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 오랜만이야.
갑자기 편지만 덩그러니 보내서 놀랐을 거야.
아마 나와 얘기하고 싶지 않을 것 같아서 편지로 보내.
너는, 솔직히 말해 착한 사람처럼은 안 보였어.
항상 욕을 입에 달고, 지면 화부터 내고, 매사에 얄미울 정도로 비꼬는 걸 좋아하는 녀석이니까.
너랑 처음으로 만났을 땐, 난 너를 이상한 애라고 생각했어. 태연히 사람 목을 걸어두고 그 뒤로 경비원도 두들겨 패고, 그 다음엔 나한테도 결투 신청을 했으니까.
그리고 결국 내가 이겼고 말이야.
(이 부분에서 바로 찢지 말아줘. 아직 절반도 못 썼어.)
하지만 왜인지 계속 네 얼굴이 생각이 났어. 하긴, 찔린 가슴팍을 램프로 지져서 지혈하는 사람은 보기가 드무니까.
그리고 한달 뒤 정도에 그런 장소에서 널 만났을 때는 정말 놀라고 무서웠어. 사람들이 말했던 것처럼 네가 나쁜 사람이 아닐까 무서웠어.
아니, 사실 더 무서웠던 건, 정말 무서웠던 거기서 갇혀있는 애들을 봤을 때부터였어.
넌 분명 재수없다고 말하겠지만, 흑마법사가 무섭지는 않더라. 분명 정신만 차렸더라면 쓰러뜨리는 건 어렵지는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게 동물처럼 갇혀있는 내 또래의 애들을 보니까 몸이 얼어버렸어.
난 돕겠다고 잘난 척하면서도 도울 사람이 어떻게 힘든지도 보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사실 네가 같이 돕고 나가자고 했을 때, 안심해버렸어.
그리고 정말 도움이 되는 방법을 알려줬을 때, 믿을 수 있는 확실히 근거를 줬을 때.
말은 안 했지만, 정말 고마웠어.
난 말이야. 아마 오래전부터 모르고 있었을 거야.
내가 타인을 이해하는 게 서툴다는 걸.
나에게는 당연한 것들이 다른 사람들에겐 정말 중요한 것이라는 걸 너무 늦게 알아버렸어.
노력이 능력으로 직결되지 않는 걸 이해하지 못했고, 하지도 않았어.
...만약 내가 레오 네 인생을 살았다면 난 분명 버티지 못했을 거야.
아마 너처럼 당당히 악마나 마인의 유혹을 뿌리치는 용기도 없을 거야.
분명 네가 내 삶을 살았다면 훨씬 더 착한 사람이 될 수 있었을 거야.
누가 뭐래도 넌 지금도 좋은 사람이니까.
누가 너한테 한심한 놈이라고 한다면, 난 분명 그 이상으로 한심하고 나쁜 년일 거야.
넌 분명 뛰어나지 않아. 분명 재능은 평범하거나 뒤떨어진 편일 수도 있겠지.
그래서 분명 의지할 수 있을 거야.
넌 누구보다 남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돌아와 줘.
용서해 줘,
미안해. 아무것도 몰라서 미안해.
아무것도 못해줘서 미안해.
미워해도 좋으니까.
제발...
[이윽고 종이가 구겨진다. 방 안에는 구겨진 종이투성이다. 구겨진 종이들은 전부 편지, 전부 쓴다 한들 보낼 수 없는 편지들이었다.]
<용사인 난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도 제대로 모르니까.>
분명 레오가 용사였다면...
그보다 만약 자신이 용사가 아니었다면...
*
[...하아..쿨럭...]
숨이 거칠어진다. 머리가 어지럽다.
눈물이 나오는지 토가 나오는지 구별이 되지도 않는다.
손톱이 부러지고, 살가죽이 뒤집힐 때까지 온몸을 긁어내고 싶다.
상처가 나는 정도로는, 피가 흐르는 정도로는 부족했으니까.
뭐가 좋아하는 거냐.
무슨 주제로 질투를 한다는 거냐.
처음부터 뭘 사랑한 거냐?
