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인자는 회귀했다-106화 (106/248)

점집을 뛰쳐나온 레오는 그대로 아리아가 향한 길로 향해 전력으로 전진했다.

[...야...진짜 죽이는 거 아냐?]

현자는 진심으로 식겁한 표정으로 앞쪽 방향을 노려보았다.

<...죽일 일은 아니죠.>

그러면서도 레오는 현자의 눈을 피했다. 레오나르도도 속으로는 아리아스필을 신뢰하지는 못한 눈치였다.

그것도 회귀에 대해 어느 정도 인지하게 된 시점에서는 더더욱 위험성은 올라갔다.

머릿속으로 성검을 든 채로 두 여자를 도륙을 내는 용사가 웃는 게 상상되는 것이 그에 대한 증거이자 날인이었다.

[...걔 성격을 생각하면, 그 지능이 모자라지만 착한 녀석하고 인성이 모자라지만 착한 녀석은 자기 다리로는 돌아갈 수는 없을 것 같다 야.]

어째서인지 저런 거지 같은 설명에도 찰떡 같이 두 명의 여성이 머릿속으로 자연스럽게 연상이 되었다.

부디 그 두 명이 라인하르트의 흑암과 템페리우스 가문의 대마법사가 아니었으면 했다.

[근데 아니면 그것대로 소름끼치지 않냐?]

<...어...음...>

오늘따라 현자의 말이 정말 설득력이 있었다. 하지만 차라리 두 사람이 아니면 나을 수 있었다.

<...그러면 적어도 사지가 찢기지는 않겠죠.>

[...왜 기본 전제가 사체분시인데?]

오체분시로 생각하지 않은 것으로도 많이 신뢰하는 거였다. 그러면 적어도 루미네가 노력하면 트라우마 이외에는 원상복구가 가능했으니까.

콰아아아앙!!

그 낙관적인 생각은 또다시 울린 폭음에 산산조각이 났다.

[...시체가 남는다는 생각부터 버리는 게 낫겠지?]

악마의 유혹처럼 합리적으로 달콤한 제안이었다. 한 순간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논리적인 악마의 화술이었다.

“...으어어어어...”

“...으에에에에...!”

아리아의 양 주먹에는 두 여자가 꽂혀있었다. 고통에 절여진 신음 소리를 내는 걸로 봐선 결코 경상은 아니었다.

[저 용사년 진짜 죽였어!!]

순간적으로 배의 구멍을 내어 꿰뚫어낸 줄 알고 현자는 비명을 내질렀다. 부정하고 변론해야하는데 아리아의 양손에서 떨어지는 붉은 액체의 출처가 어디인지 상상이 되면 될수록 점점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가씨...?”

“...레오.”

아리아의 푸른 눈이 갑자기 붉게 비쳐 보였다. 레오 자신이 지닌 눈동자보다도 적안으로 흉흉하게 노려보고 있었다.

“...우선 지...진정하세요...! 아직... 아직 돌이킬 수 있는 영역...!”

아리아가 주먹을 돌리자 에일린의 몸에 진동이 일어났다. 갓 머리를 토막낸 생선에게 경련이 일어나는 것 같아, 너무 끔찍해 차마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푸헤헤헤엑...”

이내 에일린의 입에서 붉은 액체가 흘러내렸다. 짙은 액체가 질척하게 바닥에 고여졌다.

그래도 아직 돌이킬 수 있을지도...

“우에에에엑...”

반대쪽에 꽂힌 크리스도 마찬가지였다. 입에서는 죽음의 단말마를 알리듯 토사물과 함께 붉은 액체가 쏟아졌다.

아리아의 양손에서도 붉은 액체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야... 저거... 분명...]

<...그만... 말하세요...>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었다.

몇 번이고 살육해온 자신이기에 알 수 있었다.

이제 더는...

[아니, 양으로 봐선...]

양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출혈이 끝날대로 끝난 것인지 이미 나오는 피의 양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물줄기 수준에서 방울 단위로 변한 것이 그 증거였...

[저거 술이야 임마!]

“...예?”

술이라고? 저게?

저 검붉은 액체들이 전부...

[저거 봐. 지금 옆쪽에 깨진 잔해들 좀 보라고!]

현자가 떠다니면서 부서지는 잔해들을 보면서 말했다. 부서진 문짝이나 불타오르는 테이블, 그리고 으스러진 가구들과 반쯤 폐허가 된 거리는 분명 격전의 현장이 떠올랐다.

