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장에 온 사람들은 단순히 연회를 즐기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었다.
당연하지만, 이곳에 온 방계며 소속 가문들은 모두 라인하르트 본가의 눈에 들기 위해서 각자 준비해온 것이 있었다.
그건 기사로서의 무예, 또는 가족이 낸 새로운 성과도 될 수 있었지만, 촌수가 먼 대부분의 가문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은 따로 있었다.
혼례와 약혼.
본인 또는 혼기가 찬 자식들이 용사가 된 아리아스필과 연을 맺는 것.
촌수가 멀거나 그저 휘하 가문들이라면 그 수단을 택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었다.
꼭 혼례나 약혼이 아니어도 되었다. 아리아와 가주 글라디오에게 최소한의 인상이라도 남기면 성공이었다.
용사인 아리아와 연이 생기는 것은 굳이 휘하가 아니더라도 분명 득이였으니까.
초대 용사인 루벤 라인하르트가 사후에 남긴 성검을 뽑고자 하는 인물이 셀 수도 없이 많았다.
대부분은 라인하르트 출신이 많았지만, 외부의 성기사나 유명 출신들의 기사들도 연이 닿아 일종의 의식마냥 성검을 뽑는 것을 시도했다.
물론 결과적으로 모두가 실패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아리아스필은 검을 뽑지도 않은 채로 자의적으로 성검을 불러온 현대의 새로운 용사다.
고로 그녀의 반려가 된다면, 라인하르트의 거대한 기둥을 거머쥐게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아리아스필 님!! 용사가 되신 것을 정말 감축드립니다!!”
“아리아스필 님!! 저는 북부 지역의 기사단에⸺”
“오늘 너무 아름다우시네요! 용사님!! 혹시 지금 시간이 괜찮으시다면⸺”
각자 본인의 존재감과 매력을 뽐내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고 있었다. 먼 촌수의 친척이 됐든, 휘하에서 일하거나 복속된 가문이 됐든, 빠지지 않고 자신의 이름을 대길 바빴다.
“아, 그러시군요. 기억해두겠습니다.”
[상투적이다 못해 기계적이다 야.]
사실 회귀 전에도 아리아스필은 비슷한 태도였다. 정말 중요한 내용이나 인사가 아니라면 그저 상투적인 태도로 대답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지금은 미소에 불쾌감이 드러난다는 점일까.
사실 레오 자신이 봐도 노골적인 것이 너무 티가 나기는 했다.
아마도 제대로 계획도 안 짜고 말 한번 붙이고 싶어서 무작정 다가왔으니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이런 사교회가 능한 사람이거나 지위나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용사 아리아스필님이 입장하십니다.’라고 말했을 때 득달같이 달려들지 않을 수도 있었고 말이다.
[근데 가주 양반은 어디로 갔냐?]
현자의 말에 레오나르도는 고개를 돌려 가주를 바라보았다.
<저쪽에 계시네요.>
[너... 진짜 눈에 망원경이라도 이식한 거 아니야?]
물론 몇 테이블을 너머 있는 건너편에서 다른 방계의 간부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노력하면 보인다니까요.>
시각 근육과 신경에 약한 오러를 주입하해 섬세히 조절하면 더 먼 곳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어...”
그 하늘의 매 같은 눈에 무언가가 잡혀왔다.
사람들이었다. 그것도 젊은 소녀나 여성들이었다.
파티장에 사람이 있고, 많은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그 사람, 여성들이 뛰어오는 방향은 레오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회귀 전에는 분명...’
이런 적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레오나르도 기사님!! 만...만나게 돼서 정말 영광입니다!! 전... 로나 라인하르트입니다!”
레오 쪽에서도 영광이긴 영광이었다. 자신을 집요하게 죽이려고 했던 로나 라인하르트가 이렇게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 이보다 영광스러운 일이 따로 있을까.
“전 루시나 라인하르트라고 합니다. 레오나르도 기사님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혹시 나중에 모험담을 한번 들려줄 수 있을까요?”
루시나 라인하르트, 이 사람도 기억에 남는 인물이었다. 회귀 전에는 깔보고 무시하는 발언을 창의적으로 해왔으니까.
다른 여성진들도 차례로 레오에게 모여들기 시작했다.