좋은 면만 보려고 한 주제에.
이해할 수 있는 면만 이해하려고 한 꼴에.
레오가 감추려고 한 게 당연하다.
자신조차 역겨우니까.
자기가 역겨워서 참을 수가 없으니까.
그런 표정으로 있는 것 자체가 노력이었다.
얼마나 토가 나왔을까?
자신의 대우가 달라진 그 상황을 보면서.
얼마나 역겨웠을까?
능력 하나에 뒤바뀐 자신과 사람들의 태도에.
그 위선과 이중성에.
“...왜냐고... 왜냐고... 왜... 왜?! 한 자루도 안 꽂히는데..,? 왜 조금도 안 아파하는데...! 난 죽기 직전인데 넌 왜 땀도 안 나는데...!”
던진 장갑을 잡은 레오는 바로 결투를 받아들였다. 상대하는 것은 의심할 것도 없이 압도적인 일인자이자 천재, 그럼에도 레오는 필사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기술이나 힘으로 판단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절실했고, 갈망했다.
그녀에게 휘두르는 공격이 절실했다.
성공하지 않는 페인트가 맞기를 갈망했다.
그녀에게 다가가는 거리가 절실했다.
그녀에게 한 걸음씩 다가가기를 갈망했다.
하지만 결국.
“...왜... 난 널 이길 수가 없는데...”
아리아스필은 닿지도, 가까워지지도 않았다. 적어도 레오나르도에게는.
“...미안해.”
그렇게 말하며 아리아스필은 가버렸다. 그녀의 뒤를 보는 것이 이제는 신물이 났는지, 레오는 큰 소리로 외쳤다.
“...뭐가...!! 동료인데...!! 뭐가 친구냐고!! 너랑 난 결국...!”
그 둘은 서로의 얼굴을 보지는 못했다. 그랬기에 아리아의 눈에도 그대로 돌아서 간 자신의 얼굴은 보지 못했다.
“...아무 관계도 아니잖아...!!”
적어도, ‘나’는 돌아봤어야했다. 자신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봐야 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레오의 표정을 봤더라면, 그렇게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 말이 전부 진심이 아니라는 걸.
노력했던 것을 전부 부정당한 사람이 그저 절규했을 뿐이라는 걸.
알아차려야만 했다.
또다시 시간은 흐른다.
계절은 계속해서 바뀌지만 건조한 공기는 바뀌지 않는다.
분명 레오에게 기억되는 시간이라는 그런 것이었다.
*
“어둑시니, 너도 참 너답다.”
처음 보는 옷차림의 남자, 그리고 이국적인 외모의 사람이 레오에게 차를 내밀었다. 그는 레오를 어둑시니라는 별명으로 부르고 있었다.
아리아에게는 처음 듣는 언어인데도 왠지 모르게 의미가 이해가 되었다.
“폐관수련을 했다고 들었는데, 1년만에 연락도 없이 와서는 배편을 마련해달라니. 나 참...”
“왜? 안 되냐?”
“안 되는 건 아니지만...”
그는 무언가가 섭섭하다는 듯 입을 다셨다.
“진짜 갈 거야? 서방으로?”
“...원래부터 돌아갈 생각이었어.”
레오는 내민 동방의 차를 정갈히 마시며 확답을 내렸다.
“보내고 나면 다들 날 죽이려고 난리겠네. 동방의 영웅님을 소리 소문없이 내보내야 하니까.”
“설마 죽이기까지야 하겠어?”
“그래, 죽이진 않고 너 어디로 갔냐고 알아내려고 갖은 고문을 해대겠지.”
“그럼 마음하고 부조금만 보낼게.”
“지금 땡전 한 푼 없어서 찾아온 놈이?”
둘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마 처음으로 동방으로 도착했을 때, 일이 떠오른 눈치였다.
“갑자기 왠 코쟁이 놈이 상단에 와가지고는 일 달라고는 할 땐 정말 기가 찼는데...”
“그래도 머리는 까맣다고.”
“눈은 무슨 흡혈귀마냥 빨간 주제에.”
