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락가 알레오에서 흑암의 기사와 대마법사가의 영애가 격돌하기 약 1시간 30분 전.
“...아무리 생각해도 환락가에 그냥 보낼 순 없지.”
흑암 크리스 라인하르트는 환락가에서 아리아와 레오나르도를 뒤쫓아 미행을 하고 있었다.
이는 가주인 글라디오의 부탁도 있었지만, 크리스 그녀로서도 어린 두 기사들이 이런 환락가에 물드는 것을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
자신도 예전에 환락가에 한번 시험 삼아 가본 적이 있었다.
물론 유흥을 즐기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자신이 찾는 매물이 경매장에 나온다는 소문을 듣기도 했고, 차가운 도시 기사로서 냉혹한 사회를 경험하기 위해서도 있었다.
‘...그때만 생각해도 악몽 같군.;’
있지도 않은 영험한 기운이 있다는 ‘파워 스톤’이나 ‘게르마늄 아뮬렛’에 돈을 낭비하거나, 한쪽 귀가 없는 노름꾼과 고니의 모습을 한 수인 타짜에게 호구로 낚여서 돈을 탕진하다 대판 결투를 벌인 걸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이 돋았다.
‘...분명 여기서 꺾어져서...’
“라인하르트의 흑암이 이런 음험한 취미를 즐기고 있는 줄은 몰랐군. 놀라워.”
파앙!!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크리스는 손을 내질렀다. 주먹을 쥔 것도 아님에도 방어막과 부딪친 손은 거의 메이스 같은 충격음을 내었다.
“이거 참, 놀라서 방어막을 두 겹이나 깨먹는 사람은 또 처음 보는군.”
그럼에도 다치지 않은 대마법사의 여식은 피식 웃으며 크리스를 비꼬았다. 눈빛으로 봐서는
“...아까의 무례로는 부족했나? 에일린 템페리우스.”
마찬가지로 에일린이 불쾌했던 크리스는 경계 태세를 취했더니 검집에 든 칼 손잡이를 잡아 쥐었다.
“부족한가를 정말로 묻는다면 그렇긴 하지. 하지만 난 그보다 흥미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너에게 사람 속 긁는 것보다 흥미가 있는 게 있을까 싶군.”
오가는 서로에 대한 도발이 이어지는 광경, 스포츠의 트래쉬 토크를 보는 듯한 난폭한 토론이었다.
“물론 있지. 네가 미행하고 있는 내 후배라던가?”
“지금도 속을 긁는군. 그리고 미행이 아니라 경호다.”
“경호라, 내 생각엔 레오나르도가 너보다 경험과 판단력이 좋은 것 같다만.”
그 말이 납득되면서도 한편으로 불쾌했는지 크리스는 [얼터 블레이드]를 잡아뽑았다.
“남을 폄하하면서 칭찬을 하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군.”
“칭찬이라면 고맙지만, 난 사실을 말했을 뿐이야.”
에일린은 크리스의 약을 올리기라도 하듯, 요염하게 상자 더미 위에 요염하게 앉았다.
“분명 사용인들 얘기로도 대련을 했을 때, 넌 패배했다고 했다고 들었다만?”
사용인들이 조금 나눈 잡담으로 이미 상황을 파악한 에일린이었다. 그 적은 정보로는 크리스의 생각 회로는 전혀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패배했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성장을 위한 밑거름이 되어줬을 뿐이다. 그걸 그렇게 조롱의 의미로 쓰다니, 이해타산 밖에 모르는 마법사로는 이해할 수 없는 개념인가?”
사실 아주 약간은 진심으로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대련일 뿐, 생사가 오가는 결투는 아니었다.
고로 자신은 결코 패배한 게 아니었다.
“하...하하하하하...!”
그러자 에일린은 크리스를 향해 웃음을 내었다. 조롱의 비웃음조차도 아닌, 진심으로 기가 차서 나오는 웃음이었다.
“...뭐가 웃기지?”