사실 회귀 후 레오는 간과한 것이 하나 있었다.
이 파티에서 휘하 가문과 방계들이 노린 사람은 용사 아리아스필 뿐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레오나르도가 경우에 따라서는 더 접근하기 쉽고 이점이 많은 목표이기도 했다.
용사인 아리아스필은 용사라는 직함과 라인하르트 본가 가주인 글라디오의 외동딸이라는 시점에서 접근할 수 있는 허들이 너무나 높았다.
간신히 말을 건다 할지라도 제대로 반려는커녕 상대방을 기억해줄지도 의문이었으니까.
하지만 레오나르도는 어떤가.
어린 나이에 가문에 종자로 일해 자수성가로 성장해 현재 아리아스필의 전속기사이자 무예며 마법에 각종 분야에 이름을 날리고 있는 천재 중에도 거물급의 인재.
기사로서의 무예 실력도 뛰어나고, 밀도 높은 전투 경험도 있으며, 마법적이며 학문적인 식견마저 풍부했다.
하물며 공적까지도 풍부한 다재다능한 만능형 인재, 하지만 그의 신분은 하잘것없이 낮은 편이다.
그렇기에 접근해 포섭하기가 쉬울 거라 생각한 것이었다. 신분이 낮은 인재만큼 데릴사위로 맞이하기 부류의 인간은 따로 없었으니까.
그렇게 멋대로 착각해버렸다.
“아, 그러시군요. 감사합니다.”
[너도 만만치 않구만. 딱 식당 점원이 지을 법한 미소여.]
첫 번째 착각은 레오가 방계나 다른 혈족에게 넘어갈 거라는 전제를 한참 벗어난 판단이었다.
<그럼 서로 죽이고 죽을 뻔한 사이한테 뭘 더합니까?>
회귀 전, 레오나르도는 원로회에 있는 전원을 몰살한 혐의로 수배령이 내려진 몸이었다.
고로 방계의 기사들에게도, 제국의 왕실기사단에게도 추격당하는 건 당연했다. 함정에도 몇 번 걸리고, 치명상을 입을 뻔한 것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조금 소름 돋는데? 이거 괜찮은 거 맞아?]
현자는 진심으로 식겁한 표정으로 레오에게 물었다. 이 정도면 진심으로 정신 질환을 걱정해야할 수준일지도 모른다.
<저도 죽이려고 했는데요 뭐.>
그때는 그게 당연한 때였다.
죽고 죽이고, 속고 속이는 게 당연한, 선행이 모두 위선이 되는 세상.
회귀 전의 몇 십년은 분명 그래야 하지 말았으며, 그럴 수밖에 없는 시기였다.
[...그래서 그런 건데. 너 정말 사람은 맞냐?]
그런 덤덤한 대답에 현자는 진심으로 걱정스럽게 물었다.
어지간한 트라우마와 스트레스 장애에 정신이 몇 번이고 부러져도 레오와 같은 상태가 되는 인간은 절대 찾아볼 수 없을 거라 현자는 마음 속 깊이 생각했다.
그러자 레오는 피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차라리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게 몇 번이었는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괜찮다. 지금은 전혀 상관없게 되어버렸으니까.
<이쪽에 있는 사람은 다 죽여본 사람이네요.>
“아하하, 그렇군요. 이거 기억해주시다니 영광이네요.”
레오는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차례로 인사를 건네며 현자에게 그리 말했다.
[...무서운 놈...]
현자는 그리 질겁해하며 말했다. 한번 죽여본 인간들과 저리 태연히 대화하는 사람은 레오 뿐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레오는 방계나 휘하 가문에 데릴사위가 될 일이 결코 없었다.
모두에게 원한을 가진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자신에게 다가온 여성진들에게 레오는 마음 속에 묵은 거친 흉터에서 경멸을 숨기고 있었다.
살려두는 이유는 그저 죽일 명분도 없고, 이익보다 실이 컸기 때문일 뿐이었다.
만약 둘 중 하나만 성립한다면 이 자리가 끝나고 초장거리에서 미간을 저격해 죽일 것이다.
“...그러니까...악...!”
