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영감탱이 걱정 안해도 되겠지?]
<괜찮아요.>
마르켄은 저들에게 밀릴 이유가 없었다. 실속 없이 젊음과 마기에 의지하는 것보다, 차근차근 노력으로 쌓은 경험과 실력이 우위를 점하는 법이니까.
거기에 화청과 거울의 방패야말로 저 모기나 다름없는 흡혈귀들을 잡기에 적합한 무기였다.
[파장 주파수 연결했어. 레오. 이제 잡음은 없을 거다.]
현자의 솜씨는 능숙하고 빨랐다.
<아! 아! 아우!! 들려?>
텔레파시가 연결되자 다시 목소리가 울렸다. 가장 먼저 목소리가 울린 것은 또다른 마법사인 리오스였다.
<예, 지금 가고 있습니다. 상황 설명 가능한가요?>
“제가 해드리겠습니다.”
고개를 돌리자 어느샌가 아인이 그 자리에서 같이 뛰고 있었다.
<아인이 왔단 말인가!? 이런 상황에?!>
글라디오는 경악한 눈치로 외쳤다. 분명 자신은 아인과 시리카가 곁에 있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예, 이 상황에서 정확하게 브리핑할 수 있는 건 사역마인 저이기에 온 것입니다. 글라디오 가주님.>
아인은 그렇게 태연히 대답했다. 물론 글라디오가 본대로 시리카가 놓치지 않고 함께 대피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사태가 사태인 만큼 아인도 시리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전장으로 뛰어온 것이었다.
<괜찮을 겁니다. 가주님. 아인이 가지고 있는 ‘와일드 비스트’의 이능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니까요.>
<...>
일순 정적이 흘렀다.
순간적으로 아인의 능력을 ‘와일드 비스트’라 멋대로 태연히 고유 명사로 명명해버렸기에.
다들 그 (애도 안 쓸) 부끄러운 단어를 사용해 아인의 능력을 읊어야 하는지 정신적으로 갈등 중이었다.
<제 사역마로서의 기능을 명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크리스 님. 하지만 그 이름은 저조차 저장하지 않았으니 갑작스럽게 대화에 혼선을 주지 않았으면 하는 것을 권고 드립니다.>
<...아... 미안합니다.>
크리스는 레오가 날리는 돌직구 같고 송곳 같이 날카로운 지적을 들으면서 확신했다.
레오와 아인은 분명한 부녀라고.
“...그래서 무슨 상황인지 설명이 가능해?”
“이 상황이 양동을 이용한 함정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입니다.”
양동이라는 말에 레오의 표정이 바뀐다. 발걸음은 유지하며 아인에게 묻는다.
<자세히 말해봐.>
<아까 얻은 흡혈귀의 안구와 함께 설명하겠습니다. 설명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아인은 그렇게 말하며 무표정하게 원로원 중 하니였던 흡혈귀의 안구를 잡아들었다. 아마 아리아나 자신 중 전투에서 피가 튀어나와 지면에서 구르던 눈알을 주운 것처럼 보였다.
[...아...씹...]
현자는 안구를 보자마자 눈살을 찌푸리며 욕설을 내뱉었다.
“비위가 안 좋은 건 알겠지만, 욕할 건 아니잖아요.”
레오는 직접 말하는 것으로 현자를 타박했다. 실수라도 했다가는 현자와 주고 받는 독설이 그대로 텔레파시에 흘러들어갈 우려도 있었기에 내린 판단이었다.
“아버지, 외람되오나 현자님이 욕한 이유는 그게 아닐 겁니다.”
아인은 그렇게 말하며 손끝으로 안구를 눌렀다. 동공은 흡사 짐승의 눈처럼 세로로 날카롭게 찢어져 있었다.
[저거 딱 봐도 암시가 걸린 눈이잖아.]
<...암시...>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기에 항목에 넣지도 않은 가능성.
하지만 이미 죽었음에도 여전히 동공 근육이 수축되어 있는 흡혈귀의 눈이 알려주고 있는 증거는 그 말도 안 되는 가능성에 의심을 더해주고 있었다.
<암시라니... 아까부터 무슨 말인가?>
<잠깐... 암시라면...?>
텔레파시를 받는 이들이 혼란스러워하는 가운데, 마법적 지식이 있는 리오스는 레오와 마찬가지로 상정하고 싶지도 않은 가능성이 떠올랐다.
암시는 세뇌의 일종, 걸리기만 한다면 그 대상이 가능한 모든 일이 명령 가능한 최면술이었다.
그건 말은...
<이 상황 자체가 함정이라는 거군요. 우리 시선을 교란하려고 이런 거였어요.>
원로원들이 라인하르트 가를 몰살하려고 정면으로 쳐들어왔다는 전제.