설마 자신에게서 허세의 기미가 조금은 보인 것일까, 크리스는 일부러 얼굴에 험상궂게 힘을 주며 물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나? 봐준 건 자신이라고?”
“내가 진심으로 한 것처럼...”
“레오나르도가 진심으로 하면, 집단 하나를 몰살시키는 건 2주면 충분해. 그게 설사 라인하르트할지라도 말이야.”
에일린의 말에 크리스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너무 어안이 없어질 만한 이야기를 정말 간단히 설명했기에 대답할 언어 능력이 잠시나마 마비되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말이지?”
크리스는 분노하기 이전에 이해할 수 없었는지, 확인삼아 물어보았다.
“아, 부정하고 싶은 건가? 라인하르트는 그리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고.”
“...그 전에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개인이 집단을 무너뜨린다니...”
개인이라는 말에 에일린은 또다시 웃음을 내었다. 이건 의심할 것도 없는 비웃음이었다.
“하, 이제야 알겠군. 그 많은 걸 언론에도 통제하더니, 가문에조차 숨긴 것인가?”
“아까부터 도대체 무슨...”
“약 4년 동안, 마인 46명, 흑마법사 63명, 그리고 연류 마약 및 납치 범죄자들은 세기조차 힘들군. 그들을 포함한 뒷세계의 조직들을 네 차례나 궤멸시킨 자가 누구라고 생각하나?”
에일린은 지금 생각해도 믿기지 않았다.
그렇게 압도적으로 비정상적인 성공률.
그리고 동시에 그들을 추적하며 파멸로 몰아간 과정들까지도.
하지만 반대로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 무지막지한 과정들을 전부 곁에서 협력하면서 직접 두 눈으로 똑똑히 새겼으니까.
“...그건... 설마...”
“눈치채는 게 둔한 건지, 레오나르도가 지나칠 정도로 숨기는 것인지 의심되는군. 지금은 우선 후자라고 생각해두지.”
레오나르도가 마탑으로 잠시 간 것은 단순히 공부와 마법 연마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우선 이곳에서 오래 얘기할 수는 없으니, 자리를 옮기도록 하는 건 어떤가?”
“내가 너의 의견을 따라야할 의무는 없다.”
“그럼 레오 일행에 합류하겠나? 난 상관없다만.”
에일린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크리스 입장에서도 에일린이 그러는 것은 전혀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분명 죽이겠지.’
자신과 에일린의 사지가 성검에 찢기는 꼴만큼은 면하고 싶은 크리스였다.
“하지만 널 제압하고 가는 것도 선택할 수...”
“아, 그리고 따라온다면 이곳 경매에서 우연치 않게 얻은 전설의 벰파이어 헌터인 헬싱의 펜던트를 주도록 하지. 대흡혈귀용 마법으로 연구 중이었는데, 이건 딱히 의미있는 마법은 걸려있지 않더군. 그러니...”
생각해보면 에일린을 만나지 않게 하는 것만으로 자신은 충분히 경호의 의무를 다하는 것일 거다. 에일린의 말대로면 레오는 처음부터 경호가 필요없는 인물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러니 자신이 롤모델이나 다름없는 헬싱의 목걸이를 받는 것은 어디까지나 덤인 이유였다.
자신이 에일린에게 말려든 것은 레오가 숨긴 과거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위해서지, 절대 존경하는 벰파이어 헌터의 목걸이가 탐이 나서는 아니었다.
***
레오나르도가 마탑에 도착한 지 갓 6개월이 넘었을 무렵의 일이었다.
‘마도 집행자의 일을 달라는 건가?’
사교회나 파티에도 얼굴을 내밀지 않고, 묵묵히 도서관과 연습실에 박혀 마법 공식을 계속해서 익히며, 마법 수련에만 전념하던 레오나르도가 에일린을 직접 찾아가 처음으로 한 부탁이었다.
‘템페리우스 가엔 즉결 처분권도 줄 능력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가능합니까?’
마도 집행자, 신전의 이단 심문관이 있다면 마법에는 마도 집행자가 있었다.
