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인자는 회귀했다-103화 (103/248)

남은 방계들의 추격을 받았고 제국의 추적도 받았다.

난 차례로 적을 섬멸했다.

토막 내 죽인 광전사는 말했다.

-넌....나보다도 미쳤구나...!

그래, 미치지 않고 배길 수 있을까.

미궁째 붕괴시켜 죽인 사령왕은 말했다.

-말도 안돼...! 고작 인간이 죽음의 공포마저 이겨냈다니...!

이겨낼 필요도 없었다. 처음부터 죽고 싶어서 이 짓을 하는 거였으니까.

부활한 고대의 악마는 죽고 싶을 정도로 고통을 주어 자살시켰다.

-내가...! 내가 기회를 주마! 인간...!! 실체가 있는 나라면!! 널 최강의 마인으로...!!

필요 없었다. 차라리 죽어도 상관없을 정도로 늙고 싶었다. 왜 나를 죽일 용사는 나오지 않는 것인가.

-설마...! 사냥꾼 헬싱이 다시...!!

뱀파이어의 군주의 살과 피를 모두 갈라냈을 때도.

-고작 인간이...!! 나의 혈청도 쓰지 않은 인간 따위가...!!

실험으로 쓰이다 되살아난 언데드 드래곤을 다시 묻었을 때도.

그래도 난 죽지 않았다.

예전에 날 치료해주던 루미네는 말했다.

{이제... 그만하시면 안 되겠습니까...}

[뭘 그만해야 하는데?]

{용사님도...! 이런 걸 바라지는 않았을 겁니다...! 더 이상 복수하는 건...!}

[...하...하하하하하하... 복수라...?]

난 분명 검을 겨누면서 대답했지.

“내가 정말 복수를 원했다면 전부 죽였겠지. 무능한 성인도, 빌어먹을 세상도.”

그 말에 루미네는 아무 말도 못했다.

{...당신은 아직 어둠 속에서 나오지 못했군요.}

[마치 이 세상에 빛이 남아있는 것처럼 말하네. 눈까지 먼 걸로 모자라서 대가리까지 멀었나?]

그렇게 말하며 난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잠깐만요...! 지금 자기 몸이 어떤 상태인지는 아시고...!}

[아, 차라리 더 망가져서 죽었으면 좋겠어. 마음에 안 들면 기도라도 해봐.]

신에게 새로운 용사와 성검을 내려달라고.

***

머리가 깨질 것 같다.

정보가 전부 뒤죽박죽으로 잡동사니처럼 엮여있다.

숨기는 게 있더라도 저런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이성이 말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도, 시간적인 개념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차라리 아까의 연기가 환각이라고 생각하고 싶을 정도로

끔찍한 기억들이 뒤엉킨다.

그리고 더 끔찍한 것은

아리아 자신은 그 기억의 조각들이 사실이라는 걸.

마음 속 깊이 납득하고 있다는 점에 있었다.

“일어났구나.”

연기는 어느샌가 걷히고 예언자인 노파는 다시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이 모든 게 환상인 것처럼.

그대로 조용하다.

“당신... 당신 도대체...!”

“우선 먼저 설명하자면, 이건 마약이나 환각제 같은 게 아니란다.”

그 증거라는 듯, 노파는 태연히 연기를 들여마셨다. 노파의 눈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과거의 파편을 끄집어낸 촉매지.”

“...과거요?”

하지만 그곳의 레오는 분명 지금의 레오보다도 나이가 많았다. 꼭 미래에 있는 것처럼.

“예언가는 미래만을 보는 것이 아니란다. 제대로 된 예언가는 미래를 보기 전에 과거를 보기 마련이지.”

예언가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호흡을 한 것처럼도 보였으며 또한 한을 내뱉은 것으로도 보였다.

“...그게 정말 있었던 일인가요?”

“그건 나에게 물을 것이 아니지. 물어볼 사람은 따로 있잖니?”

