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은 어때요? 리오스 님?>
순간이동 후, 자리를 이동 중인 레오는 텔레파시로 리오스와 함께 서로의 상황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우선 부상자들은 치료 중이야. 지금 주변에 물을 뿌리면서 흡혈귀는 색출 중이고, 전투 가능한 인원은 추가적으로 증원시킬게. 아우.>
이런 테러 사태일수록 정보 공유는 필수적인 수단이었다. 작은 오해나 착각만으로 한 사람이 죽고, 모든 사람이 죽을 수도 있었으니까.
<물에도 신성력을 불어넣어서 즉석이지만 성수로 만들었어요. 아무래도 지금 찾아낸 12마리 이외에는 전부 민간인인 것 같습니다.>
예전부터 생각했고, 지금에서 확신한 것이지만 리오스와 루미네는 궁합이 좋은 타입이었다.
루미네는 물에 신성력을 주입하는 것으로 성수를 만들 수 있었고, 리오스는 그 물을 조종하는 것이 가능했다.
하물며 이 저택에는 수도 시설도 잘 구비되어 있으니 이 방법을 사용하면 민간인 중에서 구울이 나오는 일은 없을 거다.
<마르켄 님, 외부 쪽은 어떻죠?>
<지금 구울이 시가지로 나가지 않도록 막고 있다만, 뭔가 이상해. 수가 많아. 일부러 외부 쪽으로도 구울을 보내는 것처럼.>
사념 자체는 고른 걸로 봐선 진압은 가능한 상황이기는 했다. 하지만 수가 많다는 것은 기이한 것이 많았다.
구울을 시가지로 보낸다는 건, 공격할 병력을 적진 아닌, 외부로 보낸다는 의미였다.
적을 분산시키는 고도의 작전일지도 모르지만, 굳이 그러지 않아도 한 곳에 몰아서 공격하는 편이 적을 섬멸하는데 있어 더 효율적이었다.
구울은 내부와 달리 외부에 있으면 낮에 떠오르는 햇빛에 바로 산화될 테니까.
<크리스 님, 가주 님, 내부 상황은 어떻죠?>
<...아직 구울들 밖에 잡지 못했다. 그 늙은이들, 정말로 이럴 줄이야.>
<...내 쪽도 마찬가지다. 뭔가 기이하네. 설마 나머지는 아직 안 온 건가?>
그럴 리가 없다.
아무리 연회로 방심해있다고 해도, 헌역 기사와 전투의 프로가 득실거리는 곳에 고작 원로원 6명과 기사단 구울들만으로 올 멍청이들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도 글라디오가 말하는 위화감 또한 확실히 느껴졌다.
설마...
[...야... 레오나르도.]
현자가 말하자마자 바로 레오도 이 기이함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이 늙은이들, 정말로 노망이 났나...”
현자가 좌표 추적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 살기와 마기, 족히 생각해도 나머지가 전부 모였구만.
“노망? 이렇게 또렷하게 정신이 맑은 적은 젊을 적에도 없었단다.”
젊은 여자 목소리가 울렸다. 그림자의 음영 속에 사람들이 걸어나온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처음 보는 모습인 것은 확실했다.
<...무슨 일이지? 대답해라. 레오나르도.>
가주 글라디오는 레오나르도의 말이 끊기자 급히 안전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레오가 위험하거나 죽기라도 한다면 이 텔라파시의 범위는 반이나 줄어들 것이다.
레오나르도는 썩은 미소를 지으며 짧게 대답했다.
<제가 노인네들한테 인기가 많네요. 전부 저한테 왔습니다.>
나머지 원로원들은 외부에 있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였다.
[...저 새끼들, 진짜 억하심정에 미치기라도 한 건가?]
남은 6명의 원로원들은 전부 레오 자신에게로 와 있었다. 레오에게 복수한다는 얼토당토않은 명목으로 말이다.
“처음 봤을 때는 고개를 숙이더니, 이젠 아예 눈도 깔지 않는구나.”
“안타깝게도 내가 정신 연령은 더 높아서. 그다지 미안하지는 않아.”
