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인자는 회귀했다-101화 (101/248)

강하다고 생각했다.

누구보다 강하다고 생각했다.

같은 나이인 자신보다도 뛰어나다고.

멋대로 생각해버렸다.

역겹다.

고작 재능 따위가 아니었다.

그저 노력으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더 강해질 수도 없음에도.

더 강해져야만 했다.

강해지지 않고서는 살 수가 없었으니까.

몸도, 마음도.

*

“...이게 무슨...”

수정구에 나오는 레오는 자신에게 당하고 있었다.

처음 자신이 봤던 레오를 얕잡았던 대로.

무척이나 거칠고 격없는 검술.

그저 어설픈 경험과 감에만 맡긴 칼질.

어린 용병으로는 봐줄 만한 공격.

그리고 자신은 그걸 아주 간단히 파훼했다.

“...이게 어떻게...!”

예언가를 바라보려던 순간, 아리아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있는 거라고는 연기 뿐, 예언가 뿐만이 아니었다.

주변의 모든 배경이 전부 연기로 뒤덮여있었다.

아...리....

그 안개처럼 자욱이 깔린 연기 사이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아리아!”

이윽고 자신을 거칠게 부르짖는 목소리.

[...레오?]

뒤에는 작은 레오가 있었다.

지금 자신의 곁에 있는 레오가 아닌.

마치 가문에 막 온 참인 레오나르도였다.

[레오... 왜...]

“오늘은 꼭 가슴팍에 구멍 낸 걸 설욕해주마!!”

레오나르도는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는 듯,검을 뽑았다.

그러고는 아리아에게 돌진했다.

[잠깐...! 갑자기 왜...!]

평소 공격에 비하면 몹시 느리고 단순했지만, 아리아는 당황을 금할 수가 없었다.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으니까.

챙!!

“그거 따지고 보면 네 잘못이잖아.”

이 독설은 분명 아리아스필이 말한 것이었다.

하지만 용사인 아리아가 말한 것은 아니었다. 말한 기억조차 없었다.

“난 분명 사과했고, 안 싸우겠다고 말했어.”

작은 아리아는 용사인 아리아스필의 몸을 통과하며 반격을 날렸다. 그래도 밀려나가는 레오도 다시 검을 날렸다.

용사인 아리아는 그 자리를 보고 있었지만, 그 자리에 존재하지는 않았다.

비유해 표현하자면 곁에서 관람하는 유령에 가까운 존재였다.

“한 달 동안 불구 같은 몸으로 그 미친 수련을 한 기분을 니가 알아?!”

레오나르도는 가히 분노를 분출하는 것처럼 검을 휘둘렀다. 어설펐지만 확실하게 오러는 담겨있었다.

크리스의 지옥 훈련을 버틴 보람이 있다 레오는 진심으로 생각했다.

“...잘 모르겠어.”

채앵

아리아는 그 공격을 전부 튕겨내며 이내 레오가 내지른 회심의 일격마저 부러뜨렸다.

“마나수련이 그렇게 힘든 거야?”

그렇게 말하며 레오의 목덜미를 목검으로 내리쳤다. 한 대 맞지 않은 채, 전부 공격을 성공한 자신은 그렇게 말했다.

약한 레오 이상으로... 그런 말을 태연히 한 자신이 불쾌했다.

“...너, 진짜 재수없어...”

그렇게 레오는 말하며 쓰러졌다.

그 애들 싸움을 구경하던 몇몇 기사들이나 사용인들은 그런 레오를 보며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비웃거나 조롱을 내기 바빴다.

이윽고 그 장면은 흩어진다.

이건 그저 서장 중에서도 끝자락이라는 듯이.

퍼억...!!

한 남성이 어린 레오의 배에 주먹을 날린다.

“...천한 놈이 계속해서 기어올라...!”

열등감에 일그러진 표정.

