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에 대한 정보는 글라디오에게 어느 정도 전해 듣고 있었다.
정확히는 현자의 유산 중 하니인 타입-디아트로서 알았다는 의미였다.
레오나르도의 사역마로서, 마탑과 신전을 설득하고 라인하르트 본가에 머물게 되었다는 정도 밖에 몰랐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아인의 외모도 정확히 몰랐고, 명확한 정보도 알지 못했다.
아마 레오가 아인을 변호할 때처럼 필사적으로 말을 짜내 설명하지 않았더라면, 싸늘한 분위기 속에서 그대로 매장할 당할 것이 분명했다.
실제로 지금 실시간으로도 그랬다.
“그러니까...! 이건 그저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마법적인 사정이...!”
[그래. 사정이 듬뿍 있는 딸아이지.]
<현자님은 좀 죽으세요.>
이미 죽은 양반이 사람 열불나게 더 당황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다행이 그 사이에 아인이 걸어가 현자의 영체를 아예 파괴시켜버렸다.
생각이랑 말이 꼬이던 와중에는 그나마 다행인 일이었다.
“그러니까...!”
“농담이에요.”
아리아는 살짝 웃어보이며 말했다.
요염한 웃음을 지으면서 붉은 입술이 올라가는 것이 정말 요망하게 느껴졌다.
“...농담이라니...”
“정확히 말하자면 아인이는 레오나르도가 마탑에서 데려온 현자의 유산 중 하나인 사역마였어요.”
그렇게 서두를 고치며 아리아는 깔끔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아인이 이곳까지 오게 된 경위와
아인이 어째서 레오를 아버지라는 호칭을 쓰는지도.
자신이 왜 아인의 호칭을 딸처럼 부르는지까지도 확실히 강조했다.
“...그...그렇군요. 놀랐잖아요. 하하...”
“하하... 농담이 독특하시네요...”
직장 상사의 시대에 뒤떨어진 언어유희를 듣는 것마냥, 다른 손님들은 당황스러움을 가라앉히기 위해 힘겨운 웃음을 내야만 했다.
“물론 전 언제든지 진담이 되어도 상관없지만요~”
물론 아리아의 말에 한마디, 한마디에서 농밀한 진심이 느껴졌지만, 표면적으로는 농담으로 넘길 필요가 있다고 혈족과 휘하의 귀족들은 진심으로 생각했다.
“...하하, 그렇군요... 안 본 사이에 성격이 많이... 유쾌해지셨네요...?”
“레오나르도 덕분에요.”
아리아스필은 그렇게 말하며 해맑게 웃었다.
이때 이 자리에서 라인하르트 본가와 혼례 및 약혼을 준비하던 모든 이들은 깨달았다.
계획은 애초에 망했다고.
참고로 리오스는 논외의 존재였다.
순애를 사랑하는 이에게 그런 것따위는 필요 없었으니까.
***
“...휴...”
레오나르도는 간신히 상황을 무마한 채로 요리를 먹고 있었다.
“많이 힘들어? 아직 춤도 안 췄는데.”
아리아는 능글능글하게 웃으며 레오를 바라보았다. 마치 삐친 레오마저도 귀엽다는 눈초리였다.
“...덕분에요. 그런 농담은 왜 하셨어요?”
이 정도면 농담이 아니라, 음공을 이용한 암살이었다. 지금 고막에서 피가 나오는 것만 같은 감각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었다.
“음... 분위기 전환?”
“...보통 그건 전환이 아니라, 반전이라고 하죠.”
그것도 마도구 사진기의 네거티브 반전 수준으로 분위기를 뒤집어놓으신 아리아였다. 평소와 달리 레오도 몹시 날카로운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표정이 예전에 그때 같네.”
하지만 아리아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일부러 이런 반응을 유도라도 했다는 것처럼.
“예전에 이런 적이 있었나요?”
레오는 의문 반, 짜증 반으로 아리아에게 쏘아붙이듯 물어보았다. 화가 나도, 솔직히 말하면 아리아와 이런 추억이 있었는지 명확히 기억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있지. 마탑에서 나한테 되게 화났었잖아.”
“아...”
마탑에서 포션을 먹이느라 자신에게 키스했을 때, 알고 보니 그게 첫 키스가 아니었다는 말에 득달같이 달려가 물어봤을 때의 일이었다.
“내 첫 키스 상대가 그렇게 궁금했어?”
“...그게... 아무래도... 전속기사로서 아가씨의 이성 관계를 생각해야 하다보니...”
레오도 지금 생각하고 보니 민망했는지 머쓱한 듯 음식을 먹었다. 삐친 기색은 민망함에 묻혀 이제 온 데도 간 데도 없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난 레오나르도만 보거든.”
“아, 그러...”
레오나르도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저 말의 진의가 너무 의심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말은 정말 간단했음에도 레오의 뇌는 쉴새없이 모든 감각과 상황을 의심했다.
“...아아, 농담이시군요. 이번에는 제법 재미...”
“아니, 진담이야. 진심이고.”