마탑에서 흑마법사가 많이 배출된다는 논란이 있어 치안국에서 설립한 마법사 형태의 처형자였다.
대외적으로는 마탑에서 배출된 흑마법사를 잡는 것은 같은 개념에 있었던 마법사가 유리하다는 이유였으나, 사실 내부적으로는 마탑의 흑마법 논란을 잠재우고, 견제할 다른 마법사를 집어넣을 합법적인 유배지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 일을 맡기는 건, 상식적으로 전혀 말이 되는 일이 아니었다.
고작 10대 중반을 갓 넘긴 젊다고도 못할 소년에게 그런 일을 맡기는 것은 거의 죽으라 말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가능은 하지만, 조건이 있다.’
하지만 에일린은 레오를 우선 믿어보기로 했다. 어차피 레오 입장에선 유용한 권리가 있는 일도 아니었고, 태반의 마법사들은 기피하는 직종이기 때문이었다.
‘우리 가문에 소속된다면 더 좋은 대우를...’
‘그럼 다른 데를 알아보겠습니다.’
결국 에일린은 레오에게 그 일을 맡겨주었다. 그곳에 인력난이며 낭비가 심한 것은 사실이었고, 감각적으로는 직업 체험에 가까울 거라는 에일린의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 보고서입니다.’
그리고 10페이지에 꽉 찬 체포 및 사살 성공이 된 흑마법사와 마인들의 이름들을 보자 에일린은 아예 일을 주는 수준이 아니라, 비공식적으로 레오를 마도 처형자로 고용했다.
“...그걸 우리에게 말 안 했다는 건가?”
“나도 놀랐지. 레오의 말내용은 마치 가문에 극비의 임무를 받아 보고한 것 같았거든. 그러면서도 교묘히 확답은 안 한 것을 생각하면 조금 무섭긴 하군.”
생각해보면 리오스가 마탑에 올 때마다 실눈으로 이상한 소리를 밥 먹듯이 하니 에일린의 눈에는 실 속내를 숨긴 수내부가 아닐까 착각한 것도 있었다.
“그 정도의 일을 해놓고도 어째서 언론에 한 번도...”
“그것도 레오나르도의 판단이었다.”
레오나르도가 잡은 흑마법사들과 마인들, 그리고 소속된 조직들은 전국적으로 피해를 주었던 흉악범.
아마 체포와 사살에 성공한 것만으로도 공으로 인정되어 명예와 포상은 기본적으로 수여되고 잘하면 여러 인맥을 쌓고 지위도 얻을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레오는,
-저에 대해서는 비밀에 부치거나 협력한 이만 기사에 실어주시죠.
대부분의 공로를 타인에게 돌리거나, 비밀리에 처리한 것으로 최소한의 보상만 얻어가는 전략을 택했다.
분명 받은 금액은 거금이었으나, 레오의 지능과 지략을 생각하면 더욱 많은 명예와 부를 축적하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다.
“...‘어째서’라고 생각하지?”
“...그건...”
크리스에게도 납득이 되지는 않았다.
그런 공을 세우면 아무리 겸손한 사람도 자랑스럽게 말하기 마련이다.
그걸 본인 쪽에서 감추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았다.
-제 이름이 팔리면 추적하는 건 힘들고, 저에게 원한이 생긴 자들이 공격을 할 때 가문을 노릴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이외에도 이 행동은 제 독단에 가까우니 가문에 득보다는 실이 가능성이 크니 감추고자 합니다.
크리스는 너무 말도 안되는 나머지, 입을 연신 뻐금거리며 상황을 판단했다. 그러니까 레오나르도는 대외적으로는 출중한 마탑의 학생이었고, 내부적으로는 100명이 넘는 흑마법사와 마인을 퇴치한 마도 집행자였다는 것 아닌가.
“잡은 과정도 거의 정신이 나간 수준이었지.”
마을에 각종 모기를 흡혈귀로 변환시켜 지정한 지역 전체를 구울로 만들어버리는 흑마법사가 있었다.