그 일침에 아리아의 눈이 떨린다.

그 기억들에 물었을 때, 레오는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 지.

그걸 아는 것이 사실 두려웠다.

“물론 모르는 척을 하는 것도 너의 자유란다. 분명 그러면 평소의 일상은 유지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건 분명 기만이다.

“...저한테 이걸... 보여준 이유가 뭔가요?”

“이유야 많단다. 하지만 대표적인 이유를 대자면...”

예언가는 짧게 대답했다.

“답답해서가 적절하지 않을까 싶구나. 그 사람은 나에게는 은인이고 희망 같은지라, 조금 답답했단다.”

아리아는 화가 나면서도, 왠지 모를 이해가 느껴졌다.

그 기억에는 그런 감정을 느껴도 이상할 게 없었으니까.

“...용사 아가씨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늙은이한테는 그리 남은 시간이 많지 않구나.”

노파는 조금 슬픈 눈을 하며 말했다.

“한 가지 충고하자면, 어둠을 두려워하지 말려무나. 우리는 빛에 희망을 보지만, 진정으로 쉴 수 있을 곳은 어둠 속 그늘뿐이었으니까.”

그 충고를 끝으로 아리아의 예언은 끝났다.

***

[일단 심호흡부터 하고...]

<닥쳐요.>

[...그래.]

레오나르도는 유례없이 분노한 표정으로 점집 안으로 들어갔다. 아마 그 분노는 원로원들을 몰살할 때 느껴던 격정과 필적할 정도였다.

[그래도 죽이지는 마라. 네 할머니 친구라며.]

<편히 자면 죽을 테니까 지금 일찍 자게 해주면 상관없잖아요.>

예언가가 자기 예언에 죽는 거니 불만은 없을 테지.

[...너 진심이냐?]

진심이고 뭐고 할 것도 없었다.

지금 자신은 그럴 걸 가릴 여지도, 여유도 없었으니까.

[하... 사실 난 이게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왜요. 저한테는 과거를 숨길 권리도 없습니까?>

이걸 지키느라 갖은 노력을 해온 것을 한 걸 생각하면, 자신이 열불이 나 참을 수 없었으니까.

[아니, 하지만 남의 미래를 기만할 권리는 없으니까.]

<...하...>

현자의 말투는 늘 경박하다.

하지만 종종 진지하게 날카로울 때가 있다.

그의 시야는 마음을 들여다보는 심안이고, 한편으로 예언 이상의 천리안이기도 하며, 본질을 꿰뚫는 통찰안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불쾌하게나마 믿었는지도 모른다.

<생명을 기만한 양반이 할 말입니까?>

[글쎄다. 피차 기만했으니까 서로 욕박는 거지.]

저 양반 때문에 화도 제대로 내지를 못 하겠다.

어차피 현자와 얘기할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점집으로 가는 거리는 몇백 미터도 되지 않았으니까.

걷고 걸을 끝에 레오나르도는 남의 비밀을 퍼뜨린 예언가의 앞에 다다랐다.

“오랜만이군요. 딱 맞춰 왔네...”

말이 멈추기도 전에 레오는 한 손을 펼쳐 마법진을 전개했다.

“공간을 단절했다. 아마 손톱을 뽑아내고, 손가락을 전부 뜯어내도 아무도 당신 비명 소리를 듣지 못할 거야.”

위협과 협박에도 예언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이미 알았다는 것처럼.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점집보다 좋은 마법이군요.”

“배려라고 생각할 필요 없어. 내가 편하게 쳐죽일 환경을 만들었을 뿐이니까.”

[뭐냐? 그 새침데기 같은 협박은?]

새침대기라는 개소리에 레오는 힐끔 현자를 노려보았다.

“괜찮습니다. 나름 상냥한 마음이 들어나는군요.”

[상냥은 얼어죽...]

현자는 예언자가 한 대답에 잠시 멈칫하더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현자님이 보인다고?”

