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하르트가 무가인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용사 루벤 라인하르트가 남긴 각종 무술과 수련법.
거기에 용사라는 가문의 직함은 기사 생활 자체에도 큰 가산점을 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무의 길을 걷는 것인가?
그건 당연히 아니다.
왕국에 소속돼 공무를 맡는 이도 있고.
리오스처럼 마탑에 들어가 마법사나 학자로 학문의 길에 간 이들도 있었으며.
단순히 입지가 없기에 영지만을 가꾸는 영주로만 남아있는 이도 있었다.
평화가 긴 시대였기에 몇몇 기사들은 실전에 익숙치 않기까지 했다.
그렇기에 이런 파티에 기습적인 테러는,
“으아아아!!”
“뭐야?! 왜 원로원이...!!”
제법 패닉을 불러올 만한 일이었다. 기습이라는 건 그런 것이었다.
“아리아스필 이 은혜도 모르는...!!”
팔이 절단된 원로원주 한 명은 타들어가는 어깨를 부여잡으며 날카로운 소리를 내질렀다.
그저 비명이 아니었다. 무리 사냥을 하는 늑대나 사자가 부하를 이끌 때 내는 포효와 같았다.
흡혈귀에게 부하란 한 가지 존재밖에 없었다.
“크루아아아아...!!”
구울, 그것도 수백 마리가 넘는 구울들이 창문을 깨부수고 차례로 저택 내부로 들어온다.
“...저 사람들은...”
“가주님 말대로였네요”
레오나르도는 쓴 웃음을 지으며 검은 돌로 만든 정장을 장검으로 바꾸었다.
“자신들의 노후를 위해 진짜 ‘젊은이’들을 희생시켰어요.”
아직 원로원 밑에 있던 기사단, 그리고 관련된 민간인들까지 전부 구울로 만들었다. 아마 재료로만 놓는다면 최상급에 가까울 것이다.
“...미안하군. 내 불찰이야.”
가주 글라디오도 상황이 파악이 됐는지, 썩은 표정을 지었다. 원로원들이 차례로 은퇴를 한 시점에서 감시를 풀지 말았어야 했다.
저 늙은 망령들은 유유자적한 은퇴 생활을 보낼 수 있음에도 억하심정에 그릇된 힘을 취했다.
노년의 지혜는 어느샌가 젊음의 탐욕에 젖어 멀어버렸다.
“지금 사과해도 늦었으니 우선 일을 해결한 뒤에 하죠.”
“...할 말이 없군. 알겠네.”
레오나르도가 그렇게 말하자, 글라디오는 급히 달리며 차례로 명령을 내렸다.
“리오스! 비전투 인원을 대피시켜!”
“예!!”
“저도 가겠습니다. 상처가 있으신 분들은 저에게 와주세요!”
리오스는 순애를 방해한 저 늙은이들을 편히 썰어죽이기 위해 차례로 순간이동의 공식을 펼쳤다.
루미네는 텔레포트의 마법진에 뛰어들며 상처의 치료와 뱀파이어의 성분이 전염되기 전에 치료할 신성술을 상정했다.
각성만 되지 않는다면, 변화가 오지 않았다면 흡혈귀의 치료도 가능했다.
“크리스! 근신은 끝났다! 무기를 들어!”
“가주님 것도 있습니다!”
흑암 크리스는 방패와 검을 집어던졌다. 글라디오가 그걸 붙잡자 크리스도 자신의 애검이자 마검을 꺼내들었다.
“...당신들만큼은 용서할 수가 없어.”
진심으로 크리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버지!!”
“그래. 다녀오마.”
이미 두 부자는 눈을 마주치마자 작전을 이해했다. 마르켄은 창문으로 뛰어들었다.
도주가 아니라, 외부에 구울들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 추가적으로 적을 색출하기 위해서 바깥으로 홀로 나가는 것이었다.
그의 뒤로 장비를 든 집행 기사들이 쫒아가는 것이 그 증거였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
서걱
빛이 날아갔다. 절삭음과 거의 동일한 속도로 검기가 발도된 것이었다. 그것만으로 이번에는 반대쪽에 있는 원로원주의 팔이 잘려나갔다.
“닥쳐. 늙은 숫퇘지가.”
아리아는 뽑아든 성검의 빛을 내뿜으며 말했다.
성검
예식용 검처럼 생겼지만, 그 검의 힘은 어떤 마검보다도 실용성이 뛰어났다.
“크아아아아!!”
구울들이 아리아에게로 달려들었다. 구울도 허접하지만, 벰파이어의 힘을 보유한 괴물.
그렇기에 갑옷이 없는 것이 무척이나 불리한 상황이었다. 한번 물리기라도 하면, 아무리 버텨도 상태적 이상이 생길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낙관적으로 생각했다.
“기도합니다.”
아리아가 성검으로 광선을 날리기 전까지는.
“...크루아아악!!”
한 소절의 기도만으로 성검은 성결하게 신성의 기운이 방출했다. 전방에 있던 구울들은 그 검격을 넘어선 파동에 일소되었다.