레오가 자신에게 보이던 열등감보다도 더 끈적거리고 더러워서 보는 것만으로도 토가 나올 것 같았다.

그러면 직접 맞은 레오는 어땠을까.

“...제하드...”

제하드 다이논스는 계속해서 레오의 몸을 패대기치며 멍을 만들었다. 일부러 옷 부위에 잘 보이지 않는 배나 가슴을 두들겨 패는 것이 보여 더 역겨운 감정이 차올랐다.

“천한 것이 운좋게 크리스 님께 배울 수 있는 주제에...! 감히...!”

어째서인지 전후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제하드가 자신을 버리고 도망친 것도.

레오에게서 제하드가 마인이 되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도 아니었다.

이 연기를 마실 때마다 존재하지 않는 기억의 향수가 머리에 스며들었다.

“푸...풋...”

꺼져가는 숨에서도 레오는 그런 제하드를 비웃었다. 평소엔 상대를 긁는 도발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어째서인지 지금은 약한 모습을 감추기 위한 작은 소년의 허세처럼 보였다.

“...그럼 좀 유능하지 그랬어...? 내가 못 나대게...”

그 한 마디에 그의 무능이 열등감으로 폭발했다.

“...이 애새끼가...!!”

짜악, 퍼억...

때리는 소리와 함께 울려퍼지는 모욕.

“네가 뭐라도 있어서 이곳에 온 줄 알아!? 넌 운이 좋게 이곳에 온 쓰레기일 뿐이야!!”

노력은 무참히 짓밟히고.

“크리스 님이 없었으면 넌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존재가 잿더미처럼 흩어지는.

“아가씨가 너랑 친구인 줄 알지? 애당초 아가씨랑 너랑 같은 인간인 줄 알아?!”

육체의 폭력과 정신의 살인.

제하드는 그런 말을 남기며 떠난다.

“...하...씨발...”

레오는 구역질이 나오는 입을 틀어막았다. 저 행동마저 식량과 체력을 아끼기 위해 베인 습관이라는 게 보이니 더욱 할 말이 나오지 않는다.

“...나도 안다고...”

레오나르도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그저 눈 아래로 피가 흘러내려 붉은 선이 그려졌다.

“좆같이 안다고...”

그게 그저 우는 것처럼 보이고 싶었다.

레오는 그런 식으로 붉은 눈물을 닦았다.

[...우읍...쿨럭..!]

맞은 것도, 아픈 것도 분명 레오인데, 아무것도 당하지 않은 자신의 입에서 계속 구역질이 나온다.

역하고, 역해서 토가 안 나오는 못 배겼다.

이게 사실인지, 거짓인지도 확신이 안 서는데 토가 나온다.

하지만 이 존재하지 않는 과거는 아리아에게 전혀 상냥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본인인 레오에게는 어땠을까.

예언의 초침이 빠르게 째깍거린다.

가혹하게도

“네놈이 정신을 차렸어야지! 네가 멀쩡히 했다면 분명...!”

마르켄은 레오의 멱살을 쥐고 있었다.

항상 레오에게 무뚝뚝했던 그였어도 그가 저렇게까지 흥분했던 적은 없었다.

“...죄송합니다.”

“이...!”

마르켄은 뭐라 말도 못하고 얼굴을 붉히며 일그러뜨렸다. 그 얼굴은 듣기만 했던 아리아의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무렵의 마르켄 얼굴과 똑같았다.

“그만하세요! 아버지!!”

크리스의 말에 마르켄은 정말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아리아는 그게 애증으로 끓은 연민과 분노라 생각해버렸다.

“...멋대로 해라.”

그렇게 말하며 마르켄은 방을 나갔다.

“...레오나르도...”

“...집행기사단은 탈퇴하겠습니다.”

레오의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초점이 맞을 리가 없었다. 아리아 자신 같아도 정면을 보기 힘들 테니까.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 그러니...”

