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라면 레오나르도를 포섭할 마음은 이미 접었다.
찻집에서 그렇게 즉각적으로 거절당한 순간,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완전한 라인하르트의 편이었다.
고작 그 10대 초반의 기사는 자신이 만난 어떤 인재보다도, 자신의 가문에서 일하는 어떤 부하조차도 그런 굳건한 마음으로 조직에 충성하는 경우는 없었다.
특히나 용병과 같이 사회의 밑을 보고 온 자일수록, 우직하게 노력해 올라온 이일수록, 신뢰와 충성은 허울뿐이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호의와 신뢰는 그저 이해타산이 맞기에 형성되는 개연성에 불과하다. 결국 그런 감정에는 필연성 따위는 없다.
그렇기에 기사들이 으레 외치는 충의이나 의리는 보기가 역했다.
결국 그들도 이익에 움직이는 인간에 불과했으니까. 의리와 인정은 그저 자기위안을 위한 위선에 불과하다.
그렇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저 소년은 어떤가.
어떤 유혹이 제의해도 배반하지 않는다.
이미 자신 이외에도 각 마법사, 그리고 조직들에서도 그를 포섭하기 위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전부 레오는 전부 거절했다.
한번도 망설임 없이 단칼에.
하물며 위험에도 굴복하지 않았다.
실제로 마인 제하드를 단신에 잡고 부상을 입었음에도.
자신의 모시는 이를 위해 몸을 날리기까지 했다.
자신의 부하 중에서 그럴 인물은 얼마나 될 것인가.
그걸 넘어서
어째서 저 소년은 그 가문에 모든 걸 쏟아부으는가.
그게 에일린 템페리우스라는 마법사에게는 전혀 이해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는 행동이었다.
지나치게, 그리고 지극히 이상적이었으니까.
***
“...많이 놀란 눈치로군?”
에일린은 술집에서 시킨 맥주를 가볍게 마시며 말했다. 대외적으로는 와인과 샴페인을 즐기는 걸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 그녀에게 술은 그저 식용 알코올에 불과했다. 당초에 그녀는 주류를 그리 애호하지도 않았다.
취하는 것으로 두뇌 회전이 둔해진다는 것이 이유였다. 지금도 그저 입을 대었다 떼었을 뿐, 마신 양은 한 모금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술집을 찾은 이유는 그저 많은 인파와 소음 속이라면, 테이블 주위에 방음 마법을 설치해도 그리 위화감이 생기지는 않은 것에 있었다.
“...쉽사리 믿기는 어려운 이야기니까.”
크리스도 믿기 어려웠는지 시킨 맥주를 살짝 들이켰다. 무의식적으로 긴장을 풀기 위해 음료를 마신 것이었지만, 술의 떫은맛을 느끼자마자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을 간신히 참아내야 했다.
동료나 후배 기사들에게는 허세로 음주에 강한 척을 했지만, 크리스는 음주에 그리 강하지 않았다. 독에는 제법 버티는데도 말이다.
술이라는 것은 독과 다르게 분위기에도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는 것을, 크리스는 아직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믿기 힘들다면, 그 기록들을 복사해 보여주도록 하지.”
“레오와 한 약속을 제법 간단히 어기는군?”
“원래 비밀과 약속은 이런 곳에서 쓰라고 있는 거 아닌가?”
에일린의 능청스러운 말에, 크리스는 혀를 찼다.
역시 마법사는 불쾌하다는 의사를 나타낸 나름의 표현 방식이었다.
“왜 그러지? 건더기 하나 없는 맥주가 이에 끼기라도 했나?”
“타인을 불쾌하게 만드는 게 그렇게 유쾌한가?”
“그럴 리가. 그저 물어본 것일 뿐이지.”
퍽이나, 라는 표정으로 크리스는 에일린을 노려보았다.
“그래서, 이제야 내 말을 이해했나?”
에일린의 말에 크리스는 다시 고민에 잠겼다.
그녀 말대로 자신을 포함한 가문의 일원들은 레오나르도가 뒤에서 벌인 사투를 모른 채, 그에 대한 보상도, 명예를 칭송하지도 않았다.
이는 지탄받아도 부정할 것이 없는 사실이다. 무지만큼 무능한 잘못도 없으니까.
“그래, 동기는 이해가 되는군. 하지만...”
하지만.