하지만

“내 술집이...!!!”

그 가구들의 출처가 저기 반파된 술집이라는 걸 알고, 지면에서 나뒹구는 맥주, 레드 와인, 꼬냑, 고급 데킬라들을 보니 무슨 일인지 원치 않아도 대강 짐작이 되었다.

맥주 이외에는 대부분 붉은 계열의 주류, 그리고 저 겉모습만 잘 커버린 저 애새끼들이 술에 얼마나 약한지를 생각하니.

어떤 일이 있었는지 너무나 예상이 가능해서 걱정 대신 머리에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야야...! 레오...!! 조금은 천천히 달려...! 촌장님 업고 달리는 게 쉬운 줄 알아?!”

딘은 이 난전의 현장으로 급히 뛰어왔다. 등에는 술 잔을 나누려던 아누스를 업은 채로 가쁘게 숨을 내쉬면서 말이다.

“그러길래 그냥 두지 그랬냐? 딘, 마침 술병으로 그 예언쟁이 머리를 깰 생각이었는데.”

“저 개판을 보고도 그 말이 나와요?!”

딘의 말대로 저 개판을 보고 흥분을 가라앉힐 인간은 없을 것이다. 온 김에 제대로 물어볼 필요는 있겠군.

“...형, 분명 쌍검을 든 채로 분신술 쓰는 기사하고 쓸데없이 큰 지팡이를 휘두르는 정차림 마법사가 길한복판에서 싸운다고 했지?”

“...어, 술에 쩔은 채로 기사하고 마법사가 ‘같이’ 싸웠다는데... 으아아아!! 네 여친이 죽인 거야!?”

딘은 저렇게 아리아의 양팔에 꽂힌 두 여자를 보며 계속해서 비명을 질렀다.

“...하...아가씨...”

레오나르도는 그 처참한 환경에 있는 아리아를 향해서 걸어갔다.

“패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우선 내려놓으시죠.”

안 그래도 어색한 상황이었는데, 이 두 주정뱅이 덕분에 어색하다 못해 고역스러운 현장이 잘 조성되었다.

덕분에 보답으로 숙취에 잠든 채로 지옥에 보내드릴까 심히 고려하는 레오였다.

“...알았어.”

아리아는 주정으로 거지꼴이 된 두 술고래들을 차례로 바닥에 집어던졌다.

사실 아리아가 배에 주먹을 날린 까닭은 저 주정뱅이들이 정말로 정신이 돌아버려서 도중에 진짜 마나를 써서 주변을 초토화시킬게 분명했기에

그런 상냥한 처우에도 정신을 못 차린 두 알코올 거지들은 그대로 바닥을 구르며 헛소리를 내었다.

“내가아아....! 진정한 어둠의 수호자...!! 엠페러 흑암이다아아아...!!”

그럼 진짜 이 환락가 속 어둠의 구렁텅이에 던져버리고 같은 말을 반복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하하하하...! 이 꿈도, 희망도 없는 빌어먹을 세상...! 다 망해버려라아아...!!”

크리스면 몰라도 에일린은 그나마 상식적으로 행동할 거라 믿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크리스니 에일린이니 정도는 다르지만 어설프게 겉멋을 잡고는 있지만, 속은 베개 속에 있는 솜뭉치만큼이나 연약하다는 걸.

레오는 간과하고 있었다.

[...너...]

현자는 그런 레오를 보며.

<...>

[...사람을 그렇게 죽일 듯이 보지 마. 동굴에 들어왔을 때랑 같은 표정이잖아.]

진심으로 소름을 돋아 식겁해하고 있었다. 마치 레오가 완력만으로 입구를 강제로 찢고 처음으로 동굴에 쳐들어온 것을 봤을 때와 같은 충격이었다.

<저기에 사람이 어디있죠?>

보이는 건 알코올에 중독된 짐승 두 마리 뿐인데.

[야야... 여러모로 빡치는 건 알겠는데... 우선 마음 좀 가라앉혀라. 진짜 죽일라.]

<...>

현자의 말에 레오는 잠시 저 둘에게서 눈을 돌린 채 숨을 고르었다. 이내 분노한 심정은 어느정도 진정되었다.

촤악

[워터 볼]

그래서 냉수를 끼얹는 걸로 봐줬다. 사실 훈련으로 무의식적으로 변장도 유지 못했다면 더 심한 방식으로 숙취를 해소할 용의도 있었다.