그리고 이들이 착각한 두 번째 내용은 다름아닌,
“죄송하네요. 전 이 파티를 제 파트너와 여유롭게 즐기고 싶거든요.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비꺼져주실 수 있을까요?”
아리아스필이 레오에게 품고 있는 마음이었다.
제대로 레오와 아리아의 관계를 관찰하지 못한 가문들과 방계들은 간단히 약혼하지 않거나 결혼하지 않은 것으로 큰 감정이 없을 거라 생각한 것이 가장 큰 오판이었다.
[지금 ‘꺼져주실래요’라고 한 거지...? 혹시 내가 잘못 들은 거냐?]
<아닐 거예요. 아니여야만 해...>
아리아스필의 집착 증세만 봐도 알 수 있듯, 이미 둘의 관계는 기사와 주인이라는 주종 관계를 벗어난 지 한참은 되었다.
“그렇지? 레오?”
“네? 네네! 그렇죠!”
레오나르도는 아까의 비켜와 꺼져의 혼합어에 당황한 나머지 급하게 대답해버렸다.
레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아리아가 부드러운 미소로 아까와 같은 말을 한 것에 인지 부조화가 왔는지 완전히 얼어 있었다.
“그럼 가자. 아직 요리도 안 먹어봤잖아.”
아리아는 레오의 손을 붙잡으며 앞쪽으로 뛰어갔다. 물론 뿌리칠 걸 염려해서 태산 같은 흉부의 압박으로 고정해두는 건 덤이었다.
“저기...!”
그 순간, 한 부부가 이쪽으로 걸어왔다. 그 앞에는 세련되며 귀여운 원피스 드레스를 입은 소녀도 함께 따라왔다.
“아인아!”
아리아는 아인에게 달려가며 아인을 꽉 안아보였다. 아리아의 가슴이 아인을 얼굴을 압박해오고 있었지만 아인은 다행히도 호흡을 장시간 참아도 되는 체질이었기 큰 문제가 없었다.
“드레스 차림이 아름다우십니다. 아리아 언니, 아버지 정장이 적절한 매력도 부여해주는군요.”
“우리 딸이 미적감각이 풍부하구나!! 우리 아인도 귀여워!!”
아인은 시리카에게 따로 데려가져 하늘색 원피스 드레스를 입혀지게 되었다. 과거 시리카는 어린 아리아를 여자로서 제대로 꾸미지 못한 것에 늘 아쉬움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아...아가씨...”
하지만 레오의 아쉬움은 현재에 있었다.
아니, 아쉬움보다는 안타까움에 가까웠다.
“...우리 딸이라고요? 그러면 정말...”
아인을 데려온 부부는 충격적인 눈치로 아리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둘은 그저 아인이 어린 나이에 장난이나 농담을 던졌다고만 생각했을 뿐, 정말 용사의 딸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친딸인가요...? 아니, 그보다 언제 입양을...”
파티에 갑자기 정적이 흘렀다. 이거, 아무래도 파티 자체에 큰 소동이 될 것 같은 예감이 폭풍처럼 불어들어왔다. 지금이라도 조금 이해하기 쉽게 수습을...
“저랑 레오 딸이에요!! 귀엽죠!?”
망했다.
“예...? 그럼... 결혼은 하셨는지...”
“아, 그건 아니에요. 사정이 있어서요.”
제발 그 사정을 먼저 설명을...!
“...그럼... 약혼은...?”
질문이 계속되자 아리아는 약간 불만이 있으며 잔망스럽게 볼을 부풀리며 말했다.
“아니에요. 아직 애아빠가 용기가 없나봐요.”
분위기가 점점 내 쪽을 향해 싸늘해진다. 악단들도 심히 충격을 받았는지 연주를 멈추고 있었다.
뭔데? 왜 그렇게 쓰레기를 보는 눈으로 사람을 보는 건데? 나도 피해자...!
“...그럼 관계가... 아니 그보다...! 실례지만... 친딸은 맞으신거죠?!”
“네, 제가 엄마고.”
아리아는 입을 손으로 살짝 가리며 요약해 설명했다. 분명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레오나르도가 아빠에요.”
근데 너무 요약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참고로 알려드리면 가주인 글라디오는 이 사태를 예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온 사람들의 속셈도 알고 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