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인자는 회귀했다-109화 (109/248)

기도에는 사장된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과거 성녀가 죽고, 신성력에 불안을 가진 타락한 사제들이 만들어낸 그릇된 신성술.

이도교들의 신성.

산제물로 번제를 만들거나, 태어날 때부터 기도만을 가르쳐 세뇌하는 인외의 기도술.

그렇기에 종교 통합 및 개혁 이후에는 그런 부류의 신성술은 사라졌다. 그래서야 흑마법과 다를 바가 없으니까.

하지만 그건 ‘사용하지 않는다’일 뿐, 존재 자체가 없어졌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맹세한다.

나에게는 신에 대한 믿음은 없다. 오히려 원망한다. 전지전능하고도 무책임한 존재에게 증오한다.

-난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는다.

하지만 신성의 힘은 필요하다. 이 비루한 육체를 조금이라도 의미있게 쓰기 위해.

악마를 조금이라도 더 쳐죽이기 위해.

-그 대가로 육체를 강화하고 신성을 쓸 수 있게 된다.

죄인의 인두를 새겼다.

***

“...말도 안 돼요... 그건...”

루미네는 떨리는 표정으로 그 말의 진실을 부정하고 있었다. 단지 그것이 죄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성인으로서 신성의 역사를 아는 그로서, 그건 행위가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맞아요... 그 방식을 쓰는 건 분명한 배교 행위죠. 설사 자신이라고 해도.”

그로 인해 레오는 신전에서도 배척받았다. 아무리 이유가 있고, 자신만을 희생한 것이라고 해도 교리적으로도, 표면적으로도 신전은 레오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사실 전 지금도 예언에서 본 게 뭔지는 모르겠어요. 지금만 봐도 레오에게는 금제도, 신성력도 안 느껴지니까요.”

하지만 그 사실은 모순되었다. 금제는 한번 새긴 이상, 어떤 방법을 써도 떼어낼 수 없다.

그렇기에 금지되었다.

하지만 레오에게 금제는 어디에도 없었다.

분명 금제를 새겼다면 분명 어느 부분에 성흔이 남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그건 분명히... 존재하는 과거에요. 레오는 그걸 알고 있고요.”

아리아에겐 회귀라는 개념이 설명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 미래처럼 보이는 과거에 대해 정의를 명확히 내릴 수 없었다.

그에 비해 루미네와 아인은 유령으로 있는 현자로 인해, 어쩔 수 없이라도 회귀에 대해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아버지가 회...”

<아인 님.>

루미네는 아인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이 이상 말하는 것은 멋대로 둘의 일에 끼어든 것이나 다름없었다.

회귀에 대한 단서는 예언가가 제멋대로 쥐여주었다. 그 행동조차 루미네의 눈에는 만용이자 오지랖으로도 보였다.

“...그럼 아리아스필 님은 어떻게 하고 싶은가요?”

“...모르겠어요. 뭔갈 할 자격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요...”

아리아스필의 눈에는 기운이 없었다. 스스로에 대한 혐오가 뒤섞이고, 레오나르도에 대한 죄악감과 연민으로 그의 얼굴을 볼 자신도 없었다.

그럼에도,

“...레오가 너무... 좋아서, 좋아서... 참을 수가 없어요...”

그 남자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좋아서 사랑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자기만 생각해주고 헌신해주어서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그리고... 이렇게... 좋아하는 제가 너무 싫어요... 전...”

그렇기에 너무 미안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웃고 다녔던 자신이 역겨웠다. 레오의 고생을 몰랐던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용서할 수가 없었다.

레오가 봐왔던 자신도, 지금의 자신도.

얼굴에는 눈물이 고였다. 계속 울고 싶어도 울어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울음은 아랑곳하지도 않고 하염없이 터져 나왔다.

읊어댄 사랑이며, 마음이 너무나 같잖아서...

“...아리아스필 라인하르트 님.”

그 순간, 루미네는 입을 열었다.

그저 레오의 회귀를 아는 조력자만이 아닌,

“어리광 부리지 마세요.”

용사를 보좌하는 성인으로서 말을 준비한다.

“...예...?”

울먹거리던 아리아는 다시 루미네를 바라보았다. 위로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매도를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루미네가 저리 차갑게 말하는 것은 처음 보았다. 아리아는 정말 처음으로 봤기에 놀랐다.

덕분에 절망적인 감정의 소용돌이에서도 잠시나마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 일이 슬프다는 건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걸 홀로 연민하는 건 성인으로서 용납할 수 없습니다.”

이어지는 일갈, 성직자라는 직책이라는 그저 감언이설만을 읊는 역할이 아니다.

“레오 기사님이 어떤 목적으로, 어떤 마음가짐으로 당신의 곁에 있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때로는 잘못된 길로 가는 어린 양을 올바른 곳으로 가도록 붙잡고, 신중히 고민하게 만들어주는 길잡이.

“하지만 적어도 당신이 이러는 걸 레오 기사님이 바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군요.”