“우리 부모님도 이런 눈이었는데?”
“이제보니 홍옥처럼 아주 예쁘네.”
능청스러운 말에 레오는 피식 웃었다. 마음에 여유가 온 것인지 초초해보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서방에 가서 뭐할 건데?”
“...그냥, 빚을 갚아야할 사람이 한둘이 아니거든.”
“뭐, 니 첫사랑?”
“닥쳐 임마.”
“생각해보면 지금도 기가 차는 놈일세. 서방의 용사는 우리도 알아. 하지만 그 정도 되는 인물이면 이미 결혼하고도 남았지.”
레오는 조금 떨고 있었지만, 이내 마음을 진정시켰다.
“정파의 심법을 거기에 쓰는 건... 낭비 아니냐?”
물론 고도의 기술을 조금 사용했지만 말이다.
“...하...됐어. 원래 첫사랑이 그런 법이잖아. 지금 생각해보면 동경심이 앞서서 멋대로 좋아한다고 생각한 것도 있어.”
한숨을 쉬던 레오는 입을 열었다.
“그래도 좋은 사람이야. 걔는. 올곧고 능력도 있어. 그저 사람 대하는 게 서툴러서 그렇지.”
그리움이 남을지언정 미련한 미련은 없었다.
“날 봐주지 않아도 상관없어.”
갈증은 없는 목소리였다.
이내 레오는 부드럽게 웃었다.
“보답받기 위해 가는 게 아니라, 보답하러 가는 거니까.”
그런 레오의 표정에도 영 시원치 않은 남자는 말했다.
“...그래도 걱정된단 말이지. 최근에 서방 쪽에서 사람들이 많이 온단 말이야.”
월륜 상단의 주인은 걱정이 되는 눈치로 항구의 배편을 살폈다.
“...설마 전쟁이야? 피난민으로...?"
“말로는 거의 전쟁 급이라지. 말로는 하늘에 구멍이 뚫리고 계속 괴물이 쏟아진던데?”
“...하...”
“그래도... 갈 거...”
“이거 기횐데?”
오히려 좋다는 듯, 레오는 웃어보였다.
“그런 사태면 인력은 어떻게든 필요할 거잖아. 그것도 강철이고 불가사리고 잡은 놈이라면 싫어도 필요하지 않겠어?”
“...아주 긍정적인 건지, 걱정이 없는 건지. 그럼 네가 빚을 갚아야할 사람들은? 그 사람들은 멀쩡할 것 같아?”
그 말에 레오의 표정이 잠시 얼었다. 상단주도 자신이 말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았는지 급히 사과를 꺼내려고 했다.
“그... 미안, 말이 헛....”
“아니, 그 사람들이라면 쉽게 안 죽어.”
레오는 씨익 웃어보이며 말했다.
“그 사람들은 쉽게 부러지지 않으니까.”
레오의 주변으로 연기가 피어오른다.
레오가 원하지 않아도.
아리아가 제발 그만하라고 외쳐도.
이 다음은 결코 원하는대로 흐르지 않는 경고를 알리는 것처럼.
---
“...”
눈과 비가 주척거리는 밤이었다. 아마 물의 정령조차 쏟아지는 진눈깨비에 두려워 자리를 피한 곳에는 깊은 어둠이 깔렸다.
해는 저문 지 오래였고, 달조차 먹구름에 가려 완전한 암흑이 세상을 뒤덮었다.
살얼음과 같은 물가와 흙이 섞여 회색빛으로 변한 설원을 걷는 사람이 한 명 있다.
사람이라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검은 가면을 써 얼굴을 가렸고, 청년의 머리라 생각되지 못할 만큼 새치로 뒤덮여 검은 머리카락을 찾기가 어려웠다.
힘없고 무거운 발자국이 이어진 장소에는 잿빛의 벽돌로 이루어진 요새가 있었다.
그 성곽으로 보며 새치의 검은 검사는 좋은 관이 될 거라 생각했다.
“잠깐, 멈추십쇼.”
경비로 보이는 기사가 새치의 기사를 막는다.