그 대전제 자체가 틀렸다는 의미였다.
<...그런 것까지 걸어뒀다는 건가...>
<...도대체 어디까지 얕보인 거지...!!>
크리스, 그리고 가주인 글라디오마저 당황해버렸다. 그 전제의 의미는 다르게 말하면, 라인하르트의 원로원 전원을 처음부터 미끼를 썼다는 뜻과 다를 바가 없었다.
라인하르트의 긍지가 바닥으로 곤두치는 기분일 것이다. 적어도 장년층인 그들에게는 말이다.
<동공 상태가 어떤데? 레오?>
레오는 아인이 내민 원로원 흡혈귀의 동공을 들며 말했다.
<완전히 수축되어 있어요. 암시가 제대로 걸렸네요.>
암시가 걸리는 건, 보는 형태로 세뇌되는 것이 태반이다. 이미지만큼 머릿속에 각인되기 쉬운 것도 없으니까.
그렇기에 암시가 걸린 눈에는 특유의 현상이 있는데, 암시의 충격으로 동공이 수축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죽어서까지서도.
흡혈귀가 된 덕분에, 확인은 더 쉬웠다.
<...그럼 원로원 전원이...>
<미끼에요. 우리의 시선을 교란시키려고 버리는 패로 쓴 거였어요.>
잘 생각해보면 이상하기는 했다.
원로원이 아무리 흥분하거나, 멍청하더라도, 저택에 그저 아무런 방법도 없이 돌진해오는 것은 지나치게 무모했다.
조금이라도 전략을 고려한다면, 신성력의 대가인 성인과 용사의 존재를 타파할 방법도 생각해오지 않는 것은 분명 기이했다.
하지만
애초에 쓰러뜨려지는 걸 전제로 했으면, 이야기는 달랐다.
노화의 두려움과 힘의 갈망, 복수심으로 시작된 노인네들.
흡혈귀가 되고 젊음을 얻은 것으로 고양된 상태.
거기에 힘을 준 흡혈귀라면 충분한 것 이상으로 간단히 암시를 걸 수 있을 것이다.
[‘그냥 가서 싸워도 이길 수 있다.’나 ‘충분히 압도할 만큼 강해졌다.’의 암시겠지.]
그 말대로 그 최면이면 아까의 모순적으로 멍청한 행동에 개연성이 생긴다.
<...암시라는 것은 몰랐네만, 양동 작전인 건 알아챌 수 있었네.>
<주변에 경비 기사들하고 몇몇 집행 기사들에게 연락이 왔어. 계속해서 흡혈귀가 오고 있어.>
글라디오는 특유의 판단력으로 리오스에게 외부 경비 인력에 연락을 취해보라 명령을 내렸다.
리오스는 순간이동을 여러번 무리해 사용해가며 텔레파시를 연결했다. 덕분에 암시는 몰랐더라도, 외부에까지도 흡혈귀의 게릴라 공격이 시작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현 상황은 어떻죠? 공격 당한 장소는 어딘가요?>
<각종 장소는 당하고 있어. 많은 수로 차례로 말하면 무기고, 종기사 훈련장, 별채...>
차례로 말하는 순을 듣는다.
방어는 계속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레오나르도는 이내 석연치 않은 표정을 짓게 되었다.
이마저도 이상했다. 공격이 거세서가 아니었다.
그 반대였다.
<...전부 방어에 성공 중이라고요?>
그 점이 오히려 기묘했다.
<어, 위험하긴 하지만 전체적인 진압은 괜찮은 편이야.>
방어가 전부 성공적이여서는 안된다.
적어도 한 곳만큼은 방어가 험난해야 정상이다.
그래야만 했다. 다른 가능성을 더 생각해본다면...
<지금 정예 인력 중에 지원을 한 곳은 있나요?>
<아니, 지금 우리도 각자의 위치에 맞게 포지션을 정하는 중이야.>
최악의 경우가 떠올랐다.
떠올랐기에 다행이었고, 일어나는 건 최악의 경우.
회귀 이후의 최악의 사태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용사의 영묘...>
용사의 성스러운 무덤.
용사 루벤 라인하르트를 포함한 영웅들의 영혼이 함께 묻힌 신성한 공동 묘지.
문득 그 형상이 머릿속에 그려지고 싶지 않은 형태로 그려진다.
<...어? 영묘에는 아직 확인 보고가 없...>
<거기로 가야해요...!! 거기에 우두머리가 있지도 몰라요...!!>
최악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확인은 해야한다.
이걸 확인하지 못하고 행동하면 상황은 겉잡을 것도 없이 최악으로 치닫을 것이다.
확신할 수 있었다.
<갑자기 공동 묘지는 왜...!>
설명할 부분이 어렵다.