“상관의 눈을 잃게 한 부하가 필요합니까?”

“...그건... 네 잘못이 아니지 않나...! 한쪽 눈이면 안대나 의안으로...!”

“...아리아는 정신 조종으로도 눈 한번 깜짝하지 않았죠. 아마 아리아가 막지 못했더라면 한쪽 눈으로 끝나지 않았을 겁니다.”

레오는 짧게 말했다.

“정신력만큼은 자신 있었는데... 전 이것마저도 범재군요.”

자조와 함께 레오는 방 밖으로 나갔다.

이후 레오는 집행기사단을 나갔다.

사유는 흑마법사에게 강제조종을 당해 동료를 공격했다는 것, 광역 흑마법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로를 죽고 죽인 상황이었음에도 레오나르도는 변명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그만하라고 외쳐도.

시간은 움직인다.

레오가 느꼈듯이.

“...레오!”

장면은 넘어간다.

이제 레오의 몸에는 흉터투성이다. 예전에도 상처는 많았지만, 이제는 얼굴의 군데마다 깊은 흉이 베여있었다.

눈꺼풀에도 흉터가 나있는 것은, 그의 죄악이 불린 상징이었다.

“지금은 돌아간다. 조건이 내부 전체 정찰이더라도 지금 고성은 상태 자체가 이상해.”

레오나르도는 자신의 동료들을 보며 명령했다. 지금 이 부근에 있는 부서진 뼈 상태가 이상하다는 의미였다.

기묘하게도 저 기사들은 아리아의 기억 속에는 없었다. 그저 인상이 남지 않은 것이 아닌, 레오가 저들과 같이 있었던 적이 없었다는 생각이 머리를 계속 맴돌았다.

“레오! 그래도 지금 이대로 가면 또...!”

“그럼 실수라도 해서 죽는 게 낫겠어?”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문제잖아! 오우거들은 동족포식도 하니까 본인들의 뼈가 으스러져있을 수도 있고!”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레오나르도는 계속 석연치 않은 눈치로 뼈조각들을 봤다. 고작 오우거의 치악력으로 저런 형태로 동족의 뼈가 으스러질 수 있는지가 아직 의심되었다.

“...그래도 위험 부담이 커. 우선 여기까지의 정찰만 보고하고, 돌아가자.”

“...하지만...”

동료 기사는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책임은 너만 지잖아.”

그 말에 레오는 잠시 말을 멈췄다.

“...우리가 모를 거라고 생각해? 네가 언제든 집행 기사로 돌아갈 수 있는데 참는 거. 그리고 임무 보류로 문책할 때마다 네가 조장이라고 다 감봉 받고 다 책임지는 것도.”

“...하...”

레오는 옆에 있는 갈색 머리의 동료를 바라보았다.

“...네가 꼰질렀냐?”

“...아...그게... 술이라는 게 원수다 보니까...”

갈색 머리의 남자는 땀을 삐질거리게 흘리며 눈을 피했다. 레오에게는 술보다 저 사람이 더 원수인 눈치였다.

“...하... 내가 조장이여서 책임진 거고, 잘못해서 사퇴한 거야. 그보다 뭔 염치로 돌아가는데?”

이번에는 여자 기사는 답답하는 듯 나름의 일침을 날렸다.

“...흑마법사로 광역 조종 당했을 때 너만 그랬을 줄 알아? 다른 놈들은 자기 동료까지 죽이고도 상판 잘만 들고 다닌...!”

“그걸 누가 모르냐고!!”

레오는 거의 악에 바친 목소리로 그들에게 말했다. 아니, 사실 저건 스스로에게 늘 되뇌는 일갈일지 모른다.

“...난 날 거둬주고 싸울 방식을 가르쳐준 스승의 눈을 찔렀어!”

어떻게든 불합리와 부조리를 납득하기 위해 쓰는 악처럼.

“나를 사람답게 살게 해준 사람들에겐 전혀 도움도 안 됐고...!”

