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하르트 가는 오늘따라 분주했다.
평소에도 분주한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건 라인하르트의 직계들의 괴이쩍은 사고방식을 이해하고 해결하느라 그런 것일 뿐 무얼 준비하느라 인력을 소모한 경우는 그다지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특별했다. 가문에 있는 요리사 뿐만 아니라, 출장 요리사까지 따로 준비해 요리를 조리하고.
연회장을 정리하고 마법사인 리오스와 레오가 협동해 마도구를 꾸밀 정도로 성실히 파티를 준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용사가 된 걸 축하하는 거니까요. 최대한 화려하게 하는 게 좋겠죠.”
이 파티는 아리아스필이 용사로서의 자격을 완전히 갖추었다는 의미의 연회였다.
본래라면 용사로서 성검을 얻었을 때부터 축하 연회를 여는 게 맞았지만,
아리아스필 본인이 그리 달갑지 않게 용사를 받아들이기도 했고 거기에 신전에서는 시련을 이겨낼 때까지는 기밀로 유지하기로 했음으로 연회는 당연히도 불가했다.
하지만 시련을 확실히 이겨낸 지금이라면 이런 파티로도 축하해야 마땅했다. 그 정도로도 부족했으니까.
“아우 가족분들도 같이 하시면 좋을 텐데...”
리오스는 가버린 두 분을 회상하며 아쉬운 눈치를 감추지 못했다.
늑대 인간인 딘은 같은 형님으로서 통하는 점도 많았고, 아누스는 정령사로서 대화가 통하는 점이 있었다.
하지만 리오스가 가장 즐거웠던 건, 레오의 예전 이야기들이었다. 역시 순애에서 뺄 수 없는 소재는 고향 가족이라고, 리오스는 마음 속 깊이 확신했다.
“아무래도 두 분은 장례식이 먼저일 테니까요. 아직 수도에는 계시니까 나중에 제가 제대로 챙겨드리면 되죠.”
딘과 아누스는 단순히 라인하르트 가에 있는 게 부담스럽거나, 눈치를 보며 배려한 것이 아닌, 본디 자신들이 하러 온 일을 끝마치러 간 것 때문이었다.
다만 ‘마침 수자 아줌마네 텃밭에 거름이 부족했는데 잘됐네’라는 이야기를 꺼낸 것이 몹시 이상했지만, 어차피 죽은 사람 일이니 신경쓰지 않도록 했다.
“다시 가문에 놀러오라고 그래. 아예 눌러앉는 것도 좋고.”
“아누스 할머니께서 촌장직 은퇴하시면 한번 쯤은 권유 드려볼게요.”
안 봐도 거절하는 것이 눈에 선했지만 말이다. 딘이라면 좋다고 받아들일 것 같지만, 아누스가 뜯어말리는 것도 눈에 선했다.
“근데 아리아랑은 어때? 요즘은 다시 조금 살가워진 것 같은데...”
“...아...”
그 건에 대해선... 그다지 얘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사실 사이가 더 멀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아리아 쪽에서 태도를 바꾸어 다가왔기에 레오는 안심하고 행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레오~!”
정말 맑고 살가운 목소리로 레오의 이름이 주변에 울렸다. 전의 싸늘하고 건조한 태도와는 180도 뒤집힌 것처럼 뜨겁고 끈적한 어투였다.
“아...아가씨. 부르셨습니까?”
레오나르도에게는 그 아가씨가 있는 뒤를 돌아볼 기회도 없었다. 왜냐하면...
“응! 혹시 힘든가 해서 불러봤어.”
아리아는 레오의 등에 완전히 밀착한 채로 감싸 안았기 때문이었다.
키 차이는 레오가 컸기에 당연히 완전히 윗방향까지 감싸지 않았기 때문에 온몸이 밀착된 것은 아니었지만...
‘...아가씨... 제발...’