용의주도한 것은 물론이었고, 접근하는 순간 모기에 당하는 건 당연했으며, 만약 저격을 한다고 할지라도 그 자가 죽어 지역 전체의 벰파이어 모기가 퍼진다면 그것대로 문제였다.
“어떻게 잡았을 것 같나?”
“...그건...”
“나도 보고서를 봤을 때는 놀랐지.”
그를 추적한 레오나르도는 자신의 몸에 독극물을 주입했다. 보통 사람이라더 허약하다면 사망, 그리고 괜찮더라도 후유증이 있을 양이었다.
아마 레오나르도가 미리 독에 내성을 길러두지 않고, 치료제와 특수한 방식으로 독을 버틸 방법을 강구하지 않았더라면 분명 몸에 부작용을 줄 극독이었다.
“그리고 이산화탄소를 얼린 압축제를 자신의 주변에 뿌렸지.”
그러므로 당연하게 흡혈충은 레오에게로 몰려온다. 하지만 아무 흡혈충도 레오를 죽이지도 못 했으며, 역으로 모든 흡혈충은 그 자리에서 죽었다.
“자신의 혈액에 녹은 독을 마시면 체구가 작은 곤충은 바로 즉사하지.”
그것도 벰파이어의 특성을 지닌 곤충이라면 더욱, 그게 레오의 보고서에 적힌 설명이었다.
“그렇게 흑마법사 중의 거물은 잡혔다. 원리는 간단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경악스럽지 않나?”
직접 독을 섭취해 적을 쓰러뜨린다는 시점에서 에일린의 눈에는 미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것 뿐일까?”
다른 일도 말도 안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악천후 속에서 저격을 위해 24시간 동안 목표물만을 보며 활시위를 잡았다거나,
강제로 상대를 경직시키는 마안을 지닌 마인은 검은 돌을 아이언 메이든처럼 만드는 것으로 강제로 통증을 주며 움직여 잡았다는.
경외를 넘어 괴기스럽기까지 한 소탕 방식.
이걸 들은 크리스는 깨달았다.
“이걸로 내 기분을 조금은 이해했나?”
그렇게 뛰어난 인재를 두고도 라인하르트가 레오에게 맡기는 일을.
“무례하다 했나? 사죄는 하지. 하지만 철회할 수는 없어. 내 입장에선 그런 인재를 그렇게 대우하는 것이 실로 불쾌했으니까.”
에일린의 눈에는 레오나르도는 그저 전속 기사로 남기에는 아까운 존재였다는 것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여담]
“후배의 몸에는 어찌 이리 흉터가 많은가?”
“천한 몸에 무골이 약한지라 치료를 해도 흉터는 제법 남습니다.”
에일린은 준비해둔 약병을 꺼내오게 했다. 꺼낸 약을 가리키며.
“후배는 이 약을 알아보겠는가?”
“예. 이건 불사조의 심장을 갈아만든 엘릭서 아닙니까?”
“그렇다. 이 약은 최고급 엘릭서지.”
불사조의 엘릭서는 대부분의 상처를 순식간에 치료할 수 있는 명약이었다. 부작용도, 통증도 없어 구하기 힘든 희대의 영약이나 다름없었다.
“감사합니다.”
에일린은 레오에게 그 약병을 주었다. 엘릭서를 받은 레오는 두 번 인사하며 아주 좋아했다. 그러자 에일린이 묻기를.
“후배는 내가 약혼도 여러 번 제의하고 금은보화까지 주었는데 기뻐하지 않았지. 근데 약을 주니 이리 기뻐하는 이유가 무엇이지? 사람은 천하게 여기고 약을 귀히 여긴 이유를 알고 싶군.”
그러자 레오가 말하길.
“저는 마법에 계속 정진하고 있으나 안타깝게도 치유 마법에는 그리 능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 약이 있으면 아리아 아가씨가 중상도 입어도 옥체에 흉 하나 없이 치료가 가능하니 이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에일린은 그 뒤 침대에서 오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