“죽을 때가 됐으니 유령이 보여도 이상할 건 없죠.”

[그런가? 하긴 예견안을 지니고 있다면 가능할지도 모르지.]

태연한 목소리였지만, 현자는 사실 조금 놀란 눈치였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다고 해도, 예견안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자신을 볼 수 있는 자는 성녀 이상의 역량을 지닌 이가 아닌 이상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보아하니 돌팔이는 아닌가 보네.]

“영광스러운 평가로군요.”

예언가는 계속해서 자신들에게 높임말을 썼다. 마치 자신의 앞에 있는 존재에게 경애를 표현하는 것처럼.

‘...잡담은 할 필요가 없지.’

레오는 검은 돌로 얇고 질긴 와이어를 만들었다. 피를 튀게 하는 도검이나 둔기류의 무기는 암살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와이어로는 위협이 부족하니, 날카롭고 단단하게 검은 돌을 형성시켜 꼬챙이를 만들었다.

“내가 과거로 회귀한 걸로 알고 있나?”

“글쎄요. 확신하지는 모르겠군요.”

레오는 와이어를 휘둘렀다. 얇다고는 하나 경도는 그대로다. 그러자 옆에 있는 수정구슬이 양단되었다.

“...말장난할 기분 아니야.”

“저도 말장난은 하지 않았습니다.”

예언가는 구슬이 반으로 잘렸음에도 눈에 미동조차 주지 않았다. 고통이나 죽음은 그녀에게 유효한 협박 수단이 아니었다.

“단지 진심으로 확신이 서지 않다는 걸 말하고 싶은 겁니다.”

그녀는 잘린 수정구슬의 반을 회전시키며 말했다.

“당신은 자신이 회귀했다 생각하십니까?”

“...”

아마 이건 몇 번이고 몇백 번이고 의심했는지 모른다.

이 모든 게 그저 환상일지 모른다고.

자신은 그저 미친 나머지 거짓된 걸 찾는다고.

몇 번이고 의심했다.

그래서 처음 현자를 봤을 때는 일부러 속을 긁어대는 말을 몇 번이고 날려대었다.

그렇게 몇백 번이 넘는 정신 조작 마법을 뚫어냈으니까.

그리고 안심했다. 현자가 자신의 상상보다도 더 괴짜고 이해하기 싫은 인간이여서.

“...이게 전부 거짓이라고...”

“아니면 당신을 제외한 모든 것이 뒤로 되감아진 걸까요?”

잠시 입이 멈춘다.

협박용인 암기마저도 내려가진다.

“...하고 싶은 말이 뭔데?”

“특별히는 없습니다. 굳이 확답을 내리자면...”

예언가는 주름진 입술로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전 당신에게 무척이나 호의적이라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군요.”

“어째서지?”

하지만 당연하게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레오 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의심할 것이다.

호의라는 것은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는 사기 수단으로 유용했으니까.

“당신의 존재가 저에게는 무척이나 희망적인 존재거든요.”

“누가 보면 내가 용사인 줄 알겠군.”

“아니라는 법은 없지 않나요? 과거에도 당신은...”

카드가 두 장 날아간다. 고작 점술용 타로 카드가 날아감에도 양 볼의 피부가 베이고 머리카락이 찢긴다.

“...그럼 그 호칭에 내가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도 알 텐데.”

“그럼요. 저 던진 카드가 [12번의 매달린 남자]인 것과 [21번의 세계]라는 것을 아는 것처럼요.”

희생과 맹목의 상징인 ‘행드맨’과

완전과 불완전의 상징인 ‘더 월드’라,

노렸다면 비꼬는 것도 수준급이군.

“...말을 돌리지 마. 내가 묻는 것에 대답해.”

“제가 어째서 그때 당신에게 밀가루를 팔았는지 아십니까?”

노파는 분명 말을 돌렸다. 하지만 레오는 거기에 지적을 할 수는 없었다. 그것 또한 의문점인 것은 마찬가지였으니까.