“...혹시 방계 출신이십니까? 지금 회의는 이미 시작돼서...”
“비켜. 비키지 않으면 죽이겠다.”
괴이한 목소리였다. 요물과 같이 갈라지고 쉰 목소리, 사람의 성대에서 목소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불쾌한 소리였다.
“...예? 그게...”
질문은 이어지 않았다. 남자의 검은 손이 움직이자 경비 기사의 목이 꺾였다.
“...어...?”
반대편에 있는 경비원은 당황한 듯 멀뚱히 서있었다.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얘기를 나누던 동료의 목이 1초도 되지 않아 부러졌으니 당연했는지 모른다.
투둑
그랬기에 그도 목이 꺾였다.
무기도 꺼내지 않은 채.
빠르고 단순하게.
라인하르트, 그전에 원로원을 우선시한 기사는 진흙탕으로 뒤덮인 설원에 임종을 맞이했다.
검은 기사는 원로원을 대문을 통해 들어갔다.
평소라면 고르지 않을 비효율적인 선택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감정은 효율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렇게 걸어가 올라간 곳에는 성검과 사자의 문양이 그려진 대문이 또다시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알 바인가.
일일이 신경을 쓰니까 힘들었던 것이었다.
스릉, 하는 소리와 동시에 대문이 베였다.
무슨 의미인가.
성검은 주인을 잃었고, 가문을 이끌 사자들은 늙은 짐승들에게 목숨을 잃었는데.
“...누...누구냐?!”
원로원의 원탁에 있던 이들이 경악한다.
가면을 쓴 남자는 그저 공허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볼 뿐.
“네 이놈! 여기가...!”
우득
여기가 지옥이라는 것을 알리듯이, 남자의 정권이 호위 기사의 가슴을 날린다. 충격으로 뼈와 장기가 파열되서 심장이 으스러졌을 것이다.
“...이게...무슨...!”
단검이 날아가 말을 자른다. 미간을 뚫고 뇌에 박힌 채로 다른 호위 기사의 목을 반동으로 꺾어버린다.
“경비!! 더 많은 지원을...!”
굼뜬 늙은이들이 그제서야 행동하자 검은 기사는 드디어 검을 뽑는다.
그리고 베였다. 늙은 짐승 한 마리 죽었다.
고요했다.
마물과 달리 그 많은 것들을 죽였음에도 늙은 짐승들은 달려들지 않는다. 문책에는 큰소리가 나오던 성대에선 비명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당신...당신...은...!”
경어다. 오늘 원로회에 와서 처음으로 경어를 들어봤다.
“오늘은 장례식입니다.”
그제서야 검은 가면의 기사는 입을 열었다.
“자살한 시리카 라인하르트님의 장례식이었죠.”
그러자 늙은 짐승들의 표정이 바뀌었다.
“설마 그 년이...! 복수를...”
이번에 날아가는 건 도끼였다.
아마 저들이 남의 말을 함부로 자르는 건, 말을 잘라도 머리가 두 쪽으로 갈라지는 걸 본 적이 없어서일 것이다.
“...이게 도대체...!”
“시체를 묻어드리고 묘비에도 아무것도 적지 않았습니다. 그게 무능한 자신에게 합당한 벌이라더군요.”
다른 두 짐승이 창문으로 도망치려고 하자, 레오는 창을 두 쪽으로 부러뜨려 양방향에 던졌다.
두 늙은이는 박제된 것처럼 돌벽에 박힌 채로 메달려있다.
“이... 악마 같은...!”
“악마? 하...하하...!”
남자는 광소를 터뜨렸다.
정말 듣고 싶은 말이긴 했으나, 적어도 저들에게는 듣고 싶지는 않은 말은 아니었다.
“그 정도로는 부족하지. 난 남은 라인하르트 모두를 몰살시킬 예정이니까.”
이내 그는 검을 휘두른다.
한 합에 두 사람의 머리가 베인다.
“지금부터 현 원로원주가 누구인지 말해. 말한다면 나머진...”
그러자 전원이 급하게 말한다. 그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리기도 하며, 아예 손가락으로 가리키도 한다.