아리아의 눈에 레오는 절박하게 자신을 깎아내리고 있었다.

그래야만 살 수 있었으니까.

“...내가 나를 잘 아는데... 이제와서... 뭘 하는데...? 그 사람들이 서는 전장에는 내가 못 선다고...”

그 한 마디에 다른 동료들 모두 입을 다물었다. 저 말 한 마디가 전부 진심이며 또한 부정하고 싶은 감정인 것을 알기에 말을 더는 덧붙이지 못했다.

“...정찰이 더 하고 싶다면 알겠어. 다만 전위는 내가 선다.”

“그러다가 니가 다치...”

“지금 사람 죽고 싶게 만든 게 누군데 그래?”

그 말에 전원이 입을 다물었다.

분위기는 그대로 살얼음판 같이 차갑고 불안하기가 그지 없었다.

그 중 유일하게 입을 다물던 한 동료가 용기를 내어 레오에게 다가갔다.

“...저기 레오.”

“뭔데, 중요한 거 없으면 맡은 부분이나 잘 지켜...”

“너 용사님 좋아하지?”

정적만이 흘렀다.

너무 뜬금없는 말인 나머지.

처음 반대를 제기한 동료도.

술 먹고 취해서 레오 사정을 말한 동료도.

레오가 가진 죄악감에 지적하던 동료도.

심지어 원래라면 이 장면을 보지도 못할 아리아조차.

[그럴 리가 없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그럴 리가 없잖아...!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릴...!”

레오는 얼굴을 잔뜩 붉힌 채, 당황스럽게 부정했다. 너무나 당황스럽게도.

“하지만 너 용사님이 왔을 때, 직접 만든 음식도 주고, 꽃도 따주고 그랬잖아. 분명...”

-별...별로 널 위해서가 아니야. 공복으로 힘을 못 쓰면 서로 곤란할 뿐이라고.

-꽃말 따윈 몰라. 그냥... 예전에 너한테 이걸 받은 적 있으니까... 그거에 대한 빚을 갚을 뿐이라고.

“...라고 했잖아. 물망초까지 주면서.”

그래, 생각만 했다.

“니가 그걸 어떻게 아는데?! 어?! 언제 봤어?!”

레오가 그의 멱살을 붙잡고 흔들었다. 정말 부끄럽다는 듯이.

“...용사니미... 둘이 있을 때는 반말로 해도 괜찮다고 했을 때애...!”

“잊어버려!! 대가리 뜯어서 면사리 꺼내기 전에...!!”

“흠...되짚어 보니 예전 집행 기사였을 시절에도 그런 적이 있었지?”

갈색 머리의 기사는 떠올린다. 자신이 견습 기사였을 무렵의 일이였는데...

-너... 네 임무는 따로 있잖아! 레오! 왜 여기로...!

-착각하지 마! 그딴 건 이미 끝냈어...! 그리고 너 도와주러 온 것도 아니야...! 저런 자식들한테 네가 밀리는 꼴을 보기 싫을 뿐이라고...!

“...그거 그냥 고백 아니냐?”

“그러고 보니... 내가 아는 동료한테 너 소개해줬을 때도...”

-미안하지만, 난 나보다 나약한 여자는 싫어하는 성격인지라. 그리고 직종에 방해가 되는 여자도.

“...이거 누가 봐도 용사님밖에 없잖아. 상식적으로 너를 이기고 일에 방해도 안 되는 여자가 따로 있냐?”

“이... 있잖아! 크리스 님!”

“넌 크리스 님이 여자로 보여?”

“...그건...”

절대 아니었다.

“...이거 보니까 그냥 싸가지 없는 놈팡이가 아니라... 소녀 감성의 순정남이구만.”

“뭐가 소녀 감성이야?!”

오히려 확답을 내리는 부정이었다.

“솔직하게 고백 못 하는 점?”

