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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자는 회귀했다-108화 (108/248)

우선 결론부터 말해 예언가는 그날 밤에 죽었다.

아누스에게 듣기로는 그 예언가는 예언을 시작한 순간부터 이미 도중에 죽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태였다고 한다.

차라리 곱게 죽었으면 애도라도 해줄 텐데, 이런 식으로 영문도 모를 개인 정보를 가장 감추고 싶은 상대에게 폭격당했으니 침이라도 못 뱉은 것이 유일한 한이었다.

환락가에서의 소동은 한 일보다 운이 몹시 좋게도 덮는데는 성공했다.

아마 그렇게 고주망태가 된 상태에서도 변장을 간신히 유지한 것이 그나마 이 일을 언론에까지 퍼지지 않도록 하는 것에 도움을 주었다.

물론 즉석에서 합의하느라 거의 아수라장이 된 술집 및 거리 수리비가 거액으로 깨졌지만, 이젠 다신 선배로 안 부를 ‘에일린 씨’가 추후에 이자까지 붙여 갚아준다고 했으니 이에 대한 불만은 표면적으론 꺼내지 않도록 약조를 맺었다.

크리스는 그날 이후로 3개월 근신처분을 받았다. 사실 호위와 감시를 해야할 양반이 술 퍼먹다가 취해서 개판 만든 걸 생각하면, 거꾸로 매달고 등짝을 몽둥이를 후두려 패지 않은 것을 감사해야했다.

그리고,

사실 이게 제일 큰 문제이기도 한데...

“...저기...아리아...”

“네.”

칼 같게 아리아는 대답했다.

평소 화가 난 태도와 비슷해보였으나, 그 온도가 그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서늘했다.

“그...예언에서 단서는 얻었니?”

“네.”

무얼 알았는지는 대답하지도 않은 채, 그저 단서를 찾았다는 것에만 긍정하는 답변, 글라디오도 가주 생활 몇 년 동안 이런 적은 처음인지라 말을 잇는 것에 곤혹을 느낄 정도였다.

“어...그게 최근에... 레오나르도와는...”

“...저한테 말할 자격이 없어요. 레오가 잘못한 거 아니니까 곤란하게 묻지 말아주세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식탁에서 벗어났다. 다른 가족들도 간신히 식기를 든 참이었는데, 아리아는 음식에 손도 대지 않은 채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

공기가 싸늘하다.

나간 아리아를 제외하고도 식탁에 사람들은 많았다. 같이 식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어색하게나마 식사를 이어가던 루미네와 아인, 그리고 딘과 아누스는 ‘그날’을 기점으로 더욱더 눈치를 보면서 눈을 굴리고 있었다.

루미네와 아인은 내막을 알고 있기에 입을 열기가 어려웠고, 딘과 아누스는 정황을 알고 있었기에 더더욱 불편한 공기를 들이마셔야했다.

“...저기 레오 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저도... 설명해드릴 수는 없습니다...”

레오도 새하얗게 불타버린 된 표정으로 식탁 밖으로 나갔다.

“...죄송합니다. 식욕이 없군요.”

그렇게 말하며 레오도 모든 걸 잃어버린 표정이었기에 글라디오는 더는 붙잡지도 못했다.

철컥

그렇게 이 ‘냉전’의 원인이 된 양측의 인물들이 사라지자 라인하르트 가의 사람들은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도대체 어제 뭔 일이 있었던 거에요?! 고모?!”

리오스가 먼저 소리를 질렀다. 자신이 작은 순애 극장이 이런 식으로 마무리되는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그것도 이렇게 달콤했던 이야기가 시큼 텁텁하게 끝나는 것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나도... 나도 잘 기억이...”

“예!! 잘하셨네요!! 약주를 얼마나 쳐드셨으면 그 개판을 쳐놓고 기억 하나 안 납니까?!”

평소에 능글맞은 채로 얄미운 하던 뺀질이는 온데간데 없이, 지금의 리오스는 진심으로 분노해있었다.

크리스도 정말 자신의 잘못이 아닐까 걱정도 하면서도, 숙취를 하고 나서 끊어진 기억이 도대체 무엇일까를 계속해서 고민했다.

“저기... 우선 고정하세요. 그... 따지고 보면 저희 잘못인지라...”

평소 능글거리던 리오스를 보지 못했던 딘은 이곳의 실세가 리오스라고 진심으로 여기고 있었다.

소설에서 보면 가문의 장남들은 조직의 실세이지 않은가.

“아뇨! 어떻게 이게 친가 쪽이 잘못이겠습니까?! 누가 봐도 저희 집이...!”

“아니, 우리 쪽 잘못이 맞다.”

흥분한 리오스를 가라앉힌 것은, 사실상 친가의 모친 역할을 맡고 있는 아누스였다.

“분위기가 이상해진 건, 예언을 들은 이후였다. 아마 저 아가씨는 우연치 않게 엮여 모양새가 이상해진 거일 뿐이겠지.”