시간적으로나, 상식적으로나 그건 증명된 사실이었다.
“건방진 놈...!! 내가 네 목을...!”
“누가 할 소릴.”
레오나르도는 그렇게 말하며 화염구를 날렸다. 대화로 시간을 끌어서 마법의 위력은 제법 정밀했다.
저택의 피해는 줄이고, 맞히는 대상에게 위력을 높이는 압축 화염탄이었다.
“...신성력은 못 쓰는군.”
검은 망토, 아니 흡혈귀의 특성을 이용한 검은 그림자로 공격을 막은 여성 원로원은 이내 미소를 지었다.
화염 공격은 재생력이 뛰어난 마인에게 유효한 공격임에도,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 눈치였다.
“역시 이쪽으로 오는 게 정답이었어.”
[그래, 너희가 잘 죽는 게 정답이긴 하지.]
현자의 이해심과 이해력에 감동할 시간도 없이, 다른 원로원들은 각자의 병장기를 들며 레오에게 돌진해왔다.
신성력이 없다면 유리한 건, 자신 쪽이라고 생각한 얼간이 병사들이었다.
카앙!!
병장기들이 차례로 부딪친다. 마주친 장소가 복도인 만큼 도망칠 장소는 따로 없었다. 뒤를 돌아 뛰는 순간, 바로 따라잡힐 테니까.
“...쯧...”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다. 이들 이외에도 협력한 벰파이어의 우두머리가 있을 것이다. 몇 십년 동안 있었던 로드 이외에 다른 가능성 또한 상정해야 했다.
<현자님. 그거 할 겁니다. 준비하세요.>
[오냐, 아주 그냥 회를 떠주자고.]
현자는 영체를 지운 채 레오의 심장으로 들어갔다. 그걸 시작으로 레오나르도는
《검은 돌-흑암》
붉은 선이 그려진 검은 돌이 전신에 퍼진다. 100퍼센트로 퍼진 검은 돌은 전신에 갑주를 씌웠다.
검은 돌이 연결된 신체는 레오의 무골을 최상의 형태로 강화해주었다.
[라이트닝 엑셀]
0.01초, 눈앞에 도끼가 휘둘러진다. 전기 덕분에 몸의 동체시력과 반사신경이 강화되었다. 몸의 각도를 살짝 틀어 공격을 피한다.
촤악
0.02초, 팔목에서는 검은 돌로 이루어진 검이 튀어나왔다. 일순 피한 도끼를 쥔 팔째 베어버리면서, 궤적을 이어 전신을 토막낸다.
0.03초, 연속되는 칼질의 마침표를 찍기 위해 [파이어 볼]의 주문을 외운다. 기초적인 마법이라 무시할 것이 아니다.
이미 무예와 마법의 아리아 덕분에 최소 10개는 넘는 화염의 마법이 준비되었다.
발동만 시키면 그만이다.
퍼어어엉
0.04초, 먼저 검으로 선을 그은 쪽에서 폭발이 난다. 폭발이 차례로 일어난다. 도끼를 쥔 전 원로원은 오체가 분시되며 사체가 되었다.
0.05초, 연속해서 화염구가 정면으로 날아간다. 남은 건 5체의 화염구, 쉬지 않는다.
이번에는 그 도끼를 주워서 손에 쥔다. 검은 돌을 변형시키는 것도 마나의 낭비가 되니 가급적이면 이런 무기를 즉석으로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었다.
퍼엉!! 펑! 퍼어엉!!
이윽고 5개의 화염구가 전부 폭발한다. 크기는 작지만, 압축되어 있기에 위력은 더 강력하다.
폭발하고 폭발한다.
감각과 두뇌에 과부하가 온다. 라이트닝 엑셀의 전압을 최대로 했기에 온 피로였다.
전압은 다시 원래대로 돌린다.
감각의 시간이 다시 돌아온다.
“...끄아아아악!!”
원로원 중 한명은 완전히 불타 죽었고, 여자 원로원을 포함한 복도 전체로 화염이 들끓는다.
“...이... 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감히...!”