“심술이었습니다. 제 미래에 대한 불만, 타인과 모든 이들을 예언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심술이었죠.”

“친구의 손자에게 심술이라, 자랑스럽기도 하겠군.”

“수치스럽지만 한편으로는 영광스럽기도 하더군요. 당신이 다시 엮어버린 미래와 과거를 보며 진심으로 존경을 할 수 있었거든요.”

회귀에 대한 것인가.

[예언가가 회귀자를 존경한다는 건가?]

“다시 희망을 품게 해주었으니까요. 미래는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을 당신은 주었습니다.”

이제야 상황이 아귀가 맞는다, 라고 레오는 생각했다.

“어쩐지, 거지꼴이 없어진 건 그 탓인가?”

“덕분입니다. 남은 몇 년을 더 의미있는 곳에 쓸 수 있었거든요.”

제법 이해가 되었다.

회귀를 감지할 수 있는 인간이라면, 그것도 회귀 전에 부랑자로 살아왔던 인간이라면 자신이 완벽히 감지 못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그래서, 보답으로 남의 과거를... 아가씨께 멋대로 말한 건가?”

“멋대로라, 만약 당신이 용사의 의견을 존중치 않는다면 올바른 표현이겠군요.”

예언가는 자신의 속을 알고 있다는 듯,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아마 당신의 지인들은 대부분 당신의 과거를 알고 싶어할 겁니다. 아, 당신 입장에서는 아직 ‘미래’겠군요.”

“...나에게 호의적이라면, 입을 닥쳐야한다는 것도 알 텐데?”

“글쎄요. 호의적이라는 게 꼭 원하는 방향으로 흐르지는 않아서요. 오해나 실수가 항상 있기 마련이죠.”

레오의 손에서는 불꽃이 나왔다. 1초 안되는 고속의 마법 발현이었다.

“그럼 책임도 져야한다는 것도 알겠네.”

“그러고 싶지만, 그 전에 묻고 싶군요.”

예언가는 날카로운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았다. 이는 현자의 눈과 조금 비슷해보였다.

“당신은 무슨 이유로 ‘자신’을 숨기는 겁니까?”

“그건...!”

순간적으로 말이 나오지 않는다.

이성은 답을 알고 있었지만.

감성은 계속해서 부정하며, 어째서인지를 묻고 있었다.

꼬리에 꼬리를 문 뱀처럼 끝도 없이 문제와 의문이 이어진다.

“...내 자신을 위해서야. 그리고 아가씨를 위해서도.”

“...안타깝군요.”

그녀는 눈을 천천히 감았다. 생각을 정리하는 것보다는 말을 정리하는 것처럼 보였다.

“만약 자신을 위해서라면 저에게는 반론할 이유도, 권리도 없습니다. 그럴 권리는 충분하니까요.”

이내 노파는 눈을 떴다.

“하지만 타인을 위해서 그런다면, 그건 틀림없는 위선입니다.”

레오의 눈에 살기가 벤다.

“당신이 뭘 알지? 내 일에 대해...”

“용사는 분명 당신을 위해 전장에 부르지 않은 것이겠죠. 그걸로 당신은 행복했습니까?”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반박에 당했고, 사실 논파당했다.

한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 없으니까.

“타인의 이해를 구하지 않은 희생은 분명한 아집이며 위선입니다. 당신은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테죠.”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렇다 하더라도 이것에 대해서는 감추어야한다 말하고 싶으십니까?”

예언가는 레오의 위악과 위선을 바라보았다. 모순된 두 존재가 서로의 머리를 물어뜯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그건 정말 ‘죄악’ 때문입니까? 아니면 ‘죄악감’ 때문입니까?”

“...당신...!”

도발과 같은 발언에 레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진심으로 죽일 듯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전 아누스가 준 데킬라를 마시고 숙취로 쓰러져 잘 겁니다. 알코올과 노환으로 완전히 심장은 정지되고 죽겠죠. 그때도 죽지 않는다면 절 죽이셔도 좋습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떨리지 않은 채로 미소를 지었다.