크리스는 아무 말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였지만, 진심으로 아누스에게 감사를 느꼈다. 말투는 마르켄처럼 가시가 돋쳤지만, 그 안에 들은 내용은 돌아가신 자신의 어머니처럼 따뜻했다.

“갑자기 찾아오고 민폐를 끼쳐서 정말 미안합니다. 저희가 오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아누스도 심정이 착잡했는지 평소 보지도 못할 진수성찬을 보면서 입 한번 대지 않았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저흰 레오 군이 와서 정말 축복이라고 느꼈습니다!! 그건 분명 아누스 씨께서 레오 군을 올곧게 가르쳤기 때문이겠죠.”

가주 글라디오는 이 이상으로 분위기가 살얼음판으로 되는 걸 막기 위해 황급히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었다. 글라디오도 가문에 레오가 온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었다.

아마 이 가문에서 시리카를 제외하면 ‘그나마’ 대화가 가능한 유능한 인재는 레오나르도 밖에 없었다.

“...제 친구가 사력을 짜내 한 예언이 이런 난장판을 만들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도 마지막엔 조금 다를 줄 알았는데... 으휴...”

도대체 뭐라고 시부렁거리면 관계가 이렇게까지 파탄이 나는지, 아누스는 도저히 이해는 고사하고 상상도 되지 않았다.

“...근데 그 예언은 도대체 뭐길래...”

시리카는 진심으로 그 예언이 의문이었다.

설마 신탁에 숨겨진 용사의 숙명을 예언가가 들추어내 아리아가 스스로 무게를 짊어진 것 아닐까, 시리카는 심히 의심스러웠다.

“...제 추측이지만, 그건 신탁에 대한 예언이 아닌 것 같아요.”

이번엔 딘이 이야기를 거들었다. 아무리 봐도 그 반응은 레오와 절대적으로 연관이 된 느낌이었다.

“...그 아이가 감춘 비밀이 많은 것 같기는 합니다만... 짐작가는 것은 있으십니까?”

마르켄은 평소처럼 날선 말투보다는, 훨씬 온건한 어투로 레오의 가족이나 다름없는 둘에게 물었다.

따지고 보면 평소 레오에게 뱉은 가시 돋친 말들은 연세로 인해 약간 삐뚤어지게 된 일종의 호의 의사였다.

물론 마르켄 본인은 부정하지만 말이다.

“솔직히 말해... 짐작가는 것이 한두가지가 아닌 지라...”

딘도 자신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번만 하더라도 제대로 몰랐던 지옥도 같은 용병 생활을 이야기로나마 들을 수 있었지 않았는가.

아마 그런 것조차 태연히 말하는 것으로 봐선 레오에게는 그 이상의 트라우마나 비밀이 있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리고 그 예언가는 자신의 능력을 사용해 아리아에게 전달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문제는,

“...추측이 되는 건 많은데 좁힐 여지가 많지 않군요. 면목이 없게도 말입니다.”

아누스의 말대로 숨기는 것에 대한 위화감이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깊은 부분을 추리할 수 있는 단서는 사실 전혀 들어나지 않았다.

“혹시 라인하르트 가에는 짚이는 것은 없습니까?”

이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추측만을 내놓을 뿐이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다양한 지식들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평범한 소년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재능과 경험에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아니면 아리아와 가문에 헌신하는 이유가 생각지도 못한 것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름대로 가문의 일원들은 그럴 듯한 추측을 내었다. 실제로 정답에 근접한 추리였으니까.

{...아무래도... 후대의 용사가 알아낸 것 같군요.}

천사로서 있던 앤젤라가 사념으로 말을 전달했다. 성녀로서의 관록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이건 어떠한 형태로든 레오의 ‘회귀’를 알아낸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건 제대로 된 소통으로 이루어진 과정이 아닌, 모종의 방법으로 얻은 것이 분명했다.

<...예언으로도 가능한 겁니까?>

그 사념과 연결된 아인은 대답했다.

{뭡니까!? 당신...?! 어떻게...!?}

[저도 일종의 사역마입니다. 아버지가 사용하는 마법의 골자를 응용한다면, 근거리에서 안 들리게 대화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루미네 님도 하기 쉽게 식을 정립했으니 사용해보십시오.]

그런 행동에 루미네는 진심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지금까지 아인의 배려가 없었더라면 이런 숙면도 취하지 못했을 것이며, 그 사이에 미쳤을지도 모른다고, 마음 속 깊이 감사를 느꼈다.

<‘사실 앤젤라님보다 성녀 같은데...’>

{속마음 다 들립니다. 루미네 수사.}

[죄송합니다. 골자 설정이 너무 직관적이었군요. 재설정하겠습니다.]

이 정도면 선녀였다. 여러 의미로.

<...우선은 용사님과 이야기해보죠.>

그렇게 생각하며 루미네는 이 자리를 벗어났다. 레오나르도를 설득하는 건, 이미 포기한 지 오래였다.

***

몸이 무겁다. 머리가 안과 밖에서 동시에 압력이 느껴져 으스러질 것 같다.

레오를 볼때마다 가슴에 아파서 제대로 설 수가 없다.