성검은 전황을 뒤집을 능력이 없다.
성검이 약한 무기라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다만 마검처럼 검을 사용하는 이에게 갑작스럽게 강력한 힘을 쥐어주는 않다는 의미에서 그렇다는 것이었다.
성검은 그저 자격이 있는 이가 완전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해준다.
소유주의 마나를 즉시 신성력으로 치환시키는 광명의 검.
“끄아아아악!”
어떤 경우에서도 파괴되지 않는 불괴의 검.
그게 아리아를 최강의 용사로 만든 검의 힘이었다.
원로원들은 그 신성한 검의 빛을 보며 깨달았다. 지금 저택에 있는 모든 기사단 구울들이 한 순간에 소각이 돼서야 깨달은 것이었다.
자신들이 간과한 것이 얼마나 정신이 나간 행위였는지를.
“...네...! 네 이놈...!”
원로원주는 급히 팔을 재생시켰다. 신성력은 강하지만, 오러를 다루고 자아가 있다면 이야기는 달랐다.
젊음을 되찾은 시점에서, 마인인 흡혈귀가 된 시점에서 자신의 힘이 격이 달라졌다.
“신성 따위는 오러로 밀어내면 그만이다...! 애송...!”
“닥치라고 했지.”
팔이 튀어나온 순간, 아리아는 다시 팔을 도려냈다. 이번에도 검기를 날린 것일 뿐이었다.
“레오나르도, 가주님, 크리스 님, 할아버지처럼 바깥으로 가서 다른 적들을 추적해주세요.”
“아니, 저들은 위험해! 아리아!”
글라디오는 말릴 수밖에 없었다.
저들은 한때 가문을 이끌었던 역전의 기사들이었다. 그것도 늙은 것이 아닌, 전성기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전사들.
그들을 보며 아리아는 홀로 맞서겠다 말한 것이었다. 글라디오의 입장에서는 허락해줄 없는 부탁이었다.
“아뇨. 지금 바깥 뿐만 아니라, 저택에도 구울이나 뱀파이어를 잠입시켰을 거에요. 저 늙은이들도 전부 있는 게 아니니까요.”
아리아의 판단은 냉정했다.
지금 격정만 놓고 보자면, 피해자는 뒤로 하고 차례로 원로원주 전원을 차례로 몰살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양보한 거였다.
이들만을 홀로 몰살하는 거으로 한발 배려한 것이었다. 그걸로 추가적인 피해를 줄이도록 작전을 고려한 것이었다.
“아가씨 말이 맞습니다. 흡혈귀의 위험성은 전염에 있죠. 마법으로 색출해낼 수 있으니 저랑 합류해주세요. 가주님.”
[저 늙은이 녀석들, 집구석에서 똥수발이나 쳐받을 것이지... 나도 도와줄게. 저 새끼들 엿 좀 먹여봐야지.]
영체를 재구축한 현자는 순간에 상황을 파악했는지 바로 술식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글라디오는 망설였다. 자신의 딸에게 이런 비정하고 가혹한 일을 맡겨도 되는 것인지.
이내 가주는 대답했다.
“알겠네. 출발하지.”
“전 따로 가겠습니다. 흡혈귀라면 기척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레오나르도는 글라디오를 붙잡은 채, 현자가 찾아낸 흡혈귀와 구울의 좌표에 맞는 곳으로 순간이동했다.
“부디 저택은 부수지 마라. 아리아.”
크리스는 아리아의 기량이 파악됐는지, 정말 유의미한 조언을 남겼다. 아리아는 죽은 눈으로 그나마 남은 이성을 짜내 대답했다.
“...노력은 해볼게요.”
저택에는 레오의 방도 있으니까.
“...가보지.”
그 의중을 알아챈 건지, 크리스는 아리아에게 더 소름을 돋으며 급히 저택 내부로 뛰어나갔다.
“...바보 같은 계집...! 우리를 얕보는...!”
“닥쳐.”
아리아는 바로 돌진했다. 검기를 던지는 것과 같은 속도로 거리를 좁힌 것이었다.
휘잉
이어지는 발도, 급히 반대편에 입을 연 원로원주는 창을 뽑아들었다.
캐앙!
검과 창이 부딪친다. 창을 뽑은 것은 옳은 선택이었다. 아마 흡혈귀의 능력을 사용하면, 그런 하급의 능력따위는 무시하는 듯 성검의 신성이 이를 녹여낼 것이다.
“말하면 고백을 망친 게 다시 떠오르잖아...! 이 늙다리가...!”
이들 전원이 경악했다.
저 용사가 분노한 이유는,
원로원들이 흡혈귀가 돼서가 아니었다.
무고한 기사들을 구울로 만들어서도 아니었다.
그런 건 전부 곁가지에 불과했다.
그저 ‘자신의 고백을 도중에 방해한 것’
그것만이.
아리아가 진정으로 분노한 주제였다.
“...무슨 개소릴...!”
