 연료를 쓸 뿐, 필요 이상으로 바깥으로 분출해내지 않았다.

    그래야 더 잘 죽일 수 있으니까.

    “오늘이 네 제삿날이야.”

    이윽고 아리아가 성검을 들었다. 성검은 용사의 분노에 공명하듯 광노와 광명으로 빛났다.

    콰아아앙!!

    빛과 검기가 뿜어진다. 연발을 할 수도 없었고, 할 필요도 없을 일격.

    레오나르도도 그런 아리아를 신뢰하고 있었다.

    하지만

    콰아아가가각...!

    무언가 기이했다.

    평소라면 이정도 신성력을 날리면 최소한의 폭음이 울린다.

    하지만 지금은 마치 신성 자체를 깎는 것처럼.

    가르는 소리가 여실히 울렸다.

    “...역시~ 적이었던 녀석을 이런 식으로 활용할 줄은 상상도 못했어. 이래서 로드 님이 좋다니까.”

    메리 라미아는 해맑게 웃는다. 라미아에게는 신성에 당하지도 않았으며 처음부터 닿지 않았다.

    앞에는 방패가 있었다.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는 방패였다.

    살가죽과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게 있음에도,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음에도 아리아는 그 존재를 방패라 생각해버렸다.

    ‘...한 사람이 더 있어?’

    마나로 감지한 지 오래였다. 아리아도 계획이 당연하게도 있었다. 마나로 감지된 적은 분명 한 명 뿐이었다.

    확신도 가능했고, 단언도 가능할 정도로 정확하게 감지했다.

    “...”

    하지만 갑작스레 나타난 ‘존재’는 자신의 신성력을 막았다. 성검의 일격을 막았다. 고통도 없었고, 상처조차 없었다.

    마인이 아닌, 인간조차 그 정도의 에너지와 충돌하면 충격에 고통을 느낌에도.

    그 방패와 같은 존재는 아무 말도 없이 서있었다.

    퍼엉!

    지면 위로 바람이 인다. 마나가 아닌, 바람만이 일었다. 가면을 쓴 존재는 사라졌다. 아리아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마나도 감지되지 않는다. 소리도 울리지 않는다. 시야에도 잡히지 않는다. 유령조차 이리 완벽히 기척을 감출 수는 없을 것이다.

    “...”

    이윽고 나타난 곳은 아리아의 배후, 등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등째 관통시켜 심장을 찌부러뜨릴 의도였다.

    괴력이었다.

    카아아앙!!

    “아가씨...!!”

    레오나르도는 급히 공중에서 낙뢰창 풀고르를 던져 순간이동을 사용했다. 창날로 손날의 궤적을 틀지 않았더라면 분명 그 완력에 아리아는 쓰러졌을 것이다.

    [...뭐야...?!]

    “...넌... 뭐야...?!”

    레오나르도도 진심으로 경악했다. 아리아도 이제 저 존재에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저거...마나가 없어.]

    저 존재에겐 마나가 없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숨겨진 대화(?)]

    "...그래도 많이 힘들었겠어. 그런 오랜 기간 동안... 다른 여자도 안 만나고.."

    아리아는 진심으로 안타까운 눈치로 레오를 바라보았다. 자신에게 있어선 레오의 100년이나 넘게 묵은 동정을 받아갈 수 있어서 좋앗...!지만, 어떻게 사람이 70년 넘게 경험을 안 하고 참는단 말인가.

    솔직히 기특하다 못해 탐스러워서 바로 달려들고 싶었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우선은 인내하기로...

    "...아가씨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제가 교제 안 한 걸요?"

    "...아..."

    참고로 레오나르도는 지금도 자신의 이기적인 고해성사를 받아준 은인이 누구인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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