대단한 지혜와 유대였다.
장수의 비결이 눈 앞에 있었다.
“저 자식일세...! 그러니 우리는...!”
“원로원주 외 나머지는 죽일 테니까.”
“...무스....”
피가 튀며 설명에 이해할 시간 따위는 주어지지 않았다.
마치 그가 이곳의 기사였을 때처럼.
“아...아악...!!”
남은 고령의 원로원주는 두려운 나머지 계속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나이와 상관없이 소변과 침까지 흘리며 공포에 젖은 것이 경멸을 넘어 허무를 자아낸다.
“무섭나? 어디가 무섭지?”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전선에 무의미하게 내세우고.
부상으로 죽는 것보다도 못하게 만들어놓고서는.
고작 유대 없는 일원이 죽은 것만으로 싸울 의지를 잃었다.
몸엔 생채기 하나 안 난 주제에.
“묻는 말에 대답한다면 죽이지는 않지.”
“...정...정말이십...”
우드득
팔이 칼등에 바로 분쇄된다.
“으아아...!”
뻐억
목의 성대 부분이 기사의 발등으로 짋밟혀눌린다. 비명도 내지 못한 채 고통과 질식의 공포가 함께 찾아온다.
“...대답을 할 때만 발을 뗄 거다. 기회는 한 번뿐이야. 생각이 많아지면 친히 팔을 베주지.”
성대가 눌린 늙은이는 발버둥처럼 고개를 끄덕인다.
“아리아의 시체, 그리고 성검의 위치를 대. 그러면 살려주지.”
아리아는 시체도 발견되지 않았으며, 그녀의 분신과 같은 성검 또한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아직 믿고 싶은 것이 있었다.
늙은이의 안색이 파랗게 되더라도 말이다.
발을 거칠게 떼자... 그는 입을 열었다.
“우리도... 우리도 몰라...!!”
우득
반대편 팔도 부러진다.
“내가 원하는 답이 아니야.”
“정말.... 정말 모릅니다...! 마지막에 하늘의 게이트를 닫을 때...! 성검의 빛과 타올라 문을 닫았다는 것 외에는...!!”
퍼억... 퍼억, 퍼억...!!
균일한 박자로, 균일한 크기로 커지는 구타가 시작된다.
“그게 다야?”
분노했다.
“용사의 결말이?”
격노했다.
“아리아가 받은 게 그것 뿐이냐고...!!”
절망한다.
“...제...발...! 잘못...했습니다...! 저희도... 어쩔... 수...”
“왜 나한테 사과하지? 사과할 사람들은 너무 먼 곳에 있는데?”
원로원주의 표정이 하얗게 질린다.
보기만 해도 쓴물이 날 정도로 질리는 얼굴이었다.
“....제발...! 목숨만은...!”
검을 들자 원로원주는 부러진 손째로 빌기 시작한다.
“괜찮아. 사과할 기회도 주기 싫으니까.”
서걱
“끄아아아아아악!!!”
대신 양다리를 베었다. 이 원로회장을 나갈, 설원을 빠져나갈 양발을 절단했다.
“이...이 악마 같은 놈아!! 나만 죽을 것 같나?! 넌 영원히 악인으로 추격당하면서 지옥을...!”
죽을 때가 되니 퍼붓는 저주,
살 기회조차 없어지자 늙은 짐승은 비굴한 태세마저 지워버린다.
“알아. 그게 내가 바라는 거거든.”
새치의 남자는 가면을 벗는다.
그저 사랑을 사랑했던 남자가 준 선물마저 벗어 내려놓는다.
“이런 악의 화신은 용사가 목을 떨궈야 마땅하니까.”
레오나르도의 머리는 완전히 타버린 재처럼 하얗게 물들었다.
검은 기사의 백발은 용사의 머리보다 희게 질려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태양처럼 되길 원한 소년은 화롯가가 되어 자신을 불태웠다.
불이 타고 남은 자리에는 흰 재만이 남았으며, 세상은 다시 어둠으로 뒤덮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