아리아의 풍만한 유방은 등에 확실히 닿아 비벼지며 남성의 본능을 자극하고 있었다. 레오는 자신이 자기위로를 고해했기에 이런 벌을 받는 것인가 필사적으로 고민했다.
‘...귀여워...그런 상상은 안 해도 내가 직접 해줄 수 있는데...’
물론 아리아가 이렇게 급변하게 된 건 레오가 교회에서 멋도 모르고 대죄고 소죄고 가리지 않고 전부 말해버렸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상대로 자기위로를 했다는 시점에서 이미 레오는 아리아 자신을 여자로서 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것도 가슴으로 해주는 상상을 하고, 본방까지 간다니... 생각마저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참을 수 없이 먹음직스러웠다.
아예 자신은 입으로 해도 괜찮았고, 자신의 가슴에서 우유가 나올 때까지 빨아도 상관없었다.
그리고 본방으로... 그렇고 그런 것까지 하면 정말 행복할 것이다.
비밀을 듣는 것은 아직 그 어떤 여자도 함락하지 못한 몸과 마음을 얻은 뒤에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흐으...”
어차피 레오는 비밀을 자신에게 먼저 말하겠다는 기특한 생각마저 품고 있었으니까.
“...저...아가씨?”
[‘쟤...괜히 도와줬나...?’]
현자는 더욱더 정욕과 집착 증세가 심각해진 아리아를 보며 혀를 찼다.
사실 루미네의 이름을 살짝 팔았을 뿐, 고해성사를 하는 아리아에게 레오를 보낸 건 자신과 앤젤라였다.
물론 루미네와 아인도 방관자이니 할 말은 없겠지만, 아리아가 발정이 난 것처럼 구니 현자는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보기 좋군요. 역시 사람은 순수할 때가 보기가 좋아요. 안 그래요? 루미네 수사?}
<...아... 순수한 건가요?>
루미네의 눈에는 성욕에 뵈는 게 없는 것처럼 보였다.
{성욕에 순수한 거랍니다. 인간의 번식을 돕는 원천이니 아름다울 수밖에 없죠.}
“틀린 말씀은 아니군요. 인간의 발전은 그런 식으로 일어나는 거겠죠.”
아인도 한 마디 거들자, 루미네는 저 현자와 성녀가 아동 교육에 심히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루미네 성인님 덕분입니다. 고해성사를 시키신 것도 이런 설계 때문이었군요.”
“...아...그건...예... 그렇죠.”
차마 아인의 순수한 눈을 보면서 부정할 수 없는 루미네였다. 지금은 나중에 레오가 알게 됐을 때의 반응과 파티에서 나올 일들을 걱정하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 루미네 성인님!”
계속되는 가슴의 압박에 이기지 못한 레오는 급히 성직자인 루미네를 불렀다. 이런 불건전하고 배덕적인 고문을 벗어날 방법은 루미네 이외에는 없었다.
“아...안녕하세요. 레오 기사님.”
루미네는 레오의 시선을 또렷이 바라보지 못했다. 레오는 그저 이 외설적인 광경을 보기 힘들다고 생각했지만, 루미네는 레오를 볼때마다 양심이 바늘로 찔리는 고통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루미네 성인님은 법복 이외에는 옷이 없죠?!”
“아, 그건...”
그때 루미네는 보았다. 본능에서 간신히 버티고자 하는 한 남자의 비명 없는 절규를.
“...예. 아무래도 파티에 입을 옷은 없죠?”
그 절규를 외면할 수 없는 루미네였다.
“예예! 마침 잘 됐네요!! 같이 옷을 좀 찾아보죠!!”
“그럼 같이 가시죠. 아버지.”
레오나르도는 그렇게 말하며 급히 아리아의 흉부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리아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다음에는 붕대 없는 가슴으로 대는 것을 고민했다.
“...흠... 우리 동생이 많이 대담해졌는데?”
옆에 있던 리오스는 여동생의 발전된 대담한 어프로치를 보며 말했다.