“그걸 너에게 욕을 들어야할 이유는 없지. 레오나르도 본인이라면 몰라도, 결국 너도 지금 대화에 주도권을 잡기 위해 그 사실을 숨기다가 지금 꺼낸 것이니까.”
에일린은 초연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조금 놀라 당황한 기색을 숨기고 있었다.
늘 허세와 겉멋을 잡기에 다들 망각하는 사실이 있지만, 크리스는 집행기사단의 1번대 대장으로서 기본적인 기사의 업무는 물론, 가문 내의 배반과 외부의 공격에 집행하는 심판자였다.
고로 이성과 논리로 생각하는 방식은 기사단 내에서도 뛰어났고, 추리력과 판단력도 레오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오히려 회귀 전에는 레오에게 가르쳐주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저 너무나 아름다운 비상식에 겉멋이 자리를 잡았고, 마음이 너무나 깊은 동심에 박혀 있어 상식에 아주 약간 뒤떨어질 뿐이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인가?”
하지만 아예 상정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좋다. 몇 걸음 양보해 인정하지.”
“인정을 상당히 재수없게 하는군.”
심심한 도발이었지만, 나름 먹혔는지 에일린은 다시 맥주를 들이켰다. 이번에는 한 모금은 확실히 넘겼다.
“라인하르트가 레오나르도라는 인재를 어떤 자리에 놓고, 어떻게 쓰는지 감상한 결과, 이또한 꽤나 통탄스럽더군.”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용사의 전속 기사가 하찮은 직책이라 말한다면 그 명예를 모독한 책임을 감수해야할 거다.”
크리스는 진심으로 살기를 드러내며 검 손잡이를 잡았다. 이는 라인하르트를 넘어 용사를 모독하며, 자신의 조카인 아리아를 모독하는 언행일 수 있었다.
“명예라... 그래, 그 고결하고 고상한 명예가 그렇게 중요할 수도 있겠지.”
에일린은 그런 말이 너무 전형적인 나머지, 반대로 불쾌하다 생각해버렸다.
“...명예가 하찮다 말하는 건가?”
“명예가 하찮다...”
에일린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레오에게 들었던 말이 떠올랐던 까닭이었는지, 이내 말의 내용을 변경했다.
“적어도 실리를 추구하지 못한 명예는 하찮지. 아주 역겨울 정도로.”
이것도 그녀의 선에서는 많이 온건하게 발전하고 순화되었기에 나온 화법이었다.
“덤으로 명예와 도리를 버리고 추구한 실리는 저열하다는 걸 알아뒀으면 좋겠군.”
크리스가 꼬듯 정론으로 비꼬자, 에일린은 헛웃음을 내었다.
“...그래, 인정은 하지. 그 남자를 보면 인정할 수밖에 없거든.”
“...레오나르도 말인가.”
에일린이 레오나르도에 끌렸던 것은 단지 광기에 가까운 정신력과 충성심을 가졌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는 밤에는 흑마법사와 마인을 사냥을 하면서도, 낮에는 지극히 우등생의 생활을 이어갔다.
그것도 청탑주의 딸인 플라투스로 인해 마탑 내 전체에 모욕적인 오해가 생겼어도.
스스로 약속했던 바를 지키며 레오나르도는 자신이 해야할 일을 이어나갔다.
어느 날, 에일린은 물었다.
-교내에서 너에 대한 불순한 소문이 돌고 있던 데, 알고 있나?
그것도 나름은 용기를 내어 물은 것이었다. 레오가 원한다면 협력해줄 의사도 있었고 말이다.
-플라투스 선배에 관한 이야기입니까? 그건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레오나르도는 그런 상황에서 그저 그렇게 말했다. 억지로 마음을 감추는 것도 아닌, 마치 갑자기 내린 소나기를 보는 사람처럼 무심히 대답했다.
-이유를 물어도... 되겠나?
에일린은 그때 진심으로 걱정되는 마음으로 물었다. 따지고 보면 레오는 그들을 포함해 사람들을 돕기 위해 뒷세계에서 손에 피를 묻혔다.
단지 피를 묻힌 것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에 피로를 쌓고 쌓으며 적들을 척살한 것이니.
‘...정신적인 충격이 심할 테지.’
그런 노력을 남모르게 했음에도 이런 식으로 모욕을 당하고 음해로 몰아진다면 정신이 틀어져 탈선할 가능성도 있었다.