그럼에도 눈은 본능적으로 레오를 쫒게 되었다.

그런 스스로가 역겨워 참을 수가 없다.

결국 아무것도 모른 건 내 쪽이었다.

똑똑

그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대답하지 않으려던 순간, 복도의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아인입니다. 아리아 언니.”

“...아인...”

나지막이 아인의 이름이 입에 담긴다.

생각해보면 엄마니 뭐니 하는 것도 결국은 자기만족에 불과했다. 레오에게는 얼마나 역겨웠을까.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든 여자, 무엇 하나 책임을 지지 않은 주제에 그런 여자와 남편이 되라니.

얼마나 토악질이 나왔을까.

“...들어와.”

그렇게 말하며 결국은 문을 열어버렸다.

무얼 바라는 걸까.

위로? 안정?

가당키나 할까, 레오에겐 그런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는데.

“...아...안녕하세요? 용사님? 괜찮으신지...”

문 밖에는 루미네도 있었다.

루미네 앙겔루스.

어쩌면 루미네가 레오에게는 더 유의미한 존재일지 모른다.

그런 지옥에서 유일하게 레오의 편이 되어준 건, 그 밖에 없었으니까.

그런 주제에 질투나 했다.

질투에 멀었던 눈을 찌부려뜨리고 싶은 충동이 든다.

“...괜찮으십니까?”

“...미안해요. 조금 혼자 있고 싶어요.”

그렇게 문을 닫으려던 순간, 루미네는 힘겹게 문을 잡았다. 근력은 아리아보다, 레오조차도 떨어졌지만 근성과 신성력이 수 초는 버티게 해주었다.

“저희도 레오가 숨긴 과거를 알아요...!!”

그 수 초 사이에 루미네는 결단을 내렸다. 거의 즉흥적인 돌발 행동 덕에 아리아는 조금 멈칫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내 루미네와 아인은 아리아의 방에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

<돌발행동해서 죄송해요...>

[아뇨. 현명한 판단이었습니다. 계획대로 했더라면 문전박대일 확률이 약 62%, 저만 들어올 확률이 약 30%였을 겁니다.]

쉽게 말해 루미네가 돌발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다면 들어올 확률은 1할도 되지 않았다는 소리였다.

무엇보다 대화 능력과 상황 판단력이 부족한 아인으로서는 이런 복잡한 대화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 ‘미래에 있었던 과거’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죠?”

아리아가 싸늘한 태도로 물었다. 적의가 있는 것이 아닌, 대화할 의사가 없는 체념에 가까운 태도였다.

“...저는 세세한 것은 듣지 못했어요. 그저 용사님이 돌아가시고, 레오 기사님이 홀로 싸우다 돌아가신 것 정도밖에는...”

“...저도 일부 사건을 듣기만 했을 뿐, 세세한 내용은 모릅니다.”

그 말에 아리아는 착잡하면서도 다행이라는 감정도 느꼈다. 그 장면을 보는 것은 루미네도, 특히나 아인의 경우에는 달갑게 여기고 싶지 않았다.

“...숨겨서 죄송합니다. 아리아스필 님. 하지만...”

“사과하실 필요 없어요. 제 잘못이 맞으니까요.”

그 자조적인 태도에 루미네며, 아인까지도 당황했다. 앞선 행동에서 어느 정도 짐작은 했다만, 지금 아리아는 레오와 동급으로 자신을 혐오하는 눈치였다.

“...제가 다 잘못한 거였어요. 레오가 그렇게 된 건...”

“하지만 그 일은...!”

루미네가 말하려던 순간, 아리아는 말을 끊어내었다. 그러고는 자신이 느낀 가장 큰 고통을 말했다.

“...루미네 님,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으세요?”

“...예? 뭐가...”

“레오가 자살하지 않은 이유 말이에요... 그렇게 죽고 싶어하는데, 그렇게 자기를 미워하는데... 왜 자살을 하지 않았을까요?”

그 말에 아인도, 루미네도 입을 다물었다.

그저 모욕적으로도 들리는 어투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 또한 그 이유는 정말 몰랐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정신력으로 버텼다고 생각했을 뿐, 다른 영역은 생각하지 못했다.

“이상하잖아요...? 결국 레오도 사람이고... 그런 세상에서는 죽고 싶기 마련인데...”

그런 영겁의 지옥에서 자결을 택하지 않은 것, 그건 그저 정신의 문제가 아니었다.

“...못한 거였어요.”

그 말에 전원이 할 말을 잠시 잃었다. 말한 아리아도, 잠시는 입을 다물었다.

“...죽고 싶은데 죽지 못한 거였어요. 스스로의 의지로 죽으려고 하면, 금제가 작용했거든요.”

아리아는 진심으로 무지했던 자신에게 절망했다.

“레오는 자결을 안 한다는 조건으로 금제를 맹세했어요. 약한 육체를 조금이라도 강화하는 대가로요.”

그에게 맹세란 그런 것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 대가로 남자는 강해졌다.

타인에게도 죽지 못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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