[이게... 봐준 거라고?]

<그럼 여기서 전기찜질에 얼음 마법으로 급랭까지 시킬까요?>

현자가 정말 안쓰럽다는 듯 그런 레오의 섬뜩한 태도를 바라보았다. 혀도 차는 건 덤이었다.

“...춥다아... 업어줘라... 레오...”

“싫어요. 알아서 하세요.”

마음 같아선 지금이라도 모르는 사람인 척을 하고 버리고 갈까를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었다.

“...너무해애...저 용사한테는 그렇게 상냥하면서...”

그 말에 다들 시선이 아리아에게로 향했다. 굳이 꼬인 시선으로 보지 않아도 이 상황은 결코 고운 시선으로 볼 수 없는 분위기였다.

[야야... 얼른 전기찜질해...]

<...아까 하지 말라면서요.>

[성검으로 반으로 갈라져 죽는 것보다야 낫잖아.]

현자는 저 주정벵이가 더한 말을 할까봐 걱정됐는지 차라리 기절시키라고 권유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사유가 잔혹 살해 방지인 게... 조금 기가 차면서도 묘하게 납득되었다.

“...야야... 네 여친이...”

“그니까 그런 게...”

평소처럼 딘의 말을 부정하려던 순간, 레오의 눈은 아리아의 시선과 마주쳤다.

그녀의 눈은 구름 한 점 뜨지 않은 하늘의 호수처럼 고요히 정면을 향하고 있었다. 그것보다 햇빛이 반사되고 산란하여 빛나는 호수가 아닌, 달과 별마저 구름에 가려져 탁한 색만이 남아있는 눈빛이었다.

차가운 냉기가 시선과 섞여 시야 안의 세상에 퍼져나갔다. 마치 회귀 전의 아리아스필의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얼른 냉동이라도 시켜!! 저러다 진짜로...]

현자가 옛 친우의 후손을 살리기 위해 발악을 하는 순간, 저벅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정확히는 그런 착각이 들었다. 아리아스필의 앞으로 저벅거리며 걸어왔기에 그런 소리가 난다고 정신이 멋대로 착각해버렸다.

사실 아리아스필의 발걸음에는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수면을 걷는 물새처럼 무심하면서도, 조용히 다가왔다.

왠지 모르게 두려웠다.

차라리 평소처럼 섬뜩한 미소를 지으면서 영문도 모른 채 성검을 든 채로 날뛰는 게 더 낫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이내 거리가 1m도체 안될 즈음, 아리아는 말했다.

“그냥 업어드려.”

표정에는 미동 하나 없었다.

“상황 정리해야 하니까.”

얼굴에는 분노 한 점 보이지 않았다.

저건 연기도 뭣도 아니었다.

그녀의 진심으로 아무런 감정도 품고 있지 않았다.

[...어?]

현자가 제일 먼저 당황했다. 따지고 보면 레오의 옆에서 그 질투심에 어린 칼부림을 직관한 사람은 현자였으니 말이다.

“...어...어?”

그 다음은 딘이었다. 오래 보지는 못했지만, 사람의 성질이 저렇게 몇 분만에 급변하는 것은 듣도 보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 예언쟁이가... 곱게 죽진 못할망정... 애를 저렇게...”

아누스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무슨 예언을 해줬는지 아리아는 거의 해탈한 경지로 초연히 이 상황을 받아들였다.

본래라면 너무 초연하기는 할지라도 이게 정상이긴 했지만, 아리아스필의 경우에는 극단적인 비정상에 가까웠다.

“...어...아리아...?”

크리스도 이런 비정상적인 분위기에 어느샌가 술이 깨어버렸다. 차라리 숙취에 계속 잠겨있었다면 자신들이 만들어낸 끔찍한 지옥을 실시간으로 감상할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됐을 텐데 말이다.

“...으헤헤...”

유일하게 눈치없게 있는 것은 이 총체적 난국을 만드는데 일조한 한 멍청해진 마법사 뿐이었다.

“...예? 아가씨...?”

“업어드리라고. 어차피 데려가야 하잖아.”

정론이었지만... 평소와는 전혀 다른 태도였다. 레오마저 눈치챌 정도였다.

“그래도...”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해.”

아리아는 차갑게 식은 눈동자를 반대 방향으로 돌리며 말했다.

“...처음부터 내가 참견할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애초에 자격도 없었지. 생각해보면 항상 자기멋대로였어. 난...”

“...아...아가씨...”