회귀를 설명하지 않고는 말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행동으로 옮겨야만 한다. 이건 시간을 지체할수록 터지기 쉬운 시한 폭탄 같은 문제였다.
<레오 말대로 해요.>
그 순간, 누군가가 말했다.
목소리는 전혀 지치지 않았다.
오히려 분노로 격앙되어 있는지 호기롭게까지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아리아...>
아리아스필이었다.
원로원의 흡혈귀 따윈 애저녁에 몰살한 지 오래였다.
조금 마나를 낭비해 피로한 것 이외에는 문제는 없었다. 부상도 없었고 몸도 피로하지 않았다.
그 증거로 지금 아인과 레오나르도 앞에 있는 사람이 용사인 그녀였으니까.
“위험한 거지?”
그 질문에 레오나르도는 떠올린다. 자신의 아가씨와 춤을 추면서 나누었던 말을.
-나 사실은 예언가님께 과거를 보게 됐어.
-레오가 숨긴 과거... 말이야.
그것도 용기를 내서 말한 것일 거다.
쉽게 말할 수 없는 내용일 테니까.
끔찍한 살육극, 그리고 추한 발버둥이 고스란히 있는 이야기일 테니까.
“...네, 아가씨.”
“...그럼 같이 가자.”
“예? 그건 위험...!”
아리아는 자연스레 성검을 들었다.
협박의 의도가 아닌,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기 위해서.
성검의 신성을 보여주었다.
<아리아 그럼...>
<다른 사람들은 여기서 상황을 진압해주세요.>
<...그건 너무 위험도가 높...!>
<아뇨. 그렇지 않아요.>
그렇게 말하며 아리아는 논리정연하고 요약해 상황의 판단을 보여주었다.
리오스는 물을 이용한 고유 마법으로 다수의 적을 상대하기 유리하기에 저수 지역에 지원을 위해.
루미네는 부상병들과 흡혈귀들의 퇴치를 위해.
크리스와 마르켄은 집행 기사단을 통제와 통솔을 위해.
가주 글라디오는 전체적인 진두지휘를 위해서 남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저 억지가 아니다.
논리적이며 자신이 가야할 이유 또한 확실했다.
아리아는 성검의 용사로서 흡혈귀의 우두머리를 잡을 이유가 확실히 존재했으니까.
<...알겠다. 부디 조심해라. 아리아, 레오나르도.>
글라디오도 수긍하며, 이내 다른 인원들의 전술을 조정하기 시작했다.
“얼른 가자. 영묘까지의 거리는 제법 되니까...”
“그거라면 더 나은 방도가 있습니다.”
아리아가 급히 저택을 나가려던 순간, 아인이 말했다.
덜컥
아인은 갑자기 복도 창문을 열더니 이내 바깥으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 흰 상아와 같은 단검을 자신의 몸에 꽂아넣었다.
“이번에는 저에게 탑승하는 걸 거절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리아 언니.”
거대한 실피드 와이번이 된 아인은 파충류 같은 혀를 날름거리며 덤덤히 말했다.
“...알았어...?”
레오나르도가 먼저 앞에 타고, 아리아는 당황한 눈치로 그 뒤로 와이번이 된 아인에 올라탔다.
“날겠습니다. 고삐와 안장은 아버지의 검은 돌로 쓰면 될 겁니다.”
레오나르도는 이미 검은 돌로 자신과 아리아를 벨트처럼 고정해둔 지 오래였다.
“갑니다.”
아인은 거대한 와이번의 날개를 펄럭이며 공중으로 도약하고 비행했다. 퍼덕거리는 소리와 함께 와이번은 창공을 향해 날아올랐다.
“...이제 무슨 상황인지 설명해줄 수 있어?”
아리아가 하늘 주변을 바라보며, 다른 이가 없는 걸 확인하자 조심히 물었다.
아리아는 진심으로 레오가 그러는 이유를 몰랐지만, 레오였기에 신뢰한 것이었으니까.
“...과거... 아니, 제가 미래에서 본 것을 요약해 설명해드릴게요.”
레오나르도는 숨을 고르며 입을 열었다.
“전 미래에서 온 회귀자에요.”
신뢰에 보답하기 위해.
“그리고 지금 모체 흡혈귀가 노리는 건, 영묘의 시체에요.”
현재를 지키기 위해서.
“그 녀석은 영묘의 시체를 강령시키고 흡혈귀로 만들 생각인 겁니다.”
최악을 막기 위해서라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여담(?)]
“그럼 레오는 몇 살이야?”
“...구십오...”
[약 팔지 마 새꺄.]
약을 파는 게 아니었다.
회귀 후 나이는 추가 안 하는 것이 개념적으로는 맞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