아리아는 확고한 말투로 말했다. 레오나르도마저 잠시 기백으로 밀릴 정도로, 확고한 어투였다.
“파티는 잘 즐기고 있나?”
샴페인 잔을 들고 있는 글라디오가 레오 일행에게 다가왔다. 글라디오의 옷은 평소와는 달리 한층 더 단정하고 세련되게 꾸며져 있었다.
단순히 화려함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 글라디오의 성격을 잘 나타내는 정갈한 의복이었다.
“아까 전에는 꽤 화려하게 농을 했더구나. 아리아.”
“그런가요? 나름은 진지했는데요.”
아리아의 한결 같이 초연한 태도에도 글라디오는 당황하지 않았다. 이미 자기 딸이 어떤 존재가 되었는지는 대강 가늠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혹시 잠깐 이야기 가능하겠는가? 레오나르도.”
가주는 그렇게 물으며 레오나르도를 지그시 보았다. 저 말에 레오나르도는 홀로 글라디오를 따라 걸어나갔다.
글라디오는 샴페인 잔을 든 채로 사람들을 사이를 지나갔다.
사실 지나갔다기보다는 사람들이 걸어가는 글라디오를 보자 스스로 자리를 비켜준 것에 가까웠지만 말이다.
그렇게 걸어가자 도착한 곳은 하늘과 정원이 보이는 테라스였다.
그 테라스의 난간에서 걸음을 멈춘 글라디오는 입을 열었다.
“좋은 밤이로군. 계절에 비해 선선한 날씨야.”
예전에도 분명 이런 적이 있었다. 가문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기사 수습생들을 전부 두들겨 팼을 즈음 글라디오는 레오를 정원으로 데리고 왔다.
“그렇군요. 확실히 이런 밤은 놓치면 후회하겠습니다.”
지금 테라스의 밑에도 그 정원이 있었다.
“...기억하고 있나? 예전에도 이렇게 말했었는데.”
“예, 기억하고 있습니다. 인상이 깊은 날이었거든요.”
그 말에 글라디오는 인자한 웃음을 지었다. 이는 정원으로 처음 데리고 왔을 때 보였던 미소이기도 했으며,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를 인정했을 때 보였던 표정이기도 했다.
“...자네도, 나도, 가문도 많이 변했군.”
글라디오는 아련한 표정으로 파티장을 돌아보았다. 그 눈빛엔 과거의 아쉬움은 없었다. 오히려 변화의 미래가 기대되었는지 자연히 눈웃음이 지어졌다.
“원로원이 있었을 때는 상상도 못할 풍경이야.”
기억하고 알고도 있다.
원로원은 자신이 마음에 안 드는 방계 혈족이나 휘하 가문을 어떻게든 배제하려고 했다는 걸.
그리고 그 업보 때문인지 지금의 원로원은 라인하르트의 파티에 초대조차 받지 못했다는 것도.
글라디오에겐 나름대로 감회가 있는 상황일 것이다.
“가주님의 혜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생각해준다니 고맙군. 하지만 난 자네의 공이 더 컸다고 생각하네. 자네가 전속 기사가 된 건, 아마 나에게도 큰 행운일 테지.”
많은 칭찬에 레오는 당황하는가 싶더니 이내 침착하고 능숙하게 대답했다.
“생각 대신에 확신을 하셔도 좋습니다. 가주님.”
“하하! 자네도 자신의 실력을 잘 인정하게 됐군.”
여기서 또 겸손한 척을 하는 것도 그것대로 재수없고 민망할 테니까.
“...아인에 대해서는 추후에 회의를 통해 라인하르트의 성씨를 달도록 하겠는데, 자네는 어떤가? 괜찮은가?”
“...예?”
그 말에 레오나르도는 능숙한 말투가 잠시 흔들렸다.
“본가에선 이미 만장일치로 허가가 됐네. 아인도 굳이 따지지 않아도 라인하르트의 혈족이니 성씨를 주는 건 당연하지 않나.”
“그건... 그렇지만... 아인은 법률상 유사 정령으로 되어있는지라 성씨 등록은...”
가주 글라디오는 그런 레오가 너무 한결같았는지 반대로 웃음이 나왔다.
“자네는 너무 안전을 신경쓰는군. 때때로는 용기를 보이는 것도 젊은이의 특권이라네.”
레오나르도는 속으로 자신의 원래 나이를 환산하고 있었다. 나이만 보면 자신은 마르켄과 아누스에게 형, 오빠 소리를 들어야 마땅했다.
물론 시간적으로만 계산했을 때, 나이가 그랬다는 이야기였지만 말이다.
“그래서 어떻게 자네는 어떤가?”
“아인에게 먼저 물어보고...”
“아, 손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세.”
이미 아인은 손녀로 확정된 건가.
“자네 말일세. 자네 성을 라인하르트로 바꾸는 것에 대해 묻는 것일세.”
“...아...예?”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겠다. 아인은 아리아의 유전자가 들어갔으니 그렇다 쳐도 자신은 왜 라인하르트의 성을 쓴다는 건가?
“...일부러 그러는 거면 너무하는군. 부모 자식 간에 성이 다른 것도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어떻게...”