그리고 타인을 이해하고자 신을 믿으며 믿음을 전도하는 구도자.

“지금 당신은 그저 자기를 혐오하고 싶은 것일 뿐입니다. 그 행위를 통해 조금이나마 죄책감이 덜어지고 싶은 거겠죠.”

이 일갈에 아리아는 잠시 침묵했다. 하지만 이내 입을 열었다.

“...하지만...당신은 몰라요... 이런 편안한 곳에서 있는 우린 모른다고요... 아쉬움 없이 있는 우린...”

맞는 말이며, 올바른 말은 아니다.

“맞아요. 아는 건 레오 기사님 뿐이겠죠.”

사실이지만, 객관적이지 못하다.

“그럼 어째서 묻지 않는 거죠?”

도피할 명분은 거기서 생기니까.

“아직 서로가 어떤 심정이시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씀 안 하셨죠?”

루미네도 성직자로서의 눈치는 있었다. 그 차가운 분위기로 봐서는 그 둘은 회귀에 대해 대화를 꺼내긴커녕 말 몇 마디도 나누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이걸 봤을 때는...”

“전부를 본 것도 아니잖아요. 그건 아는 게 아닙니다.”

보는 것과 아는 것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그건 레오도 마찬가지며,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어째서 이야기를 안 하시는 거죠? 서로 소통을 해야 이해할 부분이나, 오해를 풀 여지도 있을 텐데요.”

루미네의 이야기는 정론이며, 또한 아리아가 숨기고 있는 본심을 건드리는 이야기도 했다.

“...하지만...”

아리아는 이내 다시 눈물을 흘린다.

“...너무 무서워요... 제가 회귀 전에 한 짓을 원망하고 있지 않을까... 계속 생각해서...”

“그건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해볼 법한 고민이었지만, 내막을 알대로 아는 아인과 루미네는 단칼에 그 말을 잘라내었다.

몇십 년 세월을 뛰어넘겨 이 시간대로 돌아왔다는 점에서 자세한 설명 따위는 필요하지 않으니까.

***

“용사님, 정말 여기서 하셔도 되겠습니까? 저희 교회 입장에서야 환영이지만...”

신부는 영광스러운 곤혹에 말끝을 흐렸다. 하루 사이에 이 분야의 거물들이 자신에게 연락이 왔기 때문이었다.

교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떳떳했던 신부였지만, 자신이 신전에서 입지가 없던 걸 생각하면 쓸데없는 노파심이 밀려오기도 했다.

물론 루미네는 이 신부가 신실하면서도 종교적인 입지에 욕심이 없는 사람인 걸 확신하기에 이 교회를 추천한 것이었지만, 신부는 이를 알지 못했다.

“...네, 스스로에 대한 답을 찾고 싶어서요. 혹시... 폐가 될까요?”

아리아는 진지하고도 기운 있는 눈으로 신부를 바라보았다. 레오의 과거를 알게 되어 생기를 잃은 공허한 눈에는 생기가 불어넣어졌다.

루미네가 해준 조언대로 지금은 그저 슬퍼하고 연민할 때가 아니었으니까.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용사님께서 하루 동안이지만, 고해소를 맡고 싶게 된 경위가... 알고 싶었습니다.”

신부는 솔직히 말해 며칠 전만 하더라도 용사가 계시를 받고 나온 줄도 모르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대중들에게 완전히 공표하지도 않았고, 이 교회에서도 이야기만 들었을 뿐이었다.

애시당초 아리아가 신전에서 가문으로 돌아온 지도 한달도체 되지도 않았고 말이다.

“...죄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아리아는 진심어린 눈으로 신부를 바라보았다.

루미네는 아리아에게 한 가지의 제안을 했다.

-아직은 여유가 있으니, 고해소에 가보시는 건 어떨까요?

-...고해성사를 받는 건가요? 하지만...

-아뇨. 직접 고해성사를 해보시는 거에요.“

루미네는 아리아에게 고해성사를 사하는 역할을 맡아보라 권유했다. 고해를 듣는 것으로 죄의 무게를 알려주고 회개할 기회를 주는 사제의 일을 말이다.

아리아스필은 전문적인 빛의 사제라 말하기는 어려웠으나, 빛의 화신이나 다름없는 용사라면 고해를 해줄 자격은 충분히 있었다.

“...그렇군요.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죄에 대해 진리를 아는 것도 그렇지만, 고해성사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사제나 신부들도 가장 기피하는 일 중 하나가 ‘고해성사’였다.

고해를 하러 오는 죄인들은 반성하는 이들도 있지만, 대개는 자신의 입장에서 합리화를 하기 마련이었고, 때로는 그저 말할 곳이 필요해서 죄를 고하곤 인정하지도, 반성하지도 있는 인간들 또한 존재했다.

그런 불쾌한 일을 주는 것에 신부는 잠시 고민을 가졌다.

그리고 이내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걸 알아가는 것이 중요한 거겠죠.”