원래 순애는 달달하고 따뜻하게 시작하다가 점점 뜨겁게 불타오르는 것이 매력이었다.
“그...그런 거 아니거든!!”
아리아는 리오스가 이미 자신의 감정을 알고 있다는 것에 다시 한번 부끄러움을 느꼈다.
“아, 아니었어? 그렇구나. 내 동생은 아무 감정도 없는 상대한테 막 껴안고 그러는구나. 몰랐네. 지금 처음 봐서 그런가?”
“...으으...”
저런 순애 바보에게 자신의 사랑을 들키는 것만큼 부끄러운 일이 또 있겠는가.
“그래도 다행이네. 사이가 다시 좋아져서.”
“...어? 우리 원래 사이 좋았는데?”
아리아는 진심으로 의문인 어투로 리오스에게 물었다. 자신은 레오를 싫어한 적이 없었다. 레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자기 몸으로... 흐흣...
“...아...그래?”
리오스는 늘 생각하는 거였지만, 때때로 아리아는 레오보다 눈치가 없어보였다.
“근데 이렇게까지 많이 준비해야 돼?”
아리아는 화려하게 꾸며진 연회장을 보며 나직이 물었다. 사실 아리아는 본인 자체가 용사였기에 의미와 가치가 약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다.
“아무래도. 방계 친척들이며 다른 혈족들까지 전원이 다 모일 테니까.”
“...친척들이라...”
아리아의 얼굴은 살짝 찌푸려졌다. 아리아에게는 친척들에게 좋은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원로원의 경우에는 그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화가 났다. 그 늙은이들은 얼굴엔 주름이 자글거리는 주제에 뇌주름은 다리미로 쫙쫙 핀 것처럼 멍청하게 사람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그럼 너도 준비해둬. 이번 파티 주인공은 너잖아.”
“성검을?”
그런 발상이 다른 말에 리오스는 실눈과 미소를 함께 보여주면서 입을 열었다.
“...레오도 너를 위해 잘 차려입고 준비하겠대. 이번에 드레스 잘 입고 춤추자고 해보면 좋잖아.”
“...레...레오가?!”
“그럼~ 레오가 확실히 그렇게 얘기했어!”
물론 레오의 얘기에서 중점은 ‘아가씨의 기사에 걸맞게 품을 지켜야죠.’였지만, 항상 모든 현상을 순애를 판별하는 리오스에겐 이렇게 해석(왜곡)할 수도 있는 이야기였다.
“...화장도 중요할 거라고~”
“...아...! 나 생각해보니! 리나가 내 머리를 손질해주겠다고 했지 참! 얼른 가볼게!”
아리아는 그렇게 말하며 연회장 밖으로 뛰쳐나갔다. 평소 성격에선 그런 치장을 안 하는 아리아였지만, 남자의 마음을 붙잡기 위해서는 뭐든 하는 것이 사랑에 빠진 소녀의 힘이었다.
“...아... 달달해라.”
저런 염장질에 오히려 행복감을 느낀 리오스였다.
***
시간이 지나고 연회장에는 점차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본가에도 영향을 줄 만큼 힘과 지위가 있는 방계부터 오래전부터 분가되어 나뉘어진 작은 혈족까지 빠짐없이 연회에 참석했다.
이번 연회 목적은 새로운 용사의 탄생을 자축의 의미도 있겠지만, 동시에 라인하르트 가의 유대성을 깊게 하기 위한 사교장이기도 했다.
[...방계니 뭐니 너무 귀찮은 거 아냐? 핏줄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그건 그렇지만... 그런 되먹지 않은 걸 신경을 쓰는 사람들이 대중이니까요.>
결국 사람들은 직관적이며 표면적인 것에 신경쓰기 마련이다. 그리고 혈통은 직관성에서 가장 1,2위를 앞다투는 가치 중 하나였고 말이다.