“피부가 푸석해서 머리에서 각질이 떨어지는 것보단 낫지. 나이가 들수록 관리를 해야 한다는 거 몰라?”
나이를 건드리자 그들의 표정이 불타고 있는 채로 완전히 일그러졌다. 그럴 때마다 가뭄이 난 밭마냥 쩍쩍 갈라지는 면상이 일품이었다.
검게 탄 피부는 재생으로 떨어지며 아물고 있었지만, 불의 열기 때문에 재생이 더딜 것이다.
계속해서 레오나르도는 돌진한다. 이 전투 도끼의 능력은 이미 알고 있다. 휘두르는 것으로 저장된 에너지를 충격파로 내뿜는 무기.
얻은 만큼 사용한다. 그것도 연속해서
원래 몸이라면 반동에 속도가 느려겠지만, 이 흑암의 갑옷이라면 연격쯤은 어렵지 않다.
정면에 있는 원로원 중 하나면의 가슴팍에 도끼가 꽂힌다. 격발한다.
퍽석
적의 가슴팍에 구멍이 생긴다. 인간이라면 죽겠지만, 흡혈귀이기에 죽지 않는다.
그렇기에 심장의 손실로 움직임이 둔해졌을 때, 머리의 정수리를 다시 도끼로 찍는다.
다시 일어나는 격발, 두뇌가 갈라지며 폭발했다. 급히 나머지 4명은 거리를 벌린다.
“...남은 건 4명이네?”
“그 모습은 정보로 들어서 알아. 능력은 뛰어나지만, 결국 몸의 마나를 갉아먹는 능력이라고 들었는데?”
그들은 나이에 맞지 않은 호기에 찬 미소를 지었다. 결국 레오의 마나는 총량이 적다. 저대로 몇 분만 더 있으면 그대로 레오는 마나로 탈진...
그 순간, 창문에서 섬광이 일었다.
콰아아아우우우웅...!
말하기도 전에 폭음이 울린다. 간단히 생각해도 저 폭음이 어느 용사가 자신의 분노를 여실하게 알려낸 것처럼 보여주고 있었다.
“저게 무슨...”
“단체 성형 친구가 절반 줄었네. 아깝게 됐어. 따로 맞춰둔 관짝을 버려야하니.”
레오나르도의 도발에 그들은 화가 목 밑에서 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한편으로 안 넘어가기 위해 간신히 이성을...
“너희들은 미리 들어가 있는 게 어때? 나이도 적당한데.”
그 한마디에 다들 폭발했다.
“이 잡종이...!!”
•던지기 제10형 투(投) 조준 투척
은색 도끼 원반이 회전하며 궤적을 그려 날아간다. 방어하기 위해 여성 흡혈귀는 급히 팔을 들었다.
퍼억!!
회전한 도끼는 팔에 단단히 박혔다. 팔을 완전히 절단하지 못한 채로 도끼는 그녀의 팔에 박혀져 있었다.
“...이게 다...!”
팔로 막아낸 흡혈귀는 자신있게 레오를 노려보았다. 오러로 절단을 막아냈고 결국은 재생하면 그만...
“다겠어?”
퍼어엉!!
도끼 자체를 아예 격발시켰다. 한쪽 팔은 완전히 폭발해 잘려버렸다.
“...천한 것이... 감히...”
여성 흡혈귀는 송곳니를 들어내며 혈액을 쥐어짰다. 잘린 팔 부위는 피로 다시 형성되고, 시체 주변에 뿌려진 피로 된 창들이 형성됐다.
준비가 되자 그녀는 낄낄대며 말했다.
“죽을 준비는 됐니? 꼬마야?”
그들은 자신만만한 얼굴로 레오를 바라보았다. 몸에 느껴지는 힘으로 가늠이 되었다.
확신할 수 있었다.
이제 레오에게는 갑옷을 지속할 마나는 없었다.
“따지고 보면 젊기는 하네. 정신 상태가 신생아 수준이야.”
하지만 레오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옷에 넣어둔 작은 약병을 검은 갑주에 끼워넣는다.
이대로 주사 형태로 변형시키면...