이번에는 불꽃이 튀었다. 신성을 두른 성화(????火)가 타오른다.
[화났구나. 아리아.]
공명한 정령은 화염의 정령 뿐이었다. 다른 정령들은 격정에 휩싸인 아리아와 감정을 공유하는 것조차 하지 못했다.
유일하게 반응한 건 이 격정만큼이나 뜨거운 화염의 정령 뿐.
화염이 신성과 함께 타올랐다.
“타죽어. 쓰레기니까.”
“끄아아아아악!! 몸이...! 몸이...!”
창은 확실히 성검을 막고 있었다. 이 창 또한 라인하르트의 무기고에 있었던 최강도의 무기, 오러를 분출하는 것으로 방패의 역할까지 해낼 수 있는 다용도의 무구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성화는 몸에서 타오른다. 당연했다. 방패는 그저 충격만 막을 뿐 온도를 막지는 못한다.
하물며 신성은 부정한 존재를 퇴치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운, 젊음과 힘에 취해 사도의 길을 걸은 것이 그들에게는 패착이 되었다.
“이 년이...!!”
아직 6명 중에 1명을 쓰러뜨렸을 뿐이다.
못 찾은 쓰레기들은 아직 절반이나 더 남아있을 것이다.
그 사이 다른 두 개자식들이 동시에 달렸다. 열기가 식었기에 흡혈귀 특유의 혈액 공격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오판이었다. 그들은 기사로서는 몰라도, 흡혈귀로서는 하급에 불과하다.
차라리 얻은 젊음을 이용해 육탄전에 돌입했다면 더 승산이 높았을 것이다.
치이이익
봐라. 던진 피가 바로 증발했다. 신성과 융합된 화염은 열풍을 만들고 있었다. 그것만으로 마기가 담긴 혈탄이 증기로 변환된 것이다.
이미 아리아는 환경을 조성 중이었다.
아리아에게는 최적의 환경을.
흡혈귀에게는 최악의 환경을 조성하고 있었다.
“...이 배은망덕한 년이...!?”
검격이 이어진다. 아니, 사실상 아까 것은 검격이라 말해선 안 되었다.
형이 담기지 않은 검술이었으니까.
지금까지는 시험한 것에 가까웠다.
저들에게 그 기술을 쓸 가치가 있는 존재인지를.
레오가 보여준 기술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한,
그 아름답고도 고결한 검을 고작 저런 존재에게 써도 되는 건지를 판가름한 것이었다.
“...2명이면 괜찮겠네.”
아리아는 그렇게 말했다. 한 명에게 그 검을 쓰는 건, 낭비이자 모욕이었으니까.
찰나의 사이에 검은 휘둘러졌다.
레오의 검에서 배웠음에도 정반대에 있는 검.
레오의 검에서 공방의 균형 따위는 버리지고 전부 공으로 쏠려진 검.
감각만을 의존해 날리는 본능적인 검격이 날아간다.
굳이 10가지의 형으로 나눌 필요도 없다.
성검은 어떠한 짓을 해도 부서지지 않는다.
어떤 곳에 있어도 손으로 돌아오게 할 수 있었다.
검에 모든 걸 집결시킨다.
그리고 동시에 그 신성한 검에 붉은 화염을 두른다.
[광색(光色)-적색]
한 가지 검술에 대처 가능한 각각의 속성을 넣는다. 거기에 신성력으로 형질을 고정시킨다.
“고마워. 흡혈귀가 되어줘서.”
일순에 원로원이였던 흡혈귀의 몸이 토막난다. 신성의 빛이 그들의 몸에서 불타오른다.
“당신들 전부 죽여도 상관없잖아.”
흡혈귀로서 얻은 힘을 쓸 시간은 없다. 이미 불타는 것만으로도 힘이 소진되고 죽어가고 있었으니까.
“레오나르도한테 미움도 안 받을테고.”
아리아는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빠르면서도 고통스럽게 죽일지를.
더한 고문은 레오의 복수를 위해.
더한 속도는 레오를 한시라도 빨리 다시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 더럽혀진 시각과 감정을 정화할 수 있는 건 레오나르도 뿐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여담(?)]
[근데 괜찮겠냐? 걔라도 6명은 시간이 걸릴 텐데.]
<있으면 오히려 방해입니다.>
아리아의 공격들은 대부분 광역기에 가깝다. 있으면 제대로 된 힘의 발휘가 어렵겠지.
[혹시 모르지. 예전에 네 기술들도 바로 카피했잖아.]
<카피했어도 그건 카피니까요. 오리지널보다는 못한 게 당연하죠.>
레오나르도에게도 자존심이 있었다.
상식적으로 그 기술을 완벽히 만드는데도 몇 년이 걸렸고,
최적으로 쓰기 위해서도 계속된 연습이 필요했다.
하물며 그건 자신의 몸에 맞게 조정한 것에 가까운데.
그걸 아리아의 방식으로 바꾸는 건, 사용하기도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아리아야. 그 녀석은 아리아라고.]
마법의 말이었다.
순간 납득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