“우선 내 쪽에서는 허락한다는 것만 알아두게.”
이윽고 파티장 내부의 곡조가 바뀌기기 시작했다. 이제는 연회 분위기에서 무도회로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이제 춤을 출 시간이군. 난 내 반려에게 가보겠네. 자네는 아리아에게 가보는 건 어떤가?”
“아... 예!”
그렇게 말하며 글라디오는 시리카를 향해 걸어갔다. 부디 레오가 자신의 반려를 잘 찾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아리아 주변으로 다른 남성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마도 아까의 ‘진담’으로도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몇몇 사람들이 눈치 없이 아리아에게 춤을 신청하려고 벌레떼처럼 달려들었다.
하지만.
“...”
아리아의 눈빛부터 시작해, 각각의 방향에서 서늘한 눈동자가 그 하찮은 놈팡이들을 노려보기 시작했다.
아리아에게선 미약하지만 살기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저, 아가씨.”
그 살기를 둔감하게 뚫으며 레오나르도는 아리아에게로 다가왔다.
“응! 레오!”
그건 레오를 보자마자 아리아가 살기를 거둔 것도 한몫했다. 물론 그 살기는 레오가 아니라, 레오를 노리는 주제도 모르는 암퇘지들에게로 향하는 거였지만 지금은 그다지 상관없었다.
“저랑 한 곡조 춰주시겠습니까, 아가씨?”
그 청탁에 지금은 아예 살기를 거둔 수준이 아니라, 눈동자 자체가 사랑으로 빛나고 있는 수준이었다.
“기꺼이.”
손을 맞잡아 아리아의 얼굴은 붉어졌다. 하지만 그럴수록 반대로 용기가 샘솟았다.
술은 마시지 않았다. 이 마음을, 이 용기를 그저 취기에 일어난 소동으로 치부하고 싶지 않았다.
“레오.”
“...예. 아가씨.”
구두가 또각거리며, 연주소리와 함께 어루어진다. 연주회, 그리고 무대의 중심에는 백과 흑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무도가 이루어진다.
무도(武道)가 아닌, 무도(舞蹈)로서
“나 사실은 예언가님께 과거를 보게 됐어. 레오가 숨긴 과거... 말이야.”
그 고백에 레오는 순간적으로 당황했는지 몸이 가누지 못한다. 하지만 아리아는 거기에 말려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아. 하지만 그래서 먼저 말하고자 싶었어.”
반대로 꼬인 레오의 스텝을 조정하며, 잡고 있는 손에 깍지를 꼈다.
“난 네가 옳은 사람이 아니여도 상관없어. 설마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을 죽였어도 상관하지 않아.”
이 마음이 그렇게 말하고 있으니까.
“...난 레오가...”
투콰아아앙!!
그 순간, 폭음이 일어났다.
대문이 부서지며 연기가 자욱히 퍼졌다.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에 주변에는 비명 하나 없이 고요하게 잠재워졌다.
“이거 너무하는군. 우리도 엄연한 ‘라인하르트’인데. 어째서 초대장이 오지 않았을까?”
그 자리에는 젊은 노인들이 있었다.
이 말은 모순되었지만, 그 광경을 본 이들은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놀랐나? 젊은 때의 우리를 기억해주는 이가 이리 많을 줄은 몰랐군.”
원로원들이었다. 그것도 새치도 하나 없고, 송곳니가 드러나있는 채로.
“이제부턴 피의 축제...”
후웅...!
피의 축제를 알리듯 그의 팔에서 피가 솟구쳤다.
치이이익!
“끄아아아악!!”
뚫린 대문 중간에 서있던 원로원이었던 흡혈귀의 팔에서 피와 연기가 솟아올랐다. 그럴 만도 했다.
흡혈귀에게 신성력이란, 때론 태양 이상으로 무서운 살상 도구였으니까.
흡혈귀가 전락해 젊음을 되찾은 원로원들은 그걸 간과하고 있었다. 젊음에 취해 용사의 위험성에 둔감해졌다.
아리아의 손에는 어느샌가 성검이 쥐어져 있었다. 챙기고 있던 것이 아닌, 신성술을 사용해 검을 손으로 날아오게 한 것이었다.
아까 팔을 절단한 것도 이 성검의 귀환 덕이었다.
“...이... 늙은이들이...”
아리아는 이 상황의 전후를 몰랐다. 어째서 원로원들이 젊어졌는지, 왜 흡혈귀의 모습을 하고 있는지도.
정보가 전혀 없었기에 전혀 몰랐다.
하지만 무슨 상관인가.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
“...감히 내 고백을 방해해...!?”
아리아는 분노에 찬 성검을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찢어죽여야 할 늙은 돼지들이 죽고 싶어서 지랄발광을 하고 있었으니까.
살려서 보내진 않을 거다. 죽는 게 나을 정도로 살을 태우고 찢어줄 것이다.
나랑 레오를 방해하는 모든 건, 모두 그렇게 만들 것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삼행시]
원: 원로원이 왔다
로: (로)노인네 새끼들
회: 회로 떠 죽여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