“...이것들을 아주 그냥 버리고 갈까.”

“차라리 그러든지.”

그 말에 레오는 얼어버린 눈치로 되물었다.

“...그러라고? 나만 살자고? 너희 제정...”

“너를 위해서인 줄 아냐? 아니면 우리를 위해서인 줄 알아?”

“...그럼 누굴 위해선데?”

“그 용사가 유일하게 사람 냄새가 나는 순간이 언제인지 알기나 해? 그 사람이랑 같이 일을 처리하면서 웃었을 때, 항상 누가 있었는지는 아냐고?”

동료들은 한편으로 기가 차면서도 벙찐 레오의 표정이 귀여웠는지 피식 웃어보였다. 그러면서 여자 기사는 확실히 알려주기 위해서 회심의 말을 꽂아넣었다.

“하...내가 운이 좋아서 용사님이랑 술을 한잔한 적이 있거든. 근데 용사님이 완전히 취했을 때 뭐라고 했는지 알아? 너 이름만 부르면서 막...”

그 순간, 레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주변인들이 전부 경직될 만큼이나 말이다.

“...분명 지도에 고성 지하 입구는...우리가 들어온 곳뿐이었지?”

“...그렇지? 그게 왜...”

레오는 동료들을 붙잡고 반대편으로 밀었다. 그러곤 자신도 옆 쪽으로 뛰어들었다.

아리아는 그 이유를 보자마자 알아채었다.

레오와 아리아의 시야에는 작은 빛이 잡혀들어왔다. 출입구라고는 들어온 뒤편밖에 없는 지하에, 창문 하나 없는 지하에 저런 섬광이 눈에 들어온 것이었다.

화르르륵...!

멀리에서 약간 점멸했던 빛이 급속도로 부풀어 오른다, 어린 시절에 잡았던 새끼와는 비교할 수 없는 크기의 화마가 타오른다.

콰아아아아앙!

이어지는 폭음, 굉음이 내리앉으며 잔해가 출구를 틀어막는다.

“...출구가...!”

“정신 팔지 마!! 발록부터...!”

크르르륵...!

신경이 뜨거운 통증이 몰아친다. 아까 날아온 운석과 같은 화염 때문만이 아니었다. 생물의 호흡이 닿는 것만으로 피부는 화상을 통증으로나마 경고하고 있었다.

“피해...!! 발로...!!”

공포로 이명이 먼저 울리고, 고통으로 비명이 울렸다. 동료 중 한명이 손을 한번 휘두르는 것으로 네 갈래로 찢겼으니까.

발록은 발과 날개를 일순 움직인 것으로 이미 전원을 몰살시킬 거리에 도달해있었다.

“...아...아아...”

모두가 얼어있었다.

상층과 지하층 경계에 있는 오우거 몇 마리는 잡았기에 대부분 긴장이 느슨해졌는지도 모른다.

저런 괴물이 갑자기 등장하는 건 너무 이례적이었니까.

“...정신 차려!! 이대로 가면 다 죽어!!”

유일하게 몸을 움직인 건, 레오 뿐이었다.

터엉!

레오는 남은 동료 세 명을 검으로 밀려 날려버렸다. 그러면서 간신히 외친다.

“막혔어도 잔해를 치우면 나갈 수 있어!! 시간을 벌테니까 얼른 잔해를 치워!!”

“그럼 넌...!”

“닥쳐!! 난 안 죽어!!”

레오는 실성에 가까운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아직 그 녀석한테... 아무것도 전하지 못했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레오는 그대로 발록한테 돌진했다.

카앙!!

살과 검이 부딪쳤을 뿐인데, 불꽃이 튀었다. 그리고 날이 들지도 않은 채 레오의 체중은 반동에 밀려나간다.

“...윽!!”

이어지는 일격, 저 손끝에 닿기만 한다면 살점과 함께 목숨도 그대로 떨어질 것이다.