“...나한테 바라는 게 도대체 뭐지?”

거의 체념한 어투로 레오는 비꼬듯 물었다.

“위악으로 생긴 죄악감에 위선으로 자학하지 말아줬으면 합니다. 이건 예언가이기 전에 아누스의 친구로서 말하고 싶군요.”

다 안다는 듯이 말하는 어투, 실로...

콰아아아앙!!

갑자기 폭음이 울렸다. 외부에 대한 방음도 약하게나마 있는 것을 생각하면 걱정되는 음파였다.

“아무래도 오래 앉아있을 수는 없겠군요.”

“...젠장, 이미 알고 있었군.”

“어떻게 할지는 당신이 결정하는 거지만요.”

“...씨발...!”

레오나르도는 욕을 박으며 점집을 박차고 나갔다. 지금 순간에서는 무엇도 하나 안심할 수 없었으니까.

“ 끝에 도달하셨으면 좋겠군요. 쌍두사의 우로보로스들이여.”

***

“딘 형!!”

밖으로 나가자 눈 앞에 있는 딘과 폭음이 난 방향으로 향해 뛰어가서 작아져만 가는 아리아가 보였다.

“레오!!”

“아가씨를 왜 혼자 가게 뒀어!?”

안 그래도 상황이 복잡해 죽겠는데.

“나도 그러기 싫었어! 근데 쌍검을 든 채로 분신술을 쓰는 기사하고 쓸데없이 큰 지팡이를 휘두르는 정장 차림 마법사가 길한복판에서 싸운다고 하니까 갑자기...!”

...그 사람들이 부디 라인하르트 가문 출신의 흑암과 템페리우스 가문의 마법사가 아니기만을 간곡히 비는 레오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안 가봐도 되겠어?”

들어온 아누스를 보며 예언가는 빙그레 웃어보였다.

“염병을 하는군. 네가 안 간 시점에서 위험한 일이 아니겠지.”

아누스의 독설대로였다.

“잘 알고 있네. 친구여서 그런가?”

“...남의 며느리하고 손자 기분을 잡치고도 웃음이 나오나?”

“글쎄다. 나름 쓴소리를 하는 게 늙은이들의 역할이라고 난 생각해서. 사실 좀 꼰대 같지.”

기가 찼는지 아누스는 헛웃음을 내었다.

“자기 딸내미하고 손주나 챙겨. 의절까지 당한 우라질년이.”

“그래도 한편으로는 다행이지. 이런 못난 여자 자식 손자로 있는 것보다야 낫잖아.”

“지랄, 네가 그딴 개뼈다귀 같은 예언만 덜 말했어도 이런 일은 안 생겼을 게다.”

그렇게 말하며 아누스는 답답하다 못해 열불이 났는지 욕과 역정을 더 내었다.

“왜 자꾸 결혼하는 자식한테, ‘업화의 괴수가 너와 네 핏줄마저 뜯어 재로 만든다.’ 같은 지랄맞은 예언을 한 게냐? 차라리 남자 쪽이 별로라고 해!”

“그때는 진심으로 예언을 믿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결국은 빗나갔지만.”

자조적인 말에 아누스는 차마 욕을 덜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말이라도 더 하지 그랬냐? 딸내미 쪽은 진짜 발록 때문에 팔이 불구가 됐는데.”

“됐어. 손주가 살았는데 그러는 것도 추하지. 그리고...”

예언가는 레오가 나간 출구를 바라보았다.

그곳은 위악과 위선으로 점철되었으나, 결국은 누군가의 희망이 된 남자가 나간 자리였다.

“미래에 희망을 품게 됐으니까. 네 손자한테는 정말 고마워. 여러의미로.”

“지랄 염병을 떠는군. 닥치고 술잔이나 꺼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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