-이미 해명은 했습니다. 그럼에도 믿지 않는다는 건, 그저 절 혐오할 명분이 필요할 뿐이죠. 전 저를 싫어하려고 기를 쓰는 인간에게 이해받으려 노력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러면서 레오는 그 자리에서 밝게 웃으며 말했다.
“‘그럴 시간에 저를 위해준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인정받는 게 더 즐겁습니다.’라고 말하더군.’”
아마 삶에서 어지간한 해탈이나 깨달음에 경지에 이르지 않았다면 그런 말과 미소는 보이지 못할 거라 에일린은 확신했다.
이윽고 시간은 제법 지나, 레오나르도는 빠르고 자연스럽게 인망을 회복하고 성장시켰으며, 이내 반공식적으로나 작은 마탑주라는 별명의 ‘소탑주’라는 별명도 얻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그때가 마침 ‘무예와 마법의 아리아’라는 작명 실력 이외에는 전부 경이로웠던 고유 마법을 완성했을 터의 일이었다.
“...어째서 가문에 연락은...”
“아인에 대한 판결에서 얻은 이야기로도 아직 학습하지 못한 건가?”
레오나르도가 가문에게 어떤 행보를 보이고, 무언가를 숨기며,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는지를 말이다.
“라인하르트에 레오나르도라는 기사를 얻은 건 틀림없는 득이겠지. 하지만...”
에일린은 레오나르도와 아리아스필, 그리고 라인하르트와 엮여져 있는 복잡한 인과관계를 몰랐다. 시간대마저 넘어서며 이어진 모순의 유대를 몰랐다.
“레오나르도가 라인하르트와 만난 건 과연 득이였을까?”
그녀는 단지 지극히 상식적이며, 무지했을 뿐이었다.
“...이런 말이 생색이 될 수도 있겠지만, 가문, 그리고 우리도 우리 선에서 레오에게 도움이 되게 노력하고 있다. 그저 우리가 레오에게 아직 의지되기에...”
크리스도 말하면서 나름의 죄악을 느꼈다. 결과적이지만 지금의 가문은 레오에게 그다지 도움이 되는 존재는 아니었다. 오히려 레오가 홀로 독립한다면 가문이 휘청일 정도로 말이다.
“즉시 가질 수 있는 교수직도, 이미 보장된 마탑주의 자리도, 하물며 재편성된 마도 처형자에서 대장 직책을 주는 것도 거절했지.”
자신의 약혼 제의나 각종 선물들과 표현마저도 하나 같이 선을 그으며 안 받기를 바빴다.
하나 같이 이유는 ‘라인하르트에 돌아가 아리아스필을 보좌하기 위해서’였다.
“그래, 레오나르도의 태도로 봐선 기사단을 꾸리거나 교육자에 정식적으로 있지는 않겠지.”
마탑에서도 어디까지나 비공식적으로 마법사 간의 일에 협력해준 것에 가까웠고,
그리고 레오나르도의 우선순위에서 영원한 1순위는 용사 아리아스필 라인하르트라는 것도,
불쾌하고 이골이 날만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적어도 제대로 된 대우를 하는 게, 인간적으로 명예로운 일이잖나... 아닌가?”
술기운 때문인지 에일린은 조금 경악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너는 우리보다도 더 심한 것 아닌가? 결국 레오나르도라는 존재가 유용하기에 자기 수족으로 두겠다는...”
“...그래!!”
지금 크리스가 한 말에는 도발의 의사는 없었다. 그저 에일린의 태도가 모순되었기에 반론으로 지적한 것일 뿐이었지, 조롱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그 말은 에일린의 역린을 제대로 건드렸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도...! 혈압으로 기절할 정도로 이해가 안 가더군...!”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계기는 확실하기는 했다.
자신이 마탑의 감찰로 잘라낸 마법사들이 복수로 자신의 차에 독을 타고, 직접 암살하려고 했을 때.
그 상황에서는 자신을 도울 사람은 없었다. 자신이 운영하는 찻집은 소수의 사람만이 아는 개인적인 공간이었고, 이를 알았던 지인 중 한 명이 자신을 배신할 거라고는 그녀조차 간과하고 있었으니까.
-음식에 지랄하면, 발광할 때까지 처맞는다고 마탑에서 안 배웠습니까? 아, 안 배워서 쫒겨난 건가?