“으어어어...!”
그 순간, 뒤에서 기사 구울들이 달려든다. 미처 처리하지 못한 구울들이었다.
“...젠장...!”
양동 공격이라면 부상은 불가피하다.
그건 회복 포션을 주사로...!
“...달려들어!!”
피의 창들이 날아오며 적들은 돌진해온다. 뒤에도 구울이 달려든다. 물리고 감염만 막는 건 가능하다. 대신 살점이 날아가는 고통을...
“...암여우년, 어지간히 노망이 났나보군!”
그 한 마디와 함께 창문을 깨고 한 노인이 달려든다.
“우워...! 우어어어억!!”
한쪽 손으로 화청의 대검을 쥐어 화염의 공격을 날렸다. 아까의 파이어볼에 비견될 만큼의 화염이 구울을 불살랐다.
카앙! 카아앙!!
동시에 거울의 방패를 전면에 내세운다. 패링 한번에 혈액을 창들을 그대로 달려드는 늙은이에게 되돌아가 박힌다.
“끄아아아악!!”
“마르켄 님...!”
마르켄 라인하르트, 집행기사단의 단장은 연락한지 고작 3분 만에 이곳에 도달했다.
“나름은 선전하는군. 하지만...”
무기고의 무기를 든 마르켄은 낙뢰창 풀고르를 레오에게 던져주었다.
“무기가 부족해. 이거라도 써라. 가져도 좋으니.”
몇억은 호가할 낙뢰의 창을 던져주며 그 노인은 그렇게 말했다.
“...하, 마르켄...!! 그 애송이한테 풀고르를 쓸 마나는...”
“애송이라 부르지 마라. 이 아이가 나나 너희보다 몇 배는 긍지 있게 사니까.”
그 말과 함께 레오나르도가 장비한 흑암의 갑주, 거기에 숨겨진 또다른 능력이 발휘되었다.
푸쉬이이...
마나 포션이 혈관에 주입되었다. 독성은 갑옷으로 여과되고 단련된 육체로 충분히 버틸 수 있었다.
“...2차전입니까?”
“아니, 넌 먼저 가라.”
“예?”
레오는 당황했다. 저들은 협동한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쓰러뜨릴 과거의 망령이었다. 지금 홀로 가는 것은 지극히 기이한 행동이었다.
“설명은 글라디오와 리오스가 해줄 거다. 지금은 우선 가라.”
<...들려...레오? 지금 계속 잡음이 심해... 네 쪽에서도 연결...>
다시 노이즈가 울린다. 방해 파장이 계속 마법으로 퍼지는 것이 분명했다.
[...우리 쪽에서도 텔레파시로 재연결해야해. 우선 저 할아뭉탱이가 하는 말대로 해야겠어.]
현자의 말에 레오나르도도 고개를 끄덕이며 달리기 시작했다.
“...집행기사단장님을 믿겠습니다.”
“말은 잘하는군. 얼른 꺼져라.”
레오는 갑옷 안에서 피식 웃으며 낙뢰창을 붙잡았다. 전격까지 더해지니 전력질주의 속력이 더욱더 가속되었다.
“...괜찮겠어? 마르켄? 현역이라 자랑해도 그런 늙은 몸뚱아리로는...”
“개소리가 유창한 걸로 봐선 얼굴 주름처럼 뇌주름까지 완전히 펴진 것 같군.”
마르켄은 레오나르도가 간 것이 확인되자 계속해서 독설을 날렸다. 저런 젊음 따위는 토악질이 나와 보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래! 늙은 피를 먹는 것도...”
“그것보다 너희들에게 먹인 연금이 아까워 미치겠군. 차라리 그 꼬맹이한테 주려고 만들어둔 계좌하고 준비해둔 신혼집에 몇 억 더 넣는 게 나을 뻔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 마르켄은 화청과 거울의 방패를 들었다.
자신의 손녀딸의 가장 행복해야할 날을 방해한 죄는 집행해 심판해야 마땅하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참고로 레오나르도 거는 전부 본인 사비를 털어서 준비한 겁니다.
연금은 당연히 아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