그렇게 말하며 아리아는 크리스를 부축하며 거리를 천천히 벗어났다. 크리스의 뻘쭘한 표정과 거리의 사람들이 지은 경악스러운 표정은 전혀 신경쓰지 않은 채.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인파를 피할 장소를 찾아갔다.

[...너...]

“예.”

레오는 오러로 말하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 피부가 무슨 종이마냥...]

“예.”

창백하다는 얘기를 듣기도 전에 레오는 답했다.

[...아니, 그보다 땀이...]

“예.”

이젠 그냥 땀을 홍수처럼 흘리는 것만큼 반사적으로 대답하는 지경이었다.

“...레오, 너 괜찮...”

“가자.”

레오는 허탈한 표정으로 아리아를 따라갔다. 그 표정은 원로원의 몰살을 끝내고 밖에 내리는 눈을 맞을 때의 얼굴보다도 암울했다.

“...아니... 그보다...”

딘은 레오의 손이 잡고 있는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어설프게 잡은 채로 지면에 끌려있는 인간과 짐승의 경계에 있는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으아...아...아아...”

“...그래도 제대로 들어드리는 게 낫지 않을까?”

레오는 에일린의 팔만 붙잡은 채 그대로 바닥에 질질 끌고 가고 있었다.

“...알았어.”

레오나르도는 아예 손을 떼고 바람 마법을 썼다. 그러자 에일린은 거의 뒤집어진 채로 공중에 부양했다.

“...차라리 손으로...”

“싫어.”

레오는 허공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젠 뭐든 싫어졌어.”

예언을 들은 저 둘이 저런 상태가 되자, 딘과 아누스는 속으로 같은 결심을 했다.

그 예언쟁이가 아직 안 연옥에 안 떨어졌다면 산 채로 화장시켜주고, 당장 지옥에 떨어졌다면 장례식으론 분명 퇴비장(堆肥場)으로 해서 거름통에 처넣을 거라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여담]

“...그래도 가보지 그래? 이제 네 늑대 손자가 올 텐데.”

“이 우라질년이 자기 멋대로 불러놓고 똥을 쳐 싸질러놓고선 할 말이냐?”

아누스는 에언쟁이의 뻔뻔한 태도에 열이 뻗쳤는지 계속해서 역정을 쏟아내었다.

“그런 것치고는 아직 한번도 안 때리네?”

“...어차피 이미 죽기 직전인 게 보이니까 그런 게지. 착각하지 마라.”

정령사인 아누스는 알고 있었다. 그녀의 영혼이 지금 계속해서 새어나가는 것을.

그건 강제로 인과를 거스르며 자신이 끊어지는 명줄을 억지로 붙잡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처음 생각했던 노환이 아닌, 투병에 가까운 죽음이나 다름없었다.

“...그럴거면 곱게 죽지 그랬어. 그럼 아주 깊게 묻어줄텐데.”

“...미안해. 여러모로.”

“됐으니까 닥치고 이거 먹고 뒈져라.”

아누스는 그렇게 말하며 술병을 내려놓았다.

“알았어. 그 전에 염치불고하고 한 마디만 더 해도 될까?”

“염치가 있는 것마냥 말하는군.”

“그렇지. 이 이야기에서 난 분명 틀림없이 꼴도 보기 싫은 조역일 거야. 그래도...”

예언가는 눈을 깔며 말했다.

“...사과 정돈 하고 싶었어.”

“...개썅년 같으니라고. 그렇게 미안하면 렌이나 어딨는지 대답해. 매번 안 보인다고 쳐말하지 말고.”

아누스가 예언가과 만날 때면 누누이 묻는 내용이었다. 렌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단서가 잡히면 좋으련만 그럴 때마다 예언가는 ‘보이지 않는다’로 일관했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에도, 마치 투명인간처럼 말이다.

“...그것도 미안해.”

“...쯧...”

아누스는 혀를 차며 자리를 떠났다.

텅 빈 공간, 예언가는 데킬라의 붉은 병을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그 마왕이라는 것도 보지 못했지.”

그녀는 한숨을 쉬며 술병의 마개를 땄다. 변명 같겠지만 그녀 처지에서도 답답한 건 마찬가지였다.

적어도 생명체의 개념에 속해 있으면, 원치 않아도 사소한 미래라도 보일 텐데.

과거의 렌과 미래의 마왕

이 둘이 유일하게 그녀가 억지로 보려 해도 보지 못한 이례적 존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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