그렇게 조롱하며 순식간에 그 마법사들을 제압했다. 부상에 마비까지 당했음에도 그런 유려한 솜씨에 그녀는 진심으로 영혼이 매혹되는 것을 느꼈다.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자신에게 포션을 주며, 레오나르도는 물었다.
-...고맙군... 그보다 여기를 어떻게 알았지...?
레오는 태연히 추리한 방법을 설명했다.
-평소라면 1분도 늦는 걸 용납하지 않는 에일린 선배가 14분 늦는 것도 이상했고, 그날 학회 시간 변경 공지로 적힌 필체에 숫자 1이 2획이 아닌, 1획만을 쓴 게 이상하더군요. 그래서 혹시나 해서 이곳에 와봤는데... 맞게 온 것 같군요.
-...그걸 전부 기억하고 있었나?
에일린조차 의식하지 못한 습관을 레오는 당연하다는 듯 알아챘다. 그걸로 자신을 구해주기도 했고 말이다.
-그럼요. 여기서 좋은 차를 대접받은 것도 마침 기억나더군요.
그렇게 말하며 레오나르도는 혹시 모른다는 이유로 주변에 적이 있는지 잠시 망을 보며 확인했다.
자신에게 득이 될 일은 그다지 없음에도 말이다.
그 사이에 마비가 풀린 에일린은 포션병을 집어 직접 들이켰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는 포션병에 적힌 약품의 이름을 보았다.
[불사조의 엘릭서]
자신이 선물해준 불사조의 심장을 갈은 엘릭서, 그 최고급 엘릭서를 망설임 없이 다시 자신에게 사용해주었다.
어째서일까, 그 뒤로 레오를 볼때마다 심장의 박동이 빨라졌다.
그 감정이 무엇인지는 에일린 본인도 어느정도 감은 잡고 있었지만.
이런 뜨거운 감정은 진심으로 처음 느꼈기에 그런 것이라는 걸, 에일린은 완전히 납득하지 못했다.
“...나도...! 조금은...”
시야에 있기를 원했다.
에일린 자신도 우선순위에 존재하고 싶었다.
“...하지만...결국 단념했다. 레오가 진심으로 몸과 마음을 바친 인물이 누구인지를 아니까...!”
아리아스필에게는 질투나는 것이 많은 존재였다.
그 레오조차 그녀에게 심히 질투했으니까.
하지만 에일린이 유일하게 질투한 것은 단 한 가지 뿐이었다.
“하지만, 레오에게 온 보답은 뭐였지...!?”
“...어...”
크리스는 뭔가 대화의 초점이 심히 어긋났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너희 라인하르트가 진심으로 레오의 행복을 바랬다면...! 적어도 그 잘난 용사와 이어주는 노력이라도 보여줘야 하지 않나!?”
흡사 아리아가 집착과 질투로 오해하는 것과 같은 광경.
“...저기, 뭔가 오해가...”
“아, 그래...!! 그 집착 많은 용사가 밀어내지는 않았을 테지...! 그럼 당연히 너희를 의심하는 게 순리지 않은가!? 그렇게 용사의 혼례를 성공가도로 이용하고 싶었나?! 레오는 어차피 충심 때문이라도 가문에 계속 있을 테니까!?”
...크리스는 있지도 않은 고혈압이 생겼는지 뒷목과 미간을 붙잡으며 한숨으로 심호흡을 했다.
“...오해가 심해 최대한 여러 번 말할 테니, 한 번이라도 제대로 들어주게.”
호흡을 마친 크리스는 에일린에게 현 가문이 아리아스필과 레오나르도를 장래에 어떤 관계가 될지 논의하는 것과.
레오나르도가 얼마나 연애에 관해서 눈치가 무식한 지를 아주 자세하고 섬세하게 설명했다.
그 배려는 마치 하해와 같이 넓으며, 와인을 글라스에 옮겨 숙성하듯 부드러운 설명이었다.
레오의 정신 상태가 거의 밑바닥을 넘어 떠먹여준 것을 토해낸 수준으로 말이다.
설명을 들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에일린은 부정하고 싶은 나머지 몇 번 항변하다가 그 충격적인 반전에 절망해 과음을 해버렸다.
이윽고 알코올에 절여진 뇌는 이성의 힘을 잃고 그대로 기억은 끊겨버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여담]
크리스도 답답한 나머지 과음을 했고.
그대로 필름이 끊겼다.
그 후 장면들을 본 레오는 뒷목을 잡았지만, 어쩌겠는가.
[어차피 다 지 업보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