신부는 기쁘게 웃으며 아리아를 고해소로 안내하였다. 좁은 교회 안을 몇 걸음 걷자 3개의 문이 있는 사물함처럼 작은 방이 눈에 들었다.

“고해소는 이 가운데에 앉아서 하시면 됩니다. 아직 신도들은 오지 않았으니 천천히 준비하셔도 되고, 고해성사의 규범만 지키면 문제는 없습니다.”

아리아스필도 이는 숙지하고 있었다. 고해성사를 하는 방법은 물론이고, 고해성사에서 나오는 모든 말과 죄들은 전부 침묵해야할 의무가 있었다.

“아, 그리고 사람들에게는 용사님이 왔다는 건 비밀로 하겠습니다. 죄를 고백하기 어려울 수도 있으니까요.”

맞는 말이었다. 용사가 직접 고해를 들어준다하면 당연히 기겁해야하는 신도들도 있을 것이 분명했다.

“알겠습니다.”

아리아스필은 각오를 다지며, 고해소의 중심에 들어갔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나고 아리아의 표정은 점차 무너지고 일그러졌다.

***

“...괜찮으십니까? 용사님?”

아리아는 굉장히 공허하며, 한편으로 답답한 표정으로 신부가 준 샌드위치를 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다.

“...아...예...”

사실 신부의 눈에 그저 영양의 보충을 위해 식품을 입에 욱여넣은 것 같아 보기가 좀 부담스럽게도 느껴졌다.

“...사람들이 이기적인 것 같습니까?”

“...!”

그 말에 아리아는 뜨끔했는지, 먹던 샌드위치에서 입을 떼었다. 사실 아리아도 말도 안 되는 고해성사를 빙자한 한탄을 들으며 죄를 사하느라 오후 3시 40분에서야 점심을 먹는 것에 짜증을 느끼고 있었다.

“...솔직히 그렇게 올바른 것 같지는 않네요.”

사람들은 이기적으로 자신들의 잘못을 읊어내었다. 마치 자신의 죄를 항변하기라도 하듯이.

특히나 불륜이나 간통에 대한 행위는 용서하고 싶은 생각도, 듣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거기에 무슨 사정이나 낭만이 있는 것마냥 말하는 것이 듣기가 역할 정도였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오히려 이렇게 버틴 것도 젊은 사제들에 비하면 놀라운 것이죠.”

“...그래도... 잘 모르겠네요. 결국은 자신의 죄악감을 덜어내려고 하는 게 아닌지...”

“그것도 틀린 말씀은 아닙니다. 죄의 불안감을 없애는 것도 이유 중에는 하나죠.”

하지만 신부는 그것에 대한 거부감이 덜한 눈치였다.

“하지만, 사람이 진정으로 죄와 마주보기 위해선 죄악감을 덜어낼 필요도 있더군요. 죄악감과 죄는 비슷하지만 분명 다른 영역이거든요.”

“...”

아리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쩌면 루미네가 보여주고자 한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마음으로나마 생각을 정리했다.

때때로 마음의 짐을 덜어야 속죄할 수 있는 것도 있다고.

“...다시 해보겠습니다. 신부님.”

“기운을 얻었다니 다행입니다. 신의 은총이 함께하기를.”

그렇게 말하며 아리아는 늦은 점심을 끝낸 채, 고해소로 돌아갔다.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아직 대기줄이 있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내.

끼이익

문이 열리고 닫혔다.

“...전... 아주 무거운 죄를 지었습니다. 신부님.”

아주 익숙한 목소리였다. 자주 들어본 듯하면서도 편안한 목소리가 먼저 울렸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예식문을...

“...전... 어느 기사 가문에게 천한 신분으로 기사직에 발탁되었음에도... 가문의 영애님께 큰 상처를 주고 말았습니다...”

...굉장히 익숙한 내용에 아리아는 순간적으로 오러로 자신의 목소리를 변조해 말했다. 레오에게 배운 기술을 그대로 모방한 것이었다.

“...그 가문의 이름을 말할 수 있습니까?”

잠시 망설이던 정말 누군지 모를 이는 대답했다.

“...라인하르트 가문입니다.”

그 한 마디에 아리아는 호기심의 죄악과 욕망이 격돌하는 것을 극심히 느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스포일러(?)]

“...그리고 부끄럽지만, 전... 때때로 충을 맹세해야할 주인에게 육욕을 품고... 자신을 몇 번 위로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 참 깊은 죄...로군요. 어떤 상상을 했으며, 횟수는 몇 번인지, 기분은 어땠는지... 다음엔 어떻게 할지를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그렇게 자세히 말하는 건가...요...?”

“어린 양이여, 자신의 죄와는 깊게 마주하는 것이 중요하답니다. 스스로의 죄에 두려워하지 마시고 대면하세요.”

참고로 현자는 고해소 신부 쪽을 장난삼아 들여보다가 이미 밖으로 나간 참이었다.

나중에 반응을 보는 게 더 재밌을 것 같다는 미친 배려심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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