레오는 반대로 체중을 뒤로 실어 아예 뒤로 제비를 돌았다. 떨리는 손으로 죽은 동료의 유품인 창을 줍는 것도 잊지 않았다.

“...미안하다.”

그렇게 말하며 레오는 그대로 창을 부러뜨렸다. 그리고 그 창을 발록의 눈을 향해 던졌다.

“크르르륵!!”

비명으로 통증으로 울려퍼진다. 부러진 창은 확실히 발록의 눈에 박혔다. 동시에 사각이 생기자 레오는 그 발록의 등으로 타고 올라갔다.

치이익

오러가 어설퍼 손에서 화상 소리가 울린다. 신경을 유지하기 위한 오러 때문에 움직임은 느려지지 않았지만 화상의 통증은 그대로였다.

“...으아아악!!”

기합과 비명이 동시에 울린다. 그리고 발록의 반대쪽의 눈에도 부러진 창을 꽂아넣는다.

“크르륵!!!”

“이걸로...”

발록은 입에서 불꽃을 머금었다. 저대로 내뿜는다면 이 지하실은 아예 불바다가 될 것이 분명했다.

“...아직... 안 끝났어...!!”

레오는 눈에 꽃은 창에 매달린 채, 밸트 끈을 풀렀다. 그래도 발록의 입에 묶은 채 완전히 조여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발록은 그대로 입이 막혀 고통스레 몸을 날뛰었다. 불판에서 투우를 하는 감각, 뼈가 탈골되며 피부와 닿을 때마다 화상을 입는다.

“...제발...제발...!!”

레오는 거의 미친 듯 기도를 하며, 출구 쪽을 보았다. 동료들은 간신히 전투 망치와 방패로 녹아가는 잔해의 틈을 벌리고 있었다.

“...됐어! 이제...!”

레오가 지시를 내리려던 순간,

“...어?”

레오는 그대로 등에서 떨어졌다. 일순 등 쪽에서 폭발이 일은 순간 팔에 도저히 붙잡을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끄아아아악!!”

완전한 성체가 된 발록은 모공에서조차 불을 뿜는 것도 가능했다. 물론 묶인 벨트마저 화염으로 태워내었고, 눈에 찔린 창마저도 녹여냈다.

“크루롸아아아아!!”

그리고 자신의 동료가 있는 방향에도 거대한 화염구를 날리는 것도 가능했다.

“도망...!!”

화염이 격돌한다. 연기 때문인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상관없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

잔해가 녹아서 완전히 막혀버린 출구

그 잔해와 함께 녹아 섞여버린 동료들의 시체들도.

“...아...아아...아아아악!!”

레오는 미친 듯이 발록에게 돌진했다.

동료를 죽인 분노, 이제는 살 수 없는 슬픔.

해야 하는 것에 대한 갈망.

하고 싶은 것에 대한 미련.

무력한 자신에게 절망.

콰아아앙!!

그렇게 감정이 소용돌이칠 때,

“...늦어서 미안해.”

성검을 든 한 용사가 왔다.

남은 동료들이 전력을 다해 벌리려고 한 잔해를 바로 뚫어내고는.

자신이 모든 술책을 다해도 쓰러뜨리지 못한 괴물을 한 합에 베어버리고는.

“...너만이라도 구할게. 레오.”

용사는 그렇게 말했다.

그때였을까, 무언가가 끊어지는 감각이 들었다.

보고 있는 레오에게도.

보고 있는 아리아에게도.

세상 모든 것이 혐오스러웠고 그중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것은 자신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Two men look out the same prison bars; One sees the mud, and one the stars.

두 사람의 죄수가 같은 창살 너머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한 죄수는 진흙탕을 보았다. 다른 한 죄수는 별을 보았다.

- 시인 프레드릭 랭브리지(Frederick Langbridge)의 시, <불멸의 시(A Cluster of Quiet Thou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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