<저한텐 그다지 감흥 없는 이야기지만요.>
애초에 뼛속까지 평민인 레오는 느껴보지 못할 우월감이었다. 느끼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네 엄마 말이야. 진짜 못 찾은 거야?]
<...백 살 되기 직전까지 찾고 실패했으면 미련을 버려야죠.>
[...네가 미래를 바꿨으니까 달라진 부분이 있을 수도 있잖아. 그리고 네 형도 계속 이 주변에서 냄새가 난다고...]
<그럼 뭐가 달라집니까? 애초에 제 혈통 자체도 평범함의 극치를 달린다고 아인도 공인했잖아요.>
아인은 자신의 피를 먹고 형성된 자신의 사역마이자 딸이나 다름없었다. 그 피의 유전자 감식 결과, 레오의 몸은 지극히 평범하다 못해 일반적인 체질이었다.
유명 귀족이나 가문과 같이 강한 재능이나 혈통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안 나오면 안 나오는대로 이유가 있겠죠.>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마음에도 편했다. 안 그래도 안 어울리는 턱시도를 입고 있어서 불편한데 생각마저 불편하게 두고 싶지는 않았다.
“...레오...”
그 순간, 아리아가 레오를 불렀다.
“네, 아...”
순간 레오는 말을 멈췄다. 그 모습을 보고 말을 바로 이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때? 어울려?”
아리아스필은 하얀 드레스를 입은 채로 조심히 물어보았다.
하얀 드레스 바깥으로 나온 새하얀 목덜미, 파인 가슴골과 쇄골을 보니 레오의 시선은 자연히 반대쪽으로 향하게 됐다.
평소라면 입지도 않을, 아니 권유해도 거절할 남사스러운 옷을 입은 채로 아리아는 배시시 웃어보였다.
“...아....아름다우십니다.”
레오는 그렇게 말했다. 너무 아름다워서 할 말을 잃어버릴 정도였으니, 레오는 어떻게든 말을 이어가기 위해 고개를 돌린 채로 말을 걸었다.
“...하지만... 너무... 추우실 수 있으니...”
레오는 생각했다. 아리아도 연회를 위해 나름대로 용기를 낸 것이라고.
그러니 자신도 용기를 내야한다고.
“이걸 덮어주시겠습니까?”
레오나르도는 정장의 겉옷을 벗으며 아리아의 몸에 살포시 덮어주었다.
“...고...고마워...! 근데... 그렇게 되면... 레오는...”
“아... 저는...”
아리아의 걱정에 레오는 급히 검을 돌을 펼쳐 겉옷 한 벌을 더 마련했다. 색은 조금 탁했지만, 충분히 고급 재질의 정장으로 보였다.
“이걸 입겠습니다. 걱정 마시길.”
레오나르도는 검은 돌로 이루어진 정장을 입었다. 그걸 보면서 아리아는 홍조가 그려진 얼굴로 배시시 다시 웃었다.
“...고마워. 레오가 입은 옷이여서 그런 지 포근하네.”
그 한 마디에 레오의 얼굴이 삽시간에 붉어졌다.
이 둘을 보며 현자는 생각했다.
[내가 이러려고 검은 돌 만들었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여담(?)]
-연회장 안
“어머, 꼬마야. 이름이 뭐니?”
한 부부가 회색머리와 자안을 지닌 소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처음 본 가문의 식솔이었기에 행여나 실수를 할까 미리 확인 절차를 밟은 것이었다.
“아인입니다.”
“아, 그렇구나.”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이름이며, 익숙치 않은 느낌에 여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부모님은 어디에 계시니?”
“저쪽에 계십니다.”
아인은 막 들어온 레오와 아리아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어...저쪽에는 용사님하고 레오나르도 기사님 밖에는 안 보이는데?”
둘이 결혼을 했거나 아이를 임신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도 못했다. 아마도 아이가 착각했거나, 잘못 가리킨 게 분명...
“아, 저 두 분이 맞습니다